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입니다
하박국 2장 1-4절
<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입니다 >
한 나이 든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배우자를 위해서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요즘 신앙 좋은 청년이 많지 않습니다. 저에게 좋은 남편을 보내주세요.” 간절히 기도했는데 오래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실망해서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기는커녕 천장도 뚫지 못하는 것 같아요.”
목사님은 평소에 그녀의 기도 습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대부분 자기의 세상적인 욕망을 채워달라는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권면해주었습니다. “자매님! 이제 남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자매님의 기도제목까지 들어줄 거예요.” 그러자 그녀는 그때부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어머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의 어머님에게 좋은 사위를 보내주소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자매처럼 기도입니다. 기도는 기도한 것들이 그대로 뚝딱 떨어지는 알라딘의 램프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신비한 일은 잘못된 기도조차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어떤 기도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잘못된 기도는 “No(안 돼)!”라는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어떤 기도는 “기다려라(Wait)!”는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응답되지 않는 기도도 사실상 응답입니다. 성경에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도 나중에 보면 결국 최선의 응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필생 비전은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가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가나안을 앞두고 느보산 비스가봉에서 죽었습니다. 언뜻 보면 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출애굽은 모세가 시키고, 가나안 정복전쟁은 여호수아가 담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만약 모세가 가나안 정복전쟁까지 이뤘다면 그는 우상처럼 받들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없게 해달라고 간절히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는 간질병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간절한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으며 신선한 영혼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영감으로 성경을 13권이나 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주님의 기도도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하나님은 그 잔을 그냥 마시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류 전체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응답되지 않는 기도도 사실은 가장 최선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의 씨는 그냥 땅에 떨어져 없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 위기극복에 필요한 말씀 >
하박국은 기도에 회의를 품었던 하박국 선지자가 믿음으로 기쁨을 찾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는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기쁨의 선지자’란 별명입니다. 그러나 그 전의 그의 별명은 “어찌하여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1장부터 계속해서 “어찌하여...”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는 1장 2-4절에서 이렇게 불평합니다. “하나님! 왜 저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어찌하여 이런 악을 보게 하십니까? 왜 악인들은 흥하고 의인들은 고통을 당합니까?”
그 질문에 여호와께서 하박국 1장 5-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땅의 악독함을 인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이 땅 위에 드러날 것이다. 내가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서 이 무뢰한 백성들을 깨닫게 하겠다.”
그 말씀을 듣고도 하박국은 다시 질문합니다. 하박국 1장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이 구절에서도 ‘어찌하여’라고 불평했고, 14절에서도 또 ‘어찌하여’라고 불평합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그렇게 질문하고 본문 하박국 2장 1절 말씀을 보면 그는 성루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그에게 3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1. “묵시를 기록하라!”는 말씀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내가 주는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살면서 고난과 시련을 만나고 믿음에 회의가 생길 때 무엇이 필요합니까? 무엇보다 말씀이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외웠던 말씀 한 마디가 나를 수렁에서 건져냅니다. 어떤 때는 내가 들은 말씀 한 마디가 내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어떤 때가 내가 본 말씀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꿉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최선을 다해 참석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묵상으로 시작하는 큐티도 체질화시켜야 합니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항해하다 보면 폭풍도 만나고, 암초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항해를 위해서는 자세한 항해도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항해도와 같습니다. 그 항해도를 앞세우면 절대로 파선할 염려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성공과 축복의 원리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미국에 잭 하트만(Jack Hartman)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의 회사가 재정적인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때 친구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별로 회사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믿을 바에야 확실히 믿자! 분명히 성경에는 축복의 원리가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부요케 하시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집중적으로 성경을 파니까 성경적인 부요의 법칙은 결국 ‘씨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재정과 관련된 구절을 작은 카드에 적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성경 말씀대로 재정운영을 했습니다. 때로 재정이 어려워도 변함없이 헌금했습니다. 그때마다 비서가 말했습니다. “사장님! 이러다 더 빨리 망합니다.”
