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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본 문 : 골로새서1:24-29
설교일 : (주일낮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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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 아주 특이한 소식이 인터넷에 있었습니다. 2008년 정초 해맞이하면서 부산에서 날려 보낸 새해소망풍선이 300여Km를 날아가 일본 히로시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일본의 한 네티즌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우리나라의 인터넷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풍선에 매어 달았던 새해 기원문을 사진 찍어 올리고, 자신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사진에는 풍선에 매어달았던 기원문을 그대로 찍어 올렸습니다. “소원성취, 무자년 새해에는 (박성하씨의 가족들 모두 건강하길)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늘에 기원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부산 감천2동 통일 산악회원들이 부산 천마산 정상에서 100개의 소망풍선을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하나가 320Km를 날아 히로시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sino-sino-sino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직장의 밖에서 주었다고 하면서 자기는 히로시마현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새해가 되면 새로운 소망을 담아 하늘에 날려 보내기도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새해가 밝아온 지 벌써 3주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우님들 중에는 새로운 목표와 결심과 변화로,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새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교회를 봉사하는데 새롭게 헌신하는 교우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찬양대원으로, 교회학교 교사로, 선교회의 활동과 자원봉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곳곳에 교회를 설립하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고난, 복음을 전파하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고난이라고 하면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당연한 책임으로 알고, 언제나 그가 먼저 감당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귀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주님과 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 앞장서서 큰 책임을 감당하고 뒤로 물러서거나 다른 사람이 앞서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몸 바쳐 수고하면서 힘들다거나 어렵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불평할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을 터인데, 정말 묵묵하게 봉사하는 이들을 보고 있습니다.
목사가 무엇을 물어보거나 부탁하거나 맡겨보면 한 번도 “아니오, 못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하겠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야지요. 제가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가르쳐주시고, 꼭 기도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입니까?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는 저의 부탁에 거절하거나 반대하거나 토를 달고 언짢은 듯이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란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교회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교회란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교회로 만들려고 다같이 노력하면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칭찬받는 교회, 우리 주님 앞으로 통째로 들려 올림 받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온전한 교회를 이루고, 연약한 성도를 섬기기 위해 먼저 믿은 성도와 교회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지금 육신으로 살아계신다고 하면 당신이 마땅히 지시고 가실 고난이란 의미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25절입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직분을 받은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역성경에는 “경륜을 따라”, 지금 개정역에서는 “직분을 따라”, 새번역에서는 “내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시는 이들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어떤 성도들은 정말 사명감으로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마지못하여 체면치레로 일하시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괴로움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괴로움이 될 수 있습니까? 영광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감사와 감격으로 기쁨으로, 은총으로,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와 우리의 날들을 감동시대로 만들어가야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대로 매일 매일을 능력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고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고,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이요, 무익한 하인에 불과하다고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매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사명을 따라 충성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영원한 진리요, 복음이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생명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오랫동안 비밀에 속한 것이었는데, 그 비밀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셨습니다.
본문의 27절 말씀에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핵심의 말씀은 하나님이 비밀로 간직하시고 있었던 귀하신 진리를 이제는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보여주시고 알려주셨는데, 그 비밀은 우리 성도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사도바울이 비밀이라고 하신 것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찬 경륜에 따라 이제는 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갈4:4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여자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의중에 감추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에게도 알려지고 공개되어진 진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비밀의 주인공이었고, 비밀이었지만, 이제는 영광의 소망이요 풍성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의 소망이시며, 우리 안에 모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소망이라는 말은 듣고 또 들어도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소망이란 말은 쉽게 희망이라고 합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장차 큰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희망이 있다, 소망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큰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만 영원이란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먼 길이라고 나설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어떤 역경과 고통이라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소망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발전은 기대할 수도 없고, 살아갈 의욕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앞에 소망이 있으니, 하루하루를 인내로서 살고,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제직 수련회를 하였는데, 오셔서 말씀하시는 강사 목사님이 직장에 가는 남편들을 위하여 아내는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10분간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가슴 아픈 말씀은 직장에 나가는 남편들이 돈 벌러 가는데 사실은 죽으러간다고 하였습니다. 직장 생활이 만만치 않기에 죽으러 간다고 한 것입니다. 죽으러 간다고 하니 정말 비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금 좋게 말하면 죽지 못해서 가는 것은 아니고, 일이 좋아서 간다고 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가정을 생각하기에 출근합니다. 직장에 나가서 수고하는 것이 나와 나의 가정에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전혀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절망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은 우리 사람에게는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이 다가올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나아질 것이고, 아이들만 장가들이고 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바로 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146:5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소망의 차원을 달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소망이 진정한 소망이 아닙니다. 물질의 넉넉함이 인생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그 분은 내 안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1964년 독일의 유명한 ‘위르겐 몰트만’이란 신학자가 “소망의 신학”이란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과 십자가의 구속, 죄와 사망을 이기신 부활의 사건만이 인류에게 주신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막연한 기대감이나,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라, 산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산소망은 우리 구주 예수님이시며,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놓으신 하늘나라만이 우리의 산 소망입니다.
저는 27절의 말씀,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라는 말씀으로 아주 큰 은혜를 받았고, 이 말씀으로 퍽 오랫동안 은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신 우리 주님은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영광이요, 나의 소망이요, 나의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이 말씀은 저로 하여금 절망에 빠지지 않고 말씀으로 붙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어둠에 헤매지 않고 밝은 빛이 되어주셨습니다. 질그릇 속에 보화를 담았다고 했는데, 예수만이 나의 전부요, 나의 생명이요, 나의 축복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큰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것은 우리 사람들에게는 감취어진 것이요,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므로 그 비밀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었고, 널리 전파하여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에는 그 구원의 비밀은 유대인들이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방인들도 알게 되었고, 우리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비밀의 놀라움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힘써 주의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삶으로 이해하고, 생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안에도 계십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주님의 약속하신대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살아가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바로 진정한 소망이란 말씀이요, 가장 빛나고 영원한 소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 소망이 아닙니다. 잘 사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출세하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명예를 얻는 것도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 지나가야 하는 것에 소망을 두고, 목숨을 걸고, 그것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나의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나는 깨어져야 하고, 내려놓아야 하고, 더 내려놓아야 하고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참된 소망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셔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에게 새해의 새 소망이 되고 있습니까? 진정한 소망은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더불어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산 소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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