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에브라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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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베들레헴 에브라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본  문  :  미가5:2-5a


설교일  :  (주일낮예배)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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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요즈음 TV방송을 보면 온갖 성탄절 특집 프로로 가득차고 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성탄절을 영어로 말할 때에 ‘Christmas’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과 ‘미사’(예배)라는 말이 합쳐서 생긴

말입니다.    중세 때까지도 그리스도라는 말과 미사라는 말이 따로 사용되어 오다가 영국에서 조합해서 사용하면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라는 말의 글자의 수가 많다보니 더욱 축약하여 헬라어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를 나타내는 말 ‘크리스토스’라는 말에서  첫 글자 ‘X’라는 말을

따다 붙이게 되었습니다.  헬라어 “키이””라는 말이 영어의 X자와 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헬라어의 X를 사용하여 Xmas라고 하는 것입니다.  쓸 때에는 X-Mas라

고 쓰지만 읽을 때에는 반드시 크리스마스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참 뜻을 모르고 Xmas라고 합니다.   여러분, X

라는 말은 수학에서 미지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수학에서 미지수를 말할 때에 XYZ이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모르는 수이기에 X라고 합니다.  X×Y=Z라고

합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크리스마스를 X마스로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어린이들에게는 그리스도 대신에 선물을 주신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

지가 들어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향락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음식점, 술집이 성업 중입니다.  돈이 그리스도를 몰아내

고 돈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리스도를 몰아내고 연애의 축제로, 성의 축제로, 호텔의 축제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무슨 날

인지 나는 모르고 다만 즐기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합니다. 알면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 개신교

회는 서방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서방교회라고 하면 로마 천주교회를 말합니다.  기독교회가 주후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에 의하여

공인된 후에 4세기부터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1월 6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한

주현일(Epiphany)로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1월 6일 주현절 이후에 맞이하는 첫 주일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1월6일

을 주의 성탄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유대 베들레헴의 탄생교회에서는 개신교회와 로마 천주교회는 12월 25일에 예배드리고, 동방교회인 희랍정교회는

1월 6일에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에 모여 탄생 축하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탄생하신 정확한 날을 알 수는

없습니다.    12월 25일을 지키는 교회, 1월 6일을 지키는 교회가 있어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신 곳은 유대의 베들레헴입니다.  두 곳,

세 곳이 아니라, 오직 한 곳 베들레헴입니다.


오늘 선지자 미가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가 나시는 동리는 “베들레헴 에브라다”

라고 지목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으로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2:2)고 하였습니다.   헤롯왕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

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

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2:5-6)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헤롯왕은 동방에서부터 별을 보고 따라온 박사들을 왕이 태어나기로 예언된 베들레헴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유대 베들레헴이란 동리는 ‘에브라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불론 지파가 사는 지역도 베들레헴이란 동리가 있기

때문에,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하든지 ,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불렀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동리의 이름의 뜻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에브라다라는 말은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베들레헴이란 동리는 다윗이 고향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는

아주 적은 동리였습니다. 동리가 크고 작다는 말이 아니라, 천하고 보잘것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베들

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땅을 구원하실 메시아는 호사스러운 예루살렘 궁정에서 나시지 않고, 초라한 시골 천하고 보잘것없

는 마을에서 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동리의 이름이 떡집이라고 했는데, 인류를 구원하신 메시아는 생명의 떡이 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동리는 다윗의 고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옛날 야곱의 작은 부인이었던 라헬이 베냐민이라는

아들을 낳고 산고 끝에 죽어 묻힌 곳이 베들레헴 에브라다였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살던 곳으로, 모압 여인 룻이 와서 보아스에게 시집간 동리가 역시 베들레헴이

었습니다. 다윗이 양을 치면서 살던 정말 시골 동리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낮고 천한 몸을 입고 오시는데, 왕궁이나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정말 심심산골

동리인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같이 낮고 천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아지시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약하였습니다.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주목받을 것이 없는 동리였습니다.  멸시를 받아도 변명할 것도

없는 미약한 동리였습니다.  베들레헴은 절대로 큰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여리고, 세겜 그런 도시들보다 아주 작은 동리였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성탄절이 되면 아주 귀한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120장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오 베들레

렘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별들만 높이 빛나고 잠잠히 있으니”라는 가사입니다.   필립 브룩스 목사님이 1865년에 성지 순례에 올라 베들레헴을 방문하였는데, 하도

