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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 창세기 제 3 강
< 선악과 사건의 정리 >
1) 선악과를 숨겨 놓지 않으시고 왜 동산 ( 중앙 )에 만들어 놓으셨는가? 부모가 아이에게 위험한 물건들을 어디에 놓는가?
2) 뱀은 왜 만드시고 사단이 이용하는 것을 왜 그냥 두셨는가? 막으시려고 했으면 선악과를 따먹기 ( 전 )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야지, 왜 다 먹고 난 ( 후 )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가?
3) 3:15절을 ( 원시 )복음이라고 한다. ( 타락 ) 후에 구속할 것을 약속했다고 해서 원시복음인데,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 전지 )하심이 부정되는 결과가 나온다. 물론 이 절은 ( 메시야 )의 예언이 맞다. 인간이 불순종해서 타락하니까 구원이 필요해졌다. 그러면 인간이 순종해서 타락하지 않으면 구원이 필요 없는가?
4)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하나님이 처리하신다. 이것이 구속사 즉 창조 - 타락 - 구속의 흐름이다. 이런 생각과 사상이 지금까지 내려온다. 그러므로 잘하면 복이고 못하면 저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불순종하는 가운데 가두시는 것이다. 왜 그런가?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 정 )하신 뜻(= 계획 )대로 역사는 진행되어간다.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5) 에덴동산의 은혜는 분명한 은혜이지만, 아담은 ( 불 )순종 가운데 들어가지 않으면 이 은혜를 ( 은혜 )로 깨닫지 못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말할 수 없는 은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은혜를 깨닫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한다. 병이 들었을 때 우리는 건강의 은혜를 알게 된다. 배고픔이 있어야 먹을 때의 감사가 나온다.(= 둘째 아들의 비유 ) 그러므로 이 감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대표적인 사건이 아담의 선악과 사건이다.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6)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생명만을 누리면 좋을 것 같은데, 절대의 존재가 아닌 인간은 ( 상대 )적인 인식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눈에 보이는 ( 비교 )의 대상이 있어야 감사를 하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눈에 안 보이는 공기에 대한 고마움은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밥을 먹을 때는 감사를 한다.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2장 18~25 아담에게서 여자를 만드심
(18절)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1)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을 지으신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해서 ( 그리스도 )와 ( 교회 )의 관계를 예표하는 사건이다.
(엡 5:31-32)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 비밀 )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2) 여자는 남자의 ( 안 )에서 만들어졌다. 즉 처음부터 여자는 남자 ( 안 )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남자에게 준 사명 속에 여자의 사명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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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약자손의 보호 (3:~11:)
1)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비롯해서 아벨을 죽인 가인을 심판하신다. 그리고 노아시대의 인류를 악한 행위에 따라서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을 인하여 이들을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 보호 )해 주시는 섭리를 하신다.
2) 이처럼 하나님의 치밀한 의도와 계획에 의해서 말씀은 기록되어졌다.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성경은 전체적인 흐름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일정한 ( 주제 )에 의해서 ( 통일 )성을 가지고 ( 반복 )되는 책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4) 6일 창조의 의미를 말하시오. -
5) 성경전체를 읽어나가는 중심축이 되는 언약의 장절을 말하시오. -
1) 아담 심판과 보호 (3:)
(1) 아담의 범죄 (3:1~7)
1)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 말씀 )의 관계이다. 마귀는 이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인간에게 접근한다. 즉 말씀을 어겨도 별 일은 없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보다는 ( 육신 )의 유익 쪽으로 가게 된다.
2)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죽는다고 하셨으면 죽을 것으로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설마 이것 하나 어겼다고 지옥 가겠어?”라는 생각은 말씀과의 ( 관계 )를 허물기 위한 사단의 유혹이다.
3)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말씀이 아니면 ( 안 )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이 아니라도 ( 된 )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로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말씀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 육신 )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의 양식을 채워주는 도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4)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말씀을 필요로 한다.
(마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 8:3 인용 ) 여기서 사람이란 어떤 의미인가? - ( 의인 )
5)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이나 “말씀대로 산다는 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 생각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 하늘 )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한시라도 말씀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3:1~5 뱀이 여자를 거짓으로 유혹함
< 마귀에 대해서 >
(계 12:9 )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 천사가 ( 타락 )해서 마귀가 된 것인가? 천사는 어떻게 해서 타락하는가? 스스로 타락하는가? 아니면 밖에서 타락의 요소가 들어오는가? 하나님은 ( 전능 )하지 않은가? 아니면 하나님과 동등 혹은 ( 월등 )한 그 무엇인가가 천사를 타락하게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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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런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단은 하나님과 ( 대적 )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단은 하나님의 예정과 허락 속에서 ( 대적 )하는 모습으로 사용되어지는 도구일 뿐이다.
