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

[권 다니엘 목사]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말씀 : 창세기45:1~8,

 

요절 : 창세기45:5, “그런즉 이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당신들 스스로에게 노하지 마소서,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음이요,”

우리교회는 지금 창세기 퀴즈 축제 한마당을 준비하느라고 가정마다 열심인줄 압니다. 기쁨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준비가 재미있을 것이요,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머리에 숙지가 잘 될 것이지만,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부담이 되리라 생각을 합니다. 혹시 시험에 들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즐겁고 감사함으로 하면 많은 유익이 있는 법인데 강요에 의해서 한다고 생각을 하면 많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저는 성경퀴즈 대회를 축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이 퀴즈 대회의 목적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이런 기회를 통하여 성경을 좀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전 50장에서 저 혼자 여러 팀의 토너먼트에 필요한 많은 문제를 출제하자면 우선 제가 힘이 들고 여러분들은 사실 많이 알 기회가 없으며 몇몇 조금 아는 사람들에 국한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한 주간동안 3장씩 출제를 해 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매주 계속 문제를 출제하라니까 좀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무언가 알아야 재미가 있지 전혀 모르면 아는 사람 위주가 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축제는커녕 지겨운 행사가 되기 쉽습니다. 여러분들이 스포츠를 관람할 때 그 경기의 룰을 알면 재미가 있는데 전혀 모르는 운동경기는 보고 있어도 흥미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공부하여 함께 즐기자는 생각입니다.
혹은 학교나 직장 일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이렇게 공동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즐기면서 성경을 더 알아가는 계기와 하나님의 관심과 축복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더 출제를 해 주시고 다음 일요일에는 예정대로 조 추첨을 하고 상품도 준비를 하고 나머지 한 주간은 개개인이 전체 총괄적으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족이 같이 문제도 내보고 서로 퀴즈를 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가정의 하나 됨과 화목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창세기에는 하늘과 땅의 기원은 물론 하나님의 창조역사와 인간의 타락과 죽음을 말해주고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알게 해 줍니다. 창세기는 50장이나 되는 대단히 긴 성경입니다. 그 중에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37~50장까지로 14(-1)장이나 됩니다. 오늘은 창45장의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이 나오는 대목의 머리 부분으로 두 번째 양식을 사러 온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아버지를 빨리 모셔 올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요셉에게는 가슴 벅찬 이야기이면서 형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장면입니다.
본문 3절에,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나이까? 하니 그의 형제들이 그의 눈앞에서 불안하여 능히 대답하지 못하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요셉이 형들과 이야기를 할 때 히브리말을 모르는 것 같이 통역을 가운데 두고 이집트 말로 하다가(42:23), 갑자기 자기들의 언어로 “내가 요셉이요, 내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나이까?” 하니 얼마나 당황하고 두렵겠습니까?
그때로부터 오래 전 약15년 전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얄미운 동생을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후 잊고 살았는데 눈앞에 이집트의 권세자로 서 있는 그 동생, 자신들이 죽이려다 다른 나라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그 동생이라니 두렵고 겁이 날 만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죄 짓지 말고 원한 살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 그런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속히 서로 화해하고 살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세상에서도 착한 사람들이 죄짓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흉년에 죽지 않고 살기위하여 양식을 사러 먼 나라까지 왔는데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총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일찍이 열일곱의 나이에 주님께로부터 받은바 꿈의 계시가 있었고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그 꿈의 계시를 잊어 본 적이 없었으며 낙심하지 않았음을 전체적인 기록에서 오늘 우리가 교훈으로 얻을 귀중한 인생의 지침과 믿음의 방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요셉의 살아온 고난과 주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라 설교의 제목으로 정하고 오늘을 사는 여러분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고난 받으려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욥기5:7,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나니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길을 알고 믿고 순종하면 오늘 본문의 요셉과 같이 만사형통하는 영광의 복도 누릴 수 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1,먼저 여러분들에게 꿈과 소망을 갖기를 부탁드립니다.
