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교회

□ 살아있는 교회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
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장 37절-41절)

참된 교회는‘말씀이 중심이 되고’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라야 한다고 하였고, 지난 주일에는‘교회는 순수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은‘교회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화석(化石)이 아닙니다.
사람을 두고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 사람의 정신과 행위를 두고 말할 것입니다.
몸뚱이가 움직인다고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이 빠진 사람을 두고 죽은 시체와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그 <얼>이라는게 무엇입니까?
사람이 사람됨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정신이 나간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으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하면 죽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미 교회들을 향하여 하셨던 말입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말하는 가운데서‘라오디게아’교회를 일컬어 ‘네가 살았다 하나 실
상은 죽었다’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교회도 죽은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현대 교회들 가운데는 죽은 교회들이 있을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칭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교회라고 자부했습니다.
이 말은 갖출 것은 다 갖춘 교회라고 자부하였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교회는 빚이 없는 교회라고 재정적으로 넉넉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달마다, 계절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교회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면 언제나 화려한 행사들이 넘친 교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것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깊은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살아있는 교회란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죽은 교회라고 하였겠습니까?
계시록3:15절에“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
기를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라는 말은 아무런 자극이 없이 안일한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도 이렇게 믿는 신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자극이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큰 교회, 모든 것이 갖추어진 교회, 부담이 되지 않는 교회, 그런 교회에 적을 두고는‘예배를 보려’고
가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신앙적으로 보면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자극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생활에서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책망섞인 경고를 합니다.
계시록 3:18-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
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
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불로 연단된 금’이란 말입니다.
‘gold that has been purified by fire’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불로 정결케 된 금>, 찌꺼기가 다 녹아버린 순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즉 아무런 자극 없이 믿는 그런 믿음의 행위에서는 살아 움직이지 못하니, 불과 같은 시련 속에서 연단된 믿음
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나타나는 것이 바로 <회개> (Repentance) 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교회란 어떤 교회를 말하는가?

1. 살아있는 교회는 <회개>가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란 예배만 드리고 흩어지는 교회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교회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말함도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네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었다’고 하였을 때, 주님은 무엇을 보고 죽었다고 하였
을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모든 것에서 넉넉하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네가 부유하다고 하나 실상은 헐벗었다’고 하였습니다.
눈먼 것과 헐벗은 것을 모르고 있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의 반성할 점입니다.
오늘의 현대 교회들이 갖출 것을 다 갖추었다고 자부합니다.
교회 건물도, 시설도, 파이프오르간도, 각종 선교 단체들의 활동에서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심령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회개가 일어나기
를 원합니다.

1907년은 우리 한국 교회사에서는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회개의 운동이었습니다.
이 회개 운동은 전국적으로 불길과 같이 일어났었습니다.
자기의 숨겼던 죄들을 다 들어내 놓고 통회 자복했습니다.
그래서 1907년을 한국 교회의 오순절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37-38절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
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
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도 보면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현대 교회의 교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 회개하는 마음이 사라진 교인, 바로 그런 것이 죽은 것이란 말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모였다 헤어져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그러면 내가 어찌할꼬’하는 마음의 찔림이 없습니다.
<말씀>은 찌르는 검(劍)이라고 하였습니다.    회개가 일어나는 교회, 그런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회개하는 심령, 그런 신자는 살아있는 신자들입니다.

2. 살아있는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완악하고 완고했던 유대인들이 마음이 열리면서‘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눈이 열려서 자신들이 멸망 받을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절망스러움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세력도, 바리새인들의 율법도 저들에게 소망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메시아를 죽인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내가 죄인 됨을 절감하게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절규하게 됩니다.
이러한 절규를 통하여 성령은 새로운 소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소망을 보여 주어야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절망한 죄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이 사라지면 교회는 아직도 인간 집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구령(救靈)사역을 감당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구원 받을 죄인들이 모인 곳이라야 그것이 살아있는 교회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교회들은 너무나 회개운동이 사라졌습니다.
회개는 내 의지만으로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내 마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눈에 눈물이 말랐다는 것은 세상 것으로 너무나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련함을 보라는 것입니다.

3. 살아있는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더해가는 교회입니다.
사랑을 느낀 사람은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녹아진 사람은 가만있지 못합니다.
성령은 그들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이웃과 형제들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의 역사이었습니다.
교회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자기와 꼭 같은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성령은 계속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의 감화의 역사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내 안에 성령의 감화하심이 소멸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엇으로도 교회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 동참은 시간으로, 물질로, 재능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동참하게 됩니다.

저는 교회를 봉사하는 분들을 생각할 때 마다, 만일 내가 평신도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헌금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몸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간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소리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재능으로 봉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성령의 감화 감동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날마다 구원 얻는 자들이 늘어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오순절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상도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도록 다 함께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