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과 종교적 허영심(1129) 눅 4:9-12 060409
오늘은 우리 주님이 세 번째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 것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하는 말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이 시험은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는 유혹하였습니다.
참으로 집요한 유혹이었습니다.
지금껏 주님은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쳤기에, 이번에는 마귀가
<말씀>대로 하라고 하면서 시험했습니다.
1. 신앙인에게 최후의 시험은 종교적 허영심의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려보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로 유혹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말씀>으로 유혹했습니다.
9절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거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편 91:11-12절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열심히 믿는 성도들이 당하는 시험 중에서 제일 큰 시험은 <말씀>으로 유혹하는 시험입니다. 대부분 신앙의 정도(正道)에서 탈선하는 경우를 보면 <말씀>으로 유혹하는 시험에 넘어간 경우들입니다.
본래 시험은 잘 믿어보려는 사람에게 닥치는 일입니다.
<말씀>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시험은 닥치는 법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시험이 있겠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만일 목사라면’
‘네가 만일 권사라면’
‘네가 만일 성가대원이라면,
’네가 만일 교회학교 교사라면...’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같은 말로 유혹합니다.
‘네가 만일 목사이거든, ’한번 뛰어내려보라’
그리하면 천사들을 명하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여기에 넘어간 목사들 많습니다.
여기에 걸러 넘어간 부흥사들도 많습니다.
또 지금도 이 유혹에 넘어가 교회를 이탈하거나,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시험은 소위 종교적 영웅심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우리 주님이 이기었습니다.
주님은 신명기 6:16절의 말씀을 들어 물리쳤습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맛사의 이야기는 출 17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언제나 좀 불편하면 원망부터 하였습니다. 그들이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 들어갈 때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돌로 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도록 기적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불평하던 자들을 책망하고 심판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역사적 사건을 들어 주님은 마귀의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라고 하였습니다.(출17:7)
2 신앙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말씀>으로 인한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형식으로 빠지게 되면 <말씀>으로 자기 보호를 하려고 합니다. 교회의 직분 행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인간적인 주장과 생각을 <말씀>을 빌어서 고집을 피우게 됩니다.
<예화> 제가 목회하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 그 당사자들은 다 하늘나라에 갔기에 교훈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당회를 열면 언제나 의견이 상충되는 두 분이 있었습니다.
한분은 사회적 지위도 있었고,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기도 했습니다.
또 한분은 그때 봉천동 산골짜기에 가건물을 짓고 없이 살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이 사사건건 의견충돌로 담임목사는 늘 샌드위치가 되었었습니다. 없이 사는 장로는 자신의 열등감을 언제나 <말씀>으로 반대를 하고, 말씀으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주님의 가르친 본래의 뜻으로 해석된 말씀이 아니고, 자의적 해석의 말씀이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교회 안에 벽 거리 선풍기를 달자고 했을 때입니다.
사장인 장로가 여름철에 너무 더워서 교회에 선풍기를 들여놓자고 하면
어디 거룩한 예배하는 장소에 부채를 붙이려고 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장로님에게 기분 좋을 때 한번 물었습니다.
‘장로님!, 왜 그렇게 고집을 세우십니까?’
‘왜 김 장로님 말이라면 그렇게 반대를 하십니까?’ 하니,
‘내가 어디에서 그런 사람과 마주앉아 이야기할 자격이 있겠는가?’
‘사회에서야 나 같은 것의 말을 누가 듣겠는가?’
‘교회니까 <말씀>으로만 그런 사람들과 대등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말씀>을 내 세웠지만,
결국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오는 시험은 사람들을 의식하는데서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만일 주님이 이 시험을 물리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자신이 메시야임을 들어내기 위하여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면 그는 구세주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 마귀의 시험이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왔다는 것을 들어내 보이려면 얼마나 쉬운 길입니까? 높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 사람들이 다 놀랄 것입니다.
3년간의 긴 세월을 보내는 것 보다는 순식간에 기적을 보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입증되게 되는 길인데, 순간적으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유혹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바로 이 유혹을 이겼습니다.
<예화>
왜 신앙인들이 이 시험에 걸려 넘어가느냐 하면,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신앙적 허영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식기도요,
감당하지 못할 약속헌금의 경우입니다.
인위적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고 하는데서 오는 시험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와서 받쳐 줄 터이니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서 과연 메시아인줄 즉각적으로 알려질 것이 아닌가 한번 그렇게 해 보라’ 는 유혹이었습니다.
여기에 우쭐한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할 확률이 많아집니다.
☞ 우리 목사들에게 이런 유혹은 자주 닥칩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아 병을 치료하게 될 때,
<말씀>의 은사를 받아 부흥사로 크게 쓰임 받을 때,
우쭐해지기 쉬워 이런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 마귀의 시험은 은사를 받은 만큼 수준에서 시험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너를 받쳐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 놀라서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한번 해 보라...’
집요하게 유혹합니다.
이럴 때 우리 신앙인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더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이러한 종교적 허영심을 극복할 때 참 신앙인이 됩니다.
<말씀>을 받는 우리의 자세는 진실(眞實)해야 합니다.
<진실>함이란 어느 한쪽으로 기우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안과 밖이 같음을 의미합니다.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걱정스러울 때나 일이 잘 풀릴 때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따라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함께 하는가?, 아닌가?, 의심하면서 <말씀>을 시험대상으로 삼는 다면 그것은 시험에 걸려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기에 자기를 진실하게 찾는 자들에게 함께 하시
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마누엘> 신앙과 그리고
<여호와 이레>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살아갈 때,
그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마지막 때 시험하는 자들이 와서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갈려고 우는 사자들같이 두루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 동물의 왕국에서 보니, 사자들이 배가 부를 때는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도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면 사냥할 대상을 물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냥감을 찾을 때, 어느 한 놈에게 표적을 삼습니다.
무리 중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있는 놈이나,
아니면 부상을 입어 잘 뛸 수 없는 놈이라고 판단되면 영락없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세에 마귀들은 이렇게 사냥감을 찾는 사자들같이 자기가 공격할 대상들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신앙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점점 교회생활에서 멀어지면 세상이 그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습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어 상처를 받았을 때 마귀는 그대로 우리를 놓아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기도문에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전천후 신앙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종교적 허영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