장래 희망과 꿈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고 목적 없이 사는 하루살이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비록 그 꿈이 때를 따라 변한다 할지라도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과 되는 대로 사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형제들에게 장래 자신의 10년 후, 혹은 20년 후의 청사진을 그려보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주시니라”(잠16:9), 하셨기에 나의 계획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 꿈은 속히 이루어 질것입니다.
실제로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밤에 꿈으로 앞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도 요셉에게 보여 주신 것 같이 꿈으로나 음성으로나 어떤 직접적인 계시를 원하지만, 우리에게는 꿈보다 더 확실하고 음성보다 더 확실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록된 말씀을 믿음으로 소유하는 자들에게는 잊어버리기 쉬운 음성이나 꿈보다도 정확하여 언제든지 그 약속을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셉의 때에는 아직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고 천사의 현현으로나 꿈으로나 음성으로 직접계시를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영구 불멸의 기록된 약속의 문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꿈으로나 음성으로나 직접적으로는 계시하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무한하고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참으로 복된 시기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 속에는 금은보화는 물론 원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캐내어야합니다. 주님께서 기록하신 것들을 내가 내 것으로 소유하십시오, 전능하시고 거짓말하실 수 없는 주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여 누리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오늘 알아야할 것은 꿈이나 계획이 세워졌다고 그것이 이내 행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열일곱에 주님으로부터 주신 장래에 이루어질 꿈으로 인하여 기쁨보다는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열한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 경배하는 모습의 꿈을 꾸고 자랑하다가 형제들의 시기 질투를 받았는데 다시 한번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경배하는 꿈을 꾸고 말하여 형제들뿐만 아니라 부모들 까지도 요셉에게 경배한다는 내용이므로 그들의 많은 형제들에게 사랑대신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아오는 터이라 보기 싫었는데 꿈 이야기로 더욱 미워하여 끝내는 죽이려하다가 가까스로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팔리는 신세가 되어 고생 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퀴즈를 대비하여 창세기를 많이 읽었겠고 또 성경의 처음 책인 창세기는 다른 성경보다 많이 읽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요셉이 가졌던 믿음을 우리가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직접계시 시대에는 꿈으로 주셨지만, 기록된 성경 속에 있는 수많은 축복들은 여러분들이 선택하여 믿음으로 간직하고 주님께 구하시면 됩니다. 성경 전체의 주님의 역사는 누구나 원하는 자에게 해당됩니다. 그러기에 공개된 책이요 보장된 축복이라 합니다.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보고 믿음만 가진다면 하나님의 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구절 중 요한복음3:16절을 가만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으니 자격 제한이나 시대 구분이 없으며 “누구든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제한 없이 베푸신 은혜를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이 넘쳐 납니다. 디모데 전서2:4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구원 받는데도 제한이 없이 모든 사람을 초청하고 계시며 구원 받은 여러분들은 이제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 들어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소유하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성경 전체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를 행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태어난 우리는 소망을 이루기까지는 그리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마귀의 시기 질투도 있겠고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후 그 것을 감당할 정도의 훈련을 겪게도 하십니다. 거기에 우리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요셉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팔려갔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여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나에게 닥친 환경을 비관하며 슬퍼하고만 있다면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최선을 다하고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꿈과 소망을 잃지 않는다면 주께서 형통케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인내의 고통과 수고는 없겠지만, 성취와 기쁨은 결코 맛 볼 수 없을 것입니다.

