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하는 삶의 축복
로마서 16장 1-5절
< 깊은 이해심을 가지십시오 >
어느 날, 한 노인이 어린 소년 및 당나귀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 마을을 통과할 때 노인은 당나귀를 앞에서 끌고 어린 소년은 당나귀 뒤에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비웃으며 “왜 당나귀를 타지 않느냐?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노인은 당나귀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다음 날, 그들이 2번째 마을로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보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당나귀를 타면서 어린 소년은 그냥 걷게 하니까 비인격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노인은 당나귀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대신에 소년을 당나귀 등에 태우고 계속 길을 갔습니다.
다음 날, 3번째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노인을 걷게 하고 자기만 당나귀를 탄다고 그 어린 소년에 대해 “요새 아이들 못됐다. 어른도 몰라보고 참 버릇이 없다.”고 마구 욕을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노인이 전후 사정을 다 말하니까 한 마을 주인이 “그러면 둘 다 함께 당나귀를 타는 것이 어떤가?”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제안이 합리적인 것 같아서 노인은 소년과 함께 당나귀를 타고 길을 출발했습니다.
다음 날, 4번째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다 그들을 못된 사람처럼 쳐다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나귀를 둘이나 타면서 너무 동물을 학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죽 들으면서 노인은 너무 낙심이 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 네 번째 마을을 통과해서 당나귀에서 내려 힘없이 가다가 5번째 마을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당나귀를 어깨에 지고 5번째 마을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하면 인생이 짐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사람들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충고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 충고 중의 많은 충고가 아주 유용한 충고입니다. 그래도 그 충고와 의견을 다 만족시키려고 하면 결국 혼동과 좌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만족시키려고 해야 합니다.
어느 공동체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멀리서 지켜보는 마을사람이 되기보다는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후원하십시오. 가장 진실한 사람은 조용히 후원의 손길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위로의 말을 해주고 최선을 다해 돕습니다. 복된 사람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남을 밟고 성공을 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을 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후원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누구보다 축복하실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의 후원자들 >
본문이 나오는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의 진실한 후원자 명단이 나옵니다. 그들은 유명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바울의 선교사역에 보석과도 같은 귀한 이름들입니다. 위대한 사람을 보면 뒤에는 대개 이런 진실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꼭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후원자 중에서 몇 사람만 살펴보고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뵈뵈 자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많은 후원자들을 언급하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겐그레아 교회의 여자 집사 뵈뵈를 언급합니다. 그것을 보면 사도 바울이 뵈뵈 집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겐그레아 교회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지도자의 천거는 성공의 제일 요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뵈뵈를 당당하게 천거한 것을 볼 때 뵈뵈는 실제로 로마 교인들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영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진실한 후원자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그를 축복의 자리로 이끌어주십니다.
계속해서 2절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뵈뵈는 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보호자(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뵈뵈 집사는 루디아처럼 비교적 부유한 여성 사업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바쳐 바울의 선교를 돕고 많은 사람들을 후원했고 바울이 쓴 로마서를 로마에 전달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한 뵈뵈 집사는 기도하는 집사였습니다. 사실상 기도보다 효과적인 후원은 없습니다. 진정한 후원에는 반드시 진실하고 애정 어린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려울 때 “도대체 문제가 뭐야?”라고 판단할 것을 찾으면 어려움은 가중되지만 그때 “하나님! 저의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어려운 때를 기도하는 기간으로 삼으면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속히 단축시켜주실 것입니다.
특히 어려울 때는 연약한 사람들을 잘 살펴주는 성육신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까?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이 물질을 주셨을까요?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돌보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말과 태도로 가정과 교회에서 서로 높여주고 격려해주십시오. 때로는 말 한마디의 후원이 듣는 사람에게 큰 힘과 기쁨을 줍니다.
약 150년 전 한 미술학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예수님께 자기 생애를 드리겠다고 24세에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열정을 다해 교회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신학생으로서 가끔 설교하는데, 일부 교인들이 그의 설교를 비판했습니다. 그런 비판을 몇 번 들으면서 그는 좌절하고 목회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서양미술사상 최고의 화가로 여겨지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고흐가 그때 진로를 잘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고흐의 전기 작가는 만약 고흐가 자신이 가진 열정과 창의력으로 전도자로 헌신했더라면 인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를 잃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열심히 누군가를 격려해주십시오. 그런 격려를 먹은 사람은 점점 크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특히 뵈뵈처럼 진실한 후원자가 되려면 꼭 필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어 주는 태도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도 넘치지만 ‘믿어주는 태도’도 넘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믿음을 주소서!”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그를 믿어주십시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사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일전에 나온 ‘CEO가 되는 길’이란 책을 보면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 회장의 성공 비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말한 성공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아도 어머니만은 항상 그에게 믿음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잭!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반드시 잘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그 말이 그를 성공하게 한 최고 요인이었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요새 똑똑한 부모들은 어떻게 합니까? 너무 자녀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아니라 형사처럼 말합니다. “내가 속을 줄 아니! 안속아!” 그러니까 아이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어디에 가든지 자신감 있게 살지 못하고 눈칫밥 먹는 신세가 됩니다.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 부모로부터 얻는 믿음의 훈련’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내는 자꾸 묻습니다. “왜 늦었냐?” 옆에 친구도 자꾸 의심을 부채질합니다. “정숙아! 물러서면 안 돼! 그거 위험 신호야!” 바람직하지 않은 친구입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남편도 못 믿어! 너무 남편에게 꼬치꼬치 묻지 마! 그냥 믿어!”
