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론 제3강 / 1:33- 2:17

<요한복음 강론 제 3 강 : 1장33절 - 2장17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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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윤병운(캐나다 캘거리 윤스 아트 인스티튜트)

BIBLE STUDY 요한복음 강론 제 3 강

(요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1) 요단강의 세례에서 ( 성령 )을 받은 그 분만이(= 예수 그리스도 ) 성령으로 ( 세례 )를 주시는 이가 된다는 것이다.
2) 이는 성령이 임하지 않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소리처럼(= 세례 요한 ) 사라지는 헛된 것이라는 뜻이다.
3)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사람들은 세상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에 빠져 죽어 있는 것이다.(= 물세례 ) 죽어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현상적으로는 같은 물세례를 받지만, 성령의 세례를 받는 그 분이 성령세례를 주셔야 우리가 ( 살 )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일어날 사건이다.

35~42 요한의 증거로 그의 두 제자와 시몬이 예수께로 감
(36절)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는 실체를 전제로 하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 유월절의 어린 양(= 출 12장 )
- 속건 제물로서의 어린 양(= 레 14:10-25)
- 예언 : 이사야 53장
2) 세상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은 사망과 죄악의 권세를 제거하셨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38절)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1) 무엇을 구하느냐의(= 하늘의 가치 ) 질문에 대한 ( 세상 )적 가치의 대답이다.
2) 아직 ( 영 )적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41절)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 그리스도 = 기독(基督) : 하나님의 자기계시
1) 세상적 가치는 예수님에 의해 하늘의 가치로 변화될 것임을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2) 예수의 자기 증거 (1:43~2:25)
1:43~51 예수께서 빌립과 나다나엘에게 자기를 증거하심
(43절)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1) 좇으라고 ( 말씀 )하신대로 이루어진다. 이 말씀은 믿음이란 인간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 택 )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 택 )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45절)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1)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는 ( 구약 ) 성경을 말한다.
2) 구약 성경은 메시야이신 예수를 기록한 책이다.
(46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1) 갈릴리 지방은 역사적 배경 하에 평판이 좋지 않았다.
(마 1: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47절)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 간사한 것이 없는 나다나엘이 보여주는 것은? - ( 참 ) 이스라엘
2) 이는 \"너야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됨을 잘 보여 주는 증인이다\" 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 메시야 >만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기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런 나다나엘의 모습을 예수님이 신적 권능으로 보신 것이다.
3)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나다나엘을 칭찬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나다나엘이
( 메시야 )를 기다리는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이 참 이스라엘이심을 말씀하고자 함이다. 즉 나다나엘은 예수님만이 참 이스라엘이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 예정 )된 도구가 되는 것이다.
4) 오늘날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은 오직 예수님만을 ( 증거 )하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받은 성령세례의 목적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 어린 양 )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이다. 동일하게 성령세례를 받은 우리 역시 “( 어린 양 )의 사역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간다.
(49절)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 나다나엘이 말한 아들이란 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중간매체의 개념이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50절)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1) 인간들에게는 보이는 것만이 소망이다.
2) 그러나 예수께서는 장차 일어날 십자가의 표적 사건을 말씀하고 계신다.
(51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1) 다른 어떤 길로도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시다.
2)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신 이유는, 인자 외에는 오르락내리락(= 길 )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이심에 있다. 오직 인자만이 가능하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1~11 예수께서 가나 혼인집에서 ( 표적 )으로 ( 영광 )을 나타내심
1) 표적이란 표가 되는 기적이란 뜻이다.(= 쎄메이온 ) 즉 장래 일어날 일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의 목적은 무엇인가?
2) 따라서 예수의 표적 사건은 인간의 요구에 따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1) 예수님의 기적 사건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 육신적 메시야 ) 혹은 능력있는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이미 전제하고 기록해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포도주가 다 떨어진 상황에서 마리아는 예수님과 의논을 했는데, 이는 예수님을 육신의 메시야로 오해한데서 나온 생각이다. 예수님의 할 일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장차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분배하시는 것이다.(= 33절 )

