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계속되지 않습니다

 

실패는 계속되지 않습니다

역대하 33장 9-13절


< 회개의 깊이와 신앙의 높이 >


  진화론의 창시자였던 찰스 다윈은 인생의 말년을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죽기 얼마 전, 호프 부인이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호프 부인이 물었습니다. “다윈! 지금 성경을 읽습니까? 당신이 평생 주장한 진화론은 허구였나요?” 그때 다윈이 말했습니다. “부인! 젊었을 때 제가 미숙해서 어설프게 진화론을 주장했는데 사람들이 그 이론을 그냥 믿게 된 것입니다. 저는 사실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다.”


  만약 다윈이 조금 일찍 변화 받았다면 그는 위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다윈을 그렇게 변화시켰습니까? 병상의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은 문제가 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문제가 없으면 행복한 인생이 되기보다는 대개 나태하고 타락한 인생이 됩니다. 살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문제가 없었다면 성공도 없었을 것입니다. 역경은 아무도 원치 않지만 그 역경을 선용하면 더욱 큰 유익을 얻습니다. 그처럼 고난은 풍족함보다 의외로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고난은 보통 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왜 성도에게 고난이 옵니까? 고난은 죄와 불순종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죄와 상관없이 애매히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그 고난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살피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자신의 죄와 허물을 살피고 회개하면 그때 기도의 문이 열리고, 은혜와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고난을 자기의 부족과 허물을 성찰하는 기회로 살리지 못하면 언제 그런 성찰을 합니까?


성도는 성숙해질수록 회개의 필요성을 더 느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지향해야 할 삶의 표준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깊이는 신앙의 높이와 비례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크기와도 비례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고 기도의 문을 열고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보다 회개가 필요합니다.


  어느 날, 선한 일을 많이 한 어떤 사람이 죽어서 남들을 따라 천국으로 들어가려는데 천사가 그 길을 막았습니다. 그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천사님! 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는데 왜 차별하시나요?” 그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직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오. 그들은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들이요. 당신은 그들보다 지은 죄는 작지만 회개가 없었기에 천국에 갈 수 없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회개는 천국과 지옥을 좌우하고,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천국의 삶과 지옥의 삶도 좌우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눈과 귀와 입을 변화시키고,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죄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보다 진정으로 회개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변명보다 눈물의 참회가 백 배 낫습니다. 회개는 잃어버린 축복을 다시 찾게 하는 가장 위대한 길입니다.


< 회복의 은혜를 입는 길 >


  본문에는 상상을 초월한 큰 죄로 비참하게 되었다가 참회의 기도로 축복을 회복한 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므낫세 왕입니다. 그에 관한 말씀은 어려운 상황을 변화시키고, 혼돈을 평안으로 바꾸고, 무너진 것을 회복시키는 은혜를 입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줍니다. 회복의 은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우상숭배를 버려야 합니다.


  므낫세는 유다 14대 왕으로 유다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55년 동안 왕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히스기야 왕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와 달리 가장 악명 높은 우상숭배자가 되었습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자식 농사는 뜻대로 안되기에 더 기도해야 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온 인류와 우리 민족을 사랑하자!”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만나는 배우자와 자녀를 사랑으로 잘 이끄는 것도 중요합니다.


  본문 앞 부분을 보면 므낫세의 악행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영매를 통해 죽은 사람과 영혼의 대화를 했고, 자신의 아들을 우상에게 제사로 바쳤고,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그에 의해 톱에 잘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그의 죄는 멸망당한 이방인의 죄보다 더 심했습니다. 므낫세의 악행은 한 마디로 말하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무엇보다 싫어하십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큰 의미로 말하면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요새는 현대식 우상숭배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과 자녀가 우상이 되고 있고, 특히 점치는 행위가 얼마나 성행한지 모릅니다. 점치는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대표적인 행위이기에 결국 점치는 것을 좋아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1순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점은 호기심으로도 치지 마십시오.


