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강- 소돔의 심판 / 창18장

소돔의 심판 - 창세기 11 강
 

 창세기 제 11 강

 

(2) 소돔 성에 대한 심판 (18:16~19:)

< 나그네 >

1) 소돔 성에서 나그네를 대접한 유일한 사람인 롯은 구원을 받았다. 물론 롯이 나그네를 대접하게 된 것은 ( 아브라함 )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2) 소돔 성에 의인이 없었다는 것은 나그네를 대접한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소돔은 나그네를 대접하기는커녕 오히려 상관하겠다고 했다.

(신 10:18-19) “( 고아 )와 ( 과부 )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 나그네 )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 나그네 ) 되었었음이니라”

3) 약속의 땅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생기는 것은 죄악이다. 그러므로 ( 약자 )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드리는 모든 제사와 율법의 준수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이 된다.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4)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약자가 ) 대우를 못 받는 그런 곳은, 성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슥 7: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5)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악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 교만 )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 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6) 그러면 율법에서 말하는 나그네란 누구인가? -

-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 율법 )은 말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 ( 율법 )을 이용하여 나그네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율법의 ( 문 )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서 율법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6~21 여호와께서 소돔 성의 일을 아브라함에게 알게 하심

< 아브라함의 기도 >

1) 주장들 = 간절히 기도하여 롯을 구원한 중보기도의 능력이다. / 전도할 사람을 정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구원하는 능력이다. /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지 않도록 의인이 되어 기도해야 한다.

2) 그런데 기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 본능 )적으로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란 세상의 기도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우리의 조상들이야말로 기도의 사람들이다. 정성을 다하여 나무에도 돌에도 해와 달에게도 조상에게도 빌고 빌어 왔다.(= 절에서 하는 영험한 능력의 기도를 보았는가? )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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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7:11)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 좋은 )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 성령 )을 주시지 않겠느냐”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 좋은 것 즉 성령을 받게 되면 내가 죄인이기에 ( 의 )가 없음을 알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 복 ) 있는 사람이다.

(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눅 18:7) “그 밤낮 부르짖는 ( 택 )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2)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란 세상의 욕심을 이루지 못한 한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증거로 인한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한 자들의 원한이다.(= 계 6:9-11 )

3) 주님의 말씀과 그 증거를 인한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그런 상황에서라도 ( 기도 )를 쉬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러한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이다.

 

(17절)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 하나님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심으로 기도할 ( 내용 )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기도할 내용은 롯을 위한 것이다. 응답도 하나님께서 하신다. 기도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벧후 2:7-8)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2) 아브라함의 기도는 ( 중보 )자의 기도이다. 이 기도에 의해서 롯은 성안에 일어나는 음란한 행실을 보고서 고통하고 그 마음이 상하였다. 이것이 롯을 의롭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의 일들을 보면서 고통이 오고 마음이 상한다면, 우리의 중보자가 우리를 위하여 ( 기도 )하고 계시는 결과이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3) 이 중보자의 완전한 중보의 기도 덕분에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음란함과 악을 보고서 마음을 ( 상 )하고 고통하게 되는 것이다.

4) 우리가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중보자의 자격이 아니라 그 중보자의 은혜를 입고 중보자 ( 안 )에 있기에 서로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기에 스스로가 아닌 중보자 안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8절) “아브라함은 강대한 ( 나라 )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 복 )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언약하셨음을 ( 강조 )하는 표현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에 대해서 그 어떤 ( 행위 )도 하지 않았고, 이를 위해서 열심히 ( 기도 )(= 요구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 즉 언약백성 안에는 약속이 ( 담겨 )져 있기에 하나님의 뜻을 ( 알 )고 그 뜻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 육체 >의 소욕에서 < 성령 >의 소욕으로 )

(고전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 희미 )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 부분 )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 온전 )히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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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 택 )하였나니”

(민 22: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 복 )을 받은 자니라”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방인 발람을 통해서 복의 의미를 확증해주신다. 이미 확정된 사실로서의 선택을 ( 복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 수정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택자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내용을 ( 믿 )는 자를 말한다.

