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과 부귀영화 (1128) 눅 4:5-8 060402
1.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 성공을 흔히 부귀영화(富貴榮華)라고도 합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우리말 사전에 ‘성공(成功)’이란 말을 찾아보니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① <뜻을 이룸>
② <부(富)나 사회적 지위를 얻음>
③ 그리고 비교되는 말로 <출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고,
부자가 되거나,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이 성공이라고 하였고,
출세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들을 합니다.
☞ 사람들은 부자 되기를 원하고 사회적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 즉 사람들은 모두 출세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가정에서 성공하면 ‘개천에서 용(龍)났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시골에서 <서울대학>에 입학하면 온 동네에서 축하를 하고,
판검사가 나면 동네잔치를 벌립니다.
☞ 어느 해 동해안을 여행하면서 보니 마라톤에서 우승한 선수를 축하는 프랑카드가 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황영조 선수가 아마 강원도 <동해>나 <속초>지역 출신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모두 성공을 바라고 축하합니다.
성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각오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을 형설(螢雪)의 공(功)을 쌓은 사람이라고 하여 박수를 보내고 축하게 됩니다.
2. 그런데 누구에게나 성공하려고 할 때 유혹이 따릅니다.
성공하려는 길에서 정당한 방법이 아닌 길을 택하도록 유혹을 받게 됩니다. 즉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하려는 유혹이 닥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한 두 번씩 닥치는 유혹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닥치고,
과학 하는 사람에게도 닥치고,
경제하는 사람에게도 닥치고,
더더욱 정치하는 사람에게도, 이 유혹은 집요하게 닥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또는 쉽게 성공을 쟁취하려는 유혹입니다.
그런 것이 거짓논문이요, 부정축재요, 가짜박사요, 정치적음모입니다.
심지어 사랑에도 이런 유혹은 닥칩니다.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런 유혹을 이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보이면서 그럴듯하게 유혹하였습니다.
‘어차피 내가 당신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니,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내게 한번 꾸벅 절만하라. 그리하면 다 넘겨주겠다’ 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그럴듯한 유혹입니까. 힘든 길을 택할 것이 무엇인가?
지금도 마귀의 이 유혹은 계속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유혹에 걸려 넘어갑니다.
☞ <예화>
한창 국민적 영웅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모 교수의 경우에서도 잘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아까운 한 사람이 바로 이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유혹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 한동안 교수님들도, 심지어 목사님들도 가짜 박사학위에 휘몰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 넓고 쉬운 길을 택하라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지금도 이 유혹은 계속될 것입니다.
☞ 어제 신문에 보니, 장어에 유해물질이 들어 있어 페기처분토록 하였는데, 그것이 시중에 유통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쉽게 돈벌어 성공해 보려는 유혹에 걸려 넘어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 시험을 주님은 다시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기록된바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경배(敬拜)란 말이 무엇입니까?
공경 경(敬)자에 절 배(拜)자 입니다.
오늘 이 세대가 모두 <부귀영화> 앞에 절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돈>과 <권력>앞에 머리 숙이는 세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냐? 보다,
남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잘 지내느냐? 에 관심이 더 큽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 앞에 경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세상에 오셔서 주님은 사람이 경배할 대상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만 경배할 것이라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주님이 이 유혹을 물리쳤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 중에 주님과 같이 이 유혹을 물리친 사람은 요셉이었습니다.
3. 요셉은 바로 이 시험을 <말씀>으로 이긴 대표적 인물입니다.
따져보면 요셉처럼 기구한 인생을 걸어간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 한편 요셉처럼 성공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일생은 한편의 인생드라마였습니다.
배다른 이복형들의 미움으로 물 없는 구덩이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번하다 겨우 목숨만은 구해 은20세겔에 팔려갔습니다.
☞ 요즘도 방송을 들으니 팔려가 무인도에서 갇혀 있은 사람이 있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요셉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급으로 내려갔습니다. 10대의 소년시절이었으니,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저도 어제 요덕스토리를 보면서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얼마나 요셉이 울었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디발의 집 개인몸종으로 팔려서 정처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믿는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모든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주인 <보디발>은 그를 신용하여 모든 집안 관리까지 맡겼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도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주인집 여주인의 눈빛이 달랐습니다.
아무도 없으면 노골적으로 요셉에게 사랑을 요구했습니다.(창39:11-12)
한번 눈감았으면 부귀영화가 현실로 이루어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 저는 요셉의 이 장면을 보면서 오늘의 세태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요즘 이런 경우에 있는 요셉과 같은 젊은이들이라면,
과연 그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한편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부각되는 말 중에 성추행이란 말입니다.
성추행이 만연되어 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런 경우에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 모두들이 깊이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이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창39:9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라고 물리쳤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난 더 큰 고통으로 나타났습니다.
영락없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요즘말로 성추행자로 몰려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까?
이것이 악(惡)이 지배하는 어둠의 세상이란 말입니다.
☞ 요즘도 이런 경우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치계에서도, 경제계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옥살이를 할 때에도 요셉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감옥에서도 옥사장의 눈에 들었습니다.
창39:2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러했기에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요셉처럼 성공한 사람도 없습니다.
팔려간 한 개인의 종의 신분으로 있던 그가,
그것도 당시에 최대 강국인 애굽에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그 이상 더 출세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으로 놀랍고 기적 같은 신기한 일입니다.
☞ 아마 정식으로 애급에 유학 가서 애급에서 청치학 박사 학위를 얻고,
아무리 각종 고시에 합격을 하고, 인맥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바로의 눈에 들어 총리로 임명받을 확률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이처럼 더 성공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도 요셉의 성공스토리를 알고만 있을 것이 아닙니다.
쉽게 그리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말씀>으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머리 숙일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를 진행토록 맡기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역사의 진행을 맡기겠습니까?
요셉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상 부귀영화에 모두 머리 숙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하려고 주님은 이 시험을 이겼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세상의 부귀영화 앞에 머리 숙이지 않도록 그가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위대하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우리 모두 세상 부귀영화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