3) 마리아의 오해는 모든 사람의 오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수는 메시야로서 포도주가 떨어진 현실에서 포도주를 제공하는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으로 생각한 것이다.
(4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1) 장차 성령세례를 주는 그 때가 주님의 ( 때 )인데, 그 때가 아직 아니라는 말씀이다.
2) 그러나 마리아의(= 인간들 ) ( 때 )는 지금 당장 필요한 포도주를 채워 주는 일이다.
3) 그러면 아직 주님의 때가 아님에도 예수님이 그 일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주님의 ( 때 )는 포도주를 만들어 인간의 ( 필요 )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주님의 하실 일이라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② 그리고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듯이 장차 주님의 때에 ( 성령 )을 분배할 것임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즉 “나는 포도주와 상관이 없다” 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오병이어 표적의 의미와도 동일하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나 혼인잔치 후로 다시는 어머니와 동행하지 않게 된다. (12절)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1) 어머니와 아들의 육적인(= 혈육의 ) 관계를 끊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모친이 아들
(= 메시야 )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의미이다. 마리아는 포도주가 없는 난처한 상황을 예수를 이용해서 모면하고 싶은 것이다.(= 혼인잔치가 벌어진 곳은 마리아의 가까운 친척 집으로 추정된다 )
(6절)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막 7:2-4)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1) 돌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은 모세의 율법에 대한 폐기 처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주님의 때가 되면 돌 항아리에 담긴 물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즉 손을 씻는 정결 의식의 결례는 다 폐기 처분되는 것이다.
(11절)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 가나 혼인잔치 이후의 표적은 점점 주님의 십자가에 가까워진다. 마지막 표적은 부활의 표적(= 나사로의 소생 )이다. 요한복음은 이처럼 점진적으로 장차 예수님이 하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사역에 접근해간다.
2) 여기서 제자들의 믿음이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육신적 기대의 믿음이지, 성령세례로 주시는 그 믿음과는 전혀 다른 믿음인 것이다.
3) 영광의 유기적 점진적 증거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①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께 최종적 영광이다.
② 그러나 사람들은 처음에는 포도주가 맛있다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표적이 일어날 때마다 영광을 돌리다가, 마지막에 진짜 영광을 돌리는데, 그것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요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③ 아들을 영화롭게 해야만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메달 따고 대학 합격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거지라도(= 나사로 ) 예수님만을 영화롭게 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다.
④ 오직 예수님만을 높여야 한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교회도 아무 것도 아니다.
본문을 가지고 가나 혼인잔치를 축복하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혼인도 축복하신다는 설교를 한다. 이런 설교를 요한복음(= 성경 ) 전체의 관점에서 보니 얼마나 엉터리인가? 오직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기쁘게 할까 하는 관심 때문에 성경의 맥을 아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실 알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12~17 성전을 정결케 하시며 아버지의 집임을 증거해 주심
(16절)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 구약에서는 오직 성전을 향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하는 집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집이라면 아무데서나 기도를 해도 되지만,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그 집에 들어가서 기도를 해야만 유효한 것이다.
2)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세웠다. 성전은 다윗( 언약 )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세운 것이 아니었다.
3) 계시의 점진성(= 확대 )
(왕상 8: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4) 그러므로 성전을 향해서 기도를 해야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다윗 언약의 구약적 관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을 주님께서 무시하신다. 다윗 언약의 구약적 관점이 예수님에 의해서 깨어지는 것이다.
(19절)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1) 성전에 대한 개념을 예수께서 깨트려 버리시는 것이다. 성전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2) 공관복음에서는 성전청결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성전파괴이며 성전부정이다. 성전 자체의 모든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성전 자체를 부정하는가?
3)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다윗 언약에 의하면 성전을 통해서만 기도할 수가 있는데, 성전 안에 들어가야만 기도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전이 중간매체가 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약속이 성전에 있기 때문이다.
4)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한다. 구원받기 전에 기도한다. 그러나 요나의 기도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미 구원하신 일을 감사하는 것이다.
(욘 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17절)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 주의 전 = 성전 2)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1)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적들인가, 아니면 다윗인가?
2) 다윗의 적들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에 성전을 고수하려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집념이 바로 메시야를 죽인다는 것이다.
3) 성전에 대한 집착이 진짜 메시아를 죽이게 되는 원인이 된다. 성전회복에 대한 참된 열성을 가지신 분은 예수님이며(= 아들이며 ), 이 예수님을 잘못된 성전고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죽이게 된다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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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두나미스 

    *♡*은은한 은혜 복음송 모음곡(4) *♡* 01.주의 길을 가리라 02.세상에서 방황할때 03.이 험한 세상 04.심령이 가난한 자 05.주님것을,, 06.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출처 :♥주님의 영성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두나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