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사람으로 살아

제  목  :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

가야 합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본  문  :  마가복음9:30-37


설교일  :  (주일낮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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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교의 교훈이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의 이름은 배재고등학교입니다.  1885년 4

월 5일 미국 감리교회의 목사님이신 아펜젤러 목사님과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목사님이 인천항에 상륙함으로 한국선교는 시작되었습니다.   장로교회가 파송한 의료

선교사인 알렌 박사가 1884. 9월 20일에 중국으로부터 인천항으로 들어왔으나, 목사님들이 들어오신 것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님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정

세가 안정되지 못하고 사모님과 함께 내한하신 아펜젤러는 4. 13일자로 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6. 21일에 다시 인천항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한 달 정도

먼저 들어와서 병원을 운영하던 스크랜튼 여의사의 집에, 방 두 칸을 빌어 교실을 만들고, 이겸라, 고영필이란 두 학생을 가르친 것이 배재학당의 시작입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배재학당의 설립자 아펜젤러는 학당훈을 정하기를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고 정하였습니다. 이 학당훈은 아펜젤러 목사님이 배

재학당을 시작한 다음 해, 마태복음20:26-28의 말씀을 가지고 교훈을 삼은 것이었습니다.  마20:26-28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

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학당훈을 정하였습니다.


“욕위대자 당위인역” 이것이 배재학당훈입니다. 당시 아펜젤러 목사님의 개인비서이며, 배재

학당의 교사인 한문학자 조성규 선생님이 아펜젤러 목사님과 의논하고, 성경 말씀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을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欲爲大者 當爲人役 욕위대자 당위인역”이라고 했습니다.    욕(欲)이라는 말은 접미사로 욕망, 욕구라는 말입니다. 

명예욕, 성취욕 그런 말을 할 때에, 접미사로 사용합니다.  위(爲)라는 말은 타동사로 어떤 목적을 이루게 하다는 말입니다.  대자(大者)라는 말은 큰 자라는 말입니

다.



\'; TEXT-ALIGN: justify\">욕위대자라는 말은 “큰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 있다면” 그런 뜻입니다.  당위인역(當爲人役) 이라는 말은 “먼저 사람을 위하는 살라”는 그

런 뜻입니다.   옛날 한문이고 보니, 학생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1968년에 와서 국어 선생님이 한글로 쉽게 풀어놓은 것이 “크고

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아펜젤러의 꿈과 비전이 학당훈에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의 출발에서 학생들

로 하여금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크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남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한 민족을 섬기

는 일꾼들이 이 학교를 통하여 수없이 일어났는데,  위대한 인물들이 이 학당을 통하여 배출되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어떤 인물들

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더니, 기라성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이승만, 서재필, 윤치호라고 하면 한국근대사의 선두주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다 아펜젤

러의 비전이었고, 섬기는 리더십을 가르친 결과였다고 봅니다.  이승만박사는 독립운동가요, 우리나라 건국의 아버지입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입니다. 

독립협회를 창설하신 독립 운동가이신 서재필 박사가 있습니다.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가인 윤치호 선생, 윤치호는 애국가를 지으신 분입니다.  소설가 나도향, 국어

학자 주시경, 시인 김소월, 교육가 신봉조, 교육가이며, 정치가요, 독립운동가인 신흥우 선생,  감리교회의 아주 유명한 목사이며, 독립운동가인 김진호,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가인 지청천 장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물들이 이 배재학당을 통하여 나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배재학당을 설립하신 아펜젤러 목사님의 비전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교훈으로 자라난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선도한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오늘은 “섬

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

씀은 귀에 잘 들어오실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 예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주

님이 살아가신 생애를 한마디로 말씀드린다고 하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 사람들을 섬기신 생애였습니다.  마지막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

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것도 우리를 섬기신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성경을 깊이

연구해보면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섬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으심과 부활에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

나는 것입니다.   바로 가장 귀한 사명을 위하여 섬김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어떤 일을 당하

