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기의 부활절

21세기 부활신앙 (1130) 요 20:1-10     060416

1. 기독교는 부활신앙으로 이어온 종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문제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였습니다.
 토속신앙에서는 이승과 저승이 있다고 하여,
죽음은 저승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승사자의 인도로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는 어려서 이런 노래를 들은 것 같습니다.
상여을 메고 나가면서 앞선 사람이 종을 치면서 부르던 노래입니다.
‘이제가면 언제 올까, 삶은 닭이 홰칠 때 올까’
장송곡을 부르며 장례를 치렀습니다.

 불교에서는 윤회설(輪回說)을 주장합니다.
사람이 다음 세상에는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지 모르니 적선(積善)을 행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불교의 마지막 소원은 이 사파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불하라고 인사들을 합니다.
성불하려면 인연의 고리를 끊고 다시 이 사파세상으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서불(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 고대 에집트 사람들은 환생(還生)설을 주장했습니다.
죽으면 사람의 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갔다가 언젠가는 다시 빠져나갔던 육체 속으로 들어온다고 하면서 육체를 썩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썩지 않도록 잘 보관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미라입니다.

 이렇게 인간은 죽음의 문제 앞에서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생각해 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즉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지금도 기독교의 부활신앙도 그런 틀 속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산다고 그러느냐?
그것을 어떻게 믿으라고 하느냐? 고 하면서 부활신앙을 부정합니다.

2.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만들어낸 설(說)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증거 한 것처럼, 우리의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요, 우리 앞에 나타난 바라’고 하였습니다.(요1서 1:1)

☞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이었습니다.
(마28:1) 저들 앞에 벌어진 광경은 너무나 놀라 와서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려 저들이 빈 무덤을 확인하였고,
☞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있는 곳에 나타나 보여주었고,
☞ 여드레를 지난 후 도마에게 직접 못자국과 창자 국을 보여주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무려 11번이나 나타내 보였고, 500명이 한꺼번에 부활한 주님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만들어낸 희망사항이 아니고 직접 본 바요, 만진 바요 들은 바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었지 전설이 아니란 말입니다.
역사적 사건은 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내일 모래면 4.19가 일어났던 날입니다.
4.19는 역사적 사건이었지 누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도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 부활 후 40일 만에 구름을 타고 승천하면서 너희가 본 그대로 내가 다시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사실이지만 저들 목격자들이 하나 둘씩 살아진 후 2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의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주장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부활은 저들 눈에 나타난 환상이었다고 현현 설을 퍼뜨렸습니다.
아마 제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세대들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평가할까? 김이봉 목사가 실재 담임했던 목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이 어찌 진실일 수 있느냐 입니다.
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이 시체를 흠쳐 가서 퍼트린 말이다.’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결코 육체로 온 것이 아니었다.’ 등등...
이것이 2000년 역사 속에 계속되어오는 이단들의 주장들이다.
오늘도 이런 말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3. 그러면 오늘의 우리의 부활신앙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갈 때는 전혀 부활을 생가지 못하였습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도 주님의 시체를 누가 흠처간줄 알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출석하면서도 부활신앙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적 신앙을 가지고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주관적인 신앙이 되면 이성(理性)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하고 부활에 대하여는 그렇게 큰 관심도 없고 믿음도 없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위에서의 삶을 훨씬 더 비중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들만 해결되기를 바라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의 기독교 신앙은 부활신앙 보다는 사회정의실천과,
윤리적 삶을 더 크게 보는 경향입니다.
어느 통계에서 현 독일의 신학자들 가운데 육체적 부활 신앙을 갖고 믿는 사람은 불과 3% 미만이라고 하였습니다.
10명이면 7명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부활을 말하느냐?
이념적 부활, 사상적 부활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즉,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나, 청계천의 전태일군처럼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으면 영원토록 죽지 않고 국민들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그런 식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 부활은 과학적 방법으로 이해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단순히 목숨이 다시 살아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삶,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영생이란 말을 헬라어 원어성경에는 <조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Live 가 아니고 Life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생을 영어에서는 (Everlasting Life)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부활은 영원한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 사망이 없는 영원한 삶으로 변화되는 것(Transform)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부활신앙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Joe) 즉 (Eternal Life)을 얻었고 심판(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하였습니다.(요5:24)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사로의 육체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고 하였습니다.(요11:25-26)
우리는 지금 살아서 믿었으니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박해와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들은 부활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부활신앙이 없으면 제일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 모두 벌벌 떱니다.
죽음의 세력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21세기의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을 보면 부활신앙이 살아졌습니다.
그래서 모두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신세들이 되었습니다.
☞ 장례할 때 보면 세상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은 달리 나타납니다.
처음에야 왜 눈물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부활신앙으로 극복합니다.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도 눈물로 아들을 보내면서도 더 좋은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갔음을 알고 위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승리자는 부활신앙의 소유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러므로 이렇게 권합니다.
요한1서 5:10-12 절 말씀을 유념하여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0절에 “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부활신앙)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영생)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조에)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부활의 생명이 예수 안에 있음)

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에수가 마음에 있는자들) 생명(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소유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영원토록 주님 재림 시에 그를 영접하여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제 현직에서의 부활절 메시지는 마지막 설교입니다.
아직도 부활신앙을 갖지 못하여 죽은 시체를 놓고 화장이냐 매장이냐 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한 말씀드립니다.
매장이건 화장이건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우리교회 장로님들을 존경합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 중에는 5분이 이미 시체기증서약을 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결정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부활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죽은 후에 묘지조성을 위해 걱정하는 분들이 있음을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아서 효도 못한 자식들이 부모의 묘는 거창하게 꾸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꾸민 묘가 영생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모두 부활신앙을 갖고 승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서 변화된 몸으로 주와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