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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자
본 문 : 신명기3:23-29
설교일 : 2008. 2. 24(사순절 세 번째 주일)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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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뜨거운 기도 속에 성지순례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번 성지순례를 떠나면서, 이집트와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돌아보는 것으로 초점은 모세의 출애굽 여정에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번 다녀왔기 때문에 모세가 출애굽한 경로를 따라 요르단의 에돔 땅과 요단강 동쪽 요르단 땅을 돌아보면서 모세의 생애를 조명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올라간 느보산에서 모세의 심정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순간,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느보산 정상에 서보니 가나안 땅이 눈앞에 확 펼쳐집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으로 그치고 생을 접어야 했습니다. 느보산에서 받은 감동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에 앞서 요단강 동쪽 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요단강 동편 지역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에돔과 모압과 암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는 형제지간인 에돔과는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에돔 사람들에게 기별하여 당신네 땅을 다만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에돔 왕이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고 안 된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사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지금 형제인 이스라엘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자기네 땅을 밟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험한 에돔의 변방 호르산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신 땅은 요단강 동편 지역이 아니라, 요단강 서편 지역인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에 사는 아모리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우리가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지나가기까지 왕의 큰 길로만 지나가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모리왕 시혼이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자기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광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고 나왔습니다. 사실 요단강 동편 지역의 나라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방어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칼을 들고 나가 싸우는데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강까지 다 점령하고 암몬 자손의 경계에 이르게 되었는데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였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의 수도는 헤스본이었습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옛날 암몬족속의 수도였던 랍바성이었습니다.
아르논 계곡, 아르논 강은 정말로 험한 계곡이었습니다. 아르논 강은 모압에서 흘러나와 사해로 들어가는 강입니다. 현재는 식수로 사용하려고 댐을 건설하여 물이 사해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르논 골짜기는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케 하는데, 아르논 계곡은 대단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앞길을 가로막는 아모리 족속을 치면서 아르논 강에서부터 얍복강까지 사해 동편 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옛날 아모리 사람들이 거주하던 헤스본, 메드바, 노바 성들을 점령하였습니다. 얍복강은 요르단 계곡을 흘러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지류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을 치고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바산 왕 옥이 전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모세의 이스라엘을 맞아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길을 내어달라는 말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한판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서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강하고 담대하여 바산왕 옥을 치는데 왕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어서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들이 나가서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거기에 있는 아모리 인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 동편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은 므낫세지파의 땅이 되었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졌다 하여 모세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은 “건져내다”라는 뜻을 가진 마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수한 분이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740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40세 때까지 애굽의 왕궁에서 모든 문물을 공부하며 살았습니다.
40세 때에 밖에 나가보았습니다. 자기의 형제들인 히브리인들이 노동하는 것을 보다가 애굽 사람이 히브리인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얼른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고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세는 살인자였습니다. 히브리인을 때렸다는 이유는 있지만, 애굽인이 히브리인을 죽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애에 깊이 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승쩜掠맨構?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생명을 건지시고, 애굽의 모든 문물을 배우며 자라게 하시고,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로 하여금 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한편 깊이 생각해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적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말보다는 주먹을 앞세운 사람이요, 자기의 실력이나 권력을 사용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는 애굽에 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로 하여금 바로의 얼굴을 피하여 미디안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미디안이란 결코 손해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디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후에 큰 축복을 주시려는 은총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려운 고통이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산고를 치르지 않고 새생명이 태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모세를 호렙산으로 부르셨습니다. 양떼를 이끌고 풀을 따라 가다보니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러 떨기나무를 보았는데, 불이 붙어 있지만, 나무가 사그라져 가는 것도 아니요, 다른 곳으로 옮겨 붙는 것도 아니요, 하여튼 희한한 광경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면서 다가갔습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양떼가 먹을 풀을 준비하시며 모세를 호렙으로 이끌어내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당신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사업으로, 직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떼를 쳤습니다. 광야는 모세를 변화시켰습니다. 왕자가 목동이 된 것이나, 왕궁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광야의 거친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광야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가 없습니다.