  점은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만 인간적으로도 사람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사실 점을 들어보면 다 애매한 말들뿐입니다. 점치는 사람이 말합니다. “살면서 아픔이 있을 거야!” 점까지 치러 오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삶의 아픔이 많겠습니까? 또 점치는 사람이 말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조심해!” 그 말도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살면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 점치는 사람이 말합니다. “자신감이 중요해!” 점치러 온 것은 이미 마음이 약하고 병든 증거인데 그런 사람에게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또 점치는 사람이 말합니다. “이제 만남이 이뤄질 거야!” 삶은 만남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만남이 없는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또 점치는 사람이 말합니다. “사고 위험성이 있어!” 사실 주위에 도처에 널린 것이 사고의 위험성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점치는 사람들은 대개 성공과 실패를 장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치는 사람이 말합니다. “금전 운이 있어!” 금전 운이 있으니까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가만히 있어야 돈이 생긴단 말인지, 사업을 하란 말인지, 주식을 사란 말인지 애매합니다. 그처럼 일반적인 얘기나 애매한 얘기를 점이라고 하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주팔자에서는 생년월일이 같으면 운명도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60억 인류 중에 나와 생년월일까지 같은 사람은 최소한 25만 명은 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같습니까? 그런데 생년월일로 운명을 알겠다고 육십갑자로 육갑(六甲)을 떠는 곳으로 돈 들고 가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점치는 것은 재미 삼아서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무엇보다 싫어하십니다.


2.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 므낫세가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므낫세는 듣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것은 가장 심각한 영혼의 위기입니다. 말씀을 듣는 시간이 즐겁고, 말씀을 들을 때 은혜롭게 듣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항상 자기를 말씀을 잘 깨뜨리십시오. 자기를 말씀으로 깨지 않으면 환경이 깨지면서 결국 자신도 깨지지만 자기를 말씀으로 잘 깨면 오히려 깨진 환경까지 복원되고, 꿈과 비전도 회복되고, 육신과 마음의 질병도 치유될 것입니다.


  꽤 오래 전에 인천의 판잣집에 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일류대 법대를 나왔는데 사법고시를 여러 번 떨어지고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99점만 맞아도 심하게 때렸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성적표를 받는 날은 거의 초상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야단맞을 때마다 아이들은 파랗게 질려서 두 손을 싹싹 빌고 말했습니다. “아빠! 앞으로는 꼭 100점 맞을게요!”


  어느 날, 그 날도 아이들이 100점 맞지 못했다고 또 때리는데 그때는 그가 아내의 흉까지 보면서 때렸습니다. “너희들 그게 점수야! 나는 항상 100점만 맞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항상 1등만 했다! 그런데 네 엄마가 이대 나왔다면서 성적이 형편없으니까 너 같은 것들이 생겼지!”


  그때 아내가 설거지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그만 실성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죽자 살자 대들었습니다. “그래! 이 자식아! 너는 학교에서 항상 100점 맞고, 1등을 해서 고작 이 판잣집 신세냐! 네가 도대체 사람이냐!” 평소에 온순하던 아내가 그러자 그때 남편의 자존심이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몇 시간을 통곡하며 울다가 그만 자신의 정신병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남편이 아주 지혜롭고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작은 성공에 집착하면 마음이 높아져 병들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깨뜨려야 하나님 말씀이 들리고 사람에게 있는 크고 작은 각종 정신의 질병들이 치유됩니다. 므낫세는 왕이라는 위치 때문에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릴 줄 몰랐습니다. 그처럼 돈과 자위가 때로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겸허하게 선 사람에게 주어진 돈과 지위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밑거름이 됩니다.


3.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므낫세 왕이 하나님이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므낫세를 쳐서 포로로 바벨론에 동물처럼 끌려가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동물처럼 포로로 끌려가도 비참한 일이지만 자기에게 조금만 도전해도 그냥 죽여 버리는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졌던 왕이 동물처럼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니까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는 앗수르 감옥에서 비참하게 지냈습니다. 그때 그의 모든 재물과 영화는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가 만든 수많은 우상들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도저히 신앙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그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때로는 고난이 얼마나 유용합니까?


  하나님은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때로는 채찍도 드십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그때 새롭게 일어서십시오. 아무리 과거에 큰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죄 많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어도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의 기도를 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내가 변해서 그렇지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리면 어떤 때는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부모님께 크게 야단을 맞고 진짜 부모님을 찾겠다고 동네 다리 밑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크니까 더 이상 그렇게 놀리지도 않고, 그런 놀림에 넘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신앙이 어리면 조금만 환난이 와도 마귀가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너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야! 그래서 환난이 많은 거야.” 그 마귀의 유혹에 빠져 진짜 다리 밑 세상으로 가지 마십시오. 예레미야 애가 3장 3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가장 선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시각장애인 목사님이 교회를 건축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혈압이 250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바닷가로 휴양을 가서 바닷가를 터벅터벅 거닐었습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놀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 아이들이 두꺼비한테도 새 집을 달라고 구하는데 나는 크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구하지 않았구나! 나는 하나님을 두꺼비만도 못하게 여겼구나!” 그때 목사님이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결국 5층짜리 교회를 잘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처럼 문제가 생기면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기도할 때 한 가지 꼭 필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본문 12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므낫세는 포로 상태에서 자신이 왕이라는 의식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겸비한 마음이란 자기의 원래 위치, 즉 본질적인 위치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많은 갈등이 비본질적인 문제로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남편은 집에 와서 말을 잘 안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불평이 생깁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오면 조용히 있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입을 못 쓰고 있다가 남편을 보고 입 좀 쓰자고 하는 것이니까 아내가 불평하는 것도 얼마든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조금 힘들었어도 아내와 좋은 대화를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살면서 남을 이해할만한 구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작은 문제가 감정 문제로 비화되어 관계가 깨질 때가 많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항상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른 모든 관계도 회복되고, 문제도 반드시 풀리게 됩니다.


