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인생수업 본 문 :
시편90:1-17 설교일 : (주일낮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
지난주간의 심령부흥회는 참으로 은혜 중에 끝났습니다. 여러 시간 참석해주신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받은 은혜를 사장시키지 마시고,
계속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요즈음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2006년도 6월에 번역 출판된 책이니
아직도 신간 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지은 책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는
20 세기 가장 훌륭한 정신의학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생 수업”이란 이 책을 극찬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아
가는 의의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배움이고 진지한 수업이
다. 저자는 삶과 죽음에 관한 한 모든 이들의 교사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는 2004년 8월에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죽음의 순간 On Death and Dying”이라는 책입니다. “죽음과 임종”
이란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 분도 출판사에서 “인간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평생을 바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슴 속
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녀는 의사로서 마지막 죽어가는 환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세계 최초로 호스피
스 운동을 일으킨 의사이며,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선고받고 사경을 헤매다가 다시 소생한 사람들도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갈등한 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동안 1960년대까지도 죽음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시도는 없었습
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적었고, 죽은 사람은 별로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레이먼드 무디박사가 죽음의 문턱까
지 갔다고 목숨이 소생한 사람들을 면담하면서 ‘임사체험’(ND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레이먼드 무디 박사는 “
삶 이후의 삶”이란 책을 썼는데, 무려 3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레이먼드 무디와 거의 같은 연구를 진행한 사람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
사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인간의 죽음”이란 책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사는 사람이 죽을 때에 죽음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구하였는데, 엘리자베스는 인간의 죽음이란 책을 쓸 때에 임종 환자 200명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5단계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면, 1)부인, 2) 분노, 3)타협, 4)절망, 5)수용의 다섯 단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성격과 신앙이 다르기 때문에 5단계를 다
밟지 않고,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그 단계가 뒤바뀌거나 건너 뛸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부인,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단계로 죽음을 이해하
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을 병이라는 통지를 받으면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난 아니예요! 뭔가 잘못되었을 거예요.”라고 죽음을 부인합니다. 죽음이란 부정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에 붙여진 존재”라는 말을 하
였지만, 정작 그 죽음이 나에게 다가왔다고 하면 부정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엑스레이 사진이 다른 사람 것과 바뀌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의 차
트에 자기 이름이 써졌을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이 병원 저 의사를 찾아다니며 죽을병에 대하여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렇구나, 사실이
구나!”하고 죽음을 인정하게 되면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 사나움, 시샘, 원망의 감정으로 대체됩니다. “왜 하필 내가 죽어야해?” “왜 저 사람에게는 안 생
기는 것이야?” “저 노인은 건강한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 나야?”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사람이 이 단계에 이르면 아무리 자상한 의료진도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순
간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환자는 서슴지 않고 병원이나 의사나 가족에게도 욕하고 불평합니다.
세 번째 단계가
타협입니다. 이 기간은 매우 짧은데, 부인하고 거부하고, 분노하다가 이 불가피한 상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연기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매달
리면서 타협에 들어갑니다. 착실한 행동을 보이거나 특별한 헌신을 합니다. 헌금하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타협하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에게 잘 보여 생명을 연장하든지, 아프지 않게 보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아들의 결혼식까지 만이라도 데려가지 말기를 호소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절망에 빠집니다. 우울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극도의 상실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지막 5
단계는 수용입니다. 순응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두고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 여유를 가집니다. 순응한다고 해서 행복한 감정의 단
계는 아니라고 합니다. 감정의 공백기와 같은데,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심리학자 케네스 링이란 분은 레이먼드
무디와 엘리자베스의 학문적인 바탕 위에 임사체험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NDE 라고 하는 임사체험이란 죽음의 순간을 맛보고 다시 회복된 사람들의 체험담을 모아 어떤
과정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케네스 링은 사고를 당하였든지, 질병이나 자살을 기도하던 중에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 102명을 면담하면서 임사체험에
서 다섯 가지 단계로 발생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80년에 링이 발표한 임사체험의 다섯 단계입니다. 평화로운 감정, 유체이탈 경험, 터
널 같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기분, 빛의 발견, 빛 쪽을 향해 들어가는 단계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 것을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요, 어디까지 가보았는지,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 단계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 이른 사람은 60%, 유체이탈 즉 영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죽
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이가 37%, 터널 같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 사람이 23%, 빛을 발견한 사람이 16%, 빛을 관통하면서 걸어간 사람이 10% 순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록 그 전 단계에 비해 보고되는 빈도수가 적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생 호스피스 운동과 죽음과 사투
를 벌이는 사람들을 만나 희망을 말해주던 의사가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진정한 인생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이 “인생수업”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배
움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인생이란 학교에 등록하고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인생이란 학교에서 배우
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과목은 사랑, 관계,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은 누구인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
하시는 것인가?” 한번 깊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 비극은 무엇이 비극입니까? 인생이 짧다는 것이 비극입니까? 인생이 짧다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인생에 있
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늦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듣는 교훈이 아니라, 죽어가는 임종 직전의 사람에게서
듣는 교훈이야말로 어떤 설교보다도 감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말하고 싶은 것,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깊
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사는 그의 필생의 작업으로 죽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합니
다. 두 사람의 저자들은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이 남긴 수많은 말을 정리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다가
오는 많은 두려움,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들, 화, 용서에 대한 배움을 말합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야 합니다.
