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의 발견과 개발
은사의 발견과 개발
은사의 발견과 개발
내가 어떤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본인이 잘 안다.
어떤 사람은 노래 솜씨가 있어 찬양의 은사로 연결되고 어떤 사람은 전도의 은사가 있어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일을 만사를 덮어두고 전도한다.
어떤 사람은 애들만 보면 귀찮아 하는데 다른 사람은 내가 같이 섬긴 적이 있는 어떤 전도사는 애들만 보면 귀여워 죽겠다고 한다. 주일학교 교사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겹고 힘든 일인대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은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기적행하는 은사도 하나님께서 초능력적으로 주시기 때문에 본인이 아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안다.
본인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은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는 사장이 경리사원도 되고 판매사원 역할도 한다. 그러나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전문화된다. 이때는 인재를 적성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회사에 유익하다.
경리 적성을 가진 사람이 판매를 담당하고 판매 적성을 가진 사람이 경리를 맡는다면 그 사람은 곧 사표를 쓰고 말 것이다. 억지로 자리를 지키더라도 능률이 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하여 적재적소에서 섬길 때 본인도 보람과 기쁨이 넘치고 교회도 든든히 서 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은사를 제대로 개발하여 적소에서 섬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다행히 요즈음에는 많은 교회에서 은사발견 및 은사배치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여러 가지 사역에 부딪쳐 보라.
전임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전임사역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오랜 준비와 훈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전임사역에 투입된다. 은사 개발도 마찬가지다. 초신자가 회심하자 말자 바로 어떤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자연적인 재능과 관련이 있는 음악, 행정, 섬김 등의 은사는 즉각 기능을 발휘하겠지만 이것들조차 오랜 세월을 거쳐 정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교만으로 인해 공동체의 유익이나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 유익은 커녕 말썽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에 충실하다 보면 자신의 은사를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모든 은사가 한꺼번에 완벽하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중에 다듬어지고 깊어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언젠가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전문가가 작성한 <은사발견표>를 가지고 교인 각자의 은사 발견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믿음 생활을 오래 했지만 교회의 부서에서 별로 봉사한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고 활발하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러 부서에서 활발하게 봉사한 사람은 금방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또 그 은사가 활발하게 나타났다.
또한 연로한 어느 목사도 은사를 점검해 보았는데 여러 가지 은사가 골고루 활발하게 나타났었다.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사람을 상대로 목회하는 동안 이전에는 없었거나 미약한 은사들이 사역을 통해 개발되고 강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적행하는 은사들이 많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런 은사들은 사역이나 섬김을 통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고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드러내시거나 다른 은사자의 안수나 나눔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심령을 살펴보라.
어떤 일이나 사역에 대해 유난히 마음에 부담이 온다든가, 어떤 일을 하면 기쁨이 넘친다든가, 다른 사람은 힘들어 하는 일을 본인은 쉽게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잘 처리하는 경우 그런 은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자만 보면 긍휼의 마음이 생기는 사람, 힘든 사람만 보면 내 일 제쳐놓고 도와주는 사람은 긍휼의 은사, 섬김의 은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은사자를 통해 발견된다.
은사 개발에 대해 이 분야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특히 기적행하는 은사들은 이런 은사자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안수를 통해 전수되거나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속에 어떤 은사가 잠재해 있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특히 예언의 은사나 능력행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을 통해 잠재해 있던 은사를 발굴하여 활성화 할 수 있다. 이것은 본인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잘 모르므로 은사발견표를 통해서도 잘 발견되지 않지만 성령께서 미리 가르쳐 주시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필자를 위해 기도하던 중, 필자에게 어떤 은사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실제로 그런 은사가 당장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한 기회―엄격하게 따지면 하나님의 섭리이다―에 갑자기 그런 은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은사자의 안수를 통한 경우이다.
