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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 13 강
(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 12장부터 21장까지 일어난 사건들과 그 의미를 말하시오.
2)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은 사건은 하나님께서 ( 말씀 )하신 대로 된 것이다. 즉 아들을 얻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 소원 )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25년 동안 아브라함의 인간적 소망을 포기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 인내 )를 보게 된다.
3) 이것이 하나님의 ( 말씀 )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언약과 성취를 ) ( 계시 )하여 놓았기 때문이다.
(2) 시험과 언약 재확인 (22:)
1) 제사의 본질은 ( 대신 ) 죽는 그 제물 때문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가 용서받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잘해서가 아니라 ( 대신 ) 죽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도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있다. 모든 제물을 ( 대신 )해서, 즉 지금까지 드렸던 제물과 앞으로 드려질 모든 제물의 값을 다 치르고 ( 대신 ) 죽은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이다.
< 경외와 시험 >
22:1~19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 시험 )하시려고”
(12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 경외 )하는 줄을 아노라”
1) 신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하나님을 ( 경외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독자 이삭보다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분이었다.(=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생각해보자 )
2)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외심은 ( 시험 )을 통해서 나타났다. 이처럼 시험이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본색을 드러내고 신앙의 모습을 확인하는 하나님의 ( 사역 )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시험을 통과한 자는 상을 주고 통과하지 못한 자는 벌을 준다는 ( 이방 )종교적인 해석이나 설교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그런데 시험이 있는 이유는, 신자가 ( 죄악 )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죄악 세상에서 신자는 항상 유혹을 받으며 마음속에 ( 욕심 )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 욕심 )에 끌려 미혹됨이니”
5) 때문에 하나님은 신자의 마음을 ( 낮 )추시기 위해서, 즉 하나님의 백성( 답 )게 만들기 위해서 시험을 하신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 시험 )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 알 )려 하심이라”
(시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 시험 )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 단련 )하소서”
6) 이처럼 귀한 것들이 잘려져 나가고 사라져 버리는 ( 시험 )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가장 크신 분으로 생각했던 선진들의 ( 경외 )심을 성령께서 신자에게 입혀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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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21)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7)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낮아지도록 시험하시는가?
(전 3: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 짐승 )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 우리가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될 때에 시험을 ( 이길 )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상태에서 구원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 교제 )하고 있음을 온몸(= < 전 >인격 )으로 느끼게 된다. 이것이 마음이 낮아진 상태이며 하나님을 ( 경외 )한다고 하는 것이다.
(5절)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8절) “아들아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1) 이 말씀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 구원 )의 법칙이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제물을 준비하고 주도하시는 ( 제사 )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삭은 이 번제를 아브라함이 드리는 제사로 보았다. 그래서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는 질문을 한 것이다.
2) 그러나 구원이란 하나님이 친히 벌이신 ( 잔치 )에 우리가 초대받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은 지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친히 ( 통치 )하고 계심을 알고 있는 것이다. 즉 번제를 드리러 가는 아브라함은 성령의 ( 감동 )을(= 성령의 지도와 인도 ) 받고 있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는 상태란, 나름대로 악을 물리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 실제 )로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그 감동하심(= 성령의 지도와 인도 )을 즐기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 제물 >
1) 제물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말씀은, 인간이 가지고 나온 것은 그 어떤 것도 제물로 ( 인정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내가 열심히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 이방 )종교적인 생각이다. 자기의 ( 복 )을 위해서 자신이 ( 제물 )을 준비하고 자신이 주도하는 ( 제사 )는 이방종교의 제사이기 때문이다.
2) 구원의 법칙은 오직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 제물 )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이 제물을 준비하려고(= 행위 )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을 바라보며(= 은혜 ) 그 제물의 ( 희생 )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13절) “아브라함이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 하나님이 준비하신 수양이 아니었다면 이삭은 죽었을 것이다. 결국 이 기사는 죽었어야 할 내가 하나님이 ( 준비 )하신 제물 덕분에 살았다는 ( 구원 )의 법칙을 말해준다. 곧 그리스도로 인한 신자의 부활을 예표하는 사건이다.
2) 부활이란 육신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 죽음 )을 경험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 부활 )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에게는 죽음의 경험이 주어지면서부터 ( 부활 )이요 ( 생명 )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사는 모습이 당연히 보여지게 된다.(= 요 11:25-26 )
창세기 제 13 강
3) 그러므로 신자는 이미 죽었다가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의 ( 힘 )으로 살아보려는 헛된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자신의 ( 힘 )으로 살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 죽음 )의 경험을 거친 신자는 인간의 그런 노력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게 된다. 내 힘으로 신앙을 지킬 수도 키울 수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 부활 )이요 ( 생명 )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본다.
