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제 20 강
< 창 1~36장 정리 >
1) 구약성경은 ( 언약 )과 ( 성취 )의 역사가 ( 유기 )적, ( 점진 )적으로 이루어져 나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2) 창세기 1장에서 36장까지의 기사는 ( 언약 )의 역사이다. 이 언약은 유기적 점진적인 모습을 띠고 이루어져 나가므로 제목을 붙인다면 언약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 1장 ~ 11장 = 언약 / 12장 ~ 36장 = 언약
3) 언약의 내용 : 1. 자손(= 국민 ) 2. 땅(= 영토 ) 3. 통치(= 주권 )
이 언약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것을 ( 구약 )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눅 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1. 인류의 ( 시조 )와 언약 - (= 1:~11: )
1) 언약수립의 ( 준비 )와 시행(= 1:~2: )
⑴ 언약수립의 ( 준비 )로서 세상을 ( 창조 )하심
⑵ 아담 ( 창조 ) 후 ( 예정 )하신 언약을 수립하심(= 언약수립의 시행 )
2) ( 자손 ) 언약으로 인한 언약자손의 보호(= 3:~11: )
⑴ ( 아담 )의 심판과 보호(= 3: ) ⑵ ( 가인 )의 심판과 보호(= 4: )
⑶ ( 인류 )의 심판과 보호(= 5:~11: )
2. 선민의 ( 열조 )와 언약 - (= 12:~36: )
1) ( 아브라함 ) 언약(= 12:~20: )
① 땅 언약(= 12:~14: ) ② 자손 언약(= 15:~16: ) ③ 통치 언약(= 17:~20: )
2) ( 이삭 ) 언약(= 21:~26: )
⑴ 언약계승의 ( 준비 ) ⑵ 언약계승의 ( 실현 )
3) ( 야곱 ) 언약(= 27:~36: )
⑴ 야곱이 받은 언약 ⑵ 야곱이 받은 언약의 성취
3. 언약의 의미
1) 언약수립의 주체 : 여호와 하나님
2) 언약수립의 근거 : 여호와 하나님의 ( 작정 )과 ( 예정 )
3) 언약수립의 이유 : 하나님을 여호와로 계시하시는 한 방편
( 구약 = 여호와 / 신약 = 예수 그리스도 )
4) 언약수립의 구조 : ① 인류의 ( 시조 )와 언약 ② 선민의 ( 열조 )와 언약
5) 언약수립의 목적 : ( 언약 )을 세우시고 ( 성취 )하시는 하나님을 ( 역사 )속에서 알게 하여 경외케 하심
(31:13) “나는 ( 벧엘 )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 벧엘에서 하나님이 ( 언약 )하시고 야곱은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 서원 )하였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세겜에서 머물면서 단을 쌓고 있다.
창세기 제 20 강
2) 신자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야곱처럼 얍복의 경험들을 하고 산다. 즉 주님 앞에서
( 깨어지 )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깨어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진 후에 우리가 머물러 있어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라는 말씀이다.
3) 신자는 당연히 ( 벧엘 )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 언약 )대로 떠나지 않고 있는 야곱(= 신자 )에게는 ( 사건 )과 ( 환경 )을 일으켜서 떠나게 하신다. 이렇게 하심으로 믿음의 사람은 “더 나은 ( 본향 )을 향하여 떠나면서” 세상을 사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 본향 )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4) 신자에게는 아직 가야할 곳이 남아 있다. 더 나은 본향이 있다. 바로 이곳을 향한 걸음이 얍복 사건 이후에 계속되어야 할 ( 신앙 )의 걸음이다.
< 야곱의 일생을 통해서 나타난 언약의 성취 >
1) 우리 생각 - 야곱이 말을 안 들으면 갈아치우고 다른 사람을 세우면 된다.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벧엘까지 단번에 가게 하신다.
2) 하나님 생각 - 사건과 환경을 일으켜서 ( 끝 )까지 가게 하신다.(= 성도의 견인 ) 그러나 단번에가 아니라 ( 한 걸음 )씩 가게 하신다. 만일 되돌아가거나 우회해서 간다면 돌아간 만큼 그 자리에서 다시 ( 벧엘 )로 올라가야 한다.
3)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시는 ( 신실 )하심이다.(=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사역 )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여도 구원의 ( 확신 )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야곱을(= 신자를 )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 열심 )” 때문이다.
34:1~13 세겜이 디나를 강간하고 야곱에게 통혼을 요구함
(5절)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1) 야곱은 땅을 산 후 상당한 기간을 세겜에 살고 있었다. 그 땅의 풍속이(= < 세속 >주의 ) 궁금해질 정도로 오래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절 ) 그런데 그들의 풍속이란 기껏해야 ( 외모 )를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강제로 취하는 정도였다.(= 2절 )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 아름다움 )을 보고 자기들의 ( 좋아 )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2)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아들들이 오기까지 잠잠히 있었다. 그 이유는 하몰의 말이 좋게 들려서 일수도 있다. 또한 야곱의 전력에 비춰보아서, 통혼을 하게 하면 세겜의 재산들이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아들들의 행동에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30절)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10절)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 결론적으로 이런 세겜 성 사람들의 생각은 신자를 향한 세상의 ( 유혹 )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하나의 ( 사회 )단체로서 교회와 세상이 ( 관계 )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란 일반적으로 말하듯, 단지 신을 믿고 안 믿고의 관계가 아니다. 믿는 신이 같고 다르고의 관계도 아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관계는 태초 이전부터 정해진 ( 무 )관계인 것이다.