(1절)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1) 마귀가 먼저 사람에게 찾아와서 묻는다. 그 물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 말씀 )이다. 마귀가 인간에게 찾아올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 말씀 )을 근거로 찾아온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을 격리시키려고 한다.
2) “너는 왜 말씀에만 ( 매이 )고 있느냐, 너는 ( 독자 )적인 존재로 훌륭하게 설 수 있다” - 이런 생각들이 인류의 역사 내내 철학과 종교를 통해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 의존 )된 존재임을 말한다.
(사 40:7-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하라”
1) 마귀는 이 말씀을 우리가 이렇게 해석하기를 원한다. \"풀도 마르고 꽃도 시들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 상황 )에 따라서 변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고, 우리도 그것을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잖아....”
2) 마귀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우리의 속셈을 마귀가 ( 대변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 마귀 )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의 말씀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가?
3) 적으로 간주했던 마귀가 사실은 ( 적 )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 동역 )자로서 나와 함께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말이 마치 십년지기의 말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 맞아 마귀의 말처럼 나에게는 진정한 자유와 권리가 있어. 하나님이 시킨다고 해서 굽실거리는 것이 무슨 인간다운 모습인가?”
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예수님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신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 예수님을 ( 믿어 )야 영생이라는 말씀이다.
5) 그러나 마귀는 말씀을 실행에 옮겨서 그 옛날 ( 유대 )인들처럼 해보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성경은 ( 예수 )님에 관한 것이다\"인데, 마귀의 뜻은 \"성경의 말씀을 네가 지켜서 ( 영생 )을 얻으라\"는 것이다. 이런 상식적인 말이 우리의 죄악 된 인간성에 부합되는 것이다.
(4절)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1) 따먹고 난 뒤에도 안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곧 소망(= < 욕심 > )으로 다가온다. 이 소망을(= < 죄 >를 ) 인간은 이길 수 없다. 이렇게 마귀가 등장함으로 비로소 우리가 마귀 편에서 행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물론 지금도 마귀가 활동하는 것을 하나님이 ( 허용 )을 하신다. 마귀의 유혹을 성경이 보여줌으로 우리 인생이 ( 마귀 )와 단짝에 불과했던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요 8:44) “너희는 너희 ( 아비 ) 마귀에게서 났으니”
(요 8:47) “하나님께 ( 속 )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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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시오.
(1) 나를 믿어라 영생이다 (2) 네가 이렇게 하면 영생을 얻는다.
3) 내가 무능과 타락으로 인해서 ( 절망 )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 전 )적으로 예수님만을 믿자”라는 마음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있고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면, 그런 것들을 초개같이 버리고 ( 전 )적으로 예수님만을 의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내가 신학도 하고 남들도 가르치고 있으니 나름대로 존재의 가치가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이 ( 마귀 )의 아들이다.
(마 5:3) “심령이 (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행 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1) 마귀가 가장 겁을 내는 대상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 아신 )바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과 바울”과는 사고방식이 전혀 ( 반대 )인 사람들이(=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 ) 마치 마귀를 ( 아 )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악귀를 쫓아낸다고 까불고 있으니 ) 마귀 스스로도 코웃음을 치는 장면이다, “너는 내 ( 밥 )”이라는 것이다.
2) 그러나 우리가 ( 나 )를 내세우지 않고 예수님만을 앞장세운다면 마귀는 “졌다!”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 우리가 평소에 우리의 ( 이름 )만을 드러내고 사니까, 하나님의 ( 이름 )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주님은 이런 기도문을 가르치신 것이다.
(요 5:44) “너희가 ( 서로 )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 하나님 )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롬 14:23) “( 믿음 )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1)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이것이 마귀의 무기이다. 그러나 선악을 알면서도 죽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분밖에 없으시다. 인간이 선악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 영생 )을 얻을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선과 악을 아는 ( 지식 )으로 말미암아 망가진 존재이다.
2) 아담 이후로 선과 악을 아는 것 자체가 ( 죄 )이다. “이것이 선일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악은 이런 것”이라는 선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선은 아는데 악은 몰라”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선과 악을 구분하면서 “나는 선”이라고 우긴다.