삶을 배운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
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합니다. 내가 결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나로
서 충분합니다. 나는 나로서 만족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남이 한다고 해서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하나님은 하게 하십니다.
엡2:10의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결코 상품의 가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작품이라는 말씀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품이 아니라, 명품 정도도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남긴 말들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라”, “사랑 없
이 여행하지 말라.”, “가슴 뛰는 삶을 살라.”, “살고 사랑하며, 웃으라.”고 합니다. 여러분,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요,
행복입니다.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제로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
각상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다만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완벽한 조각상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꺼내주기를 기다
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지음 받을 때부터 있었던 위대한 사람이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작품의 조각상을 꺼내려면 필요 없는 부분들을 깎아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같을 수 없고, 바울과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필요 없는 부분들을 떼어내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경직목사님으로 살아갈 수도 없지만, 한경직 목사님이나 빌리그래함박사가 아니라, 나는 나로서, 성홍모로서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결
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고, 나에게 주어진 전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가나안 땅 문턱에
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죽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생명을 연장시켜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신명기 3:24절입
니다. “주 여호와여 ...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네 눈으
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생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말씀을 나눈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는 모세는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시편90편에서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아 돌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니 주님 앞에서는 천년이라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00년
동안에 지구위에 거하는 모든 인간을 교체하시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홍수처럼 쓸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10절 말씀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옛날 모세의 기도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구구절절합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말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애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입니다. 그리
고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다가와서 “선생님 건강해보이시는데, 연
세는 어떻게 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실제로는 “당신의 인생 시계는 몇 시입니까?”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계산해드립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살고 건강해
서 84세까지 산다고 하면, 우리 교회는 만 77세 되신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 시계는 정확하게 11시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제 계산이
틀리는지 한번 집에서 가서 정확하게 계산해보십시오. 연립방정식을 동원하여 계산한 것이니 맞을 것입니다. 인생 12시간에서 11시간을 사용하고 이제 마
지막 1시간만 남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명암이 갈라집니다. 잘했다는 말도 들을 수 있고,
악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1시간만 아름다워도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찬양대가 어떤 찬양곡을 연주하는데, 처음에는 화음도 안 되고, 음정도 엉망이고, 박자도 틀리고 잘 부르지 못해도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멋지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마치면 그런
대로 잘 부른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하시면 위대한 삶을 살아가신 분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즐겁고 기쁜 것은 많이 놀아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오고 보람과 의미를
찾을 때에 즐겁고 기쁜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
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남기는 말을 종합해보면 우리에
게 행복하라고 합니다.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무엇을 하다
가 주님 앞에 서실 것입니까? 우리 손으로 행하는 일들은 신실한 일이요, 끝까지 부여잡고 나아가야할 견고한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한 말
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늦은 때까
지 기다리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보라고 주어진 시간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눈빛을 가진 사
람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뜨거운 사랑으로 사랑하고, 일하고 영원한 부활의 날을 바라보면서 신명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