창세기 제 20 강
(눅 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 하였느니라 )”
2) 세겜 성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야곱의 가족이 이방인과 ( 통혼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상식대로 대가를 치르면 디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얼마든지 혈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 이해 )하는 시각이다.
3) 세상 사람들은 신자가 하나님의 ( 말씀 )을 따라 움직이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들과 똑같이 세상에 ( 기업 )을 굳게 세우고 세상 것을 얻기 위해 힘써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4) 사실 많은 교회가 종교 혹은 사회단체로 전락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 구별 )이라는 의식자체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들이(= < 세속 >주의, < 유대 >주의, < 적그리스도 > ) 교회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교회에게 야고보 사도는 편지하는 것이다.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 열두 지파 )에게 문안하노라”
5) 그러나 교회는 세상에서 굳게 세워지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게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 ( 기업 )을 얻으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자를 향한 세상의 ( 유혹 )이다.
14~24 하몰과 세겜이 속아서 백성으로 할례를 받도록 함
(23절) “그리하면 그들의 생축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 말대로 하자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리라”
1)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는 항상 자기 자신이 있다. 즉 자신에게 ( 유익 )이 되는 길을 따져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타산 )
25~31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을 쳐서 디나를 구출함
(31절)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1) “내가 먼저 피해를 입었으므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불신자와 동일하게 이해타산에 따른 ( 복수 )일 뿐이다.
(출 21:23-25)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 계명이란 당한 그대로 갚아주라는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 자체를 ( 허용 )하지 않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받은 ( 그대로 ) 갚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받은 만큼만 돌려준다면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 복수에는 자신의 ( 분노 )가 담겨서, 즉
( 더해져 )서 나간다. 사람의 분노라는 감정은, 한 대를 맞으면 몇 배로 되돌려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3) 이런 감정에다 대고 하나님께서는 당한 만큼만 갚으라는 말씀을 계명으로 정하시는 것이다. 즉 계명의 말씀 자체가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나 이 사건은 이들의 행동이 그르다는 도덕적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있는 ( 야곱 )으로 인해서 이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창세기 제 20 강
(욘 1: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1) ( 언약 )을 잊어버리고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살고 있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이 떨어진다. 즉 이 말씀은 항상 언약으로 있었지만, 목숨이 위태로워야만 야곱은 주님의 ( 음성 )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라반 - 에서 - 이방인들이라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한 걸음씩 벧엘로 올라가는 ( 죄인 )의 모습을 야곱을 통해서 볼 수 있다.
2) 그러나 야곱의 편에서 보자면 이것은 괴로운 일이다. 딸의 강간, 아들들의 살인, 이방인들의 복수 등은 처절할 정도로 두려운 일들이다. 과연 하나님은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게 하시는가?
3) 그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시면 사람들은 생명의 길로 가려고 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 택 )하심을 받았기에 다른 나라보다 죽도록 ( 고생 )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벧엘로 돌아가지 않는 야곱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 (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의 모습이며, 그래서 이들의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 계시 )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사 1:4)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 버리며 )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 멀리 )하고 물러갔도다”
1) 이스라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은 흔적뿐인데도 주님께로 ( 돌아 )오지 않는다.(= 사 1:6 ) 우리 주위에서도 매를 맞아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아이들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은 매를 ( 더 ) 맞을 뿐이다.
(사 31:6-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 돌아 )오라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 한 ( 은 ) 우상 ( 금 ) 우상을 그날에는 각 사람이 ( 던져 )버릴 것이며”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때리시는 이유는 ( 돌아오라 )는 것이다. 돌아오면서 그들이 의지하고 범죄하던 은 우상 금 우상을 던져버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앗수르가 사람의 ( 칼 )로 하지 않았는데 다 물러간다는 것이다.(= 사 31:8 )
< 33-35장에서 보는 하나님의 나라 >
1) 33장과 35장에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새롭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중간의 34장에는 복수가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여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2) 야곱의 아들들은 장차 이스라엘을 이룰 12지파이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이 세상에 대한 복수를 행하고 있다. 비록 ( 정의 )를 내세워 복수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또한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행할 수 있는 ( 의 )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 역시 ( 죄인 )일 뿐이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장차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의 ( 죄 )를 보게 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들이 결코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하시고,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해서 ( 구원 )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가를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 나라 )”는 인간들로 하여금 착하고 의로운 행동을 만들어 내는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 불의 )함을 알고 하나님의 ( 은혜 )를 바라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