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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 창세기 제 5 강
<생명의 족보에 대해서>
1) 가인의 족보가 먼저 나오고(= 4:16-24 ) 그 다음에 아담(= 셋 )의 족보가 나온다.
2) 가인의 족보(= < 멸망 >의 족보 )를 먼저 보여줌으로 이 세상은 ( 망 )한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러나 아담의 족보(= < 생명 >의 족보 )를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있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이다.
3) 이 세상은 ( 마귀 )가 지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망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생명의 무리들이, 즉 ( 남은 ) 자가 있음을 족보를 통해서 보여 주시는 것이다.
4) 그러면 가인의 후손들이 무슨 나쁜 짓들을 그렇게 많이 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능력을 개발해서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이루어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셋의 후손이 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왜 저주받은 가인의 후손들이 이러한 일을 했는가?
5)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가인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의 운명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인간이 ( 신 )이 되고 ( 왕 )이 되고 ( 주인 )이 된 세상이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은 ( 지옥 )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계획하신대로, ( 생명 )의 족보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계속 이루어 가신다. 이런 이유로 4장의 멸망의 족보와 5장의 생명의 족보를 선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6) 가인의 족보는 4장에서 따로 소개함으로 아담의 후손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즉 아담의 후손은 “( 여호와 )의 이름을”(= 4:26 ) 부르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택자와 불택자의 분리로서 ( 이중 )예정을 예표하고 있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7) 아담의 족보는 특징이 “낳았고 죽었더라”이다. 즉 가인의 족보처럼 인간의 문명 창설의 능력을(= 강자 )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죽는다는(= 약자 )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평균수명 900여세의 장수를 누리기는 하지만 결국은 다 죽었다는 것이다.
7) 그런데 이런 죽음의 족보 가운데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버렸다. 에녹은 이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삼분의 일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은혜 ) 하나님께로 갔다. 이 사건은 마태복음의 족보와 연결이 된다.
(마 1:1-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1) 마태복음에는 “( 죽었 )더라”는 말이 없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 사망 )이 왕 노릇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 약속 ) 안에 있기에 사망의 권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새로운 ( 족보 )를 보여주는 것이다. “죽었더라”가 계속 이어지는 족보 가운데서 에녹이 예외가 됨으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이미 ( 언약 )(= 계시 )하고 있으며 이를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 성취 )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즉 하나님이 에녹에게 오셔서 ( 동행 )해주심으로 사망의 권세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망의 권세가 에녹을 이기지 못한 사건은 우리의 힘으로는 ( 생명 )의 족보에 들어갈 수 없다는 계시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부활을 이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신의 생명의 족보로 끌어당기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 세계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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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류 심판과 언약 (6:1~11:)
(1) 인류의 죄악 (6:1~12)
6:1~4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1절)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 아름다움 )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1) 1:28의 언약은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 복 )이 아니었다. 오히려 번성함에 따라서 각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경쟁이 생기게 되었으며, ( 힘 )(= 행위 )으로 경쟁에서 이긴 강자만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2) 따라서 본문은 ( 힘 )(= 행위 )이 세상의 가치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자칭 ( 신 )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 네피림 )(= 용사, 유명한 자, 종교지도자 )으로서 힘을 소유한 자들로 해석된다. 반면 “사람의 딸들”은 힘 없는 대중들을 표현한 말로 해석된다. 즉 2절은 강자들이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약자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3) 이처럼 육체의 상태가 된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 합당 )치 못한 일들을 행하며 살아간다. 육체로 사는 자는 항상 육체를(= 외적인 조건을, 행위를 )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이 ( 육체 )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 싫어 )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 합당 )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3절)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 육체 )가 됨이라”
1) (5:2) “그들의 이름을 ( 사람 )이라 일컬으셨더라”
2)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상태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
3) ( 사람 ) -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며 교통(= 교제 )하는 상태
4)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은 ( 성령 )으로만 가능하다. 신자 역시 성령이 함께 하시기 전에는 ( 육체 )에 불과했으나 성령이 오심으로써 ( 사람 )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5) ( 사람 )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간다. 그러나 ( 육체 )는 오직 자신만을 위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뿐이다. (= 죄 아래 팔린 상태의 삶 )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4절) “네피림, 용사, 유명한 사람”
- 네피림을 천사들(= 하나님의 아들들 )과 사람 사이에서 나온 존재들로 보는 해석과 셋의 후손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의도를 충족시키기엔 무리한 해석들이다.
