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충실한 곡식 으로 자라난씨
본 문 : 마가복음4:26-34 설교일 : (주일낮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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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목회자이지만, 때로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영력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써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이 지도하심에 순종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써봅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순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죄를 미워하
는 것이 아니라, 슬그머니 건전하지 아니한 생각으로 떨어지고 있는 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저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봅니다. 바르게 살고 정직하게 믿어보려는 의지가 한 달을 지속하기에 어려운 것을 느끼면서 성화의 길은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어렵다는 것을 느껴봅니다.
“은혜”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누가 쓴 시인지 저자는 모
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집니다.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 당신을 믿
는 것도/ 당신 안에 거하는 것도 /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기뻐하는 것도/ 감사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제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꾸준히 사랑하는 것도/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도/ 마음과 뜻, 목숨 다해 사랑하는 것도/ 오, 하나님 //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 믿음 주시지 않으시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힘주시지 않으시면/ 정말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요,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라고 생각하였습니
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는데, 구원받은 자녀로서의 어떤 열매가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나의 열
매는 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고 충성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어떠며, 나의 감정은 어떠며, 나의 의지는 과연 믿을만한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 혼자는 그런대로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나는 과연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이끌어 갈만한 리더십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성 목사는 그래도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평균점수는 받을 수 있을까?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아직
멀었고,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 중에 다른 복음서에도 나오는 ‘겨자씨 비유’가 있지만, 26-29의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비유입니다.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둘 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비유라는 것은 무엇이며, 왜 예수님은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볼레”
라고 하는데, 그 뜻은 “한 사물 옆에 나란히 놓는 것”을 말합니다. ‘대조한다.’, ‘비교한다.’는 뜻입니다. 비유를 설명하고 정의한 많은 분들의 설명
이 있지만,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려는 방법으로 평범하고 친숙한 어떤 사건을 예화로 드는 것이 비유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예화입니다.
여러분 예화를 든다는 말은 알아듣기 쉽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귀담아 들으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
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도 헛수고요, 듣는 사람은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말이란 알기 쉽게 말해야 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야 어떻게 응답할 수 있고, 서로가 교
류나 대화가 이루어지고, 말하고자 하는 의사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계셨
습니다. 그러나 그 심오한 진리를 가지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알아듣도록 설교해야 하고, 가르쳐야만 됩니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
씀하지 아니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13:34에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비유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아주 많은 말씀이 비유의 형식으로 말씀하셨기 때문
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진리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가 어
떤 진리를 알고 있으면 자기만 아는 비밀로 붙이고 그것을 추상화하여 알쏭달쏭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습니다. 그래야 공부 많이 한 사람
이요, 유식한 사람인 것처럼 처신합니다. 이것은 배운 사람의 자기 교만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비유를 잘 사용하신 비유의 대가요, 비
유의 천재요,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신이 말씀하려는 것을 재미있게 말씀하려는 의도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말이란 감칠맛 나게 재미있어야 좋습니다.