2,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그분의 섭리를 기다리십시오,
누구나 첫 술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꿈과 약속이 주어졌다고 그것이 이내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도 고난의 세월이 13년이나 걸렸습니다. 그것도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낫선 땅에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 가정 총무로 열심히 일하여 인정을 받고 그 집 주인이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길 정도로 신임을 했으나 원수 마귀는 그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음욕의 죄를 짓도록 부추겼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결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이겨 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내용을 통하여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죄 지을 환경에서 죄를 범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은 그 환경을 피하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유혹은 줄기찼으며 옷을 잡고 늘어졌지만, 그 옷에 미련 없이 도망하므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영적 싸움이나 육신의 유혹을 이겨내면 금방이라도 큰 승리의 감격을 맛보거나 보상이 따를 것으로 생각을 하겠지만, 최후의 승리까지는 장애물은 계속나타나 길을 막게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 음행의 유혹을 이긴 댓가는 칭찬이나 상급이 아니라 모함에 걸려 나라의 특수 범죄자들을 가두는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자포자기 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며 싸매고 누운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도 여러 사람을 섬기며 일을 찾아 하므로 감방장의 눈에 뜨여 간수가 할 일을 맡았고 열심을 다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랑하는 박석진 형제는 처음에 왔을 때 기도제목을 적으라하니까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만사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썼습니다. 아주 잘 하셨습니다. 이젠 믿음으로 오늘의 현실에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요셉을 형통하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도 들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며 그 능력은 다함이 없으시며 그 약속 또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만 요셉을 형통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나의 소원도 동일하게 받아 주신다는 믿음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소망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 되심을 우리를 통하여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 로마서8:18, 입니다.
“이는 내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이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다만 요셉과 같이 인내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환경이 어떠함은 하나님께는 거침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므로 나만 지치지 않으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말라.”(살후3:13), 고 권면합니다.
주님께서도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눅18:1).
요셉을 보십시오, 감옥에서 왕의 술을 맡아 일을 하는 술관원장과 빵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 꿈대로 복직 할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기의 무죄함을 이야기 하고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복직된 그 사람은 요셉의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바람에 감옥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내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원한을 남겨 준 사람은 잊어버리지 못하나 은혜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의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 하실 수 없는 그분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3,원수를 사랑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원수 갚는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때 중국 무협 소설에 심취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소설의 재미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어렵게 성장하고 무술을 익혀 원수 갚는 것이 모든 중국 무협 소설의 내용입니다. 오늘날의 연속극의 해피엔딩이란 승리로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복수로 승리했다면 반드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고 상대편에서 볼 때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줄 권한은 주셨지만 저주할 권한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전서3:9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축복하라. 이런 일을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줄 아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복을 상속 받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세상에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빈다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바보취급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 받는 길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일 만큼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상대가 사과의 뜻이 있거나 먼저 잘못을 빌면 용서해 주겠지만 내가 먼저 용서할 수는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의 명령이므로 순종해야합니다. 나는 죽기보다 싫어도 그분이 나의 구세주가 된다면 그리해야합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기도하며 참고 견디면 승리할 수 있으며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계속 벧전3:11~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를 지니 이는 주의 눈은 의로운 자들 위에 거하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열려 있으되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기 때문이니라.” 하셨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힘이 없고 나약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인내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가 밖에서 얻어맞고 들어오면 속이 상하실 것입니다. 차라리 한대 때리고 치료비를 물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얻어맞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면 이제 주님을 믿는 여러분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어 원한을 품고 욕을 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이요 복 받는 길이요,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입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면 또 다른 원수를 낳는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기는 것이 확실한 원수 갚는 길입니다. 로마서12:19-2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된바 원수 갚은 일이 내게 속하였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줄지니 이는 그리함으로 네가 그의 머리위에 숯불을 쌓을 것임이라.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늘의 주인공 요셉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당대의 권세 있는 이집트 총리가 되었으나 고난의 13년을 돌이켜 자기 원수들에게 원한을 갚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채색 옷을 벗기고 죽이려했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고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이 눈앞에 있어도 결코 그들에게 협박하거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형들의 대화 속에서도 그 당시의 사정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창42:21, “그들이 서로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에 관하여 참으로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간청할 때에 우리가 그 혼의 고통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는 도다.”
물론 그들은 요셉이 알아듣지 못하는 줄 알고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통하여 지난날들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옛날 한 짓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요셉은 오히려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오늘 본문5절입니다.
“그런즉 이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당신들 스스로에게 노하지 마소서.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앞서 보내셨음이요, 또 이 땅에 이년 동안 기근이 있었으나 아직 오년이 남아 있어 밭을 갈지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 것임이니이다.”
그 형제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더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동안은 요셉이 자기들에게 원수 갚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어떤 앙갚음이 있을까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창50:18~21절을 한번 보십시오,
“또한 그의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을 선한 것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 하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이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어린 것들을 부양하리이다, 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친절히 말하였더라.”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무고히 고생시킨 보디발의 아내에게 충분히 복수할 권세가 있었지만 결코 복수 했다는 기사가 없습니다. 술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들을 돌보아 주었는데도 자신을 감옥에서 끌어내 주지 않았어도 결코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본 받을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거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을 두려워할 때 여러분들의 장래도 보장 받는 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에게는 그 말자체도 사치스럽게 들릴 것입니다. 고생이란 지긋지긋할 것입니다. 오늘의 삶의 배경을 보면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랑 할만한 직업이 없습니다. 물론 학벌이나 좋은 배경이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벌어 노은 돈은커녕 오히려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우리교회 청년들에게 소망을 둡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형편을 다 아시지만 부르셨고 구원하셨습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낌없이 주셨는데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분께서 친히 내 아버지가 되어 주셨으며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분께서 나의 아버지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을진대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의 능력 없는 육신의 아버지들도 자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고자합니다. 오늘의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여기고 소망을 간직하시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8:24-2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기다릴 지니라.”
오늘의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여기고 당장 코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장래의 아름다운 청사진을 그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믿음으로 인내의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라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는 것입니다. 매순간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정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