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의를 이루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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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모든 의를 이루시는 예수님


본 문 : 마태복음3:13-17


설교일 :(주님의 수세주일)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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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교회사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신 감리교회의 박대선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분으로 6대 신자의 가정이며 3대 목사의 집안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 박목사님 가정의 형제가 9남매였는데 부모님과 함께 열한 식구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정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박목사님이 젊었을 때,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중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받게 되자 일본과 한국의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모셔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 박대선에게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목사가 되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대학의 영문과를 나와서 이제 영어 선생이 되면 당시에 90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 이후로 3년 동안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전도사가 되어 교회에 가면 15원의 사례비를 받아야 했습니다. 젊은 사람으로서는 결단하기가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아 아버지 목사님에게 의논을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합니다. “네가 지금 중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인데, 내가 아버지라고 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네가 결정하도록 해라. 목사가 되는 것이 이 세상의 대통령이나 장관 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못하다고 생각되면 신학교에 갈 것 없이 학교 선생하는 것이 좋고, 네가 목사되는 것이 대통령이나 장관 되는 것보다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면 신학교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충고에 너무나 부끄러워 돌아와서 곧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신학대학을 나와서 50년간 목사로, 교단의 감독으로, 대학 교수와 총장으로 한국교회를 섬겼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 자기를 낮추는 사람,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수세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주현절기를 지키면서 사순절로 들어가기 전에 “주님의 수세주일”로 지켰습니다. 교회력이란 일 년을 보내면서 예수님이 공생애에 있었던 모든 일을 기념하고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기에 주님이 세례 받으신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생애를 보내시기에 앞서 세례요한이 등장합니다. 아직 예수님이 그의 가족들과 함께 갈릴리 나사렛에서 개인적인 삶을 살고 계실 때에 예수님보다 6개월 전부터 세례요한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세례요한의 본명은 요한입니다. 그가 세례를 베풀었기에 쉽게 부르기를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은혜로 돌보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 나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약400년 간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세례요한이 나타나신 것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미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요, 주님이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사명을 가지고 오는 선지자가 있다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 석청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광야에 살면서 금욕생활에 힘쓰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있었는데,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책망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한 경고요, 책망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당시 사람들에게 곱게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쳤는데, 이 말은 지금 들어도 정말 욕 중에도 욕이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요한은 광야에 볼 수 있는 독사를 보면서 간교하여 옛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던 그 뱀을 상상하였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요,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곧 “저주받은 뱀의 후손들”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사탄의 도구요, 사탄의 종들이라고 욕한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였다는 표시가 하나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욕하는 것은 망하라는 말로 들리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개한다는 생각으로 세례 받는 것으로 치유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마다 자기보다 뒤에 오시는 그 분, 하나님이 보내신 종,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이,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분, 역사를 심판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분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찾아가셨습니다. 그 때에 세례요한이 말렸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때에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씀을 듣고 허락하여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을 4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자청하여 받으러 가셨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요한이 증언한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신데 굳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광야로 나오시고 요단강에서 가서 세례를 받으셨는지 그 깊으신 뜻을 다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당시의 죄인들이 나아와 죄를 회개하면서 그 죄를 씻었다는 표로서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이란 더러운 것을 씻어줍니다. 우리들이 더러워진 손과 발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습니까? 물로 그 더러움을 씻는 것입니다.


물을 가지고 우리의 더러워진 몸을 씻을 수 있습니다. 물이 더러움을 씻어주듯이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서 죄의 용서함을 받았다는 상징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용서받는 표시로 세례를 받지만, 우리의 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요한의 세례를 받으면 정말 죄를 다 용서받고 구원을 받느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죄의 용서의 길을 열어놓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외침과 그의 생애를 통하여 세례를 조명해보아야 합니다. 세례요한 그도 한 사람의 죄인으로 오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아야 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구속사에 있어 서막이었고, 예수님의 구속사를 열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죄인들이 죄를 회개하면서 물세례를 받는다고 하면 죄가 없으신 주님은 정말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는데, 세례요한이 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세례를 자청하여 받았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다고 하면 아마 그도 남모르는 죄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죄인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자신은 죄가 없고, 깨끗하다고 여기던 사람은 세례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의롭다고 하던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자리인데, 예수님은 거절하는데도 자청하여 세례 받으려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더 낮아져서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무언가 순서나 차례가 잘 돌아가지 않고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은 것입니까?


