세우신 이에게 신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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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라


본 문 : 히브리서3:1-6


설교일 : 2008. 4. 27(주일설교)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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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교회 항존직원 장립하는 임직예식을 거행합니다. 항존직원을 임직하는 것은 사실 무거운 멍에를 씌워드리는 예식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영광스럽거나 명예로운 직분이 아니라,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멍에직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짐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임직 받으시는 여러분, 한번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우리 주님만 바라보세요. 신령한 귀를 열어 하나님 보좌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들어보세요. 딤전3:1에 보면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세상 일에 부름을 받아도 영광스러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은 신실한 장로들에게 금면류관을 내려주셨습니다. 신구약을 대표하는 24장로님들은 당신들에게 씌워주신 금면류관을 다시 벗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려드리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영적으로 보면 영광스러운 자리요, 선한 일을 사모해야만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곳입니다.


오늘은 정말 복된 날이요, 여러분의 일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성령이 따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세우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12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12제자 중에 가룟유다가 선생님을 배반하고 나가서 죽자,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우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제자가 많아지고 구제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하여 일곱 집사님을 선택하여 세웠습니다. 교회는 많은 교인들 중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을 일곱을 택하여 구제하는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시면서, 주님은 당신을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1-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아,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들아”라고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하니, 도덕적인 의미에서 흠이 없고 경건하고 젊잖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아 구별하였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구별된 형제요,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먼저“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의외로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인생을 허송세월하는 이들을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결코 인생을 허송세월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탄은 사람들에게 속삭입니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쓸모없는 존재야” 악한 사탄은 한 사람을 잔인하게 짓밟아놓습니다.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으로, 자포 자기하게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르면 성장할 수도 없고, 소중한 일에 쓰임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9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우선 나를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누구신지 깊이 생각해보셨습니까? 깊이 생각해보아야 주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12제자들에게 붙이는 칭호인데, 예수님을 설명하면서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도 즉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권력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대사, 또는 대표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지명하시고 보내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최종적이고, 완전하신 계시자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생명이요, 진리가 되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오신 큰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제사장이란 사람을 대신하고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중보의 제사를 드리는 분입니다. 일반 제사장이란 하루 한번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고, 대제사장이라고 하면 일 년에 단 한번 백성의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데, 우리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오신 큰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당신을 속죄의 제물로 단번에 드리시므로, 한번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 말씀을 보면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데, 주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보내시고 세우신 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신실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을 세우시고, 임명하신 분, 자기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신 분에게 신실하였습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충성하였다는 말입니다. 예전 개역성경에서 ‘충성’하였다고 했고, 개정역에서는 ‘신실’하였다고 하고, 새번역에서는 ‘성실’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을 세우신 하나님에게 충성하셨고, 신실하셨고, 성실을 다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주목해야 하는 하나는 예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당신을 세우신 이에게 성실하신 그 자세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지만, 예수님의 성실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신실하셨는데, 누구에게 신실하신 것입니까? 당신은 세우신 이에게, 당신은 보내신 이에게 신실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요6:38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를 세우신 이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더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하여도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까? 사람이 세웠습니까? 우리 주님이 세우셨습니까? 우리를 세우신 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세우신 우리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15:16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세우셨습니다. 이제는 세우신 뜻에 의지하여 나가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실함으로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라고 부름을 받았고 세움을 입었습니다.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맥갈리스트’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만 그 사랑하는 연인이 죽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컸으며 그 큰 충격 때문에 그만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환자를 고쳐주는 의사가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데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만 보이지 않으면 쓰러지고 어디에 떨어져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담당간호사를 두어 항상 돌보게 하였습니다. 하루는 바다에 떨어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간호사를 보고 바닷가에 가자고 했습니다. “나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두고 당신은 바다에 나가서 수영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간호사는 환자의 말을 듣고 환자를 언덕위에 세워두고,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에 뛰어 들어가 수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이제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휠체어를 앞으로 굴려가려고 하는데, 바다에 들어간 간호사가 발에 쥐어나서 수영을 못하고 “사람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이 의사는 간호사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반신불수인 것도 잊어버리고 간호사를 살리려고 바다로 뛰어들었고 헤엄을 쳐서 간호사를 살려내었습니다.


