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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 21 강
< 야곱 언약을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장자 만들기 >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 할례 )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 언약 )이니라”
1) 하나님께서는 “할례 언약”을 통해서 자기( 백성 )을 만들어 내신다. 그런데 이 언약은 ( 이삭 )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즉 이삭만이 언약을 계승할 ( 장자 )라는 것이다. “할례 언약”에 의해서 태어난 처음 자녀(= 초태생 )인 이삭만이 ( 제물 )이 되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장자의 삶이란 ( 희생 )의 삶이다.
(창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네 아내 ( 사라 )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 영원 )한 언약이 되리라”
1) 언약은 사람의 동의나 협력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믿거나 말거나 이삭은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삭(= 웃음 )이라는 이름은 “언약”을 후손들에게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즉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반드시 그로 믿게 하여 언약을 그대로 이루시는 것이다,
2) 그래서 이삭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언약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 장자 >의 ) 희생은 ( 성령 )을 받음으로써 시작된다.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3)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오직 ( 예수 )께만 성령이 내리셨다. 이제 아들은 성령을 받음으로써 ( 장자 )로서의 “희생의 삶”이라는 운명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장자의 신분”을 “세상의 ( 복 )”이라고 오해한 4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창 12:3) “너를 ( 축복 )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 저주 )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 이삭은 아브라함 언약을 ( 자기중심 )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의 소원대로 자신을 축복하는 ( 에서 )가 복을 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창 27:4) “나의 즐기는 ( 별미 )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 축복 )하게 하라”
2) 즉 에서가 만든 별미는 이삭을 ( 축복 )하는 행위이며,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는 것은 별미를 먹은 ( 대가 )인 것이다.(= 별미 축복 ) 그러나 이삭은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에서를 ( 장자 )라고 생각했지만, 에서에 대한 모든 일은 어긋나기만 했다.
3) 결국 이삭은 “( 자신 )의 선택”을 거부하시는 “( 하나님 )의 선택”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이삭 자신이 언약에 의해서 축복을 하는 자였지만, 그 언약이 “이삭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주어진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4) 이처럼 언약은 이미 ( 야곱 )을 향하여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인간들의 찬성이나 반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창 27:41)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1) 이 싸움은 창 3:15 이후,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시작으로 해서 유기적 점진적으로 진전되는 모습이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야곱의 ( 환란 )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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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 야곱의 피신은 야곱이 스스로 복을 ( 쟁취 )했듯이 스스로 그 복을 ( 유지 )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라반에게 이용만 당하게 된다. 결국 야곱은 라반의 집을 떠나게 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스스로 복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동원해서 라반의 좋은 것들을 빼내게 된다. 이 모습이 스스로 복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 야곱 )적 방법이다.
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행동과는 관계없이 언약을 이루신다. 그리고 야곱은 이처럼 언약을 이루시는 ( 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에서 난 의다.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1) 과거를 회상할 때, 리브가가 받은 축복의 예언대로 된다면 원수의 성문을 열어야 하는 자는 ( 야곱 )이었지만, 실제로 원수의 성문을 여는 자는 ( 하나님 )이셨다. 그리고 원수는 ( 가나안 ) 족속이 아니라 ( 야곱 )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하나님이 성취하는 것이다.
2) 이처럼 자기를 이기는 것이 원수를 이기는 것임을 야곱의 기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는 인간의 의가 아닌 “( 하나님 )의 의”이신 그리스도로만(= 롬 3:21 )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구약 성경이 내내 증거하였고, 또한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 앞에서 증거하였던 것이다.
(행 6: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 이곳 )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 규례 )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행 7:48)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 손 )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 내 )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사 66:1 이하 )
(행 7:52-53)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 의인 )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 의인 )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 천사 )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 “천사”란 하나님 사역의 < 구약 >적 표현이다 )
3) 유대인들은 구약의 핵심을 “( 성전 )과 ( 율법 )”으로 해석하여 이것을 통한 자신들의 의를 쌓는 것에 열중했지만, 스데반은 구약의 핵심을 “( 의인 )의 오심”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를 ( 부정 )하는 스데반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 의 )니 차별이 없느니라”
1) 하나님의 언약이란 야곱이 아닌 ( 이스라엘 )을 사용하심으로 성취하신다. 즉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룩거리는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 있는 ) 것이고, 그전의 정상적이었던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 없는 )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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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브라함 언약도, 아브라함의 행함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오직 ( 하나님 )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이다. 이 사실이 믿어질 때 이것이 ( 의 )가 되는 것이며, 이를 “믿음으로 ( 말미암는 ) 의”라고 하는 것이다.