카리스 주석에서는 몇 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세례요한의 사역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이라고 공적으로 인정해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요한이 등장한 것이나 그가 회개를 강조한 것이나 죄 씻음의 세례를 베푼 것을 크게 보면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 서막을 알리는 사건으로 인정하시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예수님의 생애의 한 사건으로 받아들임으로 세례요한은 예수님 전에 오실 엘리야와 같은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은 것은 우리 예수님 자신이 죄인들과 동일시하시면서 죄인들의 대표가 되어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장차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든 사건은 십자가라는 사건에 연결되고 있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표적으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후에 세례요한을 예수님을 증언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은 것은 사적인 생애와 공적인 생애의 전환점으로 선포하시는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은둔하셨지만, 이제 공적으로 그 얼굴을 보이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에 매여서 살아오셨습니다. 세례 받으신 후에 40일 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고, 그 후에 악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세례받기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에 들어가시면서, 메시아로서, 하나님을 대리하시는 자로 부르심에 응답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15절 말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가 당할 죽음의 세례를 예시하시고 있습니다. 반드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하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겠다고 나아오셨을 때에 요한이 거절하다가 이 말씀을 듣고 허락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지금 이 세례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모든 죄인을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요한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고난 받는 의로운 종이었습니다. 사53:11에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물에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늘이 왜 갈라진 것입니까? 막혔던 장벽이 갈라지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늘이 열렸습니다. 우리도 하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열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말은 하늘이 열렸다는 말인데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가능해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령이 강림하시는 방식이 마치 비둘기 같았다는 말도 되고, 이 말은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과 같이 임했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에게 임하신 성령은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마치 비둘기 형상으로 보여졌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실 때에 그 위에 머무는 모습을 비둘기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랍비들은 창1:2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신은 비둘기 같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며, 참 신이시기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가장 은사를 받으신 것이요, 이제부터 성령님이 동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자이신 하나님으로 활동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정한 나이 30세에 공개적인 절차에 의하여 우리의 그리스도로,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제사장으로 우리의 선지자로 그 사명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세례요한이 똑똑히 보고, 자기도 과연 누가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이신지 그동안 궁금하였는데 예수님의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확신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다”고 증언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면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소리는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런 음성을 들으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달라도 한참 다른 분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예언자들을 통하여 구약에서 예언되어진 말씀이 그대로 응하게 된 것입니다.


시2:7에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사42:1에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에 성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주님이 장차 십자가를 지실 것을 확신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고 선포하시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이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하여 낮아지고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위대한 일일수록 힘든 것이며,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응답하시는 주님의 희생적인 헌신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서도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으시면서 장차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을 천명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는 팡파르와 같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이나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일,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린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드림메이커라는 책에는 캐나다의 존 캐디 선교사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존 케디\" 라는 선교사는 식인종이 사는 작은 섬 뉴헤브라이즈 군도로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언어를 습득하고, 문자를 만들어 가르치면서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가 사역을 마치고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그 기념비에 사람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1848년에 그가 이곳에 처음 상륙하였을 때에는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1872년에는 여기에 식인종이 한 명도 없다.” 선교사님은 26년 동안 그 섬 전체를 복음화하였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인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결단처럼, 당신은 죄가 없으시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과 동일시하시면서 반드시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결단으로 세례 받으러 나가셨습니다. 낮아지시고, 겸손하시고 희생하시는 순간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러주시고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님과 함께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길을 가시면서 낮아지시고 희생하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소원합시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기에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결심하고 주님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