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본 문 : 마가복음9:38-50
설교일 : (주일낮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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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말씀 중에 50절 말씀을 다시 읽어드립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 이 말씀을 공동번역개정판으로 읽어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
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했습니다. 문맥상 이 성경
대로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는 말씀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소금을 간직하
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면 될 터인데, 왜 굳이 “너희 마음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소금을 둔다, 간직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소금이 그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라고 하시며 “너희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과 사건의 개요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이오안네스”라고 하는데, 히브리 음으로 “요하난”, “예호하난”이란 이름입니다. 그 의
미는 “그에게 여호와는 은혜롭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한이 있습니다. 그는 세배대의 아들이요, 예수님과는 이종사촌지
간인 교회에서는 사도요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란 사람은 성격이 불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이종사촌지간이었기
에 다른 제자들보다는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예수님의 하시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3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특별히 사
랑하여 앞장 세우시고, 중요한 자리에 데리고 함께 가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도,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서 기도하실 때에 이들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요한으로 하여금 더욱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매사에 앞장서게 했다고 생각됩니
다.
한번은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길에서 사마리아의 한 고을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이런 일을 당하고는 화가
나서,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분을 잘 내고, 성격이
급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저들 형제를 돌아보시면서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들 형제에게 한 별명
을 붙여주셨는데, “보아너게”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우레의 아들”이란 뜻이었습니다. 우레가 무엇입니까? 번개가 칠 때에 우레란 천둥소리를
말합니다. 번개가 번쩍하고 나면 곧 이어 천둥소리가 납니다. 그 천둥소리를 우렛소리라고 합니다. 보아너게라는 별명은 저들이 성격이 매우 불같고 급하
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 사도요한이 하루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귀신을 내쫓는 사람을 보고는 자기와 같이 제자
도 아니요, 예수님을 앞장서서 따르는 그런 사람도 아니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세우
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
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은 12제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도 아니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으니, 사도요한은 화가 났고, 그 사람에게 가서 단단히 일러주고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운운하면서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충고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한이 잘 한 일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잘못한 일이라고 보십니까? 잘 한 것 같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은 무리한 것이
라고 생각하십니까?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 말씀을 들으신 주님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던 자가 제자중의 한 사람도 아니요,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위임을 받은 사람도 아니요, 예수님을 앞장서서 따르던 70인 문도도 아니었기에 함부로 예수
님의 이름을 가지고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금하였던 것입니다.
요한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경에 더 이상
을 말하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은 따르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면서 능력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라는 분이 어떤
분이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고 사탄을 제어하고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2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믿으면 능력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예수를 믿
는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보다 더 큰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요한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한 일을 보시고 잘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예수님의 이름이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능력을 가진 이름이요,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면 더러운 귀신들이 다 물러가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
하여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라고 하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교회는 주님
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으로 사회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
래서 기독교 학교도 많이 세워야하고, 병원도 세우고, 사회봉사단체도 많이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기독교 선교를 가능케 하는 저변 확대요, 그런 것이 다 선
교의 하나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주교회 어린이 선교원이 잘 되고 있습니다. 선교원에는 교회에 다니는 집의 아이도 있
지만, 불신자의 자녀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교육하고 저렴하게 아이들을 돌보아주므로, 나중에 그들이 성장했을 때에는 교회에 대하여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렸을 때에 씨 뿌렸는데, 후에 가서 거둘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3px 0px 7px; COLOR: #000000; TEXT-INDENT: 3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이해하시는 폭넓은 자세, 많은 사람을 포용하시고 넉넉하게 받아주시는 그런 자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사도요한은 내 편, 네 편, 정확하게 가르고, 지적하고 정죄하는 그런 편협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예수님은 넉넉하게 받아주시고, 이해하고, 더 큰 관점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계신 것
을 보게 됩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포용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대해
서는 단호하면서도 철저한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잘 하고 있고, 본받을만한 것도 있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포용성과 배타성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이것은 반드시 이
것이어야 한다는 그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종교와 타협할 수 없고, 공존할 수 없는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사회의 모든 헝클어진 문제를 우리의 것으로 끌어안고 함께 해결해가는 포용성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의 아주 작은 사람,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실패한 사람이
면 실패한 대로, 가난한 사람이라면 가난한 대로, 윤리적으로 조금 잘못한 사람이라면 그런대로, 받아주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허물을 지적하고 후
며 파내고, 정죄해야 속이 시원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고 자신을 정죄해야 하지만, 그것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자신을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긍정적인 자존감을 잃어버리면 그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 곁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는 목마른 사람도 있습니다. 단순히 목마른 것이 아니라, 사랑에 목말라 애타는 이들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그런
이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물 한 그릇이라고 주어야 합니다. 사랑의 관심,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안타까운 현실을 들어주고, 힘들어 할 때에 찾아가주
어야 합니다.
