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따라간 사람들
믿음따라 간 사람들 (1125) 히11:13-16 060312
1. 사람은 무엇을 따라 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렸을때는 남모르는 사람이라도 과자나 작란감을 준다면 따라갑니다.
어릴때는 그것이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혼 적령기가 되면 <사랑>을 따라 갑니다.
아무리 부모가 말려도 사랑이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후에는 <명예>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권력>을 따라 나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도박>에 눈이 어두어지면 도박판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패가망신을 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따라 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의 소원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는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다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병 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영생의 진리가 무엇인지?
영혼의 구원이 무엇인지?
하늘나라가 무엇인지?
그런 것은 몰라도 병을 고친다니까 따라 다녔습니다.
이렇게 따라다니는 저들에게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찌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원하는 믿음 대로 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병을 고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 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병을 고치기 위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잃어버린 자들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는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다면 과연 내가 무엇을 원하면서 주님을 따라 나섰는가? 입니다.
2.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믿음의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병고치는데 있다면 병고침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시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 10 문등병자들이 고침을 받고서도 9명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음으로 예수님께 오지를 아니했습니다.
자기의 병 나은 것으로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라고 하니 비단 육신의 병만 병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이 병들때가 많습니다.
특히 경제적 가난에 병에 걸렸을때도 있습니다.
이럴때 기도와 간구로 고침을 받고서 그 병으로부터 낳음을 받았을때,
신앙생활을 잊어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하던 삶이 점점 부해지면서 주님께 나아오는 발걸음이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 아예 교회에는 나오지도 않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하여 죽을 인간성이기 때문입니다.
배가 곺았을때는 무엇이든지 먹기를 원하지만,
배가 부르면 배곺았던 것은 다 잊어 버리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나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 영혼이 죄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면, 예수 믿는 목적이 땅위에서의 자기 소원성취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처녀총각이 결혼이 목적이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목적이 성취되니 교회도 안나오고 예수도 안 믿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그 목적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따라 간 사람들이 신앙인들이란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두 가지 부류의 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내 소원 성취로 예수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영원한 영생의 구원의 길이 있기에 예수를 따라 나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나는 지금 어떤 경우에 사람들이라고 봅니까?
예수를 따라 나선 것이 이 땅에서 내 소원 성취의 목적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구원의 문제입니까?
어느 편입니까?
3. 믿음을 따라 간 사람들은 영원한 본향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11:13절)
‘이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합니까?
천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는 자기들 스스로를 외국인처럼 살고 간 사람들입니다.
외국인처럼 살고 간 사람이란 어떻게 살고 간 사람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혹시 외국에 나가 살아본 경험이 있는분들은 쉽게 알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이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본국이 있음을 항상 잊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외국이 자기들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잠시 머물다 가야할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체류기간동안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외국인처럼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본국을 생각하면서 살다 가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인인 것처럼 주인행세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인이 그 나라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남은 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이 땅에서 외국인처럼 살다가 본국으로 가야할까?
바로 그 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이 세상은 우리의 본국이 아닙니다.
잠깐 체류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야할 존재들입니다.
☞ 지난 목요일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어서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은퇴하신 목사님 사모되는 분이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면서 한번 들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또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미친 사람이고 한답니다.
50살이 넘어 자기의 집팔아 사업하겠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고,
60살이 넘어 박사학위 하겠다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70이 넘어 외국으로 이민가겠다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80살에 비아그라 찾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90살에 건강진단 받겠다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고,
100살에 산에 가지 않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고.....
얼마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서 느끼는 것은 이렇게 세상은 다 가야할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미련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은 어느때가 되면 다 미친 짓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 목적은 바로 그 나라에 들어감에 있습니다.
요한1서2: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너무 세상에 집착하여 본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들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앞서 믿음을 따라 간 사람들처럼 우리의 영원한 영혼의 본향을 그리며 살다 가도록 이 세상에서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감화감동이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