1) 믿음이란 나의 연약함(= 타락과 무능 )을 고백하며 하나님만을 나의 힘으로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 신 )이 함께 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중심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린다. 힘 있는 것이 ( 선 )이며 힘없는 것은 ( 악 )이 된다.
2) 본문의 용어들은 육체의 기준을 가지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 후손 역시 ( 육체 )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즉 세상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 육체 )의 상태가 되었으며, 그래서 힘이 있는 ( 네피림 )이 되기를 열망하며 힘을(= 행위 )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태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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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데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결혼한 육체의 후손들을 하나님은 바보가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사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 약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의 힘(= 행위 )으로 사는 것이 곧 ( 죄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노아시대처럼 모든 ( 힘 )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용사가 나오고 유명한 사람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4)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 약 )자로(= < 은혜 >로 ) 살아간다.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자신의 ( 무능 )을 보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은혜를 ) 간절히 소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자신이 타락하고 무능한 죄인임을 고백한 구약과 신약의 두 사람을 말하시오.
5~8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항상 악함
(5절)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 항상 ) 악할 뿐임을 보시고”
1) “항상” -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즉 인간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 생각하는 것과 계획하는 모든 것이 악할 뿐이라는 것이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 어두워 )졌나니”
(7절)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1) 우리는 ( 말씀 )을 통하여 인간이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롬 1:28 ) 존재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은 언제나 ( 자신 )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 이처럼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에서는 선을 기대할 수 없으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쓸어버리는 ( 심판 )을 받아야 할 뿐이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 하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3) 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를 사랑할 수 있는가? - 노아처럼 ( 은혜 )를 입는 것이다. 이 은혜를 입은 자는 심판에서 우리를 건지신 분에 대한 ( 관심 )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있다.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십자가라는 말만 들어도 예정이라는 말만 들어도 선택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아무리 들어도 ( 싫증 )이 나지 않는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자의 특징이며 주를 사랑하는 자의 특징이다.
(8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 은혜 )를 입었더라”
1) 심판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기뻐하는 사람(= 노아, 택자 )뿐이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 은혜 )를 입은 신자이다.
2) 노아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행위가 아닌 ( 은혜 )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것은 행위가 아닌 “( 은혜 )”이다.
3) 당시의 세상은 네피림이 주도했으며 힘이 곧 법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이 ( 미워 )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계시하셨다. 그러나 노아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살리심으로써 “사람은 ( 무엇 )으로 사는가?”를 계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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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은혜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오직 관심은 ( 힘 )(= 행위 )으로 사는 것에 있다. 힘은(= 행위는 )현실적으로 몸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되 삶은 ( 힘 )을 중심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5) 하지만 은혜는 심판 속에서 우리를 ( 살리 )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에 관심이 없는 자는 당연히 ( 은혜 )에도 관심이 없게 된다.
9~12 노아 시대의 상황
(9절)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 동행 )하였으며”
1) 당시 세상은 하나님과의 ( 동행 )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 은혜 )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노아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동행하시는 은혜의 ( 결과 )였다.
2) ( 의인 )이란 행위가 의로운 자가 아니라 그 마음이 하나님에 대해 의로운 자를 말한다. 또한 ( 완전 )한 자란 행위를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 은혜 )를(= 도우심을 ) 의지하는 자를 말한다. 즉 ( 은혜 ) 안에서 노아는 의인이며 완전한 자이다.
3) 결국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내세워서 세상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를 계시하시는 것이다. 어떤 계시인가? - 하나님과의 ( 동행 )(= 은혜 )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은 심판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1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 충만 )한지라”
1) 이는 죄가 넘치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심판 전까지는 죄악 된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패괴나 강포를 인간의 죄악 된 행동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란 말씀이다. 즉 패괴와 강포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 노아 )와 세상을 비교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스스로의 ( 힘 )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패괴이며 강포”(= 죄 )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이 죄가 충만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절은? -
(마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1) 이처럼 ( 자기 )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성경은 ( 죄 )라고 말한다. 즉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4:26 )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오직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보고 ( 자기 )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6:5 )한 모습이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 자기 )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 자기 )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 주 )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 주 )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2) 하나님의 물 심판 (6:13~8:12)
6:13~7:5 방주 건조를 명령하심
(14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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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판 속에서도 ( 긍휼 )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사랑이 ) 표현되고 있다.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 긍휼 )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15절)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1)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방주를 만들게 된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속에 사는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2) 홍수가 없는 현실에서 방주를 만든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러나 노아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 들 )었고 또한 ( 믿 )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 온 )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 끝 )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시 19:4 인용 )
3) 노아는 말씀을 현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증거가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었다. 즉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 심판 )(= 말씀 )을 생각하며 말씀 안에서(= 방주를 만드는 ) 살아가는 삶이었던 것이다.
