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달란트 /마 25:14-30


여러분, 예수님의 최고 관심사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사도행전 1장 1-11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와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 나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퍽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하나님나라에 관한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달란트는 우리 돈으로 약 1억원에 해당되는 돈인데,
주인이 세 사람에게 각각 1억원, 3억원, 9억원을 맡기면서 장기 외유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들에게 맡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계산하는 장면입니다.

드디어 주인이 돌아와서 일한 사람들의 실적을 보고 받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보고합니다.
주인님! 제가 열심히 일해서 여기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서 열 달란트가 되었습니다.
종의 보고를 들은 주인이 그에게 이렇게 칭찬합니다.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둘째 종도 와서 보고를 하는데, 첫째 종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첫째와 둘째는 각각 주인에게 받은 돈의 액수가 달랐고,
또 그들이 남긴 이윤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도 주인의 칭찬은 똑같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달란트를 얼마나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문제는 그것을 가지고 주인이 그토록 관심하는 일에 충성하기만 한다면,
주인의 칭찬과 상급은 주어진 달란트와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직위가 무엇이냐, 또는 배움이나 재물이 얼마나 많고 적으냐, 또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직하게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일했느냐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종이 등장합니다.
그가 주인에게 보고한 내용은 받은 돈을 그대로 수건에 싸서 녹슬지 않도록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24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4절) 두려워하여 ...(25절)
여기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은다고 한말은 \"당신은 착취자요, 나는 희생자\"라는 뜻입니다.
주인은 그로부터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면서 악하고 게으런 종이라고 책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9절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절)

하나님나라의 법칙에는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남의 덕만 보고 살려는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행위대로 검증을 받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많이 소유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사랑과 신뢰를 더하시어 그 가진 것 위에 더 많은 것을 안겨주시지만,
충성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립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이며 하나님나라의 원리입니다.

주인이 명령합니다 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30절)
본문 말씀은 비유이기 때문에 바깥 어두운 곳을 꼭 지옥이라고 해석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계산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이 장기출장에서 돌아오듯 주님이 재림하시면,
반드시 우리에게 주었던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사용했는지 계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냥 쉽게 지나칠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부류는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또 한 부류는 그렇지 못한 사람입니다.
받은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주님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힌 사람은 내가 누구라는 것을 발견한 뒤,
한 번 밖에 없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장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인가를 깊이 생각합니다.

전에는 내 젊은 날이 다 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좀더 즐길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던 사람이
변하여 주님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칩니다.

언제나 마음이 허전하여 허전한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사람이 주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는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삶의 질이 달라진 것입니다. 시간을 쪼개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돈을 쪼개어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더욱 많이 쓰려고 애씁니다.
재능이 굳어지기 전에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이 사람이 주인에게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문의 종처럼 자신이 충성스럽게 살지 못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내 인생을 착취한다,
나는 교회의 희생자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헌금, 충성, 헌신, 전도 등과 같은 말만 들어도 저절로 불평이 나을 정도로 마음이 꼬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절대로 주인을 위해서 모험을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주님께 받은 달란트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커다란 모험입니다.
시간을 뺏길 때도 있고, 돈을 뺏길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손해도 보고, 어떤 때는 몸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이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런 부담감을 안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하는 것 자체가 불만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세상사람이 볼 때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어디 눈에 손에 잡힙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확인하고 볼 수 있습니까?
영적인 것이기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위해 산다는 것은 구름을 잡는 것같이 허무맹랑하게 비칠 수도 있습니다.

온 세상사람들이 다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던 인물이 구약성경에 나옵니다.
노아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것도 해변에서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은 맑기만 하고, 비라고는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3년, 5년, 10년이 가도 배를 띄울 만한 큰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전 재산과 시간을 바쳤습니다.
가족들까지 모두 동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노아를 향하여 어리석은 사람,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라고 하셨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노아처럼 오랜 세월 그렇게 땀흘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코 모험을 하지 못합니다.
힘들게 신앙생활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럽게 살려는 사람은 하나님나라가 다가오고 있음을 영의 눈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도, 핍박을 받아도, 손해를 보아도, 변함 없이 그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의 모습이요, 생활입니다.

여러분! 만일 오늘 당장이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나와 계산하자고 하시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냉정하게 한 번 평가해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매우 너그러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왕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불러 계산하실 그 날에는 엄정하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처럼 적당히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아무런 표가 나타나질 않겠지만, 그때에는 교회 안에도 구원에서 탈락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달란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헬라어의 달란트는 문자적인 의미로는 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에서 사용하신 달란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모든 종류의 기회들인 재능, 시간, 돈, 가정, 사업, 은사 등으로 해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앞에 너무나 귀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사용하여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물을 쓰고, 관심을 기울이면서 영혼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십시다.
그래서 열방이 주님의 백성으로 태어나는 영광스러운 그 날의 환상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멋지게 살아봅시다.

달란트를 샘물에 비유하여 \"샘에서 물을 계속적으로 퍼낼 때 그 샘은 오히려 물이 맑아지고 더 많은 물이 솟구쳐 나오지만, 물을 퍼내지 않고 그대로 두면 솟는 물은 완전히 멎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에 따라 맡겨주신 달란트가 많든 적든 그것을 잘 사용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달란트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고 살아가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도전을 해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겨 주님 앞에 드리느냐? 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도전의식입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필요합니다.
신앙적으로도 도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뻔히 자신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 습관에 젖어서 그 멸망의 길을 가는 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파멸과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미련합니까? 도전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적으로 도전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도전의식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며 칭찬하시고, 아낌없는 영광의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칭찬과 상급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