아무리 유식한 말이라고 하여도 딱딱하고 알아듣기 어렵다면 귀가 닫히게 되고, 귀 막으면 이어서 눈이 감깁니다. 귀 막고 눈감으면 그냥 않아있으나 자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이런 것을 가지고 동문서답이라고 합니다. 교인들은 지금 월드컵에, 아파트 재건축에, 부동산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의 본질과 비
전을 말해야 하니, 동문서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에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제가 많은 설교를 하였는데, 설교한 내용들은 다 잊어버렸고, 잊어버려야 당연한 일입니다. 선포된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우리 안에 스며들어가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화를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
서 예전에 사용한 예화를 다시 하면, 전혀 다른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였는데도, ‘우리 목사님이 전에 한 설교 다시 써먹는다. 재탕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화는 오
래도록 기억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음식과 같은데, 다 차려진 상처럼 사모하는 사람들은 와서 그 자리에서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차려놓은 그대로 먹으면 되지 비유를 가지고 다시 새로운 음식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다 된 음식입니다. 설교자가 자기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
하여 다시 요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인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비유는 아주 쉽습니다. 오늘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는 좀 특별한
비유입니다. 우선 이 비유를 쉽게 설명해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본문을 잘 관찰해야 됩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자라나는 씨앗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고 씨를 뿌려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일상생활에 돌아갔습니다.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
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내었습니다. 씨를 뿌린 주인은 열매가 익은 것을 보고는 낫을 대어 추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농부는 씨를 뿌린 것 외에는 그가 한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씨를 뿌려놓고 그의 일상생활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
나 생명을 가진 씨앗은 땅에 심겨져 싹이 나고 이삭이 패고, 풍성한 열매를 추수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고전3:6-7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
이니라.”고 했습니다. NCD에서 말하는 자연적 성장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비유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의미가 있
습니다. 이 비유는 붙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몰래 자라는 씨의 비유\", \"자라나는 씨의 비유”, “알지 못하
게 자라나는 씨앗 비유” 여러 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은밀히 자라나는 씨의 비유”라고 붙여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말
씀하신 후에 겨자씨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쉽게 말씀드려봅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을 땅에 심을 때는 세상의 어떤 씨보다 더 작은 씨이지만, 일단 심고 보니 자라는데, 어떤 풀보다 더 큰 가
지를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아주 간단한 내용인데, 내용은 참으로 엄청난 보화를 간직하고 있습니
다. 이상의 두 비유를 놓고 비교해보면 앞에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내면적인 성장과 성장하는 방식을 말씀하셨다고 하면 ‘겨자씨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
의 외면적인 성장과 성장하는 범위에 대하여 말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주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하면 ‘등불비유’를 통하여 복음을 널리 펴라는 공개성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일단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을 주는 복음이 한 사람의 마음 밭에 심겨졌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에 참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목회자가 여러분을 쫓아다니며 간섭하고 지도한 것 없습니다. 농부와 같은 목회자로 일단
선포하여 마음에 뿌리고 심은 것뿐이지, 그 씨를 자라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는 저 사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러다가 세상으로 나가지” 그런데 그가 기도회에 나옵니다. 주일예배만이 아니라, 수요기도회에 나오고, 교
회의 중요한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기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볼
뿐입니다.
대자연에 생명력을 부여하시고 한 생명이라고 잃어버리지 않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
습니다. 열매 맺게 하는 주체가 땅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의도하는 바는 땅이 열매 맺게 하는 어떤 능력을 지녔다고 말하는 것이 아
니라, 농부의 힘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확산되고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아버지가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김을 매주고 거름도 주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역사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열매가 잘 익
었습니다. 이제 농부는 추수해야 합니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셨으나, 낫을 가지고 나가서 추수해야 하는 이는 다시 씨앗을 뿌린 농부의 몫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은 이미 믿고 있는 기성 신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
이 인간의 책임이라고 하지만,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시작하셨고, 확장하시고
완성하십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적은 일이요, 전 과정은 하나님이 하셨으며,
우리는 다만 적은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유명한 ‘제레미야스’라는 신약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
매는 씨의 결과이다. 즉 마지막이 처음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무한하게 큰 것은 이미 무한하게 작은 것에서 활동하고 있다. 진실로 현
재는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이해하도록 허락된 사람들은 이미 보잘것없이 보이는 시작에서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고
했습니다. 제레미야스는 주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이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열매이지만 어제는 씨앗이었습니다. 마지막이 처음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열매는 씨앗 속에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일 때에는 아주 미미한 것 같고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장차는 아주 큰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새 가족, 초신자, 이제 갓 믿은 성도들이지만,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무한히