4) 믿음이(= 성령이 ) 충만하다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종교적인 행위가 많은 것을 믿음이 충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도 할 수 있다는 이 생각이야말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 제물 )로 인해,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것을 모르기에 나오는 생각이다.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1) “여호와 이레”란 하나님이 ( 준비 )하신 제물로 인해 독자 이삭이 살았음을 의미한다.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신자에게는 “( 여호와 이레 )”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 곧 우리의 심령이 ( 여호와 이레 )가 되는 것이다.
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나에게 ( 복 )을 주기 위해서 ( 세상 )의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로서 복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는데 다만 우리가 그 복을 받을 ( 준비 )가 안 되어서(= 그릇을 < 엎어 > 놓아서 ) 못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3) 그 준비란 복을 받을 수 있는 ( 자격 )(= 행위 )을 말한다. 주일성수, 기도, 십일조, 헌금, 열심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 세상의 종교행위일 뿐이다. 나를 위해 예수님을(= 사실은 우상을 ) 찾는 것일 뿐이다.
4) 그러나 신자는 아브라함처럼 ( 시험 )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고 단련하면서 마음이 더욱 더 그리스도께 매인 자가 되어간다. 이것이 진정한 ( 여호와 이레 )로 살아가는 것이다.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 문 )을 얻으리라”
(시 143:2)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1)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 참여 )하는(= 회복 되는 )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게 하셨고, 또한 그 아들을 위하여 수풀에 수양을 걸리게 만드셨다. 이로 말미암아 ( 죽음 )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씨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다.
(15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 두 )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2) 두 번째란 첫 번째 일로 말미암아 두 번째 맹세가 그 효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맹세의 내용은 ( 대적 )(= 원수 )의 세력을 멸하시는 것이다.(= 창 3:15 ) 즉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 세상에서 ( 대적 )의 세력을 이겨내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도 같이 번성한다는 것이다.
3) 여기서 우리는 부르심이 보여주는 ( 순종 )의 의미를 보게 된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는 도구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도구로서 역할을 감당한 것을 성경은 ( 순종 )이라고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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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께 받을 선물을 미리 알고 ( 의도 )적으로 순종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 순종 )할 수 있는가?”하는 생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택한 어떤 인간의 도구로서의 ( 역할 )(= 기능 )이 드러날 때, 하나님은 그것을 ( 순종 )이라고 부르신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 자식 )과 ( 권속 )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 말 )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5) 즉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 명령하신 것,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 아브라함을 순종하게 하신 것 ) 등 모두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약속이라는 선물을 받고 그 ( 내용 )을 확인하지도 않고 교리적으로 선물이라고 외치고만 있는 것을 믿음이 있는 ( 신자 )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갈 3:7-8) “그런즉 ( 믿음 )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 아브라함 )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 이방 )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의 )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 복음 )을 전하되 모든 ( 이방 )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1) 그런데 믿음으로만 의인이 되는 원칙이 ( 아브라함 ) 때 이미 확정이 되었다면, 이후에 그 어떤 조치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 율법 )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 믿음 )의 원칙을 무산시키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갈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 언약 )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 율법 )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 3:21-22)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 죄 )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 약속 )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 하나님께서 주신다고해서(= 신의 응답이라고 해서 ) 다 구원되는 선물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참된 선물이란 의로운 ( 제사 )에(= 율법의 핵심 ) 의해 죽음마저 극복한 사건(= < 부활 > )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 내용 )으로 한 선물만이 진정한 구원의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내용물이 없는 선물은 다 거짓 선물이다.
3) 그래서 이 선물의 참된 의미를 계승시키기 위해서 선물의 ( 내용 )을 모세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 율법 )이다. 이 율법으로 인해 그 어떤 인간도 자기 자신의 ( 행함 )으로는 도저히 구원이 가능치 않음을 분명히 하시는 것이다. 즉 율법으로 인해 모든 것들을 ( 죄 ) 안에 가두어 두신 것이다.
4) 그러므로 우리가 순종한다고해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아는 상태에서 순종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 모든 뜻을 알고 순종하신 분은 예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5) 즉 예수님의 ( 순종 )으로 인해서 지상에 ( 의 )로운 백성이 출현했고, 이들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 생명 )을 얻는(= 대적의 < 문 >을 얻는 ) 무리가(= < 교회 >가 ) 되는 것이다.
