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은혜 받을 때라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절 지금은 은혜 받을 때라 구원의 날이로다



영국의 격언에 “쇠는 달구어져 있을 때 치라(Strike while the iron is hot)
“해가 떴을 때에 건초를 말려라(Make hay while the sun shines),,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살던 시골 읍내 장터에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대장장이는 화덕에 갈탄을 넣고 풀무질을 하면 벌겋게 달아오른 화덕에 무딘 쇳덩이를 넣어달굽니다.
쇠가 벌겋게 달구어지면 대장장이는 쉴 없이 망치로 두드립니다.
그러면 점점 대장장이가 원하는 대로 칼, 낫, 호미, 도끼, 등등의 물건이 만들어집니다.
만일 대장장이가 개을러서 쇠가 달구어 졌을 때 망치질을 하지 아니하면 쇠는 식고 말아 원하는 농기구를 만들 수 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도 모든 것이 다 때와 시기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전3:1-8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우리의 인생에도 성공할 때가 있고, 실패할 때가 있으며, 행복할 때가 있으면, 불행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상고해 볼 때에 성공한 사람들은 주어진 기회를 잡고, 잘 활용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실패한 자들은 만사에 개을러 기회를 무심히 보다가 놓쳐버린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기회는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안개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한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돌아오지 않듯이, 지나간 과거의 일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쏟아진 물을 주어 담을 수 없듯이,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기회는 결코 되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수년전 영국으로부터 남아프리카의 어떤 지방에 허름하게 포장된 조그만 소포가 우송되어 왔습니다.
수신인에게 연락했지만 통관세와 운송료가 비싸다고 찾아가질 않아서 우체국 특별 창고에서 14년간이나 묵혀 있었습니다.
결국 수신인이 사망하게 되자 당국은 그 소포물을 경매에 붙이려고 공고했습니다.
그 당시 이 지방에서는 우편물 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포장을 풀 수 없도록 규제하는 법이 있었고, 또한 워낙 포장이 허름하여 그 속에 별로 대단치 않은 물건으로 생각하여 허술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호기심 많은 사람이 매입하겠다고 하여 아주 싼값으로 사들였습니다.
그가 경매장에서 소포를 여니 거기에는 영국 돈 파운드 지폐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교훈처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간단한 몇 가지 사실을 무시하는 자는 나중에 어마어마한 손해와 비극을 당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면 여지없이 가을이 오듯이, 만사에 때가 있어서, 그 때와 기회를 잡지 못하면 아무리 후회를 해도 이미 때는 늦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느 순간에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이 기회입니다.
기회는 결코 기다려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에 기회가 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합니다.

2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just now)이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 즉 숨을 쉬고 살아있는 이 순간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해 성 육신 하셔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나의 맥박이 뛰고, 심장이 뛰는 이 순간,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에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은혜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중히 여기지를 않습니다.
내일이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는 말은 다시 영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내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라는 말로서, 이 순간 주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이 순간 은혜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순간의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의 순간을 가벼이, 또는 헛되이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음에, 내일, 영진의 말처럼 지금은 날이 추우니 날이 풀리면, 또는 지금은 어려우니 형편이 나아지면, 등등,,지금의 순간을 헛되이 보내게 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 이며 장난입니다
여러분은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합니다.

2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성경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강조하며 은혜를 받아라,,구원의 날이라고 강조합니다.

지난주 용산 철거민이 건물에 들어가 망루를 설치하고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시위를 하다가 화제로 인하여 경찰관과 5명의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현장을 우리는 방송을 통하여 보고 들었습니다.
소위 철거민 연합회 회원이라는 분들이나, 그곳에 투입된 경찰들 모든 나름대로 사랑하는 가족과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 이였습니다.
어쩌면 그분들 중에 오늘은 힘이 드니, 내일이 지나서 형편이 나아지면, 교회에 나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야지,,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분들은 오늘 보다는 좀 더 낳은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고, 진압하는 일에 앞장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내일의 행복은 무참히 사람지고 참혹한 죽음과 슬픔, 고통만이 그들에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에벤에셀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은 분명히 저와 여러분에게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라는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벧전4: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처럼 지금은 만물의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합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원중 단 피아트(Dan Piatt)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피아트는 한 부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부자가 피아트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백만 불짜리 사업 계약을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당신에게 전화할 터이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피아트는 한밤중까지 기다렸으나 전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 날이 밝았습니다.

