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적적인 사람

□ 긍정적인 사람  민 13:25-33

(사십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
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
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
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
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
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3:25-33)

1.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같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의 마음에도 우리와 같이 두 마음이 항상 싸웠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두가지 법이 나를 사로잡아 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려는 마음과, 또 다
른 하나는 육신의 법대로 따르려는 마음, 이 두 마음이 항상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사이에 끼어 괴로운 사람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로마서 7:22-24 “내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
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다른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 잡
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설교를 들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또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면 죄의 법 아래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힘
이 있습니다. 이 두 사이에 끼어 한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야 하겠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이란 긍정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적 행동은 언제나 긍정적인 행위입니
다.

그러나 마귀들은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
하고, 부정적으로 행동하도록 유혹하고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할 때, 마
귀는 집요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유혹합니다.
<긍정>과 <부정>은 항상 우리 마음 속에서 부단히 싸웁니다.
성령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할 수 있다’고 하면, 마귀는 ‘할 수 없다’고 우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탕자의 생각이 바로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떠나 나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지은 우주만물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달리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이성적 자유함을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즉 무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 없다고 부정하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긍정적인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광야 <가데스>에 있을 때,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 땅을 정탐하도록 지시하였
습니다.
그 땅의 모든 것을 자세히 탐지하고 돌아와 보고토록 하였습니다.
‘그 아름답고 풍성한 땅을 너희가 샅샅이 살펴보라’,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는 생각에서 잘 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그 땅을 살펴 본 후 돌아와 보고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온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로 비옥한 땅이지만, 이미 원
주민들이 좋은 땅은 다 차지하고 있어 우리가 들어가 살만한 곳은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이었습니다.
더더욱 그들과 싸우려면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살만한 땅도 없고, 그들 원주민
을 물리칠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12명 중에 10명이 그렇게 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일대일의 사람을 보지않고, 배후에 함께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보
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했던 땅이고, 또 우리에게 주려고 정
탐하도록 한 것이 아니냐고’...
긍정적으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사람과 불신앙의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신앙의 사람들을 찾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다수의 부정적인 의견에 동요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요즘 우리의 현실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의 일부 좌경화된 사람들은 맥아더 때문에 통일전쟁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저해한 민족의 원수라고 동상을 헐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은 북한 측에서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아니었으면 그야말로 한반도는 김일성이 일으킨 적화통일 전쟁으로 통일이 될 뻔 한 위기였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천상륙작전을 수립한 장본인입니다. 그가 작전을 수립하여 미국무성
에 보고하였더니 국무성에서는 절대 불가능이라고 하면서 두 사람을 보내 맥아더 장군을 설득하라고 하였습니
다.
인천상륙작전은 1/5000분의 성공률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1. 그 작전은 너무나 낡은 작전이기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이다.
2. 인천 앞바다의 지형상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3. 지중해에 있는 항공모함을 이동시키려면 기밀이 다 탄로나기 때문이다.
4. 미국군은 모집군이기 때문에 전쟁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5. 그 작전 D-day가 태풍이 지나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통보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이것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1. 내 작전은 낡은 작전이 아니고 가장 안전한 작전이다.
2. 바로 인천 앞 바다의 지형상 불리하다는 조건 때문에 가능하다.
3. 미 해군은 2차 대전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정신을 이어받은 용사들이다.
4. 1/5000분의 1의 성공확률이 있기 때문에 이 작전은 승리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모두 바꾸어 버렸습니다.
자기를 설득하라고 보낸 국무성 직원들을 설득하여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신앙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앙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3.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일에도 두 가지 생각이 항상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반 사회단체들처럼 이해관계에서 모인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신앙을 기초로 하여 모여진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공동체  안에도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어떤 사건을 볼 때,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까?
두말 할 것 없이 긍정적인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는 매사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합니다.
본래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도록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품도록 합니다.

마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하고, 영적인 가나안땅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안 된다는 것만 보게 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상황만 보게 합니다.
무엇을 볼 때 가능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 귀에 들려준 대로 내가 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말대로 불가능하다고 하니 너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싸우면 우리 어린 것들은 다 죽
을 것이라고 했으니, 너희 자녀들만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탐지한 날 수 대로 광야에서 죽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원리는 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그들이 없어질 때 까지 교회는 부흥되지 못하고 지
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진실 된 반성점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라고 봅니까?
매사에 부정적인 편입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편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들이 현실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열사람들과 달랐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탐하도록 시킨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한 땅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는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든 부정적인 사람들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 현실의 벽을 더 크게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는 아무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안된다고 하니, 언제나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못한다고 하니, 언제나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사람은 쓰지 않습니다.
안된다는 사람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못한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직분자들에게 특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직분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
이 함께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