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고 감사 하십시오
주께 감사하고 감사하십시오
시편 75편 1-10절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이틀 전에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이번 주 감사절 설교를 죽 묵상했습니다. 먼저 감사할 것부터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우리 성도들과 선교 후원자들이 생각났습니다. 누군가 잠깐 떠나 있으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과 선교 후원자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기도 동역자를 붙여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또한 제가 매일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미국을 가면서 이번에는 오랜만에 대한항공을 탔는데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나온 것도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버터가 가득한 미국 음식을 한번만 먹으면 그때부터 한국 음식 생각이 간절합니다. 제가 전방 선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선교사 후원사역을 하게 된 것도 음식 문제가 컸습니다. 그 문제와 관련해서 아내가 저의 식성을 잘 살펴서 맛있는 식탁을 차려주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1991년 7월, 저는 미국 뉴욕에서 LA에 계신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대상 자매는 신학교에서 아주 절친하게 지냈던 한 백인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뉴욕 시내에서 자동차로 북쪽으로 4시간 정도 달리는 뉴욕 업스테이트(New York upstate)의 시골 출신 자매였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상업적인 면만 주로 생각하고 미국을 타락한 나라로 알지만 미국 시골의 가정 중에서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경건하고 보수적인 가정들이 많습니다. 그런 가정에서는 신앙 때문에 피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정의 12남매 중에서 4번째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경건하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사려 깊고, 매우 친절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해도 그녀의 말은 거의 100% 알아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배려해서 말을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외국 친구들은 그들의 말하는 태도만 보아도 그 친구가 남을 배려하는 친구인지, 아니면 자기중심적인 친구인지 대개 알 수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은 대개 마음씨가 곱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그녀는 늦게 입학해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는 대학원 도서관에서 했기 때문에 2년 동안 거의 매일 보면서 가까운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물론 이성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깨끗하고 순수하게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당시 대학원 싱글 기숙사에는 그녀의 남동생이 저의 1년 후배로 같은 층에 있었습니다. 그 남동생은 12남매의 6번째로 자기 누나보다 2살이 적고 저보다는 5살이 적었는데 제가 자기 누나의 친구니까 제 앞에서는 기를 못 펴고, 거의 비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친구들의 차를 고쳐주며 학비를 마련했는데, 그때 저는 고물차를 끌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단골 고객이었습니다. 그런데 단골이지만 돈은 내지 않는 단골이었습니다.
1991년 5월, 제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자매도 동시에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남미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졸업 후 2개월 동안 남미에 단기 선교를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에 그녀와 다시 만났는데, 2개월 만에 만나니까 더 반가웠고 더 예뻐 보였습니다.
그녀는 백인 중에서도 유난히 살결이 희고 피부가 고왔습니다. 외국 여성들은 아무리 예뻐도 25살이 넘으면 피부가 금방 노화되는데 그 자매는 당시에 한국 나이로 28살인데도 유난히 피부가 10대 후반처럼 희고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2개월 만에 보니까 흰 얼굴이 타서 약간 연한 붉은 색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때 2년 만에 처음으로 그 자매에게서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저는 LA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전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즉시 오케이를 했지만 어머님은 적극 반대하셨습니다. 이번에 어머님과 지내면서 그 얘기가 우연히 나왔는데, 그때 어머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백인 며느리가 오면 음식도 안 맞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이제 제 자식을 뺏기게 되었습니다. 이 결혼을 막아주소서!”
그때 저는 어머님을 설득했습니다. “어머님! 그녀는 동양 여자보다 더 순종적이고, 얼마나 착하고 얼마나 순수한지 몰라요. 어머님 말도 잘 듣고, 룻처럼 잘 섬길 거예요.” 아무리 얘기를 해도 어머님은 계속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자기주장이 거의 없으시기 때문에 저는 어머님의 반대는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그녀를 불러내 먼저 근사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근처의 공원으로 갔습니다. 밤 8시가 넘어서인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분위기를 잡아가며 서툰 영어로 그 자매에게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나와 결혼하자! 다만 두 가지 원하는 것이 있다. 하나는 한국어를 배우고, 또 하나는 남미 선교의 비전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자!”
