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길에 하나님의 사람

  광야길에 하나님의 사랑(1153) 출15:22-27  060924

1. 출애굽의 역사는 언제나 영적 교훈을 줍니다.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은 강 언덕에 올라 12지파를 상징하는 돌을 세워 영원한 기념비를 삼아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홍해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고, 애급의 군대를 수장시킨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저들은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광야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들은 그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잊어버리고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다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현실적인 문제란 사흘 길을 가도 물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광야 길에서 제일 급한 것이 물입니다.
갈증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다 알 것입니다.
배고픔도 참기 어려운 일이지만, 갈증은 더욱 심각한 일입니다.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만나야 할 샘물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
이처럼 절박한 현실적인 문제는 또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현실문제는 바로 이런 것에 있습니다.
만나야할 것을 만나지 못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적령기에 들어선 과년한 딸을 둔 부모님들은 만나야할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지금 기도하고 있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발견해야 할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찾아야할 것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것이 바로 생수였습니다.  
저들은 타들어가는 갈증을 메울 길이 없어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갈증은 사치스러운 고민도 아니고, 허영을 위한 불안도 아닙니다.
당장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었습니다.

지금 현실적 문제 중에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어제 아침 신문에 보니, 모 신문기자가 뉴욕에서 LA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탑승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중 한 50대 깔끔하게 생긴 부인이 이곳이 LA로 가는 탑승구입니까? 라고 묻더랍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비행에 오르기까지 약 30분간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남편이 한국에서 중소기업의 이사로 있다가 명태를 하면서부터 시작된 생활의 염려를 이야기하드랍니다. 퇴직금을 가지고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하다가 여의치 않아 본전도 다 까먹을 위기 앞에서 가계를 처분하고는 그 남은 돈은 생명 줄이나 다름없기에 그대로 묶어둔 채, 이일 저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용역회사로부터 미국의 가정부 자리를 알선 받아 지금 6개월 동안 있는 중이란 내용의 이야기였습니다. 관광비자로 들어왔기에 6개월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야 한다는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인의 말인즉, 어떻게 정치를 했기에 다시 60년도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렸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만나야할 사람들이 만나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도 찾아야할 일들을 찾지 못해 걱정, 불안, 염려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고민입니다.
저들은 삼일 길을 걸으면서도 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대열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고민하는 분들, 그것이 어쩌면 나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이런 환경에서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 계신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급해진 것은 인간 편이었지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이 다 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장 죽을 것 같은 현실을 당했지만, 그것으로 죽게 하는 하나님은 아니란 말입니다.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인간 편에서였지 하나님 편에서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목말라 죽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목말라 죽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지금 출애굽은 하나님이 인도해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가는 길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길에서 목말라 죽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점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에서 목말라 죽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문제에서 아무리 다급해도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하여 죽
게 내 버리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신앙의 위대함이란 현실의 갈증 속에서 해결의 은총을 입도록 합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처럼 위대한 홍해를 갈라지게 하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람을 상대하여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모세에게 나아와 백성들은 물이 없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상대하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해결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에서 만난 고난을 인간 편에서 해결하려고 했을 때
남는 것은 원망뿐이었습니다.

이럴 때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물을 만났습니다.
만나기는 만났는데 먹을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바로 이 쓴물 앞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행복해야할 사람들에게 쓴물이 웬 말인가?
이것이 언제나 수수꺾기입니다.
그처럼 타 들어가는 갈증 속에서 물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쓴 물로 인하여 다시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 쓴 물 때문에 다시 좌절하고 낙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열심히 교회도 나오고, 주일이면 주일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그래도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무척 애쓰고 있는데 왜 쓴물입니까? 쓴 물로 인하여 저들은 다시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쓴물을 통하여 하나님은 저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얻도록 하였습니다. 모세로 하여금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해 버렸습니다.
성경 해석 가들은 나뭇가지를 십자가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도는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란 말입니다. 예수는 변화의 능력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의 체험을 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인생의 쓴잔을 마셨던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 믿고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3. 쓴물의 해결 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지금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 끝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한 것은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수단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 석 달 밖에 살 수 없다던 사람에게 23년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 일주일 넘기기 어렵다던 고질병의 사람에게 성령의 불로 태워 근원적
으로 치유하게 한 이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 현실의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을 만드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결국 이 광야 길에서 갈증 속에 주님을 만나게 하고, 그 갈증의 해소로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하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수르광야를 지나야 엘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엘림에는 12샘물이 솟아나고 70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였습니다.
수르광야를 거쳐서 쓴물의 경험을 통하여 준비해둔 오아시스 엘림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의 눈물 뒤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은 지금도 눈물을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인생의 광야 길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