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1145) 시116:1-8 060730
1. 인생은 눈물에서 태어나고 눈물로 보내지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올 때 어머니의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눈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첫 음성을 울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도 눈물로 보냄을 받는 존재들입니다.
둘러선 자녀들과 식구들과 친구들의 눈물로 북망산으로 갑니다.
요즘의 장례는 산업화 시대가 되어 모두 기계적으로 합니다 마는,
옛날 시골에서 장례는, 온 동네가 몇 날간 그 집을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특별히 나이 많아 돌아갔으면 호상(好喪)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눈물로 왔다가 눈물로 돌아가는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흘린 눈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눈물을 제거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저는 TV에서 이산가족의 재회장면이 나오면 잘 보군합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들이 그렇게 많은 눈물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모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북간의 이산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2박3일간에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눈물로 헤어져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힘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 존재는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무능한 존재이기에 또 한편 감격의 눈물도 흘리게 되는 줄 압니다.
2.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3-4절)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8절).
‘내 눈을 눈물에서 건졌다’는 말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도들이 흘리는 눈물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흘린 눈물입니다.
돈 떼이고 흘리는 눈물이 아니고,
입학시험에서 , 승진 시험에 떨어졌거나,
복권에서 떨어져 흘리는 눈물이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흐리는 눈물을 의미합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통회자복하며 흘린 눈물입니다.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려다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입니다.
핍박과 조롱 속에서 인내 중에 흘리는 눈물입니다.
이런 눈물은 <주의 병에> 담길 수 있는 눈물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6:8절에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이렇게 흘리는 눈물은 값진 눈물이기 때문에 주의 병에 담아둔다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한탄을 기록해 두소서. 이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아 두소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후서 4:8절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환경이 아무리 답답하고 우겨 쌈을 당하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거꾸러지지 않는 것은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눈물을 많이 흘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잘못 때문에 흘린 눈물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바울의 눈물을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지금 눈물에 자리에서 방황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하나님을 재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눈물 중에 있는 성도들을 그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실패로 눈물 흘리는 중에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더 큰 것을 얻게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실패한 눈물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흘리는 눈물에서 역사를 이어져 갑니다.
완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
을 흘릴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눈물에서 건져내 주었습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눈물로 이어진 역사이었습니다.
숫한 박해와, 조롱과, 멸시와 천대와, 죽음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
었습니다.
그것은 총칼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총칼보다 더 위대한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기게 하였습니다.
3. 그러므로 눈물 속에서 건지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 은혜의 체험을 얻게 하려고 눈물에서 건지십니다.
더 큰 것을 관리하게 하려고, 더 많은 것을 맡기려고,
지금 내게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눈물과 성령은 정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 내 안에 성령의 불은 타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중에 병을 고친 분들의 간증을 다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눈물이 없는 기도 속에는 성령의 불길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온갖 것들로 젖어있는 한,
거기에는 아직도 흘려야할 눈물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눈물로 짜낼 것을 다 짜낸 후에야,
깡마른 상태에 이를 때,
성령의 불길은 내 몸에서도 타오르게 되는 줄 압니다.
<예화>
우리 동기목사님 중에 군종감을 지낸 분이 있습니다.
지금도 현직에서 민간 교회 목회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가 군목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이 생활을 했습
니다. 때로는 사병들에게 열린 목사인양 맥주정도 한잔씩은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면에서는 인기 있는 군목이라는 평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평점이 좋아 피라밑식 계급사회에서 진급가도를 잘 달려 군
종감 자리에 까지 올랐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일대 변화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파트에서 불이 났습니다.
잠자다 당한 일이었기에 무조건 뛰어 내렸습니다.
대부분 그런 경우에는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사용하려고 그랬는지 몇 번 부딪히면서 떨어져 온통 갈비뼈가 다 나가고 몸이 걸레처럼 축 늘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날 밤 사모는 간호원이었기에 근무 중이었고, 함께 자던 아버지는 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중에 몇몇 동기 목사들과 함께 방문을 갔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끈질기다는 것을 그때 보았습니다.
온통 붕대로 싸매놓고 코와 눈만 내 놓았는데 참으로 욥의 친구들이 할 말이 없었듯이 무슨 말로 위로할 길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쳐다보는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이제는 살아났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다시 병원을 찾아 갔더니, 이제야 사람의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간증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목사의 생활을 했지만 눈물한번 흘려 본적 없이 기도라고 했었는데, 이번에 기도하면서 눈물 많이 흘렸노라고.......
그러면서 어느 날 밤 너무 고통스러워 부인과 함께 죽게 해 달라고 통곡하다 시피 매어 달려서 눈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더니 사시나무 떨 듯이 온 몸이 떨리는데 그런 일이 있고는 다음 날 그 지긋지긋한 통증이 다 살아져 버리더라는 간증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시고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그런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되어 진행됩니다.
다만 얼마나 우리의 눈물이 성령의 불이 임할 수 있도록 내 몸에서 세상
적인 물기가 다 빠져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6절).
여기서 순진한 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순수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Childlike Faith> 라고 했습니다.
어린애와 같이 천진난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는 순진하면 놀림꺼리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너무 순진하면 자기 몫도 챙길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순진하게 살면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시고,
그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악스럽고 똑똑한 사람의 눈물을 보시지 않고,
순진하게 자기를 의뢰하고 겸손한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함께 하고,
겸손한 자를 들어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오늘도 눈물 속에서 건지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하나님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