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중보 기도자를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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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신다.


본  문  :  에스겔22:29-31


설교일  :  (주일낮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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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1:24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

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한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서 농사를 망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벌써 기우제를 지내고

야단났습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농촌 교회의 목사님이 온 교우들과 함께 비오기를 위하여 기도회를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여러분, 비가 오지 않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가 오기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비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슥10:1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봄비는 늦은 비

를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구름을 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비를 내려달라고 하는 자들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은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수 십명의 성도들이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모였는데, 그 날에 어린 초등학교 2학년 학생만 우산을 가져오고 그 외

모든 성도들은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면서 우산을 가지고 오신 교우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목사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

고 소낙비를 내려 주시는데, 비를 맞지 않고 집에 돌아간 사람은 어린 초등학생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어린 초등학생은 우리 교회 목사님과 온 성도

들이 하나님께 비를 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하니, 하나님은 틀림없이 비를 내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비를 맞지 않고 집에 오려고 하면 우산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에 보면 어린 아이보다도 믿음이 없습니다.    기도한 것들은 모두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되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기도라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합니다.  요리문답 98문에 그 좋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자비를 감사한 마음으로 인

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뢰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성숙하고 온전한 기도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 뜻에 맞는 것들을 그

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기도를 정의하신 많은 분들이 있지만, 현재 개신교 영성의 거장이라고 하는 유진 피터슨박사가 말하는 것이 마

음에 들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개신교 영성신학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깊은 영성과 성경적인 바탕과 풍부한 신학적인 교양에서 나오

는 그의 글들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30년간 매릴랜드 주에 있는 Christ Our King Presbyterian Church(교회)에서 목회하신 분이며, 캐나

다 뱅쿠버에 있는 리전트 신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쳤습니다.  현재는 리전트 신학교의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저술활동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그는 ‘응답하는 기도’라는 책에서 기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하고, 존재되어 가기 위한 도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정의하기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다.”라고 했

습니다.  존재하고, 존대되어 가기 위한 도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일

반적인 기도가 나의 문제를 자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면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도가 자기를 위한 기도라

고 하면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라고 하면 기도의 용어로 정당한 것이냐고 물어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중보기도라고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대언의 기도를 하시는 그 기도만이 중보기도이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

도를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보적인 기도라고 해야 한다, 도고라는 기도가 맞다, 대언의 기도가 좋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용어

는 쉬워야 하고, 말하기도 쉽고, 알아듣기도 쉬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 사전에는 “중보”라는 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중보란 첫째 “둘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서로 의견을 달라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중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독교의 전문 용어인데, “하나님과 사람과 사이에서 인간을 대신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

할, 곧 예수의 역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 되시고, 참 인간이 되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두 사이를 화해시키고 하나 되게 하면서

관계를 회복시키신 예수님의 역할을 중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중보기도라고 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기도

로 연결해주는 일입니다. 합동측 교단에서는 중보기도라는 말이 신학적으로 합당하지 않으니, 도고기도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합동측 대교회들은 다 중보기도라고 사용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라고 하는 고신측 장로교회에서는 중보기도라고 부르자고 공식적으로 결의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가급적이면 쉬워야 하고, 부르기도 쉬워야 하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을 중보라고 한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

를 중보기도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딤전2:2에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

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 간구, 도고, 감사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새번

역 성경에서는 도고라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했습니다.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

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더불어 살고,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혼자 잘 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다함께, 더불어 행복해야 합니다. 내가 잘 되는 길도 기도에 있고, 우리 모두 다함

께 잘 되는 것도 기도에 달려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완벽

하시고 온전하신 중보자는 우리 예수님뿐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보니, 이제는 나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중보기도는 아주 보편적인 기도였습니다,   중보기도에 힘쓴 성도들을

보면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솔로몬, 예레미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과 교회를 위하여 중

보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남기셨습니다. 


골4:3에 보면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엡6:18-19에서도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

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바울은 에배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 자기를 위하여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소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유다 땅이 진노를 쌓고 있었습니다. 더러워졌고, 비를 얻

지 못한 땅이요, 서로 음모를 꾸미고, 먹이를 놓고 으르렁대고 있었습니다.  남의 생명을 죽이고, 재산과 보화를 탈취하고, 그 땅에는 억울한 과부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나

님의 율법을 위반하였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재산도 가로챘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사람들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거짓과 불의가 난무하였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이 때에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릴 진노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이라고 해도 심판하

시고 진노의 잔을 쏟아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람을 찾았습니다. 


30절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나

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내가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땅을 지키려고 성을 쌓고, 그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중에

라도 이 땅을 멸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 땅을 멸망지키지 말라고 하나님이 가시는 길을 가로막아 서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땅을 멸

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 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질병으로 죽어가는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려야 합니

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부르짖어 간구하는 성도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심판하실 것도 유보하시고, 가시던 길도 멈추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뒤에는 기도하는 사람, 기도의 후원자, 중보의 기도자가 있다는 것을 행복한 중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에 롯의 뒤에는 기도하는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사실 자기의 조

카 롯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체면불구하고 탄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버

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50명에서 45명으로 40명, 30명, 20명 마지막 10 명으로 깎아내리면서 의인 10명이 있어도

용서해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소돔과 고모라고 향하는 발걸음을 붙잡고 가로막는 아브라함의 중보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의 가정을 살리셨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모세는 중보 기도의 대가입니다.  그의 중보기도는 자기 민족이 없다는 자기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삭제되어도 좋지만, 자기 민족을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바로 그런 중보기도가 있었기에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는 전도할 대상을 위하여 중보기도하였습니다.  부모와 자녀와 형제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회와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병든 교우들을 위

하여 기도합니다.  살기 좋은 사회가 되고, 위대한 민족이 되고, 통일 조국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죠지 뮬러의 생애와 그의 목숨을

건 기도에 정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5만 번의 응답을 받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자란 사람이 영국에 건너가서 선교사로 일하다는 것이 그

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기도하였지만, 그의 생전에는 응답받지 못한 기도도 있었습니다.  친구 5명이 구원받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5년만에 1명이

구원받았고, 10년 기도하는 중에 다른 2명의 친구가 구원받았고, 25년 만에 한 친구가 구원받았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기도하였으나, 구원받지 못한 친구가 한명이 있었는

데, 뮬러가 죽은 5개월 후에 그 친구도 돌아와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비록 더디다고 하여도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특별히 중보

기도는 잘 이루어집니다.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스펄존 목사님이 위대한 목회자요, 부흥사가 된 것은 기도실을 떠나지 않는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

다.  존 맥스웰 목사님이 목회자로 성공하시고, 리더십의 대가로 활동하시는 것은 중보기도 실을 메우는 기도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 시간 죠지 뮬러의 기도에 대한 영상을 보시고 기도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중보기도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기도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는 간절한 기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