자기가 죽으려고 할 때는 반신불수였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할 때에 기적이 일어나서 온전한 사람으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섬기라는 직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이라도 살리려고 힘쓸 때에는 자기도 살고 남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자리나 차지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주님을 본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갈1:10에서“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사람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딤후2:1-2에 보면 사람을 세우는 순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하십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아들 같은 사람이요, 바울이 길러낸 일꾼입니다. 디모데에게 명합니다. 충성된 사람들에게 말씀을 부탁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충성된 사람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충성된 일꾼을 발굴하고 훈련하여 제자로 헌신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의 최고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사람을 말할 때면 모세를 생각하였고 모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씀하신 종으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충성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민수기12:6-7에 보면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종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들로서 충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의 의식을 가지고 충성한 것도 높이 사주어야 하는 충성입니다. 종이란 본래부터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종이 아무리 충성하였어도 그는 종일뿐입니다. 종이 충성하였다고 잘 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인데, 아들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하는 아들이라면 그는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주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인들은 한결같이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충성하였고, 민족 앞에 충성하였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람들 앞에서 충성하는 척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이 좋아서 충성하는 하는 것처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걸고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성실하게 사람, 충성한 사람에게는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의 말씀을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이라고 하십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글을 읽다보니 감동적인 글이 있었습니다.


1947년 미국의 시카고 근교의 위스콘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과학자요 천체물리학자 첸드리스카(Chandrasekhar)박사는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나오셔서 고급물리학(Advanced Physic)에 관한 특별강의를 해주시겠습니까?” 박사님은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몇 주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cancel해야만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는 대답했습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두 학생, 등록한 학생의 information이 어떤지요?” 그래서 등록한 두 학생의 신상에 대하여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첸드리스카 박사는 “제가 강의를 하겠습니다.”라고 강의를 결정하였습니다. 그 해 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눈보라, 차갑고 사나운 바람을 헤치고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일주일에 이틀씩 한 번도 빠짐이 없이 그는 계속하여, 이 겨울방학동안 두 학생을 상대로 강의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년이 흘러갑니다. 1957년 노벨물리학상은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공동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닝 양(CHEN NING YANG) 박사라는 분이고, 또 한 분은 충다오 리(TSUNG-DAO LEE)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의 성실한 강의, 두 사람을 위하여 성실을 다하신 강의가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라는 분의 비전과 성실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다고 거절할 것입니까? 환경이 좋지 않다고 마다할 것입니까? 우리는 맡겨진 일에 충성할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해야 큰 일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야 하는데, 주님의 성실하심, 당신을 세우신 아버지에게 신실하셨습니다. 주님이 불러 시키시는 일과 교회의 일은 세상 일 보다 더욱 충성해야 합니다. 세상 일할 것 다 하고 시간이 남으면 후에 교회의 일을 하겠다고 하면 신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신실함입니다. 똑똑하거나, 경험이 많거나, 재주가 많아서 간단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모든 일에 성실을 다하는 그 자세를 더욱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여도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우리 주님에게 하는 것처럼 성실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골3:22-23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10%의 인생을 사는 비결이라는 책을 쓰신 마크 H. 맥코맥이란 사람은 “110%의 노력만이 110%의 성공을 가져다줍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IMG (International management group)의 회장이며 스포츠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 베스트셀러의 작가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최선을 다할 때 최고의 기분을 느낍니다. 최고의 노력을 기울일 때 최고의 자긍심을 얻고, 최고의 집중력을 기울일 때 최고의 자신감을 얻으며, 최고로 몰입할 때 정신적으로 고양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110%의 파트너와 일을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하는 일꾼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아이삭 왔츠의 찬송시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이제는 우리가 십자가를 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야 하는데, 주님은 당신을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집지은 자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집을 맡은 자로 충성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신실하심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주님 앞에 서실 때에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의 말씀을 들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