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론 제1강 / 1:1- 16

<요한복음 강론 제 1 강 : 1장1절 - 1장16절 >
 

BIBLE STUDY 요한복음 강론 제 1 강


요한복음 개관
본성으로 성취 증거 - 요한복음

제1절 아버지께로서 오신 예수 (1:~11:)
1. 구속주로 오심 (1:~5:)
1) 구속주의 증거 (1:~2:)
(1) 세례 요한의 증거 (1:1~42) (2) 예수의 자기 증거 (1:43~2:25)
2) 구속주의 사역 (3:~5:)
(1) 영생을 얻게 하심 (3:) (2) 구주를 믿게 하심 (4:) (3) 악인을 심판 하심 (5:)

2. 생명과 빛으로 오심 (6:~11:)
1) 생명의 양식이 되심 (6:~7:)
(1) 생명의 떡이신 예수 (6:) (2) 생수를 주시는 예수 (7:)
2) 세상의 빛이 되심 (8:~9:)
(1) 빛이심을 증거하심 (8:) (2) 빛의 능력을 보이심 (9:)
3) 생명의 주가 되심 (10:~11:)
(1) 생명의 주되신 증거 (10:) (2) 생명의 능력을 증거 (11:)

제2절 아버지께로 가시는 예수 (12:~21:)
1. 가시는 준비 (12:~16:)
1) 제자들에게 증거하심 (12:~13:)
(1) 예고를 통해 증거하심 (12:) (2) 교훈을 통해 증거하심 (13:)
2) 제자들에게 위로하심 (14:~16:)
(1) 약속을 통해 위로하심 (14:) (2) 교훈을 통해 위로하심 (15:)
(3) 예고를 통해 위로하심 (16:)
2. 가시는 과정 (17:~21:)
1) 수난을 당하심 (17:~19:)
(1) 수난 위해 기도하심 (17:) (2) 붙잡혀 수난 당하심 (18:)
(3) 죽으시고 장사 되심 (19:)
2) 부활하여 증거하심 (20:~21:)
(1) 삼일 후 부활하심 (20:1~18) (2) 부활을 증거하심 (20:19~21:14)
(3) 마지막 분부와 결말 (21: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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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1. 복음서의 문제(= 공관복음 문제 )
1) 마태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 직임 )으로 증거한다.
2) 마가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 신분 )으로 증거한다.
3) 누가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 사역 )으로 증거한다.
4) 요한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 본성 )으로 증거한다.