그래도 하트만은 헌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급할 때는 피가 말랐습니다. 그래도 변함없이 헌신하자 하나님은 신기하게 재정적인 위기를 넘기게 해주셨고, 회사도 크게 번창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성경대로 살면 축복받는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고, 예배 때 주신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면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 “때를 기다리라!”는 말씀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이 구절에서 “그 종말이 속히 이른다!“는 말은 바벨론이 강성한 것 같지만 때가 되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급한 마음으로 “왜(Why)?”라고 물으면서 믿음과 기도에 회의를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영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Whys are not wise(‘왜?’라는 질문들은 현명하지 않다).” 눈앞에 현실만 보고 하박국처럼 “왜?”라고 질문하지 마십시오. 조금 더 기다려 보면 불의한 사람은 무너질 때가 오고, 의로운 사람은 일어날 때가 옵니다.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우리 마음속에서도 수시로 하박국이 했던 질문이 생깁니다. 그때 꿈과 비전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것 같고, 때로는 자존심도 상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사람들과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우리 앞에 최상의 때가 준비되고 있음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둘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물론 기다림은 힘듭니다. 사명대로 사는 모든 길은 힘듭니다. 그때 샛길과 지름길의 유혹이 있고, 중간 중간의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길은 빨라질 수 있고, 외형은 화려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샛길로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따라 제 코스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이 현재는 눈물의 길이 될지라도 미래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저는 새벽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가끔 딜레마에 빠집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성경을 연속해서 설교할 때, 어떤 본문은 아무리 깊이 묵상하고 기도해도 잘 감동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본문은 사람들의 구미에 안 맞고, 어떤 본문은 복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본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고 말씀에 편식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혜가 안 되는 것 같은 본문은 그냥 생략하고 지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면 설교 준비도 비교적 수월하고, 더 은혜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본문도 하나도 빼지 않았습니다. 그런 태도가 인간적으로 보면 어리석게 보여도 그렇게 밀고 나갔기에 지금까지 27개의 설교파일 세트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새 인터넷을 치면 무수한 설교들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저의 설교파일을 후원금을 주고 구입하는 이유는 성경을 빠짐없이 강해한 쓸 만한 연속설교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어떤 코스를 따라 꾸준히 그 길을 가는 것에는 화려함이 없습니다. 그런 길을 가려면 ‘기다림의 세월’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 길을 따라 가면 오늘의 승리는 없는 것 같아도 내일의 승리는 주어질 것입니다.
이제 급한 마음으로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왜 기도가 중요합니까? 기도하면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특히 큰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잘 기다리는 것’이 ‘잘 나가는 것’입니다. 상품은 빨리 다량으로 만들어지지만 명품은 빨리 다량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명품인생도 방법과 절차에 따라 기다림과 인내와 정성을 들일 때 만들어집니다.
3.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구절에서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란 말은 바벨론의 교만함을 뜻합니다. 즉 바벨론의 교만한 모습을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니까 바벨론을 통해 잠시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진짜 사는 길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절망적이어도 믿음을 가지고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반대말은 낙심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반대말은 게으름입니다. 게으르면 영감도 떠오르지 않지만 자나 깨나 꿈과 비전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그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면 하나님이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주실 것입니다.
역사에 요행이나 우연은 없습니다. 열의가 없으면 성공도 없습니다. 바울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젊어서 학문에 미쳤고, 변화된 후에 예수님에게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미쳐야지 무엇인가 됩니다. 사업에 미쳐야 사업에 성공하고, 정치에 미쳐야 정치에 성공합니다. 살면서 낙심과 권태가 생기고 의욕이 상실되는 것은 다 미치지 못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질병들입니다. 목표에 미쳐야 목표에 미칩니다(도달합니다).
물론 목표를 향해 나갈 때 때로는 문제를 만납니다. 그런 문제를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언제나 문제보다 크십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 문제 앞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 문제를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담대한 시각과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텍사스에 살던 목사와 목동이 함께 그랜드캐년을 보러 갔습니다. 그랜드캐년을 보고 목사가 탄성을 발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위대한 창조물이군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군요!” 그때 목동이 옆에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여기서 소 놓치면 어떻게 잡지요?” 똑같은 환경을 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달라집니다.
골리앗의 큰 덩치를 보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골리앗의 큰 덩치 때문에 자신의 물맷돌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날카로운 철검이 아닌 물맷돌만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골리앗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막대기를 들고 나와 자신을 개로 본다고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골리앗은 다윗 앞에 쓰러졌습니다.
