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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도행전 속편의 주역이 되자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본 문 : 사도행전28:23-30
설교일 : (주일낮예배)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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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여러분의 아
버지는 구원받았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은 함께 천국에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까? 우리 집안에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혹 없습니까?
우리는 오늘부터 한 주간 총력전도주간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선지자 에스겔이란 분을 만나게 됩니다. 에스겔이란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읽게 됩니다. 에스겔2장에서 하나님께서 “보내노라”는 말씀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고하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나오고 있
습니다. 에스겔 3장에서는 에스겔을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우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
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고 있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
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 3:18)라고 하셨습니다. “그 악인은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그 악인은 자신의 악한 행
실 때문에 죽을 것이지만 그 사람의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다.”라는 말입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그 사람의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
다.”라고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원문을 찾아보았는데, 분명히 “피 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 요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사도바울이 로마로 가기를 소원한 것은 빚진 자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
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6)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속편의 주역이 되자”는 제
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님의 일생을 가지고 누가복음을 기록하였고,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사도들의 행전을 기록하였습
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신약성경의 모든 저자들이 한 책을 기록하고 마칠 때에는 분명히 마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록하였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가령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를 마치는 사도바울은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의 여러 저자들은 한 책을 마친다는 분명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모든 성경들이 다 그렇습니다. 무슨 글을 쓰던지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마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맺고 끊는 맛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
시니라”(마28:20)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분명히 마치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더 쓰고 싶
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장절을 나누었지만, 저자는 분명히 29장 30장을 쓰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면 저자는 분명히 끝맺고 있지 않습니다. 사
건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저자인 누가는 바울의 생애에 대하여 마지막을 기록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전념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그대로 붓을 놓은 것 뿐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저자인 누가가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계속 기록하려고 하였다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사도행전이란 복음의 확산을 기록하려는 것이기에 행28장의 사건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도행전의 역사 치고는 너무나 아쉽게 끝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자인 누가가 제 3편을 기록하려고 했다
는 말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지내던 형편도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그 이후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위대한 사도 바울의 행적도 행28장으로 끝나고 그 다음의 행적은 전설적인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바울의 공식적인 재판은 로마에 도착한 2년 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되어 3-4년 더 활동하다가 재차 감옥에 투옥되었고, 사
형 당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좋은 일꾼을 배출하면서 칭찬받는 교회
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요, 주님이 꿈꾸시고, 주님이 이루려고 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속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여러분, 자신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 와서 단 한번 살고 가야 하는데, 가장 이상
적이고, 가장 교회다운 교회, 가장 아름다운 교회에 속하여 진실하게 살다가 가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예수님을 가장 진실하게 믿다가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예수님을 잘 믿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고, 어떤 일도 감당하지만, 예수 잘 믿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 그런 것은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적인 속한 일들, 내가 안 해도 될 수 있
는 일들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 주님이 기뻐하실 일만 찾아 힘써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 주님이
만족하시고, 우리 성령님이 기뻐 춤추시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적인 교회요, 주님이 세우신 교회인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저는 제 자랑이 아니라, 목사로서, 언제나 우리 영주교회만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우리 영주교회, 일어나면서도 우리
교회, 길을 가면서도 언제나 주님의 몸된 영주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 것인가? 사도행전에 나
타난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와 같은 초대교회를 이룩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교회만이 그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고, 이 세
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그것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습니다. 국가 조직을 가지고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사회의 교육을 가지고도 되지 않습니다. 법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교회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잘 깨닫고 있습니다
.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교회로서의 사명만 제대로 감당하면 우리 사회를 구원할 수 있고, 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 한국의 교회들이 속한 지역 사회로부터 모두다 칭찬을 듣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도 교회는 우리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교회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아주 쉽고,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알아듣기
쉬운 복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에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2:21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요엘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요엘2:32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얼마나 쉬운 말씀입니까? “누구든
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시는 복음인데, 이것을 듣지 못하여 멸망당한다고 하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한 영혼이 귀하고, 소중한 것을 생각
합니다. 온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이라고 하면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들여서라고 그를 초청하여 구원에 관한 말씀, 소망의 이유를 들려줄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까울 것입니까? 다음 주일에 초청하시는 분들을 잘 영접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다만 여러분의 초청하시는 노력만 남아 있습니
다.