3) 욥은 친구들의 생각처럼 이런 ( 선 )과 ( 악 )의 구조 안에서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 인과응보, 권선징악 )” 등의 사상으로 욥을 정죄했다. 그러나 욥은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너희는 나보다 더 심한 고생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 생각이 ( 옳다 )는 것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셨다.
(욥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 노 )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 정당 )하지 못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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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욥이 고생한 것은 마귀가 하나님을 부추겨서 생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과 인간들을 자꾸만 선악의 구조로 몰아가게 하셨다. 그 이유는 고난 가운데서도 선악 구조를 벗어난 “( 믿는 ) 자”의 모습을, 욥을 통해서 ( 계시 )하시려는 것이었다. 마귀의 유혹과 인간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이제는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의 시대가 아니라 “오직 ( 믿음 )으로”의 시대이다.
6~7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음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1)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니까 저것만 먹으면 내가 하나님처럼 ( 높아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 사랑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저것만 있으면(= < 사랑 > ) 내가 편해지고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야말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들(= 세상 )을 ( 사랑 )하는 것이다.
2) 오늘날에도 마귀는 논리적인 말로 우리를 유혹한다. “( 영혼 )이 잘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세상에서 잘되고 높은 자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인데”
(요삼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요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 본다 )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1) 선악을 판단하는 지식이 주는 결과는 무엇인가?
- 자기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면 이것이 왜 나쁜 것인가?
- 이는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하와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 불평 )하고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 불평 )한다.
2) “치마를 하였더라”
- ( 부끄러움 )(= 수치 )을 모르던 인간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곧 불행의 시작이다. 부끄러움을 ( 가릴 ) 것을 얻으려고 ( 힘 )쓰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10평은 30평을 부러워하고....)
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벌거벗은 몸을 ( 수치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은 이것을 ( 수치 )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 자랑 )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 수치 )를 알고 ( 자랑 )을 아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 이름 )을 위해 살아가게 된 것이다.
4) 결국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상태에 ( 만족 )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러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자신의 ( 힘 )으로 더 채워서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 힘 )쓰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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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 영화 )롭게도 아니하며 ( 감사 )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 지혜 )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 선악과 그 후 >
1)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 지식 )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식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 선 )이고 해가 되는 것은 ( 악 )이라고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 기도, 봉사, 구제 등의 일들도 ( 자신 )을 위해서 하는 유익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하늘 )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회복된 신자들은 에덴에서 주어진 ( 사명 )대로 살게 되었다. 즉 자신의 영광(= 선악나무 )보다는 생명(= 생명나무 )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다.
1.남자와 여자
1) 타락 이전에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
(창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리라”(= 엡 5:22-28 )
- 아담 ) “내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나는 또한 하와의 머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 통치 )(= 머리 ) 아래에서 나는 하와를 ( 사랑 )해야지”(= 한 몸 )
- 하와 ) “내 머리는 아담이지 그리고 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또 그분의 머리는 하나님.... 그럼 나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네, 정말 ( 행복 )하다....”(= 한 몸 )
2) 타락 이후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
(창 3:12)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아담 ) “내가 저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난 뒤 왜 이렇게 ( 불행 )해졌지?”(= 두 몸)
- 하와 ) “나의 머리는 누구지?”라는 ( 생각 ) 자체가 없어졌다. “나에게는 머리가 필요하다”라는 ( 생각 )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3) 타락 이전 사람이 생각했던 하나님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아담과 하와) 아멘!!!!!!
4) 타락 이후 사람이 생각하는 하나님
(창 3:12)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 죄지은 것은 여자인데 사실 더 나아가면 그 여자를 만들어 자기에게 붙여준 하나님에게 ( 책임 )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아담 자신의 ( 머리 )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권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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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혼관 = 타락 이후에 생겨난 남자와 여자의 관계
1) ( 두 ) 몸인 자신들이지만 서로의 (= 사실은 나의 ) 행복을 위해서 ( 한 ) 몸 되어 보기로 노력하겠다는 것이 결혼이다. 즉 결혼생활이 나에게 평안과 행복을 주지 못하면 언제든지 깨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게 되었다.(= 마 19:3 이하 )
(마 19:6) “이러한즉 이제 ( 둘 )이 아니요 ( 한 )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창 2:24의 결과 )
(1)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했느냐(= 왜 결혼을 했는가 )와 상관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나누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간섭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 이미 ( 죄 )라는 것이다. 이혼이란 생각은 타락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
(2) 중요한 것은 결혼에 관한 이런 정의가 생기게 된 것은 타락 ( 이후 )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 되게 하신 것은 이러한 인간들의 결혼관과는 별개로 그 이상의 뜻이 있고 목적이 있는 것이다.
