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본 문 : 마태복음25:1-13
설교일 : (주일낮예배)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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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교회력에 따
르면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초대교회로부터 아주 오랫동안 지켜온 절기입니다. 대림절이란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준비하는 절기입니
다.
인류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뿐이 없습니다. 어떤 정치가도 우리 시대의 소망은 아닙니다. 어떤 분이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이 세계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선다고 해도 그를 구세주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기대
해서도 안 됩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종전이 선포되고 평화협정이 이루어져도 우리 인간의 깊은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미명에 일본의 4척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폭기들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불시에 공격함으로 4
년 동안 태평양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로부터 9년 후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우리나라의 38선 전역에서 북한 공산군이 불시에 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로 인
해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3년 간 계속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이나 한국전쟁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
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시에 침략을 감행하였다는 것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이 날은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한 날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바로 주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은 북한공산군이 우리 대한민국을 남침한 날입니다. 이 날도 역시 주일이었습니다. 미국은 12월만 되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고, 많은 군인들이 휴가를 가고 외출을 하고, 혹 부대에 남아 있는 군인들이라고 해도 마음이 들뜨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인들에게 있어 일요일은 아무래도 해이
해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6월 마지막 일요일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느슨해지기 쉬운
시기입니다. 토요일에 휴가를 떠난 군인들도 많았고, 외출을 나왔던 장병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에는 곤히 잠든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군인들
이 방심하고 있는 시간에 불시에 공격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방심하고, 설마 하는 시간에 적은 쳐들어온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들이 사
는 이 세상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우리 앞에 닥쳐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복병에 쓰러지기도 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우
왕좌왕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 깨어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준비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며, 우리에게 상급을 주
시려고 오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속박하고 부자연스럽게 하고, 멸망시키려고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심판의 주님으로 오시지만, 우리에게는 신랑 예
수님이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하여 오시는데,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기 관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을 말하고, 경영철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확실한 처세술이라고 하면 자기를 잘 관리하라고 말합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오늘 열 처녀 비유는 대림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확실한 교훈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관리를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자기 관리는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서 관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관리는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오늘 열 처
녀의 비유를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서 본문이 말씀하고자 하는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야기인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가
지고 종말의 심판의 때를 설명하셨습니다.
1절의 “그 때에”라는 말씀은 인자가 오시는 때, 종말적인 심판의 때를 말씀합니다. “천
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한 비유를 가지고 천국에 대하여 모든 것을 다 설명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의 극히 제한된 일면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깨어 준비하는 자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신랑을 맞으
러 나가는 열 처녀가 있었습니다. 열 처녀의 열이라는 숫자는 세상적인 완전수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
은 슬기 있는 자였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슬기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미련한 사람에 속하게 됩니다.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5명씩 양분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점에 있어서는 슬기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슬기롭다는
말은 지혜롭고 준비성과 분별력이 있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해나갈 수 있으며, 매사에 신실하였다는 말씀입니다. 평상시에는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지, 아니면 미련한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지고 다 졸며 자다가 보면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지, 아니면 미련한 사람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제 한 밤중이 되었는데,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모든 여자들이 신랑을 맞으러
동리 어구까지 나갔다가 신랑과 함께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때에 보니 기름을 다 사용하여, 등불이 꺼져가는 사
람들이 있었습니다. 등불이 꺼져가니 안절부절 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통에 있는 기름을 보충해주어, 계속하여 등불을 밝혀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기름
을 여분으로 가지고 갔다가 불이 꺼져갈 때에 기름을 보충하여 넣어주는 사람은 참으로 준비성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불이란 것은 기름만 충분히 준비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준비할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기름입니다. 등잔에 들어있는 기름만 믿지 않고
, 더 여분으로 다른 그릇에 기름을 담아가지고 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준비성이 있는 사람으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불이 꺼져가는 것을 보고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합니다.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미련한 자들은 판단하기를 기름 파는 자들에게 속히 사가지고 오면 피로연장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기름집에 가서 기
름을 사가지고 왔지만, 결혼식 집은 이미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들려오는