3) 이제 야곱은 자기 방법을(= 세상의 < 처세 >술 ) 버리고 이스라엘(= 싸움꾼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이름답게 ( 세상 )의 가치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원수를 만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 공자 >의 처세술 )
4) 그러므로 세상 처세술의 입장에서 보면, 싸움꾼의(= 이스라엘 ) 삶을 사는 구약의 선지자들은 가장 융통성이 없는 자들이다. 이와 같이 “선지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 또한 융통성이 없는 ( 좁은 ) 길을 갈 수밖에 없다.
5) 자아가 깨어지면서부터 야곱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 원수 ) 됨을 알게 되었다.(= < 벧엘 >에서 ) 떠날 때는 야곱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이스라엘이다. 즉 야곱은 죽고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벧엘의 하나님”(= 엘벧엘 )은 “( 이스라엘 )의 하나님”이며, 이 하나님은 ( 야곱 )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는 다 죽이시는 것이다.
(4) 야곱과 에서의 번창 (35:~36:)
1) 27장부터 시작된 야곱의 주요한 생애는 일단 35장에서 마무리가 된다. 야곱의 생애는 ( 벧엘 )에서 시작하여 ( 벧엘 )에서 끝이 난다고 말할 수 있다. ( 언약 )(= 복 )을 받은 장소도 벧엘이었고 언약을 ( 확인 )받는 장소도 벧엘이었기 때문이다.
2)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야곱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 세상과 ( 구별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속임을 당하는 것 같으나 재물을 얻게 하셨고, 죽임을 당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적들을 두려워 떨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향해 이 세상에서 ( 나그네 ) 길을 가고 있는 성도와 끝까지 동행하실 것이다.
(고후 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35:1~8 벧엘의 단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 야곱이 약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오신다. 즉 야곱을 벧엘로 가게 함으로써 언약을 ( 기억 )하게 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하시겠다는 것이다.
(요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고후 12: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 약한 )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 능력 )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 강함 )이니라”
2) 그러므로 이 명령은 “벧엘의 ( 언약 )”을(= < 천국 >을 ) 기억하라는 말씀이며, 언약대로 성취하심에 대한 ( 확인 )을 의미한다. 이 언약 때문에 야곱은(= 신자는 ) 어떤 사건과 환경 속에서도 벧엘(= 하나님의 집 )까지 가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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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말해서 신자가 ( 천국 )을 좋아하는 ( 가난 )한 심령이 될 때까지, 성령께서는 신자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것이다.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와 믿음을 주시는 이유는 ( 천국 )이 정말로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그러므로 야곱은 흔히 말하듯이 과거의 ( 서원 ) 때문에 벧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에서를 피할 당시 야곱의 서원은 하나님의 뜻을 ( 오해 )한 결과로 나온 것이었다. 즉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의 ( 편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좋으신 하나님”께 대한 ( 보답 )의 차원에서 서원을 한 것이었다.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5) 그러나 야곱은 벧엘로 다시 돌아올 때, 브니엘의 경험을 통하여 참된 ( 복 )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즉 복(= 구원, 영생 )이란 자기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또한 죄인이 ( 하나님 )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은 것이 ( 복 )이라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 브니엘의 복 - 여호와 샬롬 >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 보전 )되었다 함이더라”
1)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서도 죽지 않았다. 이는 ( 언약 ) 때문이다. 즉 복이란 하나님의 ( 언약 ) 안에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출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 죽임 )을 당할 것이라”
(삿 13:22)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 죽으리로다 )”
(삿 6: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가로되 ( 슬프도소이다 )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고서는 살 수 없다. 그런데 몇 사람의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의 ( 언약 )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삿 6: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 여호와 살롬 )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3) ( 언약 ) 안에 있었기 때문에 기드온은 죽지 않았다. 즉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았다는 것을 기념하여 쌓은 단의 이름이 “( 여호와 샬롬 )”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샬롬”(= 안녕하십니까? )이란 하나님을 만나고서도 죽지 않은 것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받는 ( 복 )이다.