믿어주는 부모나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의심이 들면 채용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채용한 후에는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들면 결혼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물론 의심이 들 때가 있지만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그냥 믿어주십시오. 사실 의심하는 것은 속는 것보다 더 나쁘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어줄 때 그 사람은 정말 믿음직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성경을 보면 여러 번 이들 부부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항상 부부의 이름이 같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만큼 부부가 협력해서 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역을 후원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브리스길라는 귀족 출신 부잣집 딸이었고, 아굴라는 유대인 출신의 천민이었습니다. 아마 브리스길라가 아굴라의 듬직한 모습에 반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들에게 로마 추방 명령이 내려지자 브리스길라는 유대인인 남편을 따라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했다가 바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복음을 위해 죽도록 헌신하는 부부가 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그들은 사도 바울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고, 자신의 행복조차 포기했습니다. 그처럼 그들은 인간적인 행복을 포기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행복한 부부였고, 결국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찬란하게 높여주셨고, 전승에 의하면 천민 출신인 아굴라는 초대교회의 한 지역을 담당하는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천민 출신이었던 아굴라가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역할이 단연 컸습니다. 그처럼 아내들은 남편이 신앙으로 우뚝 서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또한 못할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개 남편은 조금만 높여주면 어린아이처럼 다루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여자 집사님이 믿지 않는 무뚝뚝한 남편을 전도하기로 각오하고 말했습니다. “여보!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을 만난 것이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인 것 같아요.” 그랬더니 남편이 핀잔을 주었습니다.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얼마 후, 아내가 또 기회를 틈타서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하고 결혼한 것을 어제 곰곰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앞으로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또 결혼하고 싶어요.” 그러자 남편의 말투가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얼마 후, 또 아내가 기회를 틈타서 비슷하게 “당신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사실은 나도 당신 때문에 행복해!” 그러면서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알았어! 앞으로 나도 교회가 나가 볼게!” 그 전까지 그냥 “교회에 나가자!”고 할 때는 전혀 통하지 않았는데 말부터 상대방을 높여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말로 바꾸니까 남편이 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영어로 ‘전도한다’는 표현에 ‘win a soul’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win’을 흔히 한국말로 ‘이긴다’라고 뜻풀이하지만 실제로 그 단어의 핵심개념은 ‘내 손에 넣는다’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지혜로운 믿음을 가진 브리스길라가 많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부부가 한 마음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후원하면 그것처럼 복된 일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3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부부의 집에서 일 년 반 동안 머물었는데, 그 일은 부부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한다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무리 선교사지만 누가 자기 집을 1년 반 동안이나 제공하겠습니까?
또한 이 부부는 자기 집을 가정 교회로 제공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헌신한 것이지만 크게 보면 복이 넝쿨째 굴러오는 태도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섬기던 교회의 어떤 집사님은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을 자주 초청해서 대접하고 싶다고 큰 집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분의 사업체를 축복하셔서 엄청나게 큰 집을 주셨습니다. 축복을 받으려면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문을 여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사도행전 18장 1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떠날 때에 이들 부부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바울과 같이 떠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섬기는 교회를 따라 집까지 이사한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결정입니까? 부부가 사명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목숨 걸고 헌신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아마 이 부분을 쓰면서 바울은 이 부부의 헌신을 생각하며 울먹였을 것입니다. 선교와 목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도 위로가 필요하지만 목회자와 선교사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집까지 이사를 하면서 자신의 사역에 도움을 주니까 바울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최선을 다해 용기 있게 헌신하십시오. 리더의 비전에 목숨을 걸고 동참할 때 그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리더의 비전이 이뤄지면 최상의 축복이 펼쳐지고, 리더의 비전이 이뤄지지 않아도 최상의 헌신은 영혼에 기쁨과 행복을 주고, 천국의 놀라운 보상을 예비합니다.