지금 생각하면 그런 조건 없이 프러포즈를 했어야 했습니다. 조건이 있으면 나중에 붙여도 되는데 눈치 없게 처음부터 조건을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직한 프러포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프러포즈였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 나오면 그녀가 엄청나게 기뻐하고 흥분하면서 “오! 한규! 예스!”라는 말이 바로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제가 이제까지 만난 외국 사람 중에서 저의 이름을 “한규(Hangyu)”라고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자매였습니다. 저의 이름을 자칫 잘못 발음하면 “행유(hang you, 너를 목매단다)”라는 욕 비슷한 말로 들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자매는 거의 정확하게 발음을 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그 정확한 발음으로 “한규! 예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제 눈만 빤히 쳐다보면서 “예스!”라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크게 실망했습니다. 당시에 결혼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감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뒤로 연락을 뚝 끊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통해서 두 번이나 그녀가 나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뉴욕 시내로 들어가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2개월 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왜 그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한참 후에 생각해보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성급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자매가 몇 년 동안 품은 남미 선교의 비전을 포기하고 갑자기 한국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그런 상황에서 즉시 “예스!”라는 대답이 바로 나오기를 기대한 나의 짧은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응답이 없는 것이 여자의 입장에서 오히려 정상이었는데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머님의 기도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때 저는 그 동안 그 자매와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도저히 프러포즈를 거절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는 당연히 “예스!”를 할 줄 알고 자매에게 얘기도 하기 전에 부모님의 허락부터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얼마나 세게 기도하셨는지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의 기도가 그 길을 막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백인 여자와 결혼했다면 먹는 문제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하는 것을 이번에 미국 가면서 또 느꼈습니다. 버터가 섞인 미국 음식을 한번만 먹으면 그냥 질려서 그때부터 한국 음식을 열렬히 찾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나의 체질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결혼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때 그 결혼을 막아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그 순간에는 실망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믿는 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 >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성경 시편의 가장 핵심 주제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삽의 시’에도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1절에서 아삽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범사에 감사하는 고백이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최종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이 시편 기록자는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에는 “주님은 승리자로 곧 오신다!”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본문 2-3절 말씀에서도 아삽은 주님의 정한 때가 되면 주님이 최후 승리자로 오시고 모든 상황을 정의롭게 판단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주님이 최후 승리자로 오심을 믿고,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최후 승리가 주어짐을 확신할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미래에 대한 승리의 확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받지 못했어도 믿음으로 이미 받은 것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미래에 받을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면 정말 받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과거의 상처를 들추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10년 전, 20년 전의 결혼 초창기 때의 상처까지 꼭꼭 간직했다가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 과거를 기억하며 더 실망에 빠집니다. 우리는 좋은 과거만 기억하고 나쁜 과거는 잘 잊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쁜 여자와 결혼한 다음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과거가 없겠나?”고 생각하며 의심합니다. 과거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너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현재 사랑하면 됩니다. 현재 서로를 사랑하고 현재 서로에 대해 감사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면 과거가 어땠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서는 정적의 과거 치부를 들추어서 정적을 죽이려는 일이 많지만 가족들끼리는 과거의 치부를 들추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끼리 모이면 과거보다 미래 얘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모여서 과거 이야기를 하면 불만과 불화밖에 생기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명절에 모여서 불화가 생기는 경우를 보면 거의 만나서 과거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한 형제가 명절에 모였습니다. 형이 TV를 보는데 동생이 딴 곳을 틀었습니다. 형이 말합니다. “내가 보는데 왜 그래!”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볼 거 없잖아!” 그러다가 과거 얘기가 나왔습니다. 형이 말했습니다. “저 자식은 옛날부터 항상 내 말을 안 들어!” 동생도지지 않고 응수했습니다. “그래! 옛날처럼 해봐!” 그렇게 TV 채널 문제로 과거까지 들추고 싸우다가 형이 동생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우리는 모이면 항상 미래의 희망적인 얘기와 즐거운 얘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족해도 아이들이 잘될 것을 믿고, 잘될 것이라고 말하면 정말 잘됩니다. 또한 현재 어려움이 있어도 고난은 축복의 연단과정임을 믿고 감사하면 반드시 축복이 다가옵니다.