(3) 즉 결혼이란, “상대를 통해서 ( 머리 )되신 예수님을 ( 알 )라”고 붙여주신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못마땅해서 갈라서기를 원하거든 차라리 갈라지라는 것이 성경의 뜻이다. 부담 갖지 말고 이혼해 버리라는 것이다.
(고전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4) 그러나 바울은 결혼이나 이혼을 ( 규칙 )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다만 ( 원리 )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죄 아래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 구원 )자는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 신부 )로서 이 세상의 아내나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 매 )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5) 이렇게 살펴보니, 하나님께서는 ( 결혼 )을 목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죄 짓고 난 뒤에는 그리스도를 ( 위 )한 결혼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 않 )는 하나의 증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6) 죄 짓고 난 이 후에는 결혼도 ( 죄 )로 인한 고통 덩어리이다. 혼인 당사자들이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에 자기 밖에 모른다. 이런 두 존재가 만나서 한 집에서 사니 왜 갈등이 안 생기겠는가? 결국 결혼을 통해서도 행복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7) 그러면 이혼해야 하는가?
-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성도는 결혼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 죄 )성을 더욱 더 깊이 알아야 한다. 비록 결혼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다 깨어졌지만 결혼을 시켜 준 하나님의 ( 뜻 )을 헤아려야 한다.
(8) 처음에 살펴보았듯이 남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 창조 )를 보여주는 것이 남자의 사명이다. 그 일을 ( 결혼 )을 통해서 여자와 함께 하라는 것이다.
(9) 그러므로 결혼이란 서로가 그리스도 앞에서 다 같은 ( 죄인 ) 인줄 알고 서로에 대해서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생활이다. 자기에게 배우자는 과분한 대상인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서로의 마음을 ( 낮추라 )고 하나님께서 ( 결혼 )이라는 환경을 조성해 주신 것이다. 그 가운데 서로가 ( 그리스도 )에게 복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짜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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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위와 은혜
1) 선악과 따먹은 죄를 치마를 만들어 입는 ( 행위 )로 가릴 수는 없다. 그러나 아담은(= 신자는 ) 하나님을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피한다고 해서(= 치마를 만들어 입는다고 해서 )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인간들은 어떤 ( 행위 )를 해도 만족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담이나 현재 우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리고 ( 변명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 인간들을 구원해 줄 수는 없다.
(전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3) 아담과 하와의 문제점은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데 있다. 그러나 본인들이 죄를 없앨 수 있는 방도는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죄 )와 무관한 자가 만든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의 )로 말미암아 가리움과 변명을 받을 경우에만 ( 죄 )가 해결된다.
4)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에게 자신이 만드신 가죽옷을 제공하시는가? 그 이유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계속 ( 남겨 ) 두어서, 구원에 관한 모든 공로와 영광을 하나님께 두기 위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5)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전에는 우리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못 지켰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마음껏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드리자”(= 상처 난 아이와 엄마의 비유 )
6) 그러나 가죽 옷 안에 있는 인간의 육체는 계속해서 ( 수치 )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입은 가죽 옷 만을 계속해서 보고 계시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그 위치에서 그냥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 덮 )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죽옷 때문에 구원받는 것을 생각 안하고, 그 안에 있는 ( 내 )가 괜찮은 존재라서 구원받는 줄로 알고 있다.
7) 우리는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어떤 행위이든 거기에는 항상 시기와 질투가(= 욕심이 ) 수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경에는 이런 인간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제거되는 경우가 이어진다.
(수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 수치 )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 여호수아 시대에는 ( 할례 )가 부끄럼을 가리는 가죽옷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2) 창세기에서는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는 반면에 여호수아에서는 아예 그곳의 일부를 칼로 잘라내어 버린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는 어떠한가?
(골 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 그리스도 )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 )“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 그리스도의 할례 = 장사
3) 이제는 할례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몸이 찢겨지는(= 장사 )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신 예수께서 찢겨지셨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우리는 ( 수치 )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가죽옷과 할례”로 우리의 수치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 믿음 )으로 가린다.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롬 9:32-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