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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 17 강
1) 야곱의 ( 복 )을 쟁취하고 지키려는 스스로의 투쟁은 외삼촌의 집에서도 변치 않고 지속된다. 그러나 야곱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야곱과 ( 동일 )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 이해 )하지 못해서 야곱의 가족들 간에 발생했던 불협화음이 라반의 가족들 간에도 그대로 펼쳐진다.
2) 라반은 야곱을 이용해서 재산 증식을 꾀한다. 두 딸을 시집보내는 조건으로 야곱을 14년간 무보수로 부렸고, 계약이 끝나 떠나려는 야곱을 붙잡으며 다시 6년을 더 일하게 했다. 20년간 야곱에게 열 번이나 품삯을 속이고(= 31:41 ) 노동력을 착취했다.
3) 두 딸 레아와 라헬도 아버지 못지않은 ( 이기 )주의와 (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간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종들까지 동원해서 ( 경쟁 )을 한다. 이들이 자녀를 낳을 때마다 붙이는 이름은 두 여인의 죄의 본성을 ( 질투 )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담고 있다.
4) 라반의 집에서도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한 채, ( 복 )(= 28:20 / 먹을 양식, 입을 옷,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 등 )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장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 무 )관심하다. 야곱의 삶 속에서의 몸부림은 ( 언약 )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야곱의 복을 향한 투쟁은 언약과는 전혀 다른 길을 향해 치닫고 있다.
< 인간의 욕망 - 이스라엘 12 지파 >
29:31~35 레아가 아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를 낳음
(31절)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 총 )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1) 야곱은 라헬만을 사랑했다. 그래서 레아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울한 자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레아는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자신을 돕기 위해 ( 아들 )을 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보라 아들이라, 들으심, 연합함, 찬송함 ) 그런데 이것은 레아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 모든 ) 사람들의 생각이다.
(35절)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2) 이처럼 ( 자기 )중심적인 이해는 하나님에 대한 ( 오해 )를 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 인간 )을 돕는 분이 아니라 당신 ( 스스로 )를(= 예수님을 ) 돕는 분이시다.
30:1~8 라헬이 몸종 빌하에 의해 아들 단과 납달리를 낳음
(6절)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1) 선악과 이후의 인간의 사고는 하나님에 대해서까지도 ( 선악 )을 기준하여 합리적으로 ( 판단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권선징악, 상선벌악, 인과응보 ) 이 체계를 벗어나면 그것을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까지도 반발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악한 자들이 약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악인들을 왜 그냥 두시느냐는 것이다.
2) 라헬과 레아는 자식 경쟁을 하고 있다. 자식을 주셨다는 것을 근거로 하나님을 각기 ( 자기 )편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경쟁을 하는 그들에게 벌을 주시지 않고 오 창세기 제 17 강
3) 만일 하나님께서 레아와 라헬의 행위를 꾸짖으셨다면, 그들은 과연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겠는가? 이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인간이 자신의 악을 깨닫고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느냐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만으로 인간이 고침을 받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의미가 없고 필요 없는 헛된 일에 불과할 뿐이다.
4)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부터 이미 말씀은 존재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거역한 것은, 이미 인간은 말씀에 대해 바르게 반응 할 수 있는 능력을 ( 상실 )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인데,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이 책망하셨다고 해서 죄를 버리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5) 그래서 하나님은 ( 아들 )을 주시는 것이다. 아들을 주심으로써 이들이 더욱 더 아들로서 ( 경쟁 )하도록 만드신다. 즉 인간의 ( 악 )한 속성을 낱낱이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장차 이 아들들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형성된다. 다툼과 경쟁 속에서 형성된 이스라엘이기에 이들 역시 죽어야 할 존재이지만, 이들이 어떻게 생명을 얻게 되는가를 계시하고자 하신 것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 자기 계시 )”로서의 사역(= 일 )이다.
6) 즉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악함이 ( 드러나 )게 하심으로써, 악함에서 “어떻게 생명을 얻고 구원 받는가”라는 길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아와 라헬에게 자식을 주신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 복 )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이 그들 ( 편 )이라는 증거도 아니다.
7) 복이란, 부요함이 주어진 가운데서도 ( 돈 )을 보는 것이 아니라 ( 그리스도 )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믿음을 ( 확인 )(= 시험 )하기 위해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원하는 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절하기도 하시는 것이다.
8)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누군가에게는 부자의 역할을 맡기시고 누군가에게는 가난한 자의 역할을 맡기실 뿐이다. 따라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저 사람은 얼마나 받았는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신 주님의 ( 길 )이 어떤 길인가를 살피면서 부지런히 그 ( 길 )을 좇는 것이다.
