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

☐ 땅에 사는 하늘백성 (1149) 빌3:17-21   060827

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존재입니다.
더욱이 집을 떠나 타향에서 지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다 느낀바 이
지만, 고향생각을 하면서 눈물짓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 그래서 고향을 그리는 노래들이 있고, 시가 있고, 음악이 있습니다.

☞ 저도 잠시 공부하는 기간동안 미국에서 느낀 바이지만, 주말이 되
면 북적거리던 학교 캠퍼스가 너무나 조용해집니다.
식당도 문을 닫고 마치 어디론가 모두 휴거되어 간 기분입니다.
그럴 때 두고 온 고향 생각이 나면서 현재명씨의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앉아서
이일 저일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해는 저물어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이
불투명한 자신의 처지와 미래를 생각하면서,
하늘에 걸려 있는 밝은 달만 쳐다보며 눈물 흘리는 모습!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 안에서 사는 외국인들 중에는 많이 있을 줄 믿습니다. 모두 나그네의 외롭고 쓸쓸한 심정을 잘 표현한 노랫말입니다.

 특히 외국에 이민 간 분들을 보면 제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살지만,
언제나 모국의 소식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들은 만나면 한국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을 서울에 사는 우리들 보다 먼저 알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저들 마음속에 절절하게 고향이 그리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을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라고 묘사했는데,
그 뜻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1. 나그네는 외로운 존재요 쓸쓸한 존재란 말입니다.
아무리 타향에서 성공했다 해도 나그네는 본질적으로 나그네는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나그네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들입니다.
풍속이 다르고 방언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지금 수 10만 명의 외국의 나그네들이 고향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 내포되어 있는 뜻은 성도들은 본질적으로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이니 나그네로 있는 동안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 어제도 외국에 나가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못해 그곳 당국에서 조사를 받는 한국인이 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나그네로 있는 기간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서 사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요15:19)
나그네는 이 땅에 사람들과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외로움을 당하고,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 여러분! 보십시오.
 직장에서나 사회생활에서 같은 잘못을 했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란 것
때문에 더 지탄을 받게 됩니다.
 교회 나간다는 것 그것 때문에 조롱을 당합니다.
 이것은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햇빛도 보지 못하는 지하에서 평생을 살고 갔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미운을 당하면서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본향을 바라보면서 참고 인내했습니다.

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의 성도들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거 하였으니 그들이 이 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고 하였습니다.(히11:13-14)
저들은 한결같이 세상에서는 멸시, 천대, 핍박, 조롱, 투옥, 죽음을 당했지만, 오로지 본향을 바라보는 그 믿음으로 이겨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5-16) 고 하였습니다.
☞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통일동산에 묻힌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기 가보면 모두 고향이 이북에서 출생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6.25 전쟁으로 월남한 분들이 많습니다.
묘비에 성경구절이 기록된 비문들이 많습니다.
저들이 고향을 떠나 남쪽에 내려와 살면서 한 평생 꿈에도 그리운 고향을 그리다가 눈을 감았을 것인데, 신앙이 있는 성도들이었다면, 눈을 감을 때 육신의 고향보다 이제 더 낳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떠났을 것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육신의 고향보다 더 나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또 나그네는 잠간 머물다 가야할 존재들입니다.
나그네는 영원히 머물러 있는 법이 없습니다.
머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기간이 다하면 반드시 본향으로 가야합니다.
우리 권사님들도 보면, 미국에 있는 자녀들 집에 갔다가도 영원히 머물러 사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 한 두 달 있다가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기 집에 와야 편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그네 생활은 아무리 머물러 봐야 잠시뿐입니다.

여러분!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나그네 생활을 영원토록 하라면 그야말로 고통일 것입니다.
만일 외롭고 쓸쓸한 나그네의 삶이 영원토록 이어진다면,
누가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그네의 체류기간은 짧습니다.
모두 70이요 80이면 끝납니다.
80이후에 더 머물러 봐야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자녀들과 사회에게까지 짐이 될 뿐, 아무런 낙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 체류하면서 아무리 즐거웠어도 지나고 보면 한 밤의 꿈과 같
이 보낸 것이 이 땅에 생활입니다.
그래서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했습니다.
☞ 고대광실 높은데서 살아서도 하루요,
초막이나 움막에 살아서도 하루요 우리의 체류기간은 잠깐입니다.
그러기에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욕을 먹어도 참을 수 있었고,
비방을 받아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요즘 성도들 중에는 이 땅에서 영주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데 문제가 있습니다.
잠간 머물다 가야할 세상에서 영주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의 속한 사람들과 다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것들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
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성도라면 나그네로 있는 동안 본향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돈을 벌어도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벌어야 하고,
☞공부를 해도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해야 하고,
☞과학 기술을 연마해도 하늘나라 본향을 위해 해야 합니다.

 그런데 이것이 지금 잘 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돈을 벌어도 자기만을 위해 쌓아놓으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의 창고만 더 크게 지을 생각만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 오늘 우리의 모습을 스스로 실란하게 비판해 보아야겠습니다.
☞ 미신과 찌들게 가난했던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와 먹고 살만해 졌으니, 교회와 신자들의 마음에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 예수 믿어 천당이 아니고, 예수 통해 부자 되자는 데만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크리스천의 복의 개념은 믿어 <영생>이 아니라,
<풍요로움>으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나그네들이 나그네의 의식을 상실한 체,
돌아갈 준비도 없이 살다 막차를 놓치는 경우들이 많아졌습니다.

3. 나그네는 돌아갈 본향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돌아갈 곳이 없는 나그네들입니다.
체류기간이 다 되어 와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커>(M. Heidegger)는 현대인을 일컬어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즉 <고향상실자>라고 했습니다.  
실존(實存)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란 말일 것입니다.

 과연 인간의 실존이 어디로부터 왔다고 보십니까?
하나님께로 왔던 인간이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오늘의 무신론적 과학자들처럼 인간을 하나의 유전인자로 보고 하나의 유전인자가 또 다른 유전인자를 남기고 살아지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돌아갈 여권이 있느냐? 입니다.
이 여권을 나그네로 있는 동안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천국 문에 들어설 때 한 사람, 한사람 여권을 심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행위의 짐 보따리들을 검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자들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불 가운데서 구원 얻는 자들도 있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땅에 사는 동안 하늘시민답게 살다가 영광스러운 금의환향
(錦衣還鄕)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