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위로 (1142) 행 9:31 060709
예부터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달랐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거의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사랑은 훈계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깊은 곳에서부터 울어 나
오는 사랑이란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아들이 서울대학 법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시골에서 명문대학에 입학을 했다면 시골마을에서는 경사 났다고 부러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름 방학이 되어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오면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면서 준비를 합니다. 시골 시장에 가서 고기도 사오고, 생선도 사오고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면서 뭐 그리 야단이냐고 도리어 퉁명스럽게 핀잔을
주면서 그 날도 일하려 밭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온다는 날을 속으로 세면서 그날은 일부러 아들이 오는 것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산마루 콩밭으로 나갔습니다. 콩밭은 논밭과 달리 차차 해도 될 일이었지만, 아들이 오는 것을 먼저 보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들이 동구 밖에서 걸어오는 것을 아버지는 다 보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모른척하고 들어와 아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하는 말 이,
‘방학을 했으면 서울에서 공부를 더 해야지 뭣 하러 내려와...’
한마디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네 아버지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바로 이렇게 위로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겉으로는 엄하지만 속으로는 다함이 없이 깊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이 범죄 할 때는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저들을 통하여 돌아오기를 간곡하게 외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을 때는 심판의 채찍을 들었으나, 진멸하도록 멸망에 이르도록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채찍으로 때린 후에는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을 통하여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었습니다.
경고와 함께 언제나 위로가 따랐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40:1)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들을 심판의 채찍으로 사용하였지만,
때린 후에는 반드시 꺾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하십니다.
그런데 그 위로하는 방법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주면서 위로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방법대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입니다.
초대교회의 확장 사를 보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점점 넓혀져 가면서 그 속에서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언제나 박해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들의 초창기 교회에서의 모임은 항상 위험이 따랐습니다.
오늘 우리처럼 이렇게 편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교회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온갖 핍박과 박해 속에서, 그리고 조롱과 멸시 속에서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위로를 받은 것은 교회성장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2. 하나님의 위로는 교회 성장을 통하여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성도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는 물질의 축복이나,
건강의 회복이나, 자녀들의 성공이나, 이런 것으로 주어진 다기 보다,
먼저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차적 관심은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하여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야 교인들이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의 방법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교회가 날로 든든히 서 가는 것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좀 오래한 사람이라면 다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평안해야 성도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시험이 들면 여러분 개인의 영혼이 황패해 집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가지 못하면 여러분의 가정이 든든해질 수 없습니다.
♢교회가 재미없어지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교회를 통하여 위로를 채워주십니다.
3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의 위로로 든든히 서가야 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가 든든히 서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사울이란 한 사람의 회심에서 시작됩니다.
사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성령의 강권적 역사로 회개시켰습니다.
그 후 그로 말미암아 복음은 퍼져나가기 시작하였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바울> 되는 회개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 오늘도 그런 역사들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교회에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있던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역사합니다.
이렇게 교회가 든든히 서 갈 때,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될 때 각자 성도들 가정이 또한 은혜 속에서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교회에서 나 자신이 사울이 바울 되는 과정을 성령을 통하여 체험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시험에 들고 어려워지는 것은 여러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울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초대교회가 어려움을 당했는 모릅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 탕에 맞아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도 양에 차지 않아 다메섹까지 내려가 교인들을 다 검거해 오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한 사람이 회개하니 초대교회는 든든히 서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 때 온 교회가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넘쳤습니다.
<예화>
어떤 농촌 교회에 오랫동안 터주 대감 같은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늘 편치를 못했습니다.
그의 눈에 벗어나면 어떤 목사도 왔다가는 얼마 있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당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그 사람은 겉으로 행하는 일에서 흠잡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제일먼저 나왔고,
농사를 지으면 추수감사주일에 제일 많이 헌금하고,
뭐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눈에는 모두가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특히 새로 목사님이 부임하면 6개월쯤 되면 그때부터는 눈에 거슬리는 것만 보였습니다. 특히 설교에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아는 성경의 이야기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에게는 교회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먼 길이었습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늘 그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그가 천국엘 가 보았습니다.
천사의 안내로 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기화요초 만발하고 황금보석 꾸민 집과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천국을 보았는데, 어느 곳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가 좋은 곳에 그야말로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데, 모두 문패에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기는 누가 사는 곳입니까?\'
\'아 저 집들은 아직도 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올 사람들의 집이니라’
그래서 이 사람은 호기심에서 물었습니다.
‘천사님! 그러면 제 집은 어떤 집입니까?’
천사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갔습니다.
자기의 집도 으레 있을 줄 알았는데, 이상한 곳으로 가드랍니다.
아까보다는 훨씬 후지고 천국에도 이런 곳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우중충한 곳인데 집들이 있기는 있지만 아까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형편없는 집들인데 ‘저기 저곳이 네 집이니라’ 고 하여 보니 너무나 기가 막혀서 다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그런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옵니까? 그리고 여기 이런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오게 됩니까?’
‘보물을 하늘에 많이 쌓은 사람들이고, 교회를 위해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들의 것 이니라’
‘나도 추수감사주일에 제일 많이 헌금했고,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와 기도도 많이 했는데.....’
‘너는 네 의의를 위해 한 것뿐 이니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오늘까지 신앙생활을 한 것은 하나도 없구나’
결국 내 의를 들어내려고만 했지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지 않고 내 고집대로 남을 판단하고 내 식대로 믿었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슬프게 울다가 자기 울음소리에 깨 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꿈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지금껏 기도는 하느라고 했지만, 그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은 없었는데, 베드로의 통회기도처럼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인들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면서 간증했습니다.
그 간증을 들은 교회에서는 그 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점점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그렇게 은혜롭게 들렸습니다.
점점 가정의 일들이 풀려지지 시작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주일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주일이면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평안해지면 여러분의 가정도 평안해지고,
교회가 은혜 충만하면 성도들 모두가 은혜 속에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전10:32-33)
바울이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었고, 교인들을 잡아 투옥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거치는 존재가 되지 말라고...’
우리 모두 자신을 반성하는 가운데서 성령의 위로함이 우리들 속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먼저 내가 변화되어야 할 사람임을 자각합시다.
거치는 존재가 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의 감화 감동을 따라 내가변하면 우선 교회가 평안해지고,
교회가 평안해지면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모두 은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축도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축원한다는 말씀을 듣고 예배를 마칩니다.
우리 모두에게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