9)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살았든 신자가 도착할 곳은 ( 동일 )하다. 그곳에서는 세상에서 맡았던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나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 은혜 )만 자랑할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천국의 모습이며, 이 천국을 지금 미리 누리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로 모이는 ( 교회 )인 것이다.
(고후 1: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8절)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1) 앞서 보았듯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은 인간의 치열한 ( 경쟁 )으로 인하여 지어졌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욕망, 경쟁, 시기, 질투 등의 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인간의 죄가 얼마나 ( 심각 )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시는 길 외에는 달리 구원의 길이 ( 없 )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계시로서 드러내는 것이다.
30:9~13 레아가 몸종 실바에 의해 아들 갓과 아셀을 낳음
창세기 제 17 강
(9절)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1) 라헬과 레아는 서로 하나님을 ( 자기 )편으로 간주한다. 라헬과 레아가 낳은 자식들의 이름을 보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 관계 )를 보여주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자식을 주신 것을 증거로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2) 과연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은 ( 성령 )이다. 죄인 된 우리의 본성을 다스리시며 천국으로 이끌어 가시는(= 지도와 인도 ) 성령이야말로 참으로 좋은 선물이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 좋은 )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 성령 )을 주시지 않겠느냐”
3) 그러나 사람들에게 좋은 것은 성령이 아니라 ( 세상 )의 것이다. 세상의 것을 취하려면 당연히 ( 경쟁 )이 유발되게 되어있다. 오늘날 신자들도 하나님이 누구편이고 누구를 사랑하느냐로 ( 경쟁 )한다. 그 사랑의 증거는 “누가 더 ( 잘 )되는가?”로 결판이 난다.
4) 이런 현상은 경쟁하는 것 자체가 ( 악 )임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것이다. 형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발을 씻기며 ( 위로 )가 되는 대상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오셨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고후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4~21 레아가 또 아들 잇사갈과 스불론과 딸 디나를 낳음
(17-18절)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일을 ( 성취 )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일을 이끌어 가신다. 라헬과 레아에게 자식을 주신 것도, 그들의 경쟁과 싸움을 통해서 인간의 ( 악 )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2)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근거로 하나님을 ( 내 )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 관심 )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 악 )한 존재임을 간과한 것이다.
22~24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해 주셔서 요셉을 낳게 하심
(22-24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
1) 성경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인간의 속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경의 인물들이 일반 역사의 인물들과 다른 점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 계시 )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 죄 )가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들의 죄 된 모습을(= 예를 들어 야곱과 두 자매 ) 드러내기 위하여 ( 율법 )이 가입한다.
창세기 제 17 강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 하나님께서는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은총을 베푸시지만, 라헬에게도 은총을 베푸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 긍휼 )이다.(= 다말, 라합, 룻, 마리아 ) 이처럼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이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은총을 입어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간 것이 참된 ( 복 )이며, 여기서 끊어지는 것이 ( 저주 )다. 세상에서 아무리 저주스러운 모습으로 평가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다면 ( 복 )이다.
< 이스라엘과 성도 >
1) 라헬과 레아의 시기와 경쟁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인간의 ( 조건 )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타락한 후로는 자기가 ( 주인 )이 되어서 철저하게 자기의 ( 이익 )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계신다.
2) 그런데 왜 그런 자들을 택하셔서 자기의 백성을 삼으시는가? 이는 성경을 읽는 내내 계속되는 질문과 답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자기 ( 영광 )을(= 이름을 )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 상태를 ( 회복 )하시고 유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이다.
(엡 1:6)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2절)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절)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3)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 말씀 )으로 이루어 내셨지만, 재창조는 말씀이 ( 육신 )이 되어 오셔서 당신의 ( 피 )를 흘리심으로 재창조를 하시는 것이다. 즉 당신의 ( 피 )로 만들어 내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것 보다 죄인을 의인 만드시는 것이 더 어렵고 힘이 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러한 구속의 은혜를 보이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 곧 ( 구약성경 )이다.(= 신 7:6-11 )
(신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 사랑 )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 지키 )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 행위 )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 긍휼 )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5) 그러므로 이제 신자는 더욱 은혜의 풍성함에 거하는 것이다.(= 딛 3:6-11 )
(딛 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 무익 )한 것이요 ( 헛 )된 것이니라”
6) 신자는 이미 ( 경쟁 )이 끝나고 ( 안식 )이 임한 사람들이다. 천국은 경쟁이 끝나버린 나라이다. 그 천국을 약속으로 받았다면 우리의 삶에서도 ( 경쟁 )이 끝났으므로, 이제는 ( 안식 )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히 4:9-11) “그런즉 ( 안식 )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이미 그의 ( 안식 )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 힘 )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창세기 제 17 강
(창 35:18)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 그러면 라헬과 레아 중에서 과연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아들을 많이 낳은 레아인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한 라헬인가?