\'바탕\'; TEXT-ALIGN: justify\">사도바울이 지금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끌려온 것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하여 죄수 아
닌 죄수의 몸으로 끌려왔습니다. 그는 12-22절 말씀에서 로마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자기가 유대인으로 잡혀온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저자인
누가와 아리스다고 그 외 몇 분의 성도들이 함께 로마에 왔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끌려간 것이요, 저자인 누가는 지금 바울의 건강을 염려하여 유대인의 가
이사랴에서부터 로마에까지 동행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 대표들에게 자기가 유대인으로 로마에 잡혀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왔을 때에 그를 지키는 군인 한 사람이 매일같이 교대로 따로 붙어 있고, 사람들을 만
나도록 허락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사흘 후에 유대인들 중에서 원로들을 청하여 자기가 유대인으로 잡혀온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20절의 말씀 때문에
바울은 로마에 잡혀 왔다고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여기서 이
스라엘의 소망이란 곧 인류의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간절히 소원하고 갈망하는 소망이 무
엇입니까? 메시아의 소망입니다. 구약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흑암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어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소망이요,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 되십니다. 바울은 본래 예수는 이단자라고 생각하고, 예수님
을 믿는 이들을 잡아들여 배교하게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려고 핍박하였는데, 그 예수님에게 붙잡혀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쇠사슬에 매여 로마에까지
끌려 온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정말 쇠사슬에 매인 채로 끌려왔습니다. 바울은 즐거운 여행으로 로마에 온 것 아닙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곧 인류의 소망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 조금 잘 사는 것이 소망입니까? 이 세상에 명예를
가지는 것이 소망입니까? 이 세상에 잘 생긴 사람을 붙잡는 것이 소망입니까? 건강하면 우리가 영원히 건강할 것입니까?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 예수뿐이십니다.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인류의 유일한 소망, 영원한 소망은 우리 구주 예수님뿐이십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안보하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교회를 통하여 느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8:23-31을 통하여 사도바울이 마지막까지 힘쓰던 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
였습니다. 찾아온 사람들을 권하였다는 말은 설득하였다는 말입니다. 혹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 믿지 않는다고
하여 영원히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실망할 것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한번 말씀을 들은 것을 가지고 믿음이 생기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본다고 하지만,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귀
로 듣는 것이 둔하고, 보는 눈이 감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이방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데,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질 줄 알았고, 그들 이방인들이 잘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바울은 셋집에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
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고,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사였습니다. 그리스
도로부터 파송을 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러면 바울만 파송을 받았고, 우리는 말씀만 받으라고 하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도 역시 파송된 자요, 이 어두운 세상에 빛
을 발하라고 보냄을 받은 사도들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생명은 예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가치관, 그의 목표, 그의 사는 목적, 그가 추구하는 사
명 모두가 예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드리기만 해도 예수님이 흘러 넘쳤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하
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였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전파하였습니다.
로마에 오면 즉시 황제의 재판을 받게 하시
지 않고, 황제의 친위대 뜰에 있는 한 셋집에서 연금 상태에 있으면서 그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자기를 구금하고 있는 군인들, 자기의 손과 함
께 묶여 있는 군인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친위대의 군인들은 바울과 함께 사슬에 그 몸을 매고, 함께 하루를 지내야 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 그래서 기독교가 공인될 무렵에 어느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믿었느냐 하면 군인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친위대 군인들에게 많이 전도한 끝에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2년 동안 군인 전도할 수 있도록 재판을 연기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바울은 2년씩이나 재판을 연기하면서 군인들에게 전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로마에 가보면 사도 바울이 마지막 갇혀 있었다는 감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은 마메르티네 지하 감옥 (Carcere di Mamertino)인데, 아주 좁은 방이었습
니다. 그는 마지막 68년 6월 초순 경에 목베임을 받아 죽었습니다. 바울이 참수당한 곳에 세 우물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예배당 안에는 석대라고 하여 바울의
목을 치기 위하여 목을 올려놓은 곳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참으로 멋진 책입니다. 왜냐하면 끝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책
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이 없다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2년 동안 셋집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에게서 성경을 배운 사람들
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들을 사람들, 인류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들은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은 죽었지만,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은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스승 바울은 죽었지만, 복음은 점점 더 확산되어서
전 로마를 국교로 만들고 전 유럽을 복음화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는 죽었지만, 속 사도는 계속하여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은 끝을 맺지 못하고 붓을 놓았지만,
그 후에 계속하여 속사도를 통하여,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을 통하여 교회는 확산되고, 복음은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
에 대하여 전해듣고, 인류의 소망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믿고 고백한 사람들이 전해주고, 또 충성된 사람들이 전해주고, 그들은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그러다보니 오늘 우리 교회,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들려졌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산된 것입니다. 이제는 사도행전의 속편,
사도행전의 후편, 후서를 쓰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9장을 써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 후서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온 복음이 다시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확산되는 것이 사도행전29장이요, 사도행전의 후편을 쓰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성령의 역사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저는 우리
영주교회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위대한 일꾼들이 일어나고, 복음 전파에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나
고, 우리 시대보다 훨씬 더 잘 믿는 이들이 이 전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교회요
, 성령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약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적인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잉태된 교회, 주님의 교회요, 예수님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
회는 성령충만한 교회,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소유를 나누
고 도와주어 핍절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선순위를 복음전도에 두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구원하고 이끌러가는 영적인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땅 끝까지 이르러 증
인이 되어달라고 하셨는데, 이 세계의 땅 끝이 어디입니까? 내가 사는 집, 내가 활동하는 회사, 내가 몸담고 있는 기관, 사업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는 우리의
현장이 땅 끝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를 따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던 결과, 이제는 인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귀한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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