며,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을 세 차례나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하여 설교하고 있기에 막8:31에서 수제자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은 후에 예

수님은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막8:31에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

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라고 했습니다.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난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말씀하시고는 제자도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막8:34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

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겠다고 하시는데,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올

라가시는 것만 알지, 왜 올라가시느냐, 무엇을 하실 것이냐 하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을 이미 아시는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

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당부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막9:31입니다.   “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는 제자들

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라고 하셨습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 말씀은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는 두 번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조용한 시간, 제자들에게 복음을 핵심을 심어주고, 당신이 하

시려는 일을 자세히 풀어 알려주고 싶은 심정으로 조용하게 움직이고 길을 나서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따라오고 그래서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있으면 예수님 가까이로 나아와 말씀을 들으려고 하였고, 많은 병자들이 몰려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움직였다 하면 시끄러운

행렬이 되었습니다.  시끄럽고 사람이 많고, 떠들썩하게 움직일 때는 군중 심리는 이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차분하게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부족한 환경이라고 할 것입니

다. 



\'바탕\'; TEXT-ALIGN: justify\">30절 말씀을 보면 “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길을 나서는 것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셨습니다.  사람이 아주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중

에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31절에서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

더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장차 죽을 일이나 다시 살아날 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요, 복음의 핵심이며,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놓고

어떻게 시끌벅적한 곳에서 말씀할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 아직도 모두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닌데,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며 길을 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제자들 대부

분은 예수님이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을 받고 관리들에게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깊이 알지도 못

하였고, 받아들이지도 아니하였습니다. 


32절 말씀처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에 골몰하면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알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때로 찬송을 부르다가

가사를 놓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2절을 불렀는지, 3절을 생략하고 4절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하게 됩니다.    찬송은 따라 부르면서 딴 생각에 빠지

면 찬송은 습관적으로 따라 불렀지만, 가사는 하나도 생각지 못합니다.  성경 봉독하다가 읽어야 할 줄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다른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읽어야 하는 줄을 놓쳐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생애에 있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말씀하

시고 있는데, 제자들은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으니, 예수님의 심각한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주 무대가 된 본 동리라

는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제자들은 아무도 말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잠잠하였습니다.   유구무언이었습니다.  12제자들이 길에서 토론한 것은 “서로 누가 크냐”는 문제로 토론하였는데, 쟁론하였습니

다. 



\'바탕\'; TEXT-ALIGN: justify\">새번역에서는 “서로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토론하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의견을 펴고 다른 사람의 의

견도 경청하면서 토론하였는데, 서로 누가 크냐는 문제로 토론한다고 하면 그것이 어디 토론으로 그치는 것입니까?  서로 다투고 쟁론한 것이었습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예수님은 예루살렘 올라가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실 것이요, 온 백성을 통치하실 터인데, 그렇다고

하면 우리 12 제자들은 장차 어떤 자리에서 일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입니다.   개국공신이 될 것이요, 12 제자들 중에서 나라의 요직을 맡아야 할 터인데,

내가 먼저 총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명의 제자들을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시는

것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도  예수님은 3제자를 특별 관리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2제자, 베드로 요한은

주님의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A그룹에 속한 베드로, 안드레, 야고,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그룹

에 속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열심당원(가나나인)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유다가

있습니다. 


12 제자 중에 가장 공부를 많이한 사람은 세리 출신으로 마태라고 생각됩니다.  헬라어를 잘 하고, 박식한 사람은 빌

립이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신임을 받아 돈궤를 맡았습니다. 이래저래 보면 어느 제자도 뒤쳐질 사람은 없고, 다 한 몫 하는 사람이요, 당연히 크

다고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라고 하지요, 안드레는 예수님의 가장 처음 제자이지요, 세배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형제

지간이었습니다.  빌립은 바돌로매를 데리고 온 사람이요, 바돌로매는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은 사람으로 다른 이름이 나다나엘이었습니다.  디두모