- 방주를 만든다 = 말씀 ( 안 )에서 산다 = 예수님 ( 안 )에서 산다.
4)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 없 )는 것처럼 보인다. 간혹 자연 재해가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것으로 세상이 망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벽을 넘으며 힘을 합쳐서 풍요로움을 창출해내고 있다. 교인들 역시(= 심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 지금 당장 심판이 임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우선 즐길 것은 즐기고 나중에 심판에 대비하면 된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4) 그러나 심판은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비한다는 것은 자신의 ( 힘 )으로 심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망상이다. 노아는 심판을 대비하기 위해 방주를 만든 것이 아니다. 다만 심판이 있을 것을 ( 믿 )고 하나님의 ( 말씀 )대로 방주를 만들었을 뿐이다. 신자 역시 심판이 있을 것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 안 )에서 사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모습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이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심판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에게 주어진 ( 사명 )이다.
(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1) 창조, 노아의 방주 등의 사건을 과학이나 논리로 증명할 수 없다. 만일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이를 사람들에게 ( 믿 )게 할 수는 없다. 왜 그런가?
2) 노아 홍수를 통해서 신자는 하나님의 뜻(= 언약 )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 언약 )을 하셨고 그 언약을 어떻게 ( 성취 )하시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성경은 언약의 책이기 때문이다(= 구약, 신약 ) 방주의 크기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 언약 )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는 것이다.
<노아 언약>
(5:29)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1) 이 말씀대로 노아에게서 ( 안식 )의 사건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이 안식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먼저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의 관영한 ( 죄악 )을 청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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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나 노아에게는 “( 내 ) 언약”을 세우신다. 즉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 받 )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 순종 )하는 것이된다. 반면에 언약을 받지 않은 자는 120년 동안 하나님의 ( 의 )를 증거해도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된다. / 언약을 받았다 = 순종했다
(벧후 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 의 )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3) 노아가 120년간 언약 안에서 방주를 만드는 그 ( 행위 )가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해석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도 그 증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말씀대로 세상에 죄악이 ( 관영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 교회란 ( 노아 )처럼 떠날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게 살라고 예수께서 불러내신 모임이다.(= 헬라어로 말하시오 ) 이런 자세로 살게 되면 틀림없이 세상과 ( 구별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에서 태어났기에 땅의 일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위로부터 났기에 위의 것을(= < 언약 >을 ) 생각한다.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1) 그런데 방주에는 방향타도 없고 돛대도 없다. 노아가 방주를 제작했지만 정작 노아는 방주를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이 방주의 특징이다. 다만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대로만 가는 것이다.
2) 이것이 하나님의 ( 언약 )을 받은 노아의 삶의 모습이다. 주업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방주를 만드는 일이며, 부업은 먹고 사는 일이다. 자신의 비전이나 꿈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 말씀 )하신 대로 사는 것이다.
<두 가지 의문점>
1. 방주를 만들 필요 없이 에녹처럼 노아를 하늘로 데려가셨다가 홍수가 끝난 뒤에 다시 내려 보내시면 안 되었을까?
1) 그 이유는 노아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 도구 )였기 때문이다. 즉 홍수는 ( 노아 )를 위한 것이 아니라 ( 하나님 )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물 ( 심판 )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세상 사람들은 홍수를 직접 몸으로 맞았고, 노아는 ( 방주 ) 속에서 홍수를 맞이한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노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 방주 )이다. 그러면 우리는 “방주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이때 우리는 성경( 전체 )를 통해서 방주가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노아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 죄인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 속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결국 방주는 ( 모든 ) 성경(= 라틴어로 말하시오 )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 예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그런데 노아 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이 없다. 노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하시고 그 방주를 통해서 방주가 주는 ( 구원 )의 의미를(= 그리스도를 ) 깨닫게 하신다. 이것이 “내 언약” 즉 그리스도가 온전히 성취할 언약이다. 그러므로 방주란 노아가 어디에 있었기에 구원을 얻었는가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사건의 ( 예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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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아와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은 종족보존을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을 멸절시켜도 그 씨가 남아 있다면 결국 세상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1) 노아의 생명은 하나님의 ( 은혜 )에 의해 보존된다. 그러므로 노아와 함께 생명이 보존된 존재는 노아가 받은 은혜에 ( 동참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심판후의 세상은 노아와 함께 생명이 보존된 존재가 씨가 되어서 번성하게 된다.
