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의 조화

 

은사의 조화  


은사의 조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성령의 은사에는 특별 은혜적인 은사와 일반 은혜적인 은사가 있다. 복음을 제대로 전파하고 교회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특별 은혜적인 고린도전서 12장의 기적 행하는 은사는 물론 로마서 1장 6-8절의 일반 은혜적인 생활의 은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적행하는 은사와 같이 드라마틱한 것도 소문 없이 소리없이 조용히 섬기는 생활의 은사도 중요하다. 생활의 은사는 기적행하는 은사에 비해 화려하거나 센세이셔널하지는 못하지만 교회의 건덕과 삶의 향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금과 같이 귀중한 은사이다.

온 교인들이 방언이나 예언만 하고 손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잘 가르치지를 못하고, 서로 권면하고 위로하지 못하고, 서로 구제하지 못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 교회는 얼마 가지 않아서 혼란에 빠지고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기적행하는 은사를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생활의 은사를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어느 은사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령이 주신 선물이다.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ㅏ해 사용되어야 한다. 신기하고 센세이셔널한 은사에 치중하는 사람들은 생활의 은사와 더불어 균형을 취해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항상 말썽이 나게 마련이다. 너무 신기한 것만 추구하여 \"작은 일의 날들\"(슥 4:10)을 소홀히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일반 은혜적인 생활의 은사만을 강조한 나머지 특별 은혜적인 은사를 무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기적은 사도 시대에 끝났다는 잘못된 신학으로 인해 특별 은혜적인 은사를 배격하고 심지어는 사단의 장난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별 은혜적인 은사들을 무시하면 교회가 이지적, 형식화 관념화되기 쉽다. 신앙생활이 건조하고 냉랭하며 고백 위주의 타성적인 신앙인이 되기 쉽다. 일상 생활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정도 이상으로 학(學)이나 전통을 강조하여, 활기있고 기쁨에 넘치고 신나는 신앙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

신앙은 바른 교리와 신앙고백의 뼈대 위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역동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내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해 가는 것이 아닌가? 어느 하나를 강조하고 다른 하나를 무시할 때 교회라는 유기체는 영양 실조에 걸려 절름발이가 되거나 기능 장애를 일으킬 것이다.

몇 년 전에 미국과 이라크가 다시 한 번 전쟁의 순간까지 갈 정도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중동지역에서 감돈적 있다. 미국의 TV는 만약 미국과 이라크가 다시 전쟁을 한다면 미국은 어떤 신무기로 전쟁을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방영했다.

이전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왕은 이 전쟁을 성전(Holy War)이라고 부르면서 전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지만 전쟁은 단 시일 내에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최첨단 기술을 갖춘 미국의 레이다 장치가 목표물을 탐지하면 고성능 미사일이 목표물을 정확히 파괴하므로 아무리 종교로 무장되고 군인 정신이 뛰어난 이라크군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기적행하는 은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전능하신 성령의 권능이 마귀의 견고한 진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능력으로 쳐부신다. 기적행하는 은사를 가진 주의 사자가 인도하는 집회에서는 영혼의 추수가 괄목할만하게 일어난다.

말로 하는 전도가 마귀의 견고한 진을 향해 소총을 쏘는 것이라면 기적행하는 은사를 사용한 전도는 고성능 미사일을 쏘는 것에 비교될 수 있다.

그만큼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적행하는 은사는 성경 기록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도시대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적행하는 은사의 기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