2) 하지만 불택자는 선택을 ( 빼 )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다. 즉 구원과 심판은 아직 ( 미 )확정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정해져 있지만, 그 원칙을 이루는 내용은 순전히 ( 인간 )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즉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원칙이 ( 정 )해져 있고, 이를 사람이 ( 믿 )으면 구원이라는 것이다.

3)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혹은 억지로 의와 공도를 준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목표를 자신이 ( 정 )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신에게 ( 요구 )(= 기도 )한다. 즉 자신이 노력하지만 안 되는 나머지 부분을 신이 도와서 ( 채워 ) 주거나 혹은 ( 수정 )해서 달성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4) 그러나 택자는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과 환경이 하나님의 ( 예정 )된 뜻임을 알고 범사에 ( 감사 )할 따름이다. 즉 채워달라거나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선택된 자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 의 )와 ( 공도 )를 준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신자의 ( 안 )에 담겨져 있음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것을 ( 이루 )려 함이니라”

1)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자기의 뜻이 아니라 ( 하나님 )의 뜻에 의해 살아갈 사람인 것을 보여준다. 신자 역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도록 ( 택 )함 받은 존재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선택을 구원의 의미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구원만을 위한 선택이라면 선택된 순간 모든 것이 ( 종결 )된다.

3)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일을 위해 신자를 ( 도구 )로 부르시는데 그것을 ( 선택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 일 )을 위한 예정이다.

4) 때문에 선택받은 자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 일 )을 깨닫고 바라보게 된다. 즉 나에게 발생한 일(= 사건과 환경 )들이 ( 우연 )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한 간섭임을 믿으며 사는 것이다.

 

(20절)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1) 소돔 성의 사람들은 롯의 집에 온 두 천사를 내어 놓으라고 협박한다.(= 19장 ) 즉 소돔의 ( 행위 )와 아브라함의 ( 행위 )를 대조시킴으로써 악이란 무엇인가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어떤 행위인가? (= 언약백성의 고난과 비 언약백성의 죄 )

2) 결국 소돔 성의 죄악은 천사가 아브라함을 방문하고, 다시 소돔 성을 방문함으로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소돔 성을 ( 심판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 도구 )로 쓰이게 되었던 것이다.(= 소금과 빛, 산 위에 있는 동네 )

3) 이렇듯 증인이란 신자가 하늘의 ( 가치 )관으로 사는 삶을 말한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 하나님 )이 이루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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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산 )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고전 6:7) “차라리 ( 불의 )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 속는 ) 것이 낫지 아니하냐”

 

22~33 아브라함이 소돔 성에 대한 용서를 여호와께 구함

(25절)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1) 아브라함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 공의 )는 의인과 악인을 다르게 대우하시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사고이다. 이처럼 인간 자체의 가치, 즉 행동이나 성품 등에 의해서 ( 의 )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의문은 합당한 것이다.

2) 그러나 의인으로 평가될 만한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 의 )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자기 의로 ( 구원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 의 )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 증거 )를 받은 것이라”

 

(24절)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1) 의인은 성 밖으로 불러내신 후에 악인만을 멸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합당한 부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브라함은 의인을 위해 심판 자체를 ( 포기 )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 의인 )의 생존을 위해 세상을 보존하는 것이다.

2) 오늘날 교인들의 요구도 자신들을 위해서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 않다.

3) 이스라엘의 편한 삶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란 ( 세상 )을 떠나서 약속하신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 출애굽 )을 통해서 가르치시는 것이다.

4) 그러므로 신자의 ( 몸 )은 세상에 있지만 그 ( 마음 )은 약속의 땅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을 꿈꾸지 않게 된다. 또한 신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 새 ) 하늘과 ( 새 ) 땅을 주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절대로 아름다워 질 수 없다. 악이 멸망하지 않는 한 세상은 악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자란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을 증거해야 할 사람으로 ( 보냄 )을 받은 자이다.

 

(32절) “내가 십인을 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1) 의인만 있으면 분명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실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 의인 )으로 인해서 악인이 심판에서 구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도 ( 없 )었음을 알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 세상 )의 형편임을 보여준다.