창세기 제 13 강
6) 그러므로 구원의 ( 서정 )(= 여정, 과정 )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결코 우리의 순종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 순종 )과 연결되도록 예정하신 하나님의 공로에서이다.
(3) 사라의 죽음 (23:)
1) 사라의 생애는 아브라함과 ( 함께 ) 한 생애이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훈련을 받을 때 사라도 동일하게 신앙의 훈련을 받았다. 즉 언약의 자녀는 ( 사람 )이 낳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 )이 낳으셔야 됨을 보여 주시는 ( 도구 )로 선택된 것이다.
2) 아브라함에게는 ( 할례 )를 행함으로, 사라에게는 아예 자녀를 낳지 못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늙어서 ( 경수 )가 끊어진 상태를 통해서 보여주셨다.
23:1~20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믿음
(9절)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1) 헷 사람들이 매장지를 무상으로 이용하라는 것은 사라의 장례에만 국한 된 것이지 자자손손 그 매장지를 이용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의 죽은 자를 ) 그러나 아브라함은 호의를 거절함으로 사라의 장사를 단지 죽은 시신을 매장하는 차원으로 생각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즉 사라에게는 ( 죽음 )을 극복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사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 약속 )을 믿는 자는 죽음을 극복한 ( 생명 )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1)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 태가 이미 죽었으나 그 죽음 속에서 죽음을 극복하는 ( 생명 )의 힘이 다시 주어졌다는 말씀이다.
(히 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2) 분명 죽어서 그 뒤에 결코 나타날 자들이 없어야 하는데,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 씨 )들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이러한 사라에게서 아브라함은, 죽음조차도 극복한 하나님의 약속의 ( 나라 )를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라의 죽음도 영원한 죽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소유하여 사라와 함께 ( 후손 )들이 대대로 묻히기를 원했던 것이다. 즉 사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 안에 함께 하기를 소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삭과 야곱과 요셉, 리브가, 레아 등이 모두 다 죽음을 극복한 생명의 씨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하나님에 의해서 대대로 ( 계승 )되었다.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1) 이처럼 유언으로 남기면서까지 사라와 함께 매장되고 싶어 했던 것은 사라에게 함께 했던 하나님의 ( 약속 )에 참여하고 싶어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막벨라 굴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 사라 )와 함께 매장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창세기 제 13 강
2) 그러면 약속의 자녀가 무덤에서 보여주는 생명의 힘에서는 어떤 효과가 보여지는가?
(왕하 13:20-21)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1) 엘리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죽은 채로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기사는 평소에 엘리사가 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 약속 )에 관한 사명이었음을 말해준다.
2) 즉 하나님의 ( 약속 ) 안에서만 죽음의 힘이 꺾이고 생명의 힘이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이는 예수님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마 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서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3) 아브라함은 이런 이유에서 막벨라 굴을 자기 ( 소유 )로 영구히 삼음으로 이 세상 한 가운데 ( 생명 )의 세계가 존재함을 증거하려 한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 후에 자기 ( 소유 )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청산한 것은 아니다.
(히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 나은 ) 본향을 사모하니 곧 ( 하늘 )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 예비 )하셨느니라”
4) 이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더 나은 본향,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놓으신 성에서 만나고 있다. 신자들도 거기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 헷 족속의 세계와 아브라함의 세계 >
1)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 소유 )함으로써 헷 사람의 땅에 아브라함의 땅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땅은 헷 사람의 땅처럼 육신을 위한 ( 소유 )를 위해 사는 땅이 아니라 죽은 자가 묻히는 땅이었다. 보이는 ( 소망 )에 의하면, 헷 사람의 땅은 곡식의 경작을 통해서 부와 풍요로움이 존재하는 ( 생명 )의 땅이지만, 아브라함의 땅은 오직 죽은 시신만 존재하는 ( 죽음 )의 땅일 뿐이었다.
2) 그러나 이 두 세계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헷 사람의 땅은 보기에는 부요함과 풍요로움이 있지만, 사실은 죽은 자들의 ( 소유 )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의 세계에도 죽음은 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결국 풍요와 부요함은 한 순간일 뿐, 그 끝은 ( 영원 )한 사망이라는 것이다.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 죽 )은 자로다”
3) 그러나 아브라함의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자의 세계이지만, 그 세계에는 하나님의 ( 약속 )이 있다. 즉 죽은 자에게서 ( 생명 )을 잉태하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이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