아무리 골리앗과 같은 큰 문제가 앞에 있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현재 것으로도 얼마든지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우실 때 환난을 면제시키는 것으로 돕기보다는 대개 환난은 그대로 두시고 환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 도우십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사장시키지 마십시오.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 위기는 기회입니다 >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은 어렵습니다. 개인적이 어려움도 있고, 가정에 상처도 있고, 전쟁의 위협은 상존하고, 특별히 우리나라 경제가 아주 어렵습니다. 지금 제 2의 외환위기라고 할 정도로 원화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보는 평가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미국 뉴저지에서 목회하시는 한 동료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지금 미국 경제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고, 집값이 크게 하락했는데, 그렇게 하락해도 집에 팔리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미국이 IMF를 겪는 셈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미 IMF를 극복한 한국을 훌륭하게 보고, 한국을 보고 배우자는 얘기도 꽤 듣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외환 문제가 잠시 어렵지만 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 및 중국과 일정액의 자국 돈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습니다. 결국 이번 위기로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통화체계가 생겨나게 되면 굳이 달러에 목매달지 않는 더 좋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가 오히려 동북아 지역과 우리나라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제는 심리적 요인이 큽니다. 서로 믿고 돈이 돌게 해주어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경제학자들의 얘기에 의하면 소비가 죽으면 다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소비도 필요합니다. 100원이 10명을 거쳐 돌면 1000원의 가치를 창출합니다. 그러나 100원을 한 명이 움켜쥐고 있으면 100원의 가치도 창출하지 못합니다. 그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지갑을 꼭 닫고 있으면 다 망합니다. 때로는 담대하게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특히 부자들이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그처럼 부자들이 지갑을 열고 조금 누리는 삶을 살 때, 부자 아닌 사람들은 그것을 나쁘게만 보지 말고 그들의 소비가 내게도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사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비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부자들의 책무입니다. 이때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한 번 더 외식을 하고, 한 번 더 이발을 하고, 집의 망가진 부분도 앞당겨서 수리하면서 어려운 경제에 보탬을 주어야 합니다.
또한 여유가 된다면 최소의 비용을 들여서 자녀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처럼 외환사정이 어려울 때 자녀를 해외로 보내면 외환사정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소를 팔아서 자녀를 서울로 공부시켰듯이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의 희생도 감수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국제적인 인물로 자라면 그것이 우리나라 장래에 엄청난 보탬이 됩니다.
물론 부모가 무작정 모든 유학비용을 대주지 말고 일부분만 대주어야 합니다. 유학을 가보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길도 많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면 독립심도 커지고, 국제적인 안목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해외로 많이 이주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큰 자산이 됩니다.
선교사님들이 전하는 얘기입니다. 몽골 사람들은 한때 전 세계를 제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부심이 강해 어떤 민족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러시아 사람, 미국 사람, 유럽사람, 중국 사람을 모두 우습게 압니다. 그런데 몽골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사람입니다. 몽골과 우리 사이에는 묘한 형제의식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혈통적으로 가깝고, 얼굴도 비슷합니다.
몽골과 협상만 잘하면 거의 한 나라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몽골은 한국의 풍부한 인력과 문화와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고, 한국은 남한의 15배가 넘는 땅을 거저 얻게 됩니다. 그러면 북한과의 통일도 쉬워지고 중국동북성과 소련의 시베리아 동쪽이 한 민족의 영향권으로 들어옵니다. 이제는 옛날 고구려 때처럼 정복전쟁을 하지 않고도 중국에 못지않은 광활한 한민족 시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미래의 희망은 아직 미개발 지역으로 남겨진 몽골 위쪽입니다. 과학 발전으로 몽골 위쪽에서도 문화적인 삶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고, 그러면 그 미개척지역은 미국의 알래스카처럼 전 세계의 마지막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배경을 등에 업고 몽골과 한 형제국처럼 된다면 몽골 위의 광활한 지역도 우리가 선점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가 구축될 수 있습니다. 그런 국제적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경제적 문제로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얼마든지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이 우리의 민족적 교만을 치유하고, 우리 자신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를 기회로 삼아 우리 자신을 더 준비시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앞세워 가면 우리 민족은 세계를 누구보다 잘 섬기고 인도하는 민족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경제는 심리입니다. 인생의 성패도 심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나쁘다고 계속 말하면 정말 나빠집니다. 그러나 좋다고 계속 말하면 정말 좋아집니다. 이제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집사님!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조금 기다리면 나아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 최상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결코 낙심하지 마세요.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처럼 항상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가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