2)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있었다. 선지자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이 ( 의인 )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판명되었다.

3)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만이 ( 의인 )이시고 우리는 모두 ( 악인 )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고백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는 그 어떤 악인의 죄도 대신할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 의 )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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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날 이 세상에도 의인은 없으며 ( 심판 )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 심판에서 분명한 것은 “의인이 있으면 ( 산 )다”는 것이다. 의인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 법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내신 ( 의인 )을 믿는 것이 죄인 된 우리가 ( 사 )는 길이다. 의인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는 전혀 의가 ( 없다 )는 것을 의미한다.

(롬 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9:1~11 소돔의 죄악

(5절)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1)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은 나그네를 ( 영접 )한 자로, 소돔은 나그네를 ( 핍박 )하는 자로 대조하여 악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2) 나그네, 즉 약자를 핍박하는 것을 성경은 ( 악 )으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을 두고 있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는 ( 교만 )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의 ( 은혜 )를 모르는 그 교만에 의해 약자가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겔 16:49-50)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3) 이처럼 하나님은 그 속에 하나님을 두고 있지 않은(= 하나님의 < 은혜 >를 모르는 )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하신다.

 

(8절)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1)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비정상적인 본색이 드러난다. 롯의 결정은 그만큼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 이런 식으로만 전도가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이 비유는 정상적인 존재와 비정상적인 존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전쟁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런 치열한 전쟁 속에서 신자는 다음과 같이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마 10:28-29)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2) 그리고 신자가 세상에서 이런 비장한 각오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소돔의 멸망 사실과 연관시키시는 것이다.

(마 11:23-24)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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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돔 사람들은 멸망의 날까지 자신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가버나움 사람들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전도를 거부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비생산적인 것은 당연히 거부한다.

4) 그러나 두 딸을 희생하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 나그네를 보호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롯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서 자신을 죽이시는 예수님의 행위는 이해할 수 있는가?

5)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맥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의 결과였다. 이러한 ( 십자가 )의 정신을 이해한다면 롯의 행위가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롯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아직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 외면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6) 이처럼 세상을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단지 ( 이용 )할 뿐이다. 천국에 갈 수 있다는 ( 유익 )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말하고 믿어주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7) 그러므로 이제 ( 성령 )께서는 신자의 삶을 십자가의 정신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신다. ( 유월 )절의 정신으로 살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게 하신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 마음이 우리에게서 세상에 증거되게 하신다.

 

12~22 여호와께서 롯의 가정을 구원함

(16절) “그러나 롯이 ( 지체 )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 여호와 )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1) 소돔의 멸망이 예고되었지만 롯의 가족은 소돔에서 빠져나오기를 지체한다. 왜 그런가? - 멸망의 징조가 보이지 ( 않 )았기 때문이다. 지옥이 ( 눈 )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심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천국도 ( 눈 )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원을 기뻐하지 않는다.

(롬 8:24) “우리가 ( 소망 )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 롯 )처럼 세상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에 미련이 있는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고 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구원은 ( 은혜 )(= 인자 )다.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어 세상에서 건지셨기 때문이다.

3) “여호와의 인자”란 나를 도와서 세상의 일이 잘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멸망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내시는 것이다. 그리고 ( 성령 )께서는 신자가 세상에서 멸망의 것이 아닌 생명의 것에만 계속 관심을 두고 살아가게 하신다.

 

23~29 롯과 두 딸의 구원

(29절)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1) 아브라함이라는 인간 자체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 언약 )을 생각하셨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 된 것은 ( 언약 )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받은 언약적인 ( 삶 )의 모습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자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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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20절)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1) 은혜라는 말은 했지만 그 은혜에다 자기가 생각한 구원의 방식을 더해보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용하려고 한다.

2)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이 해 낼 수 있는 행위를 섞어서 구원의 결과를 ( 확인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감사하지만 나의 조그만 소원 하나만 은혜로 이루어주시면 여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롯은 자신의 능력 ( 안 )이라고 여긴 작은 마을로 피신하게 되었다.