라는 도마는 의심이 많지만, 때때로 예수님의 말씀을 깊게 만들고, 많은 사람으로 이해를 돕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는 당시의 로마의 세법에 능통한 세리 출신이

었습니다. 가룟유다는 모든 제자들이 갈릴리 어촌 출신이지만, 유다는 남쪽에서 공부한 사람이요, 우월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나라는 장유유서의 민족이요, 서열의식이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는 서열의식이 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예전에 기차를 타고 가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요,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나이 많은 노인이 젊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자넨, 성이 무엇인가?”  “예 이씨입니다.”  “허 나와 같은 이씨네”  “자네 본관이 어디인가?” “전주

입니다.” “허 나도 전주이네”, “자넨 전주이씨 무슨 파인가?” “예, 세종대왕 임영대군파입니다.” “허 나도 세종 임영대군파일세”, “자넨, 세종 임영대군파 몇 대 손인가?” “예, 저는

세종임영대군파 22세손입니다. ” 노인이 갑자기 말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세종 임영대군파 24세 손일세.” 이 때부터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젊은이

가 노인에게 말을 놓습니다. “허, 그러면 내가 당신의 할아버지뻘이 되는 구먼”   “예, 그렇습니다.  저보다 항렬이 높아, 조부 벌이십니다.”  지금까지

허허 그러던 노인이 기를 펴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서열의식이요, 항렬의식입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것이 우리

나라만이 가진 양반상놈, 족보, 항렬 모두다 서열의식에 나온 것입니다.  회사에 취직을 하면 대학의 학번을 묻습니다.  같은 학번이라도, 재수하였다고 하면 출생연

도를 따집니다.  같은 달이라도 하면 날짜를 계산하여, 꼭 서열을 메기려고 합니다.  나를 형님으로 부르게. 이것이 한국인입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나라는 생각하기도 싫은 무서운 전쟁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한국전쟁, 6.25 전란이 우리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무서운 전쟁에 살아남기 위

하여 피난가고 몸부림치다보니, 5천년을 내려온 양반상놈의 관습을 다 삼켜버리고 전쟁이 끝났다고 합니다.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그래도 한

집안에서는 죽어서도 서열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눈과 장기와 시신까지 기증하였으니, 장례지낼 것 없고, 마지막 교회장으로 환송예배 드리고 대학병원으로 넘겨주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골 선산에 묻히게 될 뻔 하였습니다.  제가 만일 선산에 묻힌다면 5번째 아래 계단에 묻혀야 됩니다. 저의 5대조 할아버지 산소부터 차례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으니, 한참 내려가 묻혀야 될 운명이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섬김을 실천해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명예심이 있

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와서 힘써 추구해야 하는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쓰임 받고,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또 다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

니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0-21)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나

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도 앉으시고, 제자들을 가까이 앉게 하셨습니다.  “누

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끝 자리에 서는 것이 참으로

귀하고, 의미있고, 소중한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뒤에 서므로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의미 있고, 아량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우리 주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아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중에 어린 아이

라고 하면 장애인도 포함되고, 가난한 사람, 초신자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육체적으로만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style=\"FONT-SIZE: 12pt; MARGIN: 2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26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유명한 지도자의 한 사람인 ‘론 새니’가 한 젊은이에게 제자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는 종에 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제

가 이제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때에 론 세니는 그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모르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네를

종으로 취급할 때,   그 때에 자네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네.    ‘네가 나를 무시해’라고 화를 낸다면 자네는 아직도 종이 되지

못한 거야.  남들이 나를 무시하고 종 취급할 때에도 자신을 종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 자네는 진정한 종이 된 것이네.”라고 했다고 합니다. 



\'바탕\'; TEXT-ALIGN: justify\">조건 없는 섬김의 종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기심을 극복하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섬김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종이

되십시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이란 “둘로스”라고 하여 노예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다 주님의 종이요, 성도들의 종이 되고, 불신 사회의 종이 되어 주님이 걸어가신 섬김

의 삶을 잘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