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들어 가는 사람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 (1143) 빌2:13-14  060716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
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오늘 이 말씀에 의하여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 고저 합니다.    

1. 사람들은 누구나 각각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희망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희망이 살아지니까 자포자기 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절망하게 됩니다.
희망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는 것이고,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고,
희망은 언제나 삶 속에 가장 밑바닥에 깔린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면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보면 절대 가난시절에는 없던 병이 하나 생겨난 것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란 병입니다.
6.25 전쟁 때와 전쟁 1960년대만 해도 그런 병이 없었습니다.
이 병은 절대적 가난시절에는 없고,
상대적 가난으로 인한 박탈감으로 생긴 병입니다.
이 병은 엑스레이도 잡히지 않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모든 것에 흥미가 없어집니다.
희망사항이 없어집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도 희망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아무리 눈앞이 캄캄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살 수가 있습니다.
희망은 마지막까지 우리가 간직해야 할 유일한 삶의 보화입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주간 구한말 시대에 월남 이 상재 (1850-1927)선생의 글을 보면서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음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 1850년 충남 한산에서 출생하여 78년간의 험한 세월을 살고 간
분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희망을 심어 주다 간 분이었습니다.
구한말 어지러웠던 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그때도 지금처럼 청국과 러시아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려고 각축을 벌리다 드디어 일본에게 강점을 당하여 많은 애국지사들이 해외로 망명하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1919년 한 맺힌 민족의 응어리가 폭발한 3.1절 독립만세를 부르던 그 때, 그리고 이 민족이 당하는 수많은 절망스러운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을 그 때, 그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YMCA 기독청년회를 통하여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평생 청빈한 생활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어렵게 지내는 고학생들을 도왔고, 낙심하는 동포들에게 희망을 갖고 부지런히 일해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부귀와 영화를 누릴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끗이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된 후부터 그를 따르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나아갔습니다.
1955년 12월에 세워진 그의 비문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웃음 가운데 눈물을 감추시었고,
봄바람같이 온화하면서도 산악 같은 위엄을 지니었다.
벼슬을 하였어도 영달에 팔리지 아니하였고,
의롭지 아니한 재물은 탐내지 않을뿐더러 뜬 구름같이 보았다”
그가 이런 삶을 살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옥고를 치르는 동안 선교사들이 차입해주는 성경을 읽게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후 출옥하여 연동교회 입교하여 황성기독교 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면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54세 때 주님을 영접한 후 그는 누구보다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암흙한 세대에서 희망을 만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공동번역으로 보면,
“아무쪼록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가득히 안겨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여러분에게 넘쳐 흐리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롬15:13)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넘치기를 원 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판에는 <희망>을 <소망>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에도 보면 ‘하나님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절망스러운 환경에서도 희망의 원천은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희망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과는 좀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은 그 희망이 살아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심하게 됩니다. 또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이 그 희망이 살아지면 절망하게 됩니다. 모두 자기의 품었던 희망이 살아지면 낙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 희망의 원천을 모르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저 희망은 자기의 생각뿐이었기 때문입니다.
 자기 생각으로만 갖고 있었던 희망사항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희망이 아닙니다.
어떤 역경과 환경에서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역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희망을 만들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 그러므로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란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성령의 힘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에서도 희망을 만들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 성령 없이 사는 사람들은 품었던 희망사항이 좌절되거나 없어지면 쉽게 포기합니다. 그리고 낙심합니다.
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그러한 절망스러운 환경에서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희망을 만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게 하도록 성령으로 희망을 만들어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때로는 이 말이 나의 생각하는 희망사항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왜 하나님이 내 희망사항을 들어주지 않는가?
의구심과 회의를 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신 당신의 뜻을 위하여 나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깨닫기는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지난 후에 나중에는 알게 됩니다.
‘너희가 지금은 모르나 내가 간 후에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고 알게 하고 가르쳐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똑 같은 힘든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승리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성령의 힘으로 그런 환경에서 희망을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희망은 눈물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형편에서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원이 우리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게 함이란 말입니다.
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눈물의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 그것이 우리에게는 찌르는 가시의 현실일수도 있습니다.
☞ 바울은 이 가시를 위해 3번씩이나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가시와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도록 그에게 성령으로 도와주었습니다.
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우리 민족과 나라는 지금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쉬 요동하지 말고 우리들의 믿음의 선조들처럼 희망을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우리의 염려와 불안과 근심스러움이 내일의 희망의 열매들로 맺혀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힘을 힘입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죽게 했습니다.
그 이상의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나의 고통을 모르고 계신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에게 지금도 소원들 두고 우리로 희망을 만들어가도록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힘으로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