 

(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눅 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1) 우리도 롯의 처 못지않게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을 뒤돌아본다. 그럼에도 소금기둥이 안 된 것이 ( 기적 )이다. 바로 이것이 은혜의 위력이고 인자의 능력이다. 참으로 구원받은 자라면 롯의 처를 생각할 것이다.

 

30~38 롯의 두 딸이 아비와 상관하여 각각 아들들을 낳음

1) 성경이 말하고 있는 어두움의 의미는 ( 빛 )만 있고 ( 의 )만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빛을 알고자 한다면 ( 어두움 )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세계는 서로 ( 전쟁 )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 전쟁 )의 역사가 이를 계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는 ( 자기 ) 힘으로 어두움을(= 세상을 ) 이겨보려고 노력하다가 패배한 계시의 역사이다.

2) 그런데 이스라엘을 패배케 하시는 분은 ( 하나님 )이시다. 즉 전쟁 속에서 하나님의 의의 ( 승리 )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전쟁에 능하시고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처음부터 바라보라는 것이다.

 

(32절)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1) 구원이란 항상 온전치 못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다. 빛의 세계란 어두움이 어두움으로 ( 짙어 )지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어두움이란 어느 가정, 어느 환경을 가리지 않고 다 있게 된다. 그러므로 어두움 때문에 구원이 ( 방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우리가 어두움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문제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2) 롯의 가정은 심판에서 면제되었지만, 동굴 속에 들어가자 그들 속에 있던 인간의 본성인 생육번성의 비전과 소망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자손 번식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내는 것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본능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하나님의 지시라고 볼 수 없는 비양심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이러한 양심의 금지마저 넘어설 정도로 강렬하다. 이것이 바로 어두움의 특징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이런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밝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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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의 이런 본성을 강제로 금지할 그 어떤 힘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 의 )롭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구원을 받았지만 육체가 있는 이상은 여전히 ( 어두움 )(= 불의가 )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1) 인간이 새로운 민족으로 번성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압과 암몬 민족뿐만 아니라 ( 모든 ) 민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의 총회는 오직 여호와의 사랑에 의해 탄생된 민족으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모압 여인 룻은 다윗 왕의 반열을 낳게 된다.(= 여기서 영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

2) 즉 구원이란 인간의 모든 조직과 혈통을 초월하는 다른 본질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주도권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롯의 가정이 구원받은 것은 롯이 단지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 저항 )할 수 없는 은혜의 결과이다.(= 불가항력적 은총 )

3) 우리들은 하나님의 ( 언약 ) 밖에 존재했던 이방인이다. 구원이란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우리가 모압이며 암몬이다. 즉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적 ( 어두움 )의 요소에 의해서 생겨난 혈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지 않더라도 무방한 어두움의 자식들이다. 그저 자손번식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 여인 룻처럼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로서 무상으로 우리를 건져 주셨다. 그래서 신자는 더 이상 자신의 가치나 자존심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3) 아브라함의 위치 (20:)

20:1~7 그랄 왕의 이야기

(6절)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1)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인해서 아비멜렉이 ( 억울 )하게 피해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원리를 모르고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결과이다. 성경은 아비멜렉을 무엇이라고 전제하고 있는가? -

2)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 죄 ) 없는 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몇 가지 옳은 행동을 하고 양심적으로 산다고 해서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죄는 인간관계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 하나님 )과의 관계에서의 잘못됨을 말하는 것이다.

3) 이러한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우셨고, 예수님의 역할로 인해서 죄 있는 우리가 ( 의인 )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아브라함을 도구로 내세워서 보이시고 계시는 것이다.

4) 결국 거짓말한 아브라함이 아닌 아비멜렉을 책망하시는 것은, 아비멜렉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 약속 ) 안에 있는 아브라함이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가를 드러내시기 위함인 것이다.

5) 그렇다면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삼는 것이 왜 하나님께 범죄 한 것이 되는가?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는 행동 자체는 하나님의 ( 약속 )을 훼방하는 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범죄를 막으신 것이다. 결국 범죄란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막으신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며 범죄함을 막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