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식사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모세가 광야에 숨어살면서 광야에서 배운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자기의 힘, 자기의 방법, 자기의 지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광야는 그렇게 녹녹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미디안의 40년이 모세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접어들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돌을 들어 던지고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 고기 먹고 싶다고 원망, 왜 너희들만 제사장하고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읽어보면 원망, 원망, 불평, 불평하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원망이란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근성이 몸속에 깊숙이 배어 있었습니다. 노예는 하라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창의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의 재능이나,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예의식에 절어 있는 사람은 돈을 주고 장사해보라고 해도 걱정입니다. 시키는 일밖에는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무한한 잠재력을 심어주셨습니다. 생명의 씨앗을 심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부정적인 말은 금방 퍼져 나갑니다. 전 국민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니, 모든 문제는 모세가 우리를 인도해내었기 때문이라고 모세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불편하면 모세에게 주르르 달려와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해결되니, 아예 나쁜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부정적인 생각만 해내는 사람을 이스라엘 회중에서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파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와 아론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 250명의 지휘관들을 포섭하였습니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고 달려들었습니다.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는데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고 항의합니다. 이때에 모세가 심히 노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따지다시피 기도하였습니다.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때에 하나님은 고라와 250명의 족장들과 반기의 주동자인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 형제를 이스라엘 회중에서 분리시키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분향하던 고라와 250명의 족장들을 제단에서 불이 나와 살라버렸습니다. 그리고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은 산채로 땅 속에 묻어버리셨습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그래서 장래가 촉망한 사람인데 어리석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바람에 항상 어둡고 부정적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 무절제한 사람, 부정적인 언어를 가진 사람, 매사에 비판적인 사람과 어울리다보면 같아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친구 따라 강남가게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어떤 모임에서 매사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모임에 빠져나와야 합니다. 계속해서 술좌석을 만들고, 2차3차 접대하는 일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모임에 빠져나와야 살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과는 끊고 긍정적인 사람들과 사귀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안 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는 사람들과는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해보자고 말해야 합니다.
모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지도자를 차출하여 보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이 정탐해보신 장소였습니다. 모세 당시만 좋은 땅이 아니라, 두고두고 좋은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3개 대륙의 교량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물류의 중심지요, 땅이 비옥하고 과일이 잘 되는 땅이었습니다. 지금도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악평하는 자들이 있고, 자기들이 두루 정탐한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수의 정탐꾼들은 그곳에 사는 기골이 장대한 아말렉 사람들이 무서워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외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정적인 언어와 태도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지만, 안돼, 못한다고 말하던 부정적인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게 하셨고, 그렇게 걱정하던 그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위대한 일을 이루려는 사람들과 가까이해야 합니다. 우리의 잠재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에게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부정적인 언어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모세도 자신의 격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을 이끌고 가데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뱅글뱅글 돌기만 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와 달려들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는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순간 물이 솟아나왔습니다.
모세가 정말 망령되어 행하였습니다. 지도자는 거친 말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백성들이 반역하였다고 해도 그런 말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부드럽게 인도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망령되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혈기를 부렸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자기가 영광을 받아 가로챘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나님의 능력을 마치 자기의 능력이나 된 것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비스가산이란 가장 높은 산이라는 말이기에 비스가산이란 느보산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면서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은 확정됐습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완악함 때문에 모세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미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20:12)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비스가산, 느보산 정상에 올라가서 사해 건너 여리고 평지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가나안의 문턱에서 그의 삶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어떤 기도도 다 들어주시던 하나님이 거절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평생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면서 내가 한 것처럼 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많은 실수를 봐주십니다. 모세도 여러 번 실수하였습니다. 목사도 실수 할 수 있고, 여러 성도들도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것은 성도의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나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앞으로도 나를 사용하시는 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렘과 같이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순종, 겸손, 믿음으로 들어갑시다. 오직 앞만 바라봅시다. 우리는 믿음의 주님이시며, 온전케하시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저 천국에 들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면서 주님이 예비해놓으신 그 나라에 들어가야겠습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해,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야,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품안에서 춤을 출거야”라고 외치면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