2) 즉 심판 후의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 보존 )되었음을 보여주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세상이며, 지금도 세상은 ( 은혜 )를 근거로 하여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며 감사치도 않는 자들은 곧 ( 심판 )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7:2절)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여”
1) 방주 안에 왜 더러운 것도 있어야 하는가? - 이것은 하나님의 ( 은혜 )를 계시하는 사건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서 깨끗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것들까지도 함께 ( 구원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이다.
2) 시간적으로는 희생이(= 제사가 ) 뒤에 있지만, 성경 전체를 통해서는 부정한 것의 구원이 정결한 짐승의 희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율법이 제사를 규정하기 전에 나온 희생의 모습으로서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는 ( 언약 )의 사건이다.
3) 즉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 같은 부정한 사람들도(= 죄인도 )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예표들이 이스라엘의 ( 역사 ) 속에서 구체적으로 반복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7:6~12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40주야를 땅에 쏟아졌음
13~24 방주에 들어 있는 생물 이외에 모든 생물이 다 죽음
(7:23절)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1) 방주 밖에 즉 ( 언약 ) 밖에 있던 모든 것은 다 멸절하였다. 이처럼 언약 안에 있는 자란 나의 비전과 꿈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는 언약을 따라 살게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언약의 사람의 관심은 하나님의 언약에 늘 초점을 맞추고 살게 되어있다.(= 벧후 3:1-14)
2) 그러므로 신자의 삶이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삶이다. 재림을 ( 약속 ) 하셨기에 그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수많은 천재지변과 전쟁 등을 보면서도 신자는 동요하지 않는다.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3) 이 말씀은 이런 세상에 ( 기대 )를 하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징조로(= sign으로 ) 받는 것이다. 지진의 원인을 조사하고 천재지변의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재림을 기다리며 살라는 말씀이다.
4) 노아 홍수 사건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은, ( 약속 )의 방주 안에 있는 자만 살았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 정죄 )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노아 홍수를 통해서 본 자연재해에 대한 신자의 관점>
1) 홍수는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주도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신자가 재해로 인해서 피해를 당하는 일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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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연 재해는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하나님이 주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다면 왜 의인에게도 피해가 주어지는가?
3)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면 아예 재해를 내리지 않든가 악인과 따로 구별해서 내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자의 몸이나 재산을 ( 지켜 )주시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오직 세상에 하나님이 ( 누구 )이신가를(= < 존재, 속성, 사역 > ) 알리는 것이다.
4) 즉 재해를 통해서 하나님의 ( 심판 )이 있음을 알리시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을 ( 기억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자의 잠을 깨우는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심판의 시대에서 신자로 하여금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이다.
5) 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판을 받고 몸과 영혼이 사망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재해를 통해서 하나님의 ( 심판 )을 마음에 굳게 세우게 되며 “이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된다.
8:1~5 땅에 물이 감한 후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됨
(2절)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절)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1:9절)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 하나님은 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는가?
2) 물은 원래 천하를 덮고 있었다. 즉 땅은 물 아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에 의해 물이 물러감으로써 땅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즉 땅을 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 말씀 )이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서 세상은 말씀 아래 존재하는 말씀의 나라로 보존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말씀 아래 존재함으로써 말씀에 의해 물러가 있는 물도 땅을 침범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4) 그런데 인간이 말씀을 어겼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물로 덮어 버린 것이다. 즉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서 새롭게 시작하시겠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새로운 사람을 창조해서 시작하시지 않고 왜 노아를 살리셨는가? 그것은 홍수 ( 전 )의 세계와 홍수 ( 후 )의 세계의 다른 점을 계시하시기 위해서다.