헌신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가장 손해 보는 일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수지맞게 사는 길이고, 축복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선교와 구제에 용기 있게 헌신하고,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힘껏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과 가정이 축복 받는 가장 최고의 비결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선교는 외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출이 잘되면 국내 경제가 잘되고, 수출이 막히면 국내 경제도 어려워지는 것처럼 선교를 잘하면 영혼이 건강해지고, 선교를 하지 못하면 영혼이 침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도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도 선교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가정도 선교하는 가정이 될 때 은혜가 넘치게 되고, 하나님은 선교하는 자녀를 세계적 안목을 가진 거목으로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에배네도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신앙의 열매였습니다. 첫 열매는 조금 크게 해석하면 어려운 개척단계의 열매를 뜻합니다. 첫 열매에 속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충성되고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첫 열매의 자리를 계속 지키면 하나님의 남다른 축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 헌신적이고 충성하는 사람에 의해 아름다워집니다. 일반적으로 충성을 판가름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오랫동안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둘째, 작은 일에도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내려놓아도 충성해야 합니다. 셋째, 어려운 때에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충성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충성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먼저 관계를 차지 마십시오. 그것은 복을 차는 행동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리더가 내치지 않는 한 리더를 붙들고, 반대로 아랫사람에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먼저 아랫사람을 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들어도 먼저 절교 선언을 하지 않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감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 승리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꾸준함과 인내와 충성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가정생활에서도 대단히 모범적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헨리! 가정생활의 성공비결이 무엇입니까?” 포드가 대답했습니다. “자동차 개발할 때처럼 배우자에게 집중하면 됩니다.” 무엇이든 하나에 집중할 줄 아는 인내가 있어야 열매도 있습니다.
< 사랑은 감정 이상입니다 >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최선을 다해 후원했던 몇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바울의 선교사역을 후원했을 때 하나님은 바울과 그들을 동시에 축복하시고, 그들을 높여주셨습니다. 그처럼 조용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되십시오. 혹시 그 이름이 이 땅의 문서에는 남지 않아도 천국의 문서에는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특히 어려울 때 누군가의 후원이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는지 모릅니다.
밀레는 돈 때문에 누드화를 그려 팔았는데 그 일로 항상 고민하다가 단단히 각오하고 누드화 그리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생활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어느 겨울 날, 친구 루소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밀레! 아는 친구가 그림을 사 달라고 3백 프랑을 주었네. 저 그림을 주게.” 뜻밖의 일로 밀레는 그해 겨울철을 비교적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밀레는 루소의 집에서 우연히 3백 프랑에 판 자기 그림을 발견합니다. 밀레는 나중에 크게 성공한 후, 그때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조용한 후원’은 한 사람을 성공시키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후원받는 사람도 축복하시지만 조용히 후원하는 사람은 더욱 축복하십니다. 은밀한 후원은 또 다른 의미의 복음전파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은밀한 후원자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남다른 돌보심과 축복의 은혜가 자신에게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지난주에 리사 리버다(Lisa Liberda) 선교사님에 관해 기도제목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온라인 새벽기도 식구들에게도 그 기도제목을 알리고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고, 몇 분이 물질적인 헌신까지 해주셨습니다.
저는 온라인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교회 새벽기도가 끝나면 조금 쉴 시간이 있었는데, 온라인 새벽기도를 한 후부터는 교회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 오히려 정신없이 바빠졌습니다. 매일 새벽에 전한 말씀은 3분의 1로 줄여서 바로 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이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문득문득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하니까 새벽기도를 받는 어떤 성도들과는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고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우리 교회 교인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교인도 생겼습니다. 말씀에 은혜 받고 감사하다고 정기적으로 물질적인 헌신을 하는 성도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번 리사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한 분들을 생각하면서 온라인 새벽기도를 통해 온라인 말씀 사역을 하면서 생긴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없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리사 선교사님도 한국에 많은 기도 후원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몽골은 너무 추워서 평소에는 거의 꽃을 구경하지 못합니다. 특히 몽골의 겨울은 외국인에게는 회색빛의 나라와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우울해진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서 지내던 선교사님에게 이번에 ‘사랑의 헌금(love offering)\'과 함께 예쁜 꽃다발을 드리니까 고통을 잊고 정말 소녀처럼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저는 리사 선교사님이 급히 한국으로 후송된 것에는 치료목적 이상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성도들이 리사 선교사님의 병원비 및 제반 체류비용을 모두 감당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물질로 후원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간절히 기도만 해주셔도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손길이 있을 줄 믿습니다.
사랑은 감정 이상입니다. 사랑은 감정을 넘어선 깊은 헌신입니다. 용기 있는 헌신은 신비한 축복의 열매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를 위해 대신 전방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주십시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헌신은 천국에 기록되어 놀라운 축복으로 우리의 삶에 연결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항상 조용한 후원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축복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