초신자가 어떤 사회적인 허물로 인하여 부끄러워할 때에 덮어주는 것은 물 한 그릇을 주는 것입니다. 물 한 그릇이
라고 하니, 마시는 물을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관심, 사랑과 수고 모두가 물 한 그릇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힘들어 할 때에 손 한번 굳게 잡아주는 것도 물 한
그릇 주는 것입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42절 말씀에는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실족하게 하면”이란 말은 “죄짓게 하면”그런 말입니다.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정죄하고, 판단하여 우리를
따르지 말라고 쫓아내면, 그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 중 하나라고 하니, 어린 아이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포함할 것이지만, 교회 안에는 초신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 미성년자, 우리 교회 안에는 작은 자
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작은 자들 하나라도 죄 짓게 하고,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그 사람의 목에 연자맷돌을 달아 죽이는 것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용납과 관용이 없고, 매사에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리에서 사람을 무자비하게 다룬다면 한 사람을 너무나 쉽게 실족시킬 수 있습
니다. 한 사람이 범죄하고, 실족하면 그 결과는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 우리의 행동 하나가 어린 사람들에게 엄청
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43-49절의 말씀들은 다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43절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런 말씀이 있어도 회개하시고,
여러 분의 두 손을 가지고 힘써 일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힘써 사업을 경영하여 남을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손을 찍어버리고,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하지 말고, 그런 독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정신 차리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말입니다.
45절에는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
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도 문자적으로 받지 말고,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합
니다. 여러분, 발이 죄를 지은 것입니까? 손이 죄를 지은 것입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지, 손이나 발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에게 눈
이 범죄한 것입니까? 내가 죄를 지은 것이지, 눈이 죄를 범한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는데 눈이 동원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평생에 두 눈을 잘 관리
하여 잘 보시고, 실실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
단하고, 다른 사람이라고 편을 가르는데서 죄를 짓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주 적은 관심과, 관용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에게 대하여는 단호하게, 다른 사람에게는 넉넉하게 대하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지옥을 맛보고,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범죄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며,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다고 하셨습
니다. 모든 사람이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고, 죽어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만 말하는데, 정죄하고, 판단하고 지
적하고 편을 가르고, 증오한다면 이 땅에서 이미 지옥을 맛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남을 무시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 시기하고, 질시하고 정죄하는 그런 마음을 버리고, 선한 관용과 받아들임으로 사람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소금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긴요
한 지, 하나님은 무한정의 소금을 사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소금이 없으면 우리의 음식을 무엇으로 맛을 내고 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소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소금을 주시되 무한정의 소금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식사하면서 소금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하시는 것도 감사하
시기를 바랍니다. 소금 없이 식사해야 하는 환자들을 생각하시면서 소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소금이란 것
이 음식에 들어가면 모든 음식이 각각의 고유한 맛을 내게 됩니다. 어떤 음식에 소금을 쳤다고 하여 소금의 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음식이 자기 맛을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렁탕을 먹는데, 설렁탕에는 소금을 쳐야 합니다. 설렁탕을 그냥 먹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죽지 못하여 먹는 것이지, 그것이 음식이 아닙니다. 소금은 음식 속에 들어가서 녹아지고 스며들어가므로 모든 음식들
이 다 제 맛을 내게 됩니다.
소금의 역할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로 맛을 내는 것입니다. 음식
에 맛을 내고 있습니다. 둘째로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썩지 않게 합니다. 소금은 부드럽게 하고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김치를 담을 때 배추를 소금에 절여 고르게 하고 숨을 죽여서 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는 말씀은 자기를 죽이고
부드럽게 하고, 고르게 하고 자기는 없어지고 녹아 없어지므로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구약에서 모든 소제물에는 소금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제물은 곡식과 채소를 드리는 것인데, 뻣뻣한 배추는 부드럽게 만
들어 가지고 드리라고 하십니다. 뻣뻣한 자신의 혈기를 죽여야 합니다. 목이 곧은 이는 목을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어깨에 힘을 주는 사람은 힘을 빼야
합니다. 눈이 높은 사람은 눈높이를 낮추어야 합니다. 잘 났다고 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은 소금을 치듯 하여 겸손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정말 진리의 말씀입니다. “소금처럼 녹아 없어져라.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그대로 지켜가라.” 이 신비로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진정한 소금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이 있습니다. 맛을 내게 합니다. 소금은 녹아야 맛을 낼 수 있습니다. 화목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 꿈틀
거리고 있다면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동리에서 녹아져야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소금을 간직하고, 그리
스도의 본질을 간직하면서 녹아지고 없어지므로 진정한 맛을 내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예수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