5) 홍수 전과 홍수 후의 세계는 분명히 다르다. 홍수 전의 세계는 말씀에 ( 복종 )해야 존재가 유지되는 세계였다. 말씀에 복종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것은 ( 심판 )뿐이다. 만약 노아까지 심판하시고 새로운 사람을 만드셔서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세상이 된다면 또 다시 세상은 ( 물 )로써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물로 덮였지만 ( 죄 )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홍수 후의 세계는 ( 은혜 )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6) 홍수 후의 세계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 후의 세계에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 아 )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의 의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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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1) 노아가 아라랏 산에 오고 싶어서 왔는가?
2) 노아가 방주에서 보여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 죽 )은 자라는 것이다. 스스로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날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주도권의 ( 포기 )를 경험한다. 다만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받을 뿐이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란, 사람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내면 사람의
( 이름 )이 영광을 받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우리가 )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신자는 오직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에 주님의 ( 이름 )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6~12 노아가 방주에서 내어 놓은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음
<비둘기와 까마귀>
(7절)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1) 까마귀는 방주에서 나온 후에 자신의 ( 일 )을 잊어버린 상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비둘기는 그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노아는 방주 밖의 상태를 짐작하게 된다.
2) 그러므로 비둘기는 앞으로 노아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노아는 새로운 세계에서 드러내고 ( 전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심판 속에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생명을 ) 얻은 것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세계에서 노아가 감당해야 할 ( 사명 )이었다.
3) 비둘기가 노아에게 새로운 세계의 상태를 ( 전 )해주었듯이, 노아는 새로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달해야 할 ( 사명 )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까마귀가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땅을 날아 왕래하는, 즉 땅에 ( 집착 )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 왜 비둘기 같은 모습의 성령으로 말씀하는가?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 사람들이 관습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라서가 아니라, ( 노아 ) 시대의 비둘기처럼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 세계 )라는 새로운 생명의 나라를 전달하기 위해 오셨음을 ( 계시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5) 따라서 신자의 삶도 까마귀가 아니라 비둘기와 같은 모습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세상에 증거하고 나타내라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언약 (8:13~9:17)
8:13~19 노아 가족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방주에서 나옴
(17절)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1) 홍수 전의 생육번성(= 창 1:28 )과 홍수 후의 생육번성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2) 홍수 전의 생육번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 복종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러나 홍수 후에는 하나님의 ( 은혜 )로 생육번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하나님에게 불평할 수 없다. 심판을 받았어야 할 세상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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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아의 번제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심중에 이르심
(20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 번제 )로 단에 드렸더니”
1) 이는 장차 나타날 모든 ( 언약 )의 정형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인간들처럼 그냥 예뻐하고 아끼고 쓰다듬으며 사랑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반드시 ( 대가 )를 지불하는, 그것도 자신이 직접 ( 생명 )을 던지는 그런 방식이다.
2) 또한 죄인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또 다른 죄인 하나가 희생되는 그런 모습도 아니다. 희생되는 자는 비 거룩에 속한 것이 아니라 거룩에 속한 자인데 흠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흠향하시고= 기뻐하시고
1) 하나님의 기쁨은 노아가 바친 제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짐승으로 번제를 드리는 그 ( 마음 )에 있다. 노아의 번제에는 구원을 “정결한 짐승의 ( 희생 )의 덕분”으로 보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 기쁨 )이 있는 것이다.
2) 마찬가지로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은, 자신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에 두는 그 ( 마음 )에 있다. 자신의 열심 있는 행위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 믿 )는 것보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없다.
(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21절)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 저주 )하지 아니하리니”
1) 인간은 누구나 악한자로 태어난다. 그러나 신자는 악함 때문에 ( 저주 ) 받는 일은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 때문이다. 즉 신자에게는 ( 심판 )이 없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 안 )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 안 )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불로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 저주가 없을 것의 근거는 노아가 드린 ( 번제 )에 있다. 하나님의 심판과 상관없는 안전지대는 정결한 제물의 ( 희생 ) 안에 있는 것이다. 즉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은혜를 ( 아 )는 자들을 향한 약속으로 해석된다. 세상의 심판은 사람의 악함 때문이 아니라(= 원래 악하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써 살게 됨을(= 구원받음을 ) 믿지 ( 않 )는 것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21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 악 )함이라”
1) 악한 인간에게서 선한 행동은 나올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 행위 )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일 뿐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기초로 해서 ( 행위 )를 판단한다. 때문에 남을 해롭게 하지 않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으면 모두 착한 ( 행위 )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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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죄인들에게 ( 기대 )를 하지 않으신다. 왜 그런가? -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곁에 두고서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힘으로 비 거룩을(= 죄성을 ) 극복하여 이 땅에서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한다. 이 어리석은 몸부림은 ( 신 )이 되고 싶어 하는 타락한 아담의 ( 형상 )을 날 때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언약이란 인간의 ( 행위 )와는 철저하게 대립된다. 그래서 신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 언약 )을 향해 성취를 소망하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 언약 )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은 최고의 영광을 취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 ( 영광 )을 돌린다”는 개념을 사람들이(= 죄인들이 ) 큰 업적을 이루고 기념물을 남기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 믿는 것이다.