피아트는 조간신문에 부자가 지난밤 9시30분경에 병원에서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알려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 당국자들이 말하기를 어제 초저녁에 병원에 실려 온 그는 죽기 전에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하는 말을 되풀이 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지금,,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지금, 그 순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더라면, 그는 그렇게 처절하게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리 제물이 많고, 많이 배우고, 외모가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는 결국에 허무하고 헛된 인생을 살다가 처절하게 후회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세상의 지위와 힘을 가진다고 해도 근본적인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면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아야 할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비참한 종말의 징조를 딤후3:2-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딤후3:2-5절의 말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조사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10억이면 감옥도 가겠다는 말을 망설임이 없이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에 사고에 빠져 돈을 사랑하고, 교만함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모욕합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며 순종치 않고 감사를 모릅니다.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폭력적이고, 절제할 줄 모르며, 세상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현상은 성경의 말씀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처럼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할 때입니다.

6-7절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이 말씀처럼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아프리카의 카르라는 지방에는 은혜에 보답하는 좋은 풍습이 전해집니다.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받아 고마움을 느끼면 그날 밤 그 집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머리 숙여 밤새 앉아 밤을 세운다,,고 합니다.
혹시 비가 온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꼬박 비를 맞으며 은혜 베푼 사람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긴다,,고 합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지내면 그 사람은 마을에서 집단으로 매를 맞거나, 아니면 쫓겨나고 만다,,고 합니다.

고후6:1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종교개혁자 루터는 “은혜는 지나가는 소낙비와 같다!,,고 말합니다.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순식간에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1.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시42: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주님의 은혜를 갈망했습니다.

행14:8-14절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간절히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영생을 얻고 일어나 걸은 것처럼,
눅19장에 세리인 삭개오가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구원을 얻은 것처럼,
마9:20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간절한 소망에 구원을 얻고 치유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고 구하는 자에게 그 소망을 들어주십니다.
렘29:12-13절 “너희는 네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 말씀처럼 주님은 전심으로 주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고,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2. 간절히 기도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옛날 한 수도사가 기름(oil)이 필요하여 올리브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마시고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자, 주께서는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 수도사는 주여, 나의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검은 구름을 물리치시고 해가
주셨고, 이번에는 \"오!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라고 수도사는 외치자, 그 작은 나무에는 서리가 앉았지만 저녁에는 죽어버렸습니다.

그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의 방을 찾아가, 그의 이상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도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고 하면서 \"그런데 보십시요!
잘 자랍니다. 나는 나무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무에 무엇이 필요한지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만 \'주여! 이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강풍이든, 햇빛이든, 또한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께서 때를 따라 주시옵소서.
주께서는 이것을 만드셨고, 잘 아시나이다,,라고 기도할 뿐입니다,,는 라고 말합니다.

키엘케골은 말하기를 \"기도란 것은 하나님이 내게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총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키엘케골은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다만, 그분께 의지하고 간절함으로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눅11:11-13절 “너희 중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선을 달라고 할 때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절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구해야합니다.

3.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약4:6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
은혜의 결과는 겸손이며, 겸손은 우리의 기도의 응답의 열세임을 알아야합니다.

성도여러분!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먼저이며,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멀리 내다보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시103:14절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지으셨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진토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 겸손하고 은혜를 받은 만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겸손한 자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순종하는 자가 은혜의 사람이며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교만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은혜를 헛되이 여깁니다.
1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주님은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설령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할지라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더욱 감사하고 받을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 기도하고 사모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 자신의 약함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을 기억하시고,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을 잘 세기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여 이험하고 악한 시대에 승리자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