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아의 때를 기억하라(1140) 눅17:22-30 060625
지금 세계는 온통 월드컵 열기로 차 있습니다.
승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패자는 망연자실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패자는 무슨 변명으로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흥망성쇠에서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강대국들이 어찌하여 역사에서 살아졌는가?
그 많은 역사상에 나타났던 영웅호걸들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는가?
전무후무하게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지난 세월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1. 먼저 역사를 주관하고 섭리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는 눈을 사관(史觀)이라고 합니다.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하여 의미를 가지고 볼 줄 아는 것을 역사관(歷史觀)이라고 합니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도 역사관에 따라 다르게 평가 할 수 있습니다.
6.25를 눈이 다르기 때문에 역사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동국대학의 모 교수는 6.25는 북한의 통일전쟁이었다고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 측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대한민국과 자유민주 세계에서는 다르게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공통적인 역사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시간의 흐름을 수평선으로 이해하는 역사관입니다.
이런 역사관에서는 역사를 과거, 현재, 미래로 보는 경우입니다.
② 시간의 흐름을 둥근 원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보는 역사관입니다.
③ 시간의 흐름을 나선형으로 보는 역사관입니다. 즉 돌고 돌면서도 위로 전진해가며 돈다고 보는 역사관입니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역사의 발전을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으로 설명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역사를 보는 눈이 세 번째 것에 비중을 두는 현실입니다.
즉 역사의 흐름은 나선형처럼 돌고 돌지만 제자리로 도는 것이 아니라 전진해 가며 돈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유행의 리듬을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남자들의 넥타이를 보아도, 그리고 여성들의 옷을 보아도 예전의 것이 다시 유행의 물결을 타지만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역사 이해에서 신학자 가운데 오스카 쿨만(O.Culman) 같은 이는 역사를 “구속사”(救贖史) 중심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역사는 겉으로 보이는 역사가 있고, 보이지 않는 숨겨진 역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것을 세 속사((世俗史)라고 하였고, 숨겨진 역사를 구속사라고 하였습니다. 즉 세속사의 중심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역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모든 역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아가는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나라들이 지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고대강대국들, 아시리아(Assyria),에굽(Egypt),바빌로니아(Babylonia),
페루시아(Persia),헬라(Greece), 로마(Rome)가 흔적도 없이 살아졌습니다.
왜 그들이 역사 속에서 살아져 버렸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역사의 흥망성쇠를 <역사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2. 그러면 지난 역사를 통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역사를 섭리해 나갈 때 세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첫째가 <전쟁>이고, 둘째가 <질병>이고, 셋째가 <재해>입니다.
모든 나라들과 개인들을 심판할 때 사용한 방법들입니다.
역사의 흥망을 이런 눈을 가지고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죄가 관영해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위에 셋 중 하나로 심판하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나 한사람 개인의 생활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여 구속사의 출발을 삼았고,
☞ 한 사람 <노아>를 택하여 방주를 짓게 하여 구원역사를 이어갔습니다.
창세기를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6장에 와서 보면 사람들이 지면에 번창하였을 때,
저들이 패역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땅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창6:9)
노아 때의 심판은 물로 심판하였습니다.
물로 싹 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 결과이었습니다.
☞ 오늘은 우리 민족이 56년 전의 일어났던 6.25의 날입니다.
그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4시를 기해서 38전 전역에서 일제히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아무런 준비 없던 남한을 행해 밀고 내려왔습니다.
탱크 앞에 소총뿐이었던 국군들은 육탄으로 막아냈습니다.
3일 만에 수도 서울은 함락되었고 한강 다리는 끊어져 버렸습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내려오던 저들이 매가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戰勢)는 역전되었고, 두만강, 압록강까지 진격해 올라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오늘의 휴전선으로 국경 아닌 국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을 지지하고 좌경화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맥가더와 미군이 아니었다면 벌써 월남처럼 통일이 될 뻔 했는데, 통일을 가로막은 원흉이 맥가더 이기에 그의 동상을 헐어버리겠다고 할만도 하고, 미군 때문에 아직도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만도 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이 누구인가가 참여 정부이후에 다 들어났습니다. 늘 TV에 비쳐지는 얼굴들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의 사람들이 왜 심판을 받았으며,
롯의 때 사람들이 왜 멸망을 당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민족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적인 말씀입니다.
3. 그러면 노아의 때와, 롯의 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27-28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되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란 말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를 듣고 방주에 들어가기까지가 그 기간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무려 12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노아가 480세 때의 하나님의 예언이 임했고,
600세 되던 해 둘째 달에 방주에 들어갔다고 했으니,
무려 12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그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홍수 후 350년을 지내면서 더 살다가 950세를 일기로 죽었다고 했습니다.(창9:28-29)
120년 동안 노아는 하루같이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크리스천들의 관심이 방주보다는 현세에서 먹고, 마시고, 결혼하여, 좋은 집에서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 롯의 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더니...’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더 크고 좋은 집 마련하는 것으로만 이해되는 오늘이 바로 롯의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까?
그 성이 성적으로 문란해졌고,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소돔성과 같은 세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같은 경고를 우리에게 하십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기억하라>고....
6.25의 폐허위에서 집, 가족, 토지, 재산 다 잃고도,
목숨하나 살려달라고 하여 살려주었더니,
오늘 그 감사, 그 감격이 어디로 살아졌습니까?
오늘의 대한민국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의 이 번영 속에 하나님이 살아졌다는 말입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관자요,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 속에 만들어 놓은 하나님, 사상과, 관념과, 이론의 체계에서 만들어 놓은 하나님이요, 천국도, 심판도 모두 물질적 향락 속에 살아져 버린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말합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기억하라고....
만일 이 경고를 듣지 않고 여전히 그 시대 사람들처럼 살다가는 결국 심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자신의 처한 자리에서, 이 말씀의 경고를 바로 받아드려야 하겠습니다. 얼마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제2의 6.25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처한 자리에서 노아의 때를 상기하면서 물질만능의 향락문화에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바로 듣고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니느웨 성 사람들처럼 심판을 돌려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