옛날에 식량난으로 가을에 보리를 심을 때는 겨울에 보리밟기를 했습니다. 어렸을 때 TV를 통해 사람을 동원해 보리밭 밟는 장면을 보면 너무 이상했습니다. “왜 저렇게 보리의 싹을 밟아버리나?” 그러나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 보리 싹을 밟는 것입니다. 처음에 나오는 보리 싹을 그대로 두면 보리가 평균 100알도 열리지 않지만 그 싹을 밟아버리면 나중에는 더 강한 싹이 나와서 보리가 평균 400알 이상이 열린다고 합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고난이든지 우리가 믿음으로 잘 소화하고 감사하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가져다주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보리밟기’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더 많은 축복의 열매를 우리에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2.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4-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찌어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교만하면 감사도 없고 축복도 없지만, 겸손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결국 축복 받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누가 겸손한 사람입니까? 주님과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받은 은혜를 오래 기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도 서로 받은 것이 많고, 교인들끼리도 서로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서로 준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상처뿐이지만 서로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서로가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불행한 처지에 있어도 내 죄와 허물에 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에게 있는 또 한 가지의 삶의 특징은 작은 은혜도 오래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잘 감사하지 못합니까? 큰 것이 주어질 때만 감사하고 작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큰 것이 주어져야 겨우 감사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작은 은혜에도 크게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큰 불평거리에서도 작게 불평하고, 작은 감사거리에서도 크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면 신앙생활도 힘들어지고 모든 것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살다가 가끔 인생이 힘들게 느껴질 때는 작은 감사거리를 많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소생하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물질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감사가 적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은 감사가 없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감사가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할 것이 없는 것 때문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는 것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헬런 켈러가 지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하나님께 90% 이상의 감사할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얻을 때 주어지지 않고 깨달을 때 주어집니다. 감사도 무엇인가를 얻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깨달을 때 생깁니다. 그처럼 작은 것을 가지고도 크게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영적인 부자이고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감사의 눈을 키우고 작은 은혜에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합격하고, 승진하고, 일이 잘되고 기적을 체험할 때만 감사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공부는 조금 못해도 나쁜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가출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감사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가 공부는 조금 못해도 예수 잘 믿는 것을 무엇보다 감사하고, 사랑의 리퀘스트에 전화 한 통을 할 수 있는 따뜻한 아이가 되는 것을 더 감사해야 합니다. 그처럼 일상적인 작은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3.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의 상황은 모든 것이 형통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오만하고 악한 자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7-8절 말씀을 보면 그는 잘못된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부조리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9-10절 말씀을 보면 그 모든 고통과 부조리가 그의 기쁨과 찬양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시편 기자처럼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지금 저의 딸들은 아직 순진해서 현재까지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인 줄 압니다. 우리는 그런 긍정적인 시각으로 남편을 장동건보다 멋지게 보고, 우리 아내를 이영애보다 더 예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부모님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우리 자녀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아무리 부족해도 누구보다 훌륭하게 될 줄 믿으면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실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잘난 체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활력 있는 사람은 까부는 사람으로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내가 사람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본다고 그 사람이 나쁘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보는 자기 자신의 영혼이 나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면 감사가 나오고 자기 자신의 영혼이 소생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잘 지켜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부패하기 쉽고 무너지기 쉬운 것이 마음입니다. 성경은 잠언 4장 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에는 감사가 생기고 결국 복이 오지만 부정적인 마음에는 불평이 생기고 결국 불행하게 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긍정적인 믿음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고백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긍정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면 남의 허물을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의 허물을 들출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들추실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남의 허물을 덮어줄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전도사님이 교회 오는데 자꾸 버스가 지나쳤습니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구청에 신고를 했습니다. 며칠 후에 통지가 날라 왔습니다. “과태료 5만원 부과시켰음.” 그 통지를 받아보고 전도사님은 속이 후련했습니다.
며칠 후 주일이 되었습니다. 서현역에 성도를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앞에서 마티즈가 길을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공간이 있는 것 같아서 핸들을 돌려 빠져나오려고 하다가 마티즈를 약간 긁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할래요? 보험 처리 하겠습니까?” 전도사님이 교회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보상하겠습니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5만원만 주세요.”
그렇게 5만원에 합의를 보고 교회에 돌아오는데 갑자기 며칠 전에 운전기사에게 5만원 과태료 물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남에게 5만 원 물리니까 자기 돈도 5만원이 나간 것을 보고 기분이 아주 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허물에 관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손해를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받아내려고 하면 하나님도 받아내려고 하실 것이고 결국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빼앗깁니다. 그러나 내가 손해 본 것에 대해 눈감아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눈감아주시고 결국 손해 본 것 이상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항상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굳게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종 승리를 확신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감사하며, 무엇보다 작은 일상적인 은혜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그 감사의 제물을 받으시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요즘 레스토랑 체인점 중에 ‘TGI’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TGI란 “Thank God. It\'s Friday(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주말입니다)”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5일간 열심히 일하고 주말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것에도 감사하는 TGI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Thank God. It\'s my home!(하나님! 내 가정을 인해 감사합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범사에 감사해서 더욱 큰 축복을 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