2.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
1) 하나님을 ( 계시 )하기 위해서 ( 메시야 )를 보내신다는 ( 언약 )이 구약이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오신 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이시다.
2) 즉 “예수가 ( 구약 )에 약속된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왕 중의 왕이심을 믿습니다”, “나(= 우리 )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나(= 우리 )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과 행동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3. 성경해석의 문제
1) ( 모든 ) 성경은 ( 오직 )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성경이란 한 구절 한 구절 해석하거나(= 쪼갠다 ), 분석하거나(= 주로 문법, 문학적 구조 ), 원어에 의존한다고 해서, 무엇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 전체를 ( 의미 )로서 파악해야 된다. 마치 시냇물이 흘러서 넓은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성경 전체의 흐름을 뒤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2) 특히 원어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러나 사실상 이 시대에는 원어라고 하는 것은 없다. 그냥 그 시대의 언어만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나라 말이 원어이다. 성경의 내용(= 언약과 성취, 구속사 ) 자체보다도 원어를 통해서 색다른 무엇을(= 단어의 여러 가지 의미들 ) 얻어 보려고 한다면, 이는 성경에 대한 자신의 무식을 덮어 보려는 시도일 뿐이다. 글자에서는, 아무리 분석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4. 성도의 신분
1) 성도는 옛 사람의 구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 신분 )상의 변화가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범죄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 정죄 )하지 않으신다. 성도는 실제는 ( 죄인 )의 모습으로 있지만 심판자의 사면으로 ( 의인 )이 된 것이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 정죄 )함이 없나니”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 끊을 )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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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점이 이방종교와의 근본적인 차이다. 모든 이방종교에서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의인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 은혜 )로 의인이 되고 나니까 그 은혜의 감격을 따라 의로운 ( 삶 )이 나타나게 된다.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 죄 )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3) 이러한 복음의 진리에 굳건히 서있지 못하게 되면 죄와 어둠의 권세가 연약한 영혼을 쏘게 되며 율법이 정죄 즉, 죄의식을 가져다주게 된다.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4) 이처럼 율법은 우리가 그냥 대면하게 되면 우리를 ( 정죄 )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성취해 버리신 ( 예수 )를 통해서 보아야 한다. 이때 정죄당한 죄의식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나게 된다. 그래서 율법은 복음이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5) 구약시대에 죄를 범한 사람이 ( 도피성 )으로 숨게 되면 뒤에서 죽이려고 쫓아오던 사람이 어쩔 도리가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약의 성도는 이제 영원한 깨달음과 동시에 예수 안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윗 또한 엄청난 범죄를 행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의 의가 항상 자기와 함께 있음을 깨닫고 찬양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6) 자식은 아무리 못된 짓을 하고 속을 썩여도 도무지 근본적으로 미워지질 않는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더욱 애정이 가는 법이다. 결코 정죄하여 내다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에 대한 그림자적인 ( 일반 )계시이다. 다만 사랑의 징계가 있을 뿐이다.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7) 범죄 한 후에 오는 정죄감은 복음을 잊어버렸을 때이다. 그러나 범죄 한 후 자신의 연약성과 죄성을 고백하고, 그러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함은 복음의 능력이 함께 할 때이다.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 회복 )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8) 그래서 성도는 의인으로 당당하게 서게 되었고 또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실제로 거룩함을 이루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성경은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
(갈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제1절 아버지께로서 오신 예수 (요1:~11:)
(요 16: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제1절 아버지께로서 오신 예수 (요1:~11:) 제2절 아버지께로 가시는 예수 (요12:~21:)
1) 요한복음은 ( 육신 )을 입으신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 ( 본성 )을 중심으로 하여 증거한다.
2) 예수께서 언약을 성취하신 사실의 증거에 의해, 당신이 ( 신성 )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심을 택한 백성에게 계시하시려고,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아버지께로 가시는 사실을 증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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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속주로 오심 (1:~5:)
1) 구속주의 증거 (1:~2:)
(1) 세례 요한의 증거 (1:1~42)
1:1~5 아버지께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1) 태초는 창조 이전의 ( 영원 )을 말한다.
2) 이 영원의 때에 스스로 “말씀”(= 로고스 )이 계셨다. 여기서 “말씀”이란 인간의 언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즉 “말씀”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언어 등의 도구를(= 만물, 사건, 환경 등 ) 사용하셔서 그 능력을 드러내신다.
3)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1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 ( 하나님 )을 “말씀”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로고스”라는 문자를 분석해서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혼란해지기만 한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을 표현할 때 그냥 “( 말씀 )”으로 표현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에는 문자 자체의 해석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문맥의 흐름을 통해서 “그 분이 무엇을 하셨는가?”(= 사역 ) 라는 사실에 관심을 두어야만 한다. 즉 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 자기 )계시”가 어떤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 하나님의 창조는 처음부터 ( 생명 )과 ( 빛 )을 의도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왜 이 지경인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사도 요한이 하고 있다.
(5절)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1) 생명과 빛이 없었던(= < 말씀 >을 깨닫지 못했던 )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전부 어두움(= 헛됨 )이었다. / 생명, 빛 = 말씀(= 언어가 아니다 )
2) 그러면 이런 상태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는가?
그것은 생명과 빛이신 예수님의 사역이다.(= 십자가 ) 예수님만이 생명과 빛이시며 인간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헛되다, 참이 아닌 거짓이다 ) 뜻이다.
3)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 거짓 )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6~8 예수의 증거자 요한