크고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목적이 없이 인간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러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렘33:3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크고 은밀한 일을 계획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쓰임을
받기를 소망해야 크게 사용되어 집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역시 성장인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외형적인 성장
, 사회성의 성장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은 아주 작습니다. 세상의 어떤 씨보다도 작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겨지고 보니, 자
라서 큰 가지를 내게 됩니다. 그 씨는 아주 작지만, 자라면 관목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보기에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강하고 능력 있는 모
습으로 크게 보일 때가 곧 다가옵니다. 가장 작은 것이지만, 가장 큰 미래를 담고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자라나는 씨가 처음에는 싹이 나고 이삭이 패더니, 이삭에
충실한 알곡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 비유에서는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냅니다. 그리고는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가지를 내도록 자라야 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공중에 날아다니다가 더위에 지치고 피곤한 새들이 그늘을 내는 큰 나무로 날
아와 쉬기도 하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큰 그늘을 내는 나무” 이 말이 참으로 좋게 들려집니다. 우리 교회는 큰 그늘을 내는 나무여야
합니다. 그늘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내어야 그늘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무가 오랜 연륜만 자랑하고 하늘 높이 한 줄기만 자라
면 그늘을 내지 못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의 하나는 사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사람을 양육하는 교육하
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할 때에 사람을 세우는 교회, 사람을 살리는 교회, 사람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안에 들어와서 참된 안식을 얻고 새 힘을 얻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54:2에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장막 터를
넓혀야 합니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야 합니다. 밧줄을 길게 하여 장막에 힘을 받게 해야 합니다. 말뚝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된 나무라고 자랑하지만, 그늘을 낼 수 있는 가지들
이 없다고 하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과 혜택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만 좋사오니,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던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하는 것은 교
회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계속하여 선교하는 교회일 때에 비로소 교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교육관’이
란 가지를 만들어 우리 지역사회를 위한 그늘을 만들려고 합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설명하면 하드웨어를 확장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 중에는 좋은 것들이 많고, 또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활발하
게 지역사회를 섬기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고 교육관을 지으려고 합니다. 이 일은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장설 수 없고, 앞서가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받으실 영광
이 있습니다. 우리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좋은 계획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부요하게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겨우 자원이나 소비하
다가 하나님 앞에 선다면 참으로 후회스러운 인생을 살았다고 탄식할 것입니다.
맥스 루카도 목사님은 “예수님처럼”이란 책에서 “하나님은 당
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는 않는다. 당신이 변화되기 원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선다고 하여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삶이어야만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더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됩니다.
우리는 아직은 미미하지만 장차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복음의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겨자씨와 같이 아주 미미하고 작아 보이
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성장과 열매와 역량을 바라보면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자라게 하고 확장하게 하시는 하나님,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
중은 심히 창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고난에서 영광으로, 십자가에서 부활로, 보이지 않는데서 보이는 것으로, 미미한 데서 위대함으로, 변화시키시며, 자라게 하고, 붙잡고
사용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을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종들이 되어, 위대하신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
가를 지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흩어지고 지리멸망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미약하게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끝났
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하나
님의 성령은 지금 우리의 마음에 감동주시고 주님의 보혈을 증거하여 죽어가는 수없는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권능도 주십니다
. 성령님은 우리에게 증거할 수 있는 말씀도 우리 입에 넣어주십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죄악에서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가정보다는 아주 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제 복음의 씨앗이 심겨진 사람들, 싹을 내는
사람들, 이삭을 패는 사람, 충실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 다 좋습니다. 우리는 자라나야 합니다. 풀 같이 싱싱하게 자라는 사람, 큰 가지를 내고 잎을
키우는 사람, 큰 그늘을 낼 수 있는 나무가 된 사람들, 다 좋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지역사회를 섬기고, 상처받은 심령, 안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새 힘을 얻을 수 있
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의 할 수 있었던 많은 역량을 남겨둔 채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었
는데, 하지 못한 채로, 나의 물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못하고 남겨둔 채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서지 마시고,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 크게 쓰임 받고, 알찬 열매를 맺고, 우리의 전 삶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