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복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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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본  문  :  욥기2:1-13


설교일  :  (주일낮예배)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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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한가위 명절

을 보내고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명절을 보내다보면 세상적으로 치우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고, 우리가 다 사람이기에 실수가 많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

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욥이란 분은 10명의 자식들이 있었는데, 우애가 많고, 서로 생일에 초대하고 즐겁게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욥은 그것도 걱정되는 것은 자식들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나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소홀하게 여길 것으로 생각하여 그들을 불

러 한 사람씩 성결케 하고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욥은 이런 말을 합니다.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경건한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다고 합니다.    즐거운 명절도 잘 보냈으니, 이제부터는 영적으로 추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야겠습니다.  새생명 축제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는 욥기라는 성경은 성경 66권 중에서 아주 독보적인 책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어떤 성경과도 비교될 수 없는 독창성이 있고, 깊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는 다른 성경들과 어떤 연관도 지을 수 없는 책입니다. 

그만큼 욥기는 독자적으로 보존될 수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욥이란 사람과 그의 4명의 친구들이 모두다 히브리인이 아니라, 이방인

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민족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관리한 사람으로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욥기도 하나

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문서, 성문서의 첫 권으로 인정하였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욥이란 분은 동방의 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도 욥이란 분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이란 선지자는 욥

을 의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스겔14:20에서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

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떠나갈 때에 모든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하여 자기가 그 값을 치

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자 모세가 미디안에서 이 욥기를 기록하여 애굽에서 고난 받는 자기 동족에

게 전달한 것으로 자기 민족이 지금은 고통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기만 하면 구원받게 되어 있으며, 부유하게 되리라는 소망을 주려고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에 바벨론 포로기에도 아주 큰 힘을 주었습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욥이란 사람은 어느 때, 어느 시대 사람인가?  욥기는 정말 언제 쓰여진 것인가?  욥기는 하나의 소설과 같이 상상의 산물이요, 꾸며낸 픽션의 인물인가?

    아니면 욥기는 역사적으로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조금씩은 다른 주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욥이란 사람은 이삭과

야곱이 살던 시대의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욥의 조상들을 파악해보면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후손으로 추정합니다.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란 사람도 하나님을 경외

하던 사람으로, 하나님을 말할 때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창31:53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장자가  ‘우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에는 어떤 유명한 사람이 살았던 곳을 부를 때에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스가 살았던 곳이기에 우스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란 사람은

이삭과 야곱이 살던 시대의 사람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모세 시대에는 사람이 70를 살고 강건하면 80

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120세를 살았지만,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이삭이 180세를 살았고, 야곱은 147세를 살았습니다.     욥은 마지막에

그의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140년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모세 이후에는 하나님의 이름

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지만, 그 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역시 욥기에도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욥기에는

30회 이상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문화 시대가 아니라, 구전 시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던 시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

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오늘 욥을 말씀드리고, 욥이란 사람을 자주 말하지만, 그와 함께 계시면서 욥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바탕\'; TEXT-ALIGN: justify\">옛날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욥의 고향인 우스라는 곳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진 곳은 없으나, 그의

무덤이라고 알려지고 순례하는 곳이 터키의 하란이란 곳에 있습니다.  터키의 하란이란 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오기 전에 아버지 데라와 함께 살던 곳인데, 욥의 무덤

이 하란에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에 보면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애가4:21)라는 말씀이 나오

는 것을 보면 에서의 후예들이 사는 에돔지역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욥이란 분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1:1)고 했습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도덕적인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NIV나 RSV 성경에는 “허물이 없는” 그런 뜻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욥은 정직하였습니다.  이 말은 “평탄

하다”, “곧은 길을 행하다”는 말입니다.  온전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는 말은 실제적인 생활에서 무흠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의 온전함은 하나님을 경외

하고 악에서 떠난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악에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 외

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악을 멀리하고,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의 살아계심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분이요, 인간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기는 지상의 세계에서 다시 천상의 세계로

옮겨갑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

디서 왔느냐?” 사탄이 대답하였습니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문제를 제시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

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참소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부정적인 면을 파고들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시키고,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탄이 누구를 칭찬하는 것을 들어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두고 사탄에게 욥의 소유를 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욥에게는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

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 종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당대 목장 재벌이었습니다.


이제 욥의 가정은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었습

니다.  욥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주인 욥에게 달려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소는 밭에서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고 있는데, 스바 사람들이 와서 짐승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는데, 저만 홀로 피하였기에 주인께 아뢰기 위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아직 말하는 사이에 한 종이

와서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고 있는데, 다른 한 종이 와서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들을 빼앗아가고 종들

을 죽였는데 나만 홀로 피하였기에 주인님께 아뢰기 위하여 왔다고 합니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다른 종이 와서 주인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

는 중에 큰 바람이 불면서 집이 무너져 10명의 자식들이 다 죽었고, 자기만 홀로 피하였기에 주인께 아뢰기 위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욥은 더 이상 망할 것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망했습니다.