소리는 차가운 소리였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였노라”는 것이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오늘의 교훈
은 13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오늘의 말씀
은 비유이기에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종말을 준비하라’,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을 대조할 수 있어
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슬기 있는 사람은 할 수 있을 때에 반드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
련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은 할 수 없을 때에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는 우리 앞에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선용
하느냐 하는 것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핑계치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게,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다가 오고 있습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허송세월하고, 잃어버린 다음에 비로소 소중한 것을 깨닫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문이 닫히고 나서 준비하면 무엇 합니까? 등불이란 신랑이 올 때에 맞이하고 함께 들어가기 위한 것인데, 신랑이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때에 준비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때늦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을 때에 일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에 준비해
야 합니다. 건강할 때에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에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주어졌을 때에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 다 잃어버렸을 때에 주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때늦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심판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주셨던 기회를 거두어 가시고, 더 이상의 시간
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아
직도 멀었다고 생각할 때인데, 그래도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에 건강을 지키고, 시간 있을 때에 봉사하고, 물질도
있을 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에 믿음이 더 좋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긍정적인 신앙이요,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은 다 놀러 다니고, 화려한데 빠져 있어도 나는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노라고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준비입니다. 좋을 때에
믿음이 더 좋아져야 합니다. 지금 기회 있을 때, 아직도 인생의 여유가 있다고 할 때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더 나아져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는 너무나 부족합
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힘쓰고 애쓰는 중에 주님을 닮아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보면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플 때에 믿음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패하여야 돌아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한두번 경고하시는 사건도
있습니다. 지금도 준비하는 데는 조금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지금 영적인 일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목사님, 아
플 때에 믿음이 좋아지고, 실패하였을 때에 재기하는 것이 무엇이 나쁩니까?”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한 발
늦은 것이요, 자랑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실패하였는데도 일어서지 못하고, 잃어버렸는데도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는 정말 재기불능의 무능한 사람입니다. 그
런데 한참 좋을 때에 더 힘써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고독하기만 하고, 이래야 되는가 싶을 정도로 진부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살기 좋을 때에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
고, 애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질 때에 믿음이 좋아지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지 않으면 죽으니까 마지막 살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나갑니다. 그런데 잘 나가는 사람인데, 더욱 정신 차리고 사
업을 다져갑니다. 이런 시간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이요,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번 닫힌 구원의 문을 다시는
열려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 오라고 하시며,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 날에는 더 이상 오라고 하지 않
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됩니다.
신앙의 시간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내일 가서 하겠다는 것은 영원히 하지 않으려는 것
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열려 있던 문이 닫혀 지는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기에 지금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지혜로운 사람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등이란 성도들의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름은 구원의 확신과 함께
하나님과 생명력 있는 열성적인 영성을 말합니다. 미련한 사람들도 등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번
체험한 신앙으로 될 줄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계속하여 충만하고, 계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등불이 꺼져가는 미련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
은 말이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등을 가질 때에 기름도 들어 있습니다. 기름이란 사용하면 없어지고 줄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
다. 계속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우리의 등불도 꺼져가고, 식어가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었다고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식어갑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
심을 사모하면서 영적인 충전하지 않으면 탈진하고 맙니다. 불을 밝혀야 하는 등불이 그을음만 내고, 냄새만 고약하게 풍기면 안 됩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여러분, 신랑을 맞이하는 처녀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꽃단장이 아닙니다. 미모를 가꾸는 것도 아닙니다. 선행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잘 준비하였어도 성령 받지 못하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 받으면 모든 것을 준비한 사
람입니다. 미련한 이들은 다만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외형적으로 직분도 이젠 되었습니다. 오래 믿은
연조도 좀 되었습니다. 헌금도 십일조 생활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도 등불에 불과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한번 받은 성령으로 버티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성령의 계속적인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기도
하지 않으면 성령의 기름은 바닥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은혜 받지 않으면 외식적인 신자가 되고, 신종 바리새인이 전락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
는 여러분, 오늘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살고 계심을 인정하고, 주님과 함께,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