4)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실수와 허물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또한 바뀐 이름의 이스라엘이 역사 내내 범죄를 했지만, ( 언약 )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 죄 )를 묻지 않으셨다. 이것이 야곱의 복이며 이스라엘의 복인 것이다.
< 거룩의 삶 >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 정결 )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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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곱은 과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속이고 투쟁해서 복을 소유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신의 소유를 버리기 시작한다. 이런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기백성을 한 곳에 정착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 사역 )을 보게 된다.
2) 당연히 그곳은 거룩한(= 구별된 ) 세상으로서의 ( 천국 )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룩한 모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거룩한 사람들이 모이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법칙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 ( 인과율 )
3)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도 거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피차일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들에게는 거룩의 기준을 낮추어 주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사전에는 “비거룩” 혹은 “불완전”이란 없기 때문이다.
4) 그렇다면 불완전한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 찾아 )오셔서 자기백성에게 새로운 거룩의 모습을 ( 입혀 )주시는 것이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 낫지 )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롬 9:10-13)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 택 )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 행위 )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 사랑 )하고 에서는 ( 미워 )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대해서 인간들은 불평하며 이의를 제기한다. 즉 “내가 구원받은 것은 감사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우리 형제가 불쌍하니 저를 봐서라도 우리 형제를 구원해달라”는 것이다.
2) 이런 “인지상정”의 모습은 하나님을 “세상의 신”으로 착각하는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이 가지고 있는 “인지상정”으로서의 거룩에 대한 이해를 하나님의 차원에서 지적하는 곳이 ( 벧엘 )인 것이다.
3) 즉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쌓은 제단을 통해서 야곱과 에서 사이의 ( 구별 )을 확고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벧엘의 ( 언약 )”을 “벧엘의 ( 성취 )”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4) 결론적으로 “( 거룩 )”(= 성화 )이란 야곱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벧엘이란 ( 야곱 ) 됨과 ( 에서 ) 됨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 벧엘 )이며 이 벧엘에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이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 처소 )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35장 4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1) 야곱은 그동안 이방 신상의(= 드라빔 ) 소유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데 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이방 신상을 버린다. 왜 그런가?
2) 야곱이 벧엘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야곱은 하나님을 자신의 ( 수호 )신으로 이해했었다. 즉 하나님과 세상의 신을 ( 구별 )하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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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데 이제 야곱은 여호와만이 “( 전능 )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과거의 벧엘은 야곱 자신의 ( 복 )을 위한 장소였지만, 현재의 벧엘은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 구별 )됨을 바라보는 장소인 것이다.(= Coram Deo ) 그러므로 야곱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가족에게 ( 정결 )(= 구별, 거룩 )케 할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35장 5절)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 추격 )하는 자가 없었더라”
1) ( 구별 )된 자신을 살피고 욕심을 버리기 시작하니 추격하는 자들도 없어졌다. 이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 ( 후 )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야곱이 차지한 ( 장자 )의 역할이란, 다른 이 보다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요, 더 많이 소유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낮아지고 섬기는 자리가 장자의 위치인 것이다.
2)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야곱은 장자 됨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 포기 )하는 자이며, ( 어린아이 )처럼 그 분만을 의지하고 전부로 여기는 삶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장자로서 ( 구별 )되어 형제를 섬기기 위한 ( 희생 )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의 예표이다.
(7절)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 )
1) 하나님은 오직 ( 야곱 )만의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이다. 특정한 ( 공간 )이나 ( 시간 )이(= 벧엘-돌기둥 ) 하나님의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 몸 ) 자체가 하나님의 복이 된 것이다. 그래서 복된 국민과 왕들이 야곱의 허리가 아닌 ( 이스라엘 )의 허리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창 35:11 )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2) 그러므로 우리의 바뀐 이름은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 소유 )”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허리에서 복의 후손들이 나오듯이 이제는 ( 예수님 )의 허리에서 복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는 것이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 이름 )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 이름 )과 나의 새 ( 이름 )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35:9~15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국민과 왕과 땅을 언약하심
(11절) “나는 ( 전능 )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도 하셨다. 이것은 언약이 ( 계승 )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오직 ( 언약 )을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 약속 )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 자신 )에게만 관심을 두면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 이 모습은 야곱이 처음 ( 벧엘 )에서 단을 쌓던 모습이다.