욥은 너무나 큰 사건에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고 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들어보면 욥의 신앙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이었습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다시 욥기는 이 세상에서 천상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이제 연극으로 말하면 4막이 펼쳐지

는 것입니다. 욥기는 성경에서 희곡이라는 장르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사탄도 그들 가운데서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였습니다.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다시 전과 같은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

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사실 하나님은 사탄이 부추긴다고 해서 격동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

나님은 자신이 있었기에, 그리고 욥을 보호하고 보존하실 수 있기에 사탄에게 시험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고통을 주문하고 있습

니다.  사탄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

다. 이제 사탄은 허락도 받았겠다, 욥에게 악창을 주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을 나게 하여 욥은 너무나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 재에 앉아 기와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

습니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지켜보던 아내가 와서 욕을 퍼붓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

을 욕하고 죽으라”(2:9)고 합니다.  욥기에는 욥의 아내의 대사는 이 한 마디만 나옵니앋.  악역을 담당했습니다.  악한 사람은 악한 날에 악하게 쓰여

집니다. 악한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설교가들이 이 욥의 아내를 나무라고 있지만, 저는 그 아내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믿

음이 없다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10명의 자식들을 한 순간에 잃은 어머니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모든 소유를 잃었습니다.   어느 하

나도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근면하고 훌륭한 여성이었다고 봅니다.    10명의 자식을 한꺼번에 잃고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면 충분히 그

럴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 말이 밉다고 해서 새 부인을 통하여 다시 자식을 얻은 것처럼 말해도 안 됩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아니라고 봅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이 때에 욥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이었고, 복 받을 사람이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욥의 절친한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고 있습니다.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왔는데,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로 악창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함께 소리 내어 울며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욥과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 마디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 이런 절친한 친구들, 고통을 함께 하는 친구들, 진정 위로하는 친구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무엇이라고 욥을 욕해도 사실을 욥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욥은 위대한 성자입니다.  성경은 그를 이스라

엘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아브라함의

후예라고 하여도 이삭의 후예가 아니라, 동방으로 보내어진 아브라함의 첩의 소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혹시 이삭의 후예라고 한다고 해도 야곱의 후예가 아니라, 에서의

후예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여튼  정통 이스라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은 이방인을 대표하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이방인 가운데서도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대한 성자, 위대한 신앙인은 반드시 유대인 가운데

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방인을 들어 유대인들을 교훈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욥이란 사람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그 정도의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합

니다.  욥이 하였다고 하면 나도 한다는 그런 불굴의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욥이란 사람이 하도 높아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고 하면 욥이 하나의 신이 될

수 있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그를 우상화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를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되

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사실 드릴 말씀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기억해야겠

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

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는 말씀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성공과 실패라는 강박관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벗어나고 자유를 누리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지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해야 하지, 인간의 척도는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잘했다고 해야, 진

정으로 잘 한 것이지, 아무리 사람들이 알아주고, 입에 바른 칭찬이라고 해도 그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도 바로 세워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세상에서 그렇게 이름을 날리며 알아주던 사람인데, 참으로 부끄러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몰라주고 천대받던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그를 높이 들어

세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바르게 살고, 섬기고 나누며 살던 욥이란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고, 높여주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

공할 때 잘 믿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하였을 때에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종답게 살

고, 하나님에게 끝까지 쓰임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욥기가 인용되고 있는데, “욥의 인내

심을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약5:13에 “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

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의 인내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님

은 우리에게도 욥과 같은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마지막에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욥기라는 성

경은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난을 주제로 썼기에 인생의 난제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인내의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참상 속에서도 끈질기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므로 뒤 따라가는 우리에게 큰 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야고보 선생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욥의 인내를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욥의 결말이 증거해주고 있는 인내의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히브리어 성경을 가지고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이란 교부는 욥이란 사람을 평가하기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예표가 될 만한 인물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욥은 위대한 수난자요, 자기를 비우고 낮추었으나, 결국은 그것이 자기를 더욱 영화롭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수난을 받으셨고, 당신

을 비우고 낮추었는데, 하나님은 마침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살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시므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놓으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들이 성경을 읽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것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하지만, 어떤 인물을 설교하거나, 한 사람의 인물을 증거할 수는 없습

니다.  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욥의 생애를 통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 욥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설교하고, 드러내야만 진정한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나왔기에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하나님은 우

리를 단련하셔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십니다.  욥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세계를 보았습니다.  전에는 귀로만 듣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직접 눈으로 주를 보

았다고 고백합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고통을 그만하게 하시고 갑절의 은혜를 입게 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지켜보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하나님의 종, 인내의 종,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