< 고난 중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


  고난 중에 드린 간절히 기도로 결국 므낫세는 바벨론에서 풀려 나와 다시 왕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본문 13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았더라.” 이 장면을 보면 고난은 인생의 양약이 되고 인생이 새롭게 될 수 있는 기회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므낫세는 고난 때문에 간절한 기도를 찾았고 결국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합니까? 아직도 자기 힘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자신이 작은 줄 알고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된다면 얼마나 고난이 유익합니까? 이제 고난에 낙심하지 말고, 그때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은 고난 중에 말합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차갑게 대하십니까?\"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께 차가워진 것입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고난에 있으면 그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을 붙들면 새로의 축복의 기회는 반드시 또 옵니다. 그러므로 관 뚜껑을 닫을 때까지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미국 중부의 시골 마을에 마샤란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3세에 수술을 받다가 입 근처의 신경조직을 잘못 건드려 입이 비뚤어졌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녀는 친구도 안 만나고, 학교도 가지 않고, 가족과 대화도 끊고 우울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생일에 그녀 앞으로 꽃 한 송이가 익명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마샤! 사랑해!” 그 꽃을 받고 몇 달 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누가 이 꽃을 보냈을까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글쎄다. 누군가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냈겠지!” 그때 마샤가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요!”라고 했지만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도 매년 그녀의 생일에는 영락없이 꽃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점차 마샤는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성격도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그녀의 생일이 되어도 더 이상 꽃이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마샤는 그때서야 자기에게 꽃을 배달해 준 분이 자기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때로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지금도 성령님을 보내셔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계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확신하십시오. 고난을 당할 때는 힘들지만 고난이 지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때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구나!”하고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 감사를 미리 앞당겨서 한다면 더욱 축복의 때는 빨라질 것입니다.


< 지금 새롭게 일어서십시오 >


  실패할 때는 낙심할 때가 아니라 일어설 때입니다. 링컨은 수많은 실패를 겪고, 한때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결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실패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공이란 연속적인 승리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 후에 얻습니다.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깬 홈런왕 행크 아론은 누구보다도 스트라이크 아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할 때마다 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꼭 홈런을 치겠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라는 살인자를 붙잡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셨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야곱을 붙잡아 이스라엘 건국시조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간음하고 살인을 했던 다윗을 붙잡아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시편을 쓰게 하셨고, 다섯 번 결혼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사는 사마리아 여인을 붙잡아 사마리아성의 전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처럼 부족한 사람도 붙잡아서 멋지게 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에도 낙심하지 말고 그때 더욱 새롭게 일어서십시오. 환경은 깨져도 마음은 깨지지 마십시오. 때로 꿈과 비전이 더디 이뤄져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깨지는 것도 유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느 날, 바닷가의 파도들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때 부정적인 첫째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깨지고 사라지면서 슬픈 표정으로 둘째 파도에게 말했습니다. “둘째 파도야! 너도 나처럼 사라질 거야!” 그때 긍정적인 둘째 파도가 말했습니다. “첫째 파도야! 네가 깨지는 것만 생각하는구나! 그러지 말고 크게 봐라! 우리가 이렇게 생겼다가 깨지는 동안 바다가 생동감을 얻어서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것을 왜 잊고 있니?”


  살면서 깨지는 상황이 있어도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 있으면 반드시 행복은 주어질 것입니다. 항상 이겨야 기뻐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러면 질 때 여지없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 이기면 기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기뻐하면 이긴다고 생각하십시오.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은 파도를 기뻐합니다. 그처럼 시련이 오면 시련의 파도를 타고 믿음 안에서 즐김으로 시련 후에 더욱 크고 놀라운 축복을 얻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