2) 라헬은 죽고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라헬은 죽어가면서 출산되는 자식의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고 짓는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세상만사를 달리 보고 있다. 라헬의 마지막 자식은 결코 슬픔의 자식이 ( 아니 )라는 것이다. 도리어 최종 승리를 보여주는 “(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베냐민으로 이름을 바꾼다.
3) 야곱은 이제 인간의 ( 육 )적인 싸움에서 살아남은 자가 승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승리는 죽음 속에서도 자식을 갖게 한 ( 하나님 )에게 있었던 것이다. 즉 레아, 라헬, 야곱이라는 ( 육신 )들 자체 내에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이런 육신의 경쟁 속에서도 자식을 갖게 하셨던 하나님이 최종 ( 승자 )라는 것이다. 이러한 승자의 모습을 슬픔을 안고 ( 죽어 )가는 라헬을 통해서 야곱은 보게 되었던 것이다.
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라헬에 대한 야곱의 ( 사랑 )을 통해 당신의 사랑의 실체를 전달하신 것이다. 구원이란 결코 인간의 육적인 욕망의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 계시 )하신 것이다.
< 야곱의 고생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 >
25~36 야곱이 외삼촌과 품삯의 표징을 정하고 일을 시작함
1) 야곱의 일생에서 보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생각들
(1)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 하셨다면 장남으로 태어나게 하셔야 했다.
(2) 이삭이 언약을 이해하게 해서, 차남이라도 야곱을 축복하게 했어야 했다.
(3) 그러면 장자권 때문에 거짓말도 안했을 것이고 도피생활도 없었을 것이다.
(4) 이외의 질문들 - 아담의 추방, 아브라함의 부르심, 이스라엘의 출애굽 등
2) 변하지 않는 대답
(신 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야곱이 생각하는 복의 개념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인생을 부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출세와 성공이 나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4) 이는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서도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생각과 동일한 것이다.
(27절)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1)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은혜를 ( 알 )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은혜를 ( 잊 )게 만들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보면 정확하다.
창세기 제 17 강
2) 인간의 행동은 그 행동으로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 따라서 참된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의 ( 악 )한 본성을 유감없이 들추어내서, 일을 한 내가 용서받은 ( 죄인 )임을 고백하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3) 흔히 세속을 잊고자 깊은 산 속이나 한적한 장소에서(= 기도원 ) 홀로 기도와 수양에 정진한다고 하지만, 이런 행위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 창작 )해 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중에 기도원을 내려 올 때에는 어떤 성과가 있으리라는 ( 욕망 )이 전제되어 있기에 자기만의 은혜를 ( 창작 )해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행위들이 경건하게 보이지만 성경을 펼쳐놓고 보면 참으로 위험한 종교( 놀이 )일 뿐이다. 마귀와 합작해서 은혜( 놀이 )를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3) 왜냐하면 특별한 ( 시간 ), 특별한 ( 장소 ), 특별한 ( 상황 )이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는 평생을 걸쳐서 ( 지속 )적으로 드러나야 하기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 은혜 )가 터지게 되는 것이다. 이 은혜로 인해 우리는 언제든지 자신의 ( 죄인 ) 됨을 더 깊이 자각하게 된다.
(행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4) 인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뜻을 빙자해서 ( 탐욕 )을 채울 수 있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 위장 )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살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는 행위를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곱과 라반의 관계에서 이 모습이 나온다.
(28절)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1) 야곱 때문에 라반이 부자가 되었지만, 야곱이 간다고 하니 이제야 품삯을 정하라는 것이다.
(31절)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1) 라반은 품삯을 주지 않으려 하고(= 35절에서 그 속셈이 드러난다 ),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빙자해서 라반의 전 재산을 차지하려는, 즉 복된 사람이 되려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37-43절 ).
37~43 야곱의 양떼와 노비와 짐승의 소유가 풍성하여짐
(43절)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1) 라반의 재신을 차지하려는 야곱의 계락과 행위가 정당하지 않음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도와서 많은 양떼를 차지하도록 하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사람들은 일이 계획대로 잘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그 일에서 ( 은혜 )를 알게 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 죄 )에서 그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의 악한 본심이 그대로 ( 드러나 )도록 그의 계획을 ( 이루어 )주시는 쪽으로 일하시는 것이다.
3) 즉 야곱의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아니라, 야곱의 ( 악 )한 본성이 ( 드러나 )게 하심으로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함께 하심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 악 )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의 ( 잘못 )된 뜻과 계획이 성취되게 하신 것을 두고, 이를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이 ( 지혜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