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의 신부 마 25:1-13
오늘 말씀은 유명한 10처녀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나라의 결혼풍습을 예로 들면서 자기는 재림주로 올 때에 신랑의 모습으로 올 痼結?
우리 성도들은 신부의 모습으로 자기를 맞아야 할 것을 교훈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결혼식을 흔히 밤에 행합니다.
왜냐하면 유대나라는 하루의 시작이 해가 지는 때부터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결혼풍습은 신랑이 자기 들러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장가를 들러 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모두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손에는 등불을 밝히고 신랑 일행을 맞으러 나가는데 신부 들러리들은 보통 10명으로 구성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랑 일행이 도착하면 신부 들러리들은 신부가 있는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고 그 이후로는 문을 닫아걸고 일체 출입을 금지하고 잔치행사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강도들이 자주 침입한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을 보면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게됩니다.
어느 귀한 집 딸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신랑감도 대단한 집안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혼인잔치는 아주 화려하고 음식도 최고급의 요리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 잔치에 10처녀들이 신부의 들러리로 선정되었습니다.
10처녀들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신부의 들러리로 선정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도 예쁘고 키도 후리후리해야 할 것이요,
품행도 단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선정되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아마, 10처녀들은 들러리로 선정된 날부터 준비를 단단히 했을 것입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최고급의 미장원을 들락거리며 특별 마사지를 받았을 것이요,
하얀 드레스도 일정한 모양이지만,
다른 처녀들에 비해서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손질을 하고 액세서리도 달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는 혼인 잔치에 흥을 돋구기 위해 신랑이나 신부의 들러리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순서가 있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10처녀들은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노래방도 들락거리며 노래연습도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잔치에 참석했다가 신랑의 들러리 중에 좋은 신랑감을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러 날 많은 준비를 하면서 기다린 결혼식이었는데 그 중에 다섯은 합격하여 화려한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나머지 다섯은 불행하게 불합격되어 들어가지 못하고 문이 닫히는 부끄러운 날을 만났습니다.
그 이유는 5처녀들은 미련한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신랑으로, 우리 성도들은 그의 신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택함을 받고 신랑과 한 몸이 되어 행복한 삶만 보장되는 천국 잔치에 들어가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신자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그 화려한 천국잔치에 들어갈 수 없음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신랑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신랑 예수님이 어느 시간에 오시더라도 즐겁게 맞이하여 천국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부들이 되어야 할 터인 데 어떻게 무엇을 준비하여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1. 신부는 단장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10처녀들은 혼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열심히 단장을 하였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처녀들 중에 아무리 팔등신 미인이 있을지라도,
하얀 드레스로 입지도 않고 평소에 하던 머리, 평소에 하던 화장,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참석했다면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장을 잘 해야 합니다.
평소보다 정성을 다해 단장을 하고 꾸미고 나갈 때 신랑의 입장에서는 \'나같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자를 위해 저렇게 정성을 다해 단장하다니\'라는 감격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우리 성도들은 신랑 예수님을 맞기 위해 정성껏 단장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할까?
예전에 우리 나라 신부들은 결혼식에 굉장한 치장을 했습니다.
속옷은 단속곳, 그 위에 속치마, 그 다음 무지개 치마, 그 위에 남치마를 입고 그 위에 울긋불긋한 활옷을 입고 머리에는 용잠을 꽂고 화관을 쓰고 갖가지 패물로 장식을 했습니다.
마치 왕비처럼 단장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부들의 단장을 어떻게 합니가?
(1)속옷으로 입어야 할 것이 골3:12에 나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랑 예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먼저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결혼식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를 보니까 외모는 너무나 아름답게 치장했으나 속옷은 더러운 것을 입었다면 불쾌해서 나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입어야 할 속옷은 다섯 가지 덕으로 언제나 긍휼과 자비의 마음, 겸손과 온유의 마음, 그리고 오래 참음의 마음에 입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입고 있을 때만이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십니다.
겉으로는 성도들의 모습을 닮았는데 속 중심은 미움과 비정함, 교만과 독선, 참지 못함으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 주님은 외면하시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섯 가지의 마음은 억지로 입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의 겉사람의 자아와 성질,
겉사람의 욕심과 자랑을 완전히 못박고 그 보혈로 씻을 때만이 마음에 입을 수 있는 영적인 속옷입니다.
(2)신부의 단장은 사랑의 띠를 띠는 것입니다.
골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 모든 것은 좀전에 말씀 드린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의 띠로 맬 때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옷을 입을 때 거기 고무실이나 띠가 없을 때 얼마나 불편합니까?
옷에는 띠가 있을 때 간편하고 아름다워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원문에서 보면 아가페 사랑, 즉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아무리 마음에는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의 덕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아카페적인 사랑이 없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는 조건을 달거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아무 조건이 없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은혜를 만 분의 일이라도 갚겠다는 심정으로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덕을 베풀 때에 신랑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덕이 되는 것입니다.
(3)신부의 단장은 겉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부의 겉옷은 무엇입니까?
골3:15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입니다.
언제나 성도들은 그 외적인 삶에서 평강과 감사와 신령한 노래, 즉 찬송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신부가 신랑 앞에서 언제나 근심이나 염려, 불만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면 신랑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언제나 내적으로는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으로 단장하고 외적으로 평강과 감사, 신령한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되
이 모든 것을 십자가 사랑의 띠로 묶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임으로 신랑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준비할 것은 등입니다.
오늘 10처녀들은 하나같이 등을 가졌습니다.