(요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1) 성경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교회도 ) 은혜의 중간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은 아니다”를 증거하는 집단이다. 전 재산을 다 바친 장로가(= 교인 )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오직 “나는 아니다”를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권사가(= 교인 ) 교회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오직 “나는 아니다”를 매일 새벽에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도의 열정을 가진 집사도 “100명을 주께로!” 라는 구호가 아니라, 오직 “나는 아니다” 를 증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헌신, 기도, 전도 등은 결코 은혜의 매개체가 될 수 없으며, 오직 말씀이 육신(= 살과 피 ) 되신 그 분밖에 없다. 이것을 증거하는 모임을 ( 교회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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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 참 빛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는 자
(10절)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하니하였으나”
1) 이유는 인간의 역사가 창조의 원래 상태에서 벗어난 거짓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12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 “하나님의 자녀”란 “( 언약 )과 ( 성취 )”의 개념이다. 즉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2) (창 17:7-8)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당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3) 언약대로 영접하면(= 하게 하셔서 ) 생명과 빛이 그 속에 들어와서 말씀이 창조한대로 본래의 상태로 원상복구가 된다는 뜻이다.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본래 상태이기 때문이다.
4) (요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3절)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 본문은 “창조의 본래 상태로 되었다”라는 뜻이다. 본문을 하나님의 주권 혹은 은혜로도 해석하지만(= 틀린 해석은 아니다 ), 이는 ( 성령 )세례가 와야만 적용되는 것이다. 즉,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했던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뜻으로서, 피조물의 ( 존재 )성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은혜로만 믿을 수 있다는, ( 구원 )에 관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2) 하나님을 ( 영접 )하는 인간이야말로 ( 창조 ) 때에 의도했던 바로 그 인간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뜨겁고, 방언 잘하고, 찬양 잘하는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직 “주여! 나는 어두움이고 나에게는 빛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은혜 위에 은혜 되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했던 그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1) 이제는 육신의 시대란 뜻이다. 즉, 육신이 되신 그 분이 곧 말씀이다. 전에는 하나님과 말씀(= 로고스 )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사이만 남았다. 어떤 중간매체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세의 시대 즉, 율법의 시대는 끝이 났다는 것이다.
(14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 이는 은혜에 더 붙일 다른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있는데도 더 달라는 것은 나에게는 은혜가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들은 자신의 믿음(= 노력 )으로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 간증 )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십자가를 가리우는 것이다. 십자가는 나를 죽이는 십자가인데, 간증은 십자가가 나의 병을 고쳐야만하며, 나를 살려야만 한다. 십자가가 우리 교회를 부흥(?) 시켜야만 한다. 그래야만 능력이 있는 십자가라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태도는 십자가의 피와 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 탐욕 )을 보여 준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 살 )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 피 )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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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은혜가 부족하다고 하면 안 되니까, 이제는 고상한 모습으로 은혜에 무엇을 더하려는 프로그램의 모습들로 나타난다. 그냥 성경공부라고 하면 되는데, 다른 용어들을 쓰는 것은 이방종교의 주술적인 모습들이다. 이런 용어들은 불신앙을 담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효과론(실용주의)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Q.T(경건의 시간)를 들 수 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Q.T의 문제점이 보이는데, 이제는 \"말씀+묵상=참선\"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에 온갖 귀신이 다 들어오게 되었다. “오늘은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15~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에 대한 요한의 증거
(16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가운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 은혜란 인간의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량없이 계속해서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은혜와 진리는 어떻게 주어지는가? 이에 대해서 세례요한은 “나는 ( 빛 )이 아니다”라고 증거한다. 즉 예수 앞에서 모든 것은 \"(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인간들이 노력함으로 얻어진 은혜(?)들은 다 걸려서 넘어지고,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된 그분만이 은혜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나는 아니다”를 외치는 것이다.
2) 빛과 생명은(= 십자가 ) 한 순간 온 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다. 날마다 한량없이 오는(= 십자가 ) 것이기 때문에(= < 단회성 >의 반복 ) 죽을 때까지 늘 계속해서 받는 것이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것은 ( 성령 )을 계속 공급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은혜 위에 은혜”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3) 이처럼 은혜는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다. 이것을 ( 성령 )세례라고 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는 성령을 한량없이(= 은혜 위에 < 은혜 > ) 받는다. 그런데 인간은 성령을 지배하려고(= 은사를 준다, 은사집회 ) 하여 성령을 모독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피조물의 자리 이탈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지계표를 옮기는 행위, 광야에서의 진 배치 ) 즉, 내가 성령을 소유하려고 하는 현상이다.
< 정 리 >
1) 하나님께서는 원래 생명과 빛이 함유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이 붕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생명과 빛을 잃어버려서 어둠의 세상이 되고 말았고, 이 어두움 자체는 원래 말씀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과는 아무 ( 상관 )이 없어져 버렸다.
2) 생명과 빛이 함유된 창조가 아니면 창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창조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따로 계획을 세우셨다. 즉, 이 세상은 스스로는 도저히 생명과 빛을 만들 수 없기에, 하나님은 ( 일방 )적인 은혜로 이 세상에 생명과 빛을 주시는 것이다.
3) 그래서 이제 말씀의(= 로고스 혹은 능력 ) 시대는 끝이 나고, 말씀이 ( 육신 )이(= 살과 피의 실제 ) 되어 세상에 내려오신다. 육신만(= 실체 ) 남고 말씀은(= 그림자 ) 사라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정적인 개념(전지, 전능 등)에서 예수님의 구체적이고 동적인 ( 사역 )으로 바뀌는 것이다.
4) 그래서 신약시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 하나님 )이고,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 신론에서 기독론으로 ) 그러므로 유대인이 부르는 하나님과 기독교인이 부르는 하나님은 전혀 ( 다른 ) 하나님이다.

 

 

 

 

[스크랩] [찬양 모음] *♡*은은한 은혜 복음송 모음곡(4) *♡*

  • 글쓴이:  두나미스 

    *♡*은은한 은혜 복음송 모음곡(4) *♡* 01.주의 길을 가리라 02.세상에서 방황할때 03.이 험한 세상 04.심령이 가난한 자 05.주님것을,, 06.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출처 :♥주님의 영성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두나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