초라하고 적은 동리요, 목자들이 양을 치는 목장이 있었으나 울타리도 거의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에 세워진 예수 탄생교회가 있었는데, 건축한지 오래되

어 퇴락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낮고 천하고, 보잘것없는 시골 동리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잠

들어 고요한 시간에 평화의 왕이 탄생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절대로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나 그런 궁궐에 나시지 않고, 낮고 천한 동

리에 나셨습니다.  낮아지셨습니다.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양부이신 요셉과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갈릴리 주의 나사렛이란 동리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사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사실은 가능하지 못한 예언이었습니다.  어떻게 나사렛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베들레헴이란 동리로 원정 출산

할 것도 아니요, 그 당시에 어떤 이유로든지 베들레헴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위대하고,

놀랍기만 합니다.  로마 황제를 움직여 가이사 아구스도로 하여금 전체 로마제국으로 천하로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란 사람이 다윗의 후손이었기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그의 부인도 요셉의 가문과 결혼함에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의 황제를 동원하면서 나사렛에서 살

던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올라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그러면 베들

레헴에서 태어나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메시아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근본을 따지고 보면 “그의 근본은 상고에 , 영원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서는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의 나오심은 상고요, 태초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 주님은 사도바울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과 같은 본체이셨습니다.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같은 본체이셨습니다.  이것을 신

학적으로는 선재하시는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은 모두다 하나님의 아들의 선재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셨습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 주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 ‘로고스’이셨습니다.  요일1:1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

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요1:1-2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1:14

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분,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이신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태초”라는 말은 창1장에 나오는 태초보다 더 먼저요, 오래 전이요, 하나님이 스스로 계실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아들이요

,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미가선지자는 메시아의 오시는 때를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것

은 3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

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두신다고 했는데, 이방의 포로 생활이 끝날 때에 이 땅을 다

스릴 메시아가 오신다고 전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고, 이방 제국의 속국이 되어 있을 것이지만,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

들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해보면 우리 주님의 오심으로 우리는 죄악의 포로에서 해방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악의 노예가 되어 있고, 열방에 포로로 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이 시대의 남은 자로서 돌아와 구원받게 되

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4절 말씀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우리 하나님의 아들, 주님은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 분은 여호와의

능력이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우리를 먹이시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먹

이시고 입히시고 있습니다.  그의 통치는 땅 끝까지 미치고 전우주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 되

셔서 우리를 먹이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안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들이 무

슨 일을 하든지 때마다, 일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려고 힘쓰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비결입니다.  내 마음

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그 때는 실패요, 낙심에 빠지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가셔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무력으로 다스리고, 목숨을 빼앗기도 하지

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장이 되십니다.  우리 주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만이 우리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다니며 창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5절 상반절의 말씀을 봅니다. “ 이 사람은 평

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자,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나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우리의 평강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을 가져다주실 분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평강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

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친히 중보자가 되어 주시고, 화해의 제물이 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샬롬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


엡2:14에서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로마의 평화와 같은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평화, 힘의 균형을 깨버리는 그런 예속된 평화를 주지만, 우리 주님은 영원한 평

화, 영속적인 평화를 내려주시고 있습니다. 


물질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며, 화려한 생활이나 인기를 누리는 것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한 평안이요, 세상이 주는 평안이란

잠시 동안 주는 평안이요, 다시금 평안치 못하고 고통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그 사람은 평강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된 평화로 인하여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유대인 소녀가 독일 경찰에게 쫓기게 되었답니다.  유대인들의 게토를 포위하고 수색하

여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는 잡히는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유대인 소녀 중에 “왈소”라는 아이가 산속으로 도망하여 으슥한 곳에 굴이 있기에 그 굴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벌써 군인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 굴속에 숨어 먹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소녀의 메모가 오래 시간 후에

발견되었습니다.   화란의 신학자 요하네스 할켄딕이라는 교수님이 우연히 굴에 들어갔다고 발견한 것입니다.  왈소의 메모는 다 세 줄의

글이었습니다. 


첫째, ‘나는 지금 빛나는 태양을 보지 못하나 밖에는 찬란한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둘째, ‘이런 험

악한 세상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셋째, ‘지금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고 계시나 이 굴속에서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

다. 



\'바탕\'; TEXT-ALIGN: justify\">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 그 평화가 되십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은 낮고 천한 동리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평화의 왕을 모시고, 이 세상을 적극적으

로 아름답게 만들고, 평화를 창조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체\'; LETTER-SPACING: 0px; TEXT-AL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