등이란 헬라어로 \'람파도스\'로 \'신앙의 외형적인 모습\'을 뜻합니다.
즉, 그것은 눈으로 나타난 신자의 틀, 신자의 모습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누가 보더라도 성도들로 보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자 같다. 혹은 신자답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갈 때 옆에 앉은 분이 \'혹시 교회 나가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자연히 성도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누가 여러분을 보고 농담으로라도 바람둥이나 사기꾼 취급을 하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를 보고한다는 소리가 \'저는 형사님들인 줄 알았습니다.\'라고 했다면 뒷맛은 안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식구들에게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헸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자기 친구에게 소개하기를 \'우리 집사람은 예수 골수분자요.\'라고 할 정도가 되어야지,
\'우리 집사람은 교회를 열심히 나가지만, 나이롱 집사요,
욕심 부릴 것은 다 부리고 부부 싸움하면 한 마디 하면 열 마디하고 욕은 더 잘 하니, 저래가지고 누가 교회를 나가겠오.\'라는 소리를 농담으로라도 한다면 크게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식구나친척,이웃이나 직장 사람들로부터 진실한 성도라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3. 그리스도 신부들이 준비할 것은 기름입니다.
등은 외형적인 신앙의 모습이라면
기름은 헬라어로 \'엘라이온\'으로 \'신앙의 내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즉, 성령의 기름 곧 믿음을 말하는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처녀들은 다 등을 가졌습니다.
오늘 교회에 출석하시는 여러분은 외형적인 신자의 모습은 다 갖추었습니다.
등을 가진 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혜로운 신부에 속하느냐, 미련한 신부에 속하느냐에 있습니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3절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 했다.\'고 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만 기름을 넣었지,
다른 병에 여분의 기름을 더 예비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외식하는 자와 같은 자로, 외형적으로 보면 성도처럼 보입니다.
성경 찬송을 들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마지못해 합니다. 조금만 충성해도 짜증이 나고 피곤을 느낍니다.
그런 분들 속에는 기름이 말라가므로 언제 불이 꺼질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형식만 남은 신자입니다.
기름은 계속 넣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계속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한번 은혜 받은 것으로만 버티려고 합니다.
어느 기도원에 가서 은혜 받은 이야기, 10여년 전, 어느 부흥회 때 받은 은혜타령만 하지, 오늘 기도하지 않음으로 기름이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아니 됩니다. 우리가 계속 은혜를 받지 않으면 외식적인 신자, 바리새인이 되기가 쉽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고 겉으로는 충성하는 자처럼 보이나 속에는 빛이 약하므로 열심이 없습니다. 마지못해 충성하니 영적으로 피곤한 상태에 빠진 모습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기름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믿음이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기름을 충만히 받습니까?
하나님은 성령 충만을 어느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누구에든지 주시는 것처럼 성령 충만함도 누구에게나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설교하기를 행2:38-39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시여, 저는 어찌든지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노력으로 힘써왔으나 번번히 실패해 왔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기를 원하오니 성령의 기름을 내게 부어 주시사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보십시오.
한 두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질 때까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면서 기도해 보십시오. 어느 순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믿음이 강해지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강한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분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도우실 수가 있으십니다.
여러분이여, 근심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아와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심으로 먼저 믿음이 충만케 해달라고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심으로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그리스도의 신부는 등에 빛을 밝히고 신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부의 들러리들은 단장도 정성을 다 했고, 등과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등에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만약 다 준비가 되었더라도 등의 불이 꺼져 있다면 불합격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단장을 잘 했느냐 못 했느냐, 등이 좋으냐 나쁘냐, 기름을 따로 준비했느냐 아니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랑이 왔을 때 등의 빛을 밝히고 있었느냐 못 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신랑의 대변인이 \'신랑이로다 나와 맞으라\'고 외칠 때에 등을 밝히고 제 시에 나가 맞았느냐 안 했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은혜를 많이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았더라도 신랑 되시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신앙의 등불을 밝히고 맞았느냐, 못 했느냐에 따라 천국 혼인잔치에 들어가느냐 못 하느냐로 판가름되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불을 밝힌 것,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에 충성 봉사 많이한 것, 구제 많이 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막상 주님이 오셨을 때 등에 빛이 꺼져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문제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는 데 있습니다.
신랑이 일찍 왔더라면 그처럼 며칠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준비했던 10처녀들의 등불은 꺼지지 않음으로 모두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한없이 즐거움을 만끽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신랑의 일행이 늦게 옴으로 등에 있던 기름이 다 떨어짐으로 불이 꺼진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재림주로 오실 예수님이 우리가 한참 기도 열심히 할 때 오신다면, 믿음의 등불이 최고도로 밝았을 때 오신다면, 열심히 충성하고 있을 때 오신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는 많은 교인들이 재림에 대한 설교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림주에 대한 사모함이 점점 약해지고 본문 말씀대로 신앙적으로 졸며 자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여, 이러한 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등에 지금 불이 밝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 빛은 사랑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요, 두 번째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에 대한 첫 사랑에 대한 빛이 식지 않도록 성령의 기름을 계속 공급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빛이 식지 않도록 열심히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실는지 알 수가 없지만
우리 모두는 믿음의 빛, 충성의 빛, 사랑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깨어 있다가
여러분이여, 우린 모두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단장하는 삶,
등과 기름을 예비한 삶, 빛을 환하게 밝히고
신랑 예수님을 깨어 기다리시다가 화려하고 복된 천국잔치에 다 들어가시는 복된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