4) 그러나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아들을 통해서 자신이 죽을 ( 죄인 )임을 깨닫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피 흘리신 십자가”를 ( 믿 )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유일한 길이다.
(22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1) 하나님이 노아와 맺으신 그 ( 언약 )대로 낮과 밤, 사시사철, 심음과 거둠이 있는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려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당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짐승의 ( 희생 )의 덕분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은 마땅히 ( 심판 )의 대상인 것이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감사하지 않으며, 당연한 자연의 운행인 듯이 여기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는 모습을 통하여 ( 정죄 )하는 것이다.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 경고 )를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 정죄 )하고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일기>
(2월 10일)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가 다 들어오고 나니까 문이 저절로 닫혔다.
(2월 17일) 방주로 들어온 지 칠일 째. 비가 온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마구 쏟아진다. 사람들이 저렇게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배의 문을 내 힘으로는 열 수 없다....
(3월 27일) 40일 동안 비가 줄기차게 오더니 이제 멈추는 것 같다. 며칠 전 까지는 산들이 보였는데, 이제는 온통 사방에 물만 보인다. 사람들도 짐승들도 다 죽었겠지....
(7월 17일) 홍수가 난지 벌써 5개월이나 되었다. 도대체 언제 이 방주는 항해를 그만 둘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데 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방주가 멈추었다.
(10월 1일) 방주가 움직이지 않은 지 삼 개월 째가 된다. 산봉우리가 몇 개 보인다.
(11월 11일) 물이 감해졌는지 알고 싶어서 까마귀를 보내었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비둘기를 보냈는데 비둘기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그냥 되돌아 왔다.
(11월 18일) 비둘기를 내어 보내니, 저녁때 돌아왔는데 새 감람 잎사귀를 물고 왔다.
(11월 25일) 비둘기를 내어 보냈더니, 자기가 살 곳이 있었든지 돌아오지 않는다.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방주 뚜껑을 열고 보니 땅에서 물이 걷혀졌다.
(2월 27일) 홍수가 난지 1년하고도 17일째다. 땅에 물이 다 말랐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우리를 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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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복을 주시며 언약을 세우심
1)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신다. 이 하나님을 성경은 “( 전능 )하신 하나님”으로 말씀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전능이란 ( 언약 )과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성경전체를(= Tota Scriptura ) 읽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창 17:1-2)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 전능 )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 언약 )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히 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 약속 )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 맹세 )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 약속 )을 받았느니라“
2)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 언약 )을 생각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적용시키려고 한다. 즉 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을 나의 힘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으니, 내가 열심히 기도하여 ( 전능 )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병원치료, 예배당 건축 등의 상황에서 )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여 인간의 열심하는 행위들을 모아낸 것일 뿐이다.
3)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능은 어떠한 전능인가? 즉 하나님의 ( 언약 )을 이루어 내시는 일에 전능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은 것과 출애굽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 언약 )을 성취하기 위하여 모세의 부모를 움직이셨고, 바로를 움직이셨고, 홍해를 가르셨다. 물론 이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 전능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 전능이 나타난 근거는 하나님의 ( 언약 ) 때문인 것이다.
(1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1) 1;28의 반복이다. 하나님은 홍수로 죄를 청소하시고 다시 언약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7절에서 반복 )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2절)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1) ( 언약 )에 의해서 짐승들은 그들끼리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
( 밖 )에 있게 되면 짐승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나운 짐승의 밥이 안 된 것도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일반적 은총이다 )
2) 칼빈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경계로 인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우리 인간이 살아남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짐승들 속에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어 사람을 해칠 수 없게 하였다”라고 말했다. - 이 보호가 바로 ( 언약 )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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