성경은 이런 경우를 더러 기록한다.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impart)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롬 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떤 능력자를 통해 은사를 전수 받는 것을 부인한다. 이들은 성령이나 은사 받는 것을 논리적이고 신학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에는 위와 같이 은사를 나누어 주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표현 방법의 차이, 해석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엄격하게 말하면 지구는 자전하고 공전한다. 자전하기 때문에 밤낮이 있고 공전하기 때문에 4 계절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통상적으로 아침에는 해가 뜬다고 하고 저녁에는 해가 진다고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왜냐하면 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성령이나 은사는 물건이 아니므로 사람이 나누어 줄 수 없다. 성령이 그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고전 12;11). 그러나 성경도 통상적인 표현으로 사람이 성령이나 은사를 나누어 준다고 기록하고 있다(롬 1:11; 행 8:17; 19:6).
마술사 시몬은 큰 능력을 행하던 사람인데 빌립이 행한 능력이 더 큰 것 인줄 알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고 그를 따라다녔지만 빌립을 통해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와서 안수를 하니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
시몬은 성령을 나누어주는 능력이 탐이 나서 그것을 돈 주고 사려고 했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19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한 시몬을 심하게 책망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했다(20-25절).
그러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동기로 성령을 나누어주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롬 1:11에 나오는 \"(은사를) 나누어 주다\"는 말은 메타디도미인데 영어로는 impart이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적행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임파테이선(impartation)을 받기 위해 그런 집회에 참석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신앙생활은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어디 거기에만 계시나? 하나님의 편재성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신 성령을 나누어준다는 말인가\"라는 엉뚱한 이유를 같다 붙인다. 이는 영적 진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가진 성령의 영감을 받기 위해 엘리야의 제자로 택함을 받은 후에도 엘리야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나 따라다녔다. 하나님이 회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시기 전에 엘리사는 엘리야를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따라다녔고 마침내 엘리사야가 하늘에 오르기 전에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받았다(왕하 2:1-18). 이후 엘리사는 즉시 능력 사역에 임하였다.
남미 아르헨티나 부흥운동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클로디오 프레이전 목사는 신학교 교수로 섬기면서 6년 동안 목회했지만 교인이 5, 6명에 머물렀다. 목회를 그만두려고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신학생들이 모두 졸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신학생들이 전날 밤에 카를로스 아나콘디아라는 부흥사의 집회에 밤늦게까지 참석하는 바람에 피곤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신학생들이 수업에 소홀할 정도로 밤늦게까지 참석했을까. 궁금한 프레이전은 자신이 실제로 참석해 본 결과 그의 집회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력하게 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신유와 축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프레이전은 곧 자신을 아나콘디아에게 소개하고 아나콘디아의 허락으로 그와 교제를 시작하여 매주 한 번 정도씩 아나콘디아의 안수를 받으면서 능력을 전수받았다.
이후 프레이전의 교회는 성도가 1만 명 이상의 큰 교회로 성장했으며 매년 성령대축제를 개최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을 나누어 주고 있다.
토론토 공항교회의 존 아놋 목사 부부도 은혜를 사모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프레이전 목사가 개최한 성령대축제에 참석하여 안수를 받은 후 불이 임하여 토론토 축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전도자인 스티브 힐 목사도 남미 아르헨티아의 부흥집회에 참석한 후 불을 받아 미국 펜사콜라의 브론스빌교회에 부흥의 불을 지폈다.
필자도 이런 기름부음을 얻기 위해 능력이 일어나는 현상을 십 여년 이상 쫓아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전폐하고 그런 장소에만 쫓아다녔다는 말은 아니다.
십 년 이상 그런 기름부음을 사모하면서 구했다는 말이다. 물론 필자는 혼자의 기도를 통해 체험을 한 것이 많지만 그런 장소에서 안수를 받고 은혜를 사모한 것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령의 기름부음은 은사가 있는 사람을 통해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기적행하는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기도는 물론 은사자를 통해 안수를 받으면 훨씬 빨리 개발, 활성화되어 실질적인 사역에 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딤후 1:6을 예로 들면서 은사는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그러나 이 구절은 디모데가 이미 받은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사장시켜 놓은 것을 다시 활성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아마 디모데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전에 받은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딤전 4;14).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특히 기적행하는 은사의 경우, 주변 사람, 소속 교회나 교파에서 핍박하고 부인하기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고 사용하지 않고 사장해 두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받은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해야 한다. 불일듯하게 하다는 말은 꺼져가는 불씨를 키우기 위해 부채질을 하듯 사장된 은사를 다시 활성화시키라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