2) 사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에도 하나님의 ( 약속 )을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 야곱은 모든 복의 내용을 ( 자기중심 )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을 겪게 하시고 그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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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3) 결국 새롭게 된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이, ( 야곱 )의 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 자신 )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새로움, 즉 변화란 ( 행동 )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 관심 )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한 ( 관심 )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 자기 )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물론 행동의 변화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며 열매일 뿐이지, 행동의 변화 자체가 새로움이나 믿음의 ( 증거 )는 아닌 것이다. 새로움이란, 신자의 변화란, 오직 하나님을 ( 아는 ) 것에서 나온다. 즉 하나님의 일을 위해 ( 부르심 )을 입었음을 아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 열심 )의 결과이다.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 알아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 깨달아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 하시기 )를 구하노라”
5)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 설명하시오.
결국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 전능 )하심의 결과이다. 죄인으로서 영원한 사망에 처해야 마땅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 전능 )하심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 전능 )하심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다.
35:16~22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어서 에브랏에 장사됨
(17-18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 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 라헬은 레아보다 먼저 죽는 것을 ( 패배 )라고 생각함으로 “베노니(= 슬픔의 아들 )”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야곱은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으로 바꾸어 부른다. 즉 야곱은 라헬이 죽으면서 낳은 아들을 하나님의 ( 권능 )으로 인해 낳은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라헬을 데려가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 전능 >하심을 ) 야곱은 보게 된 것이다.(= 욥기의 주제를 말하시오 )
2) 그래서 다른 아들들의 이름은 바꾼 적이 없었지만, 이제 야곱은 마지막 아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면서 “( 하나님 )에 의한 복”(= 구원 )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야곱은 가장 ( 사랑 )하는 라헬을 잃게 됨으로 ( 자기 ) 중심에서 “하나님 ( 중심 )”으로 가치관이 변환되는 시기를 맞게 된다.
3) 결국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 패배 )였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인간의 죄성을 전부 드러내신 “하나님의 ( 승리 )”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라헬이 죽은 것은 경쟁에서 ( 패배 )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 승리 )”였던 것이다.
5)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된 야곱에게서 나온 아들을, 아람 땅(= 비 언약의 땅 )과는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 구별 )된 베들레헴(= 언약의 땅 )에서 출생하게 하시는 것이며 그 ( 이름 )마저도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창세기 제 21 강
6) 라헬이 생각할 때에는 ( 탐욕 )의 경쟁에서 졌기 때문에 “슬픔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눈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의 ( 탐욕 )과의 경쟁에서 이기신 것이므로 “오른손의 아들”인 것이다. 즉 ( 최후 )의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야곱의 “베냐민”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7) 결론적으로 벧엘은 하나님의 ( 언약 )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강조되고 확인된 곳이다. 그래서 아모스 4:6-11절에서 재앙을 받는 이스라엘에게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말씀은 “너희가 내게로 (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인 것이다. 그러나 ( 언약 )을 기억하는 자는 항상 벧엘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눅 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 라헬은 과연 이스라엘 12지파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있는가?>
(20절)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1) 라헬의 존재 가치를 말할 수 있다면, 그녀는 다만 야곱의 ( 선택 )과 ( 사랑 )을 받았다는 것에 있다. 성경에는 라헬의 성품이나 믿음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한 남자를 향한 시기와 경쟁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물건을 훔치며 거짓말을 하는 모습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2) 라헬과 레아의 질투와 시기 속에서 이스라엘 12지파가 출현하게 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 언약 )의 백성으로 만드신다. 이는 구원이 사람의 행위라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 언약 )이라는 은혜에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3) 마찬가지로 라헬이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가게 되고 레아와 함께 이스라엘 12지파의 어머니가 되는 이유는 단지 ( 야곱 )(= 창 12:3 )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위력이다.
(룻 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4) 룻을 축복하는 백성들의 의도는 룻이 라헬과 레아의 ( 복 )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즉 야곱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주어지는 ( 복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야곱, 레아, 라헬 등이 인간의 추한 모습들을 다 보여주었지만, 하나님의 ( 언약 )의 은혜는 그런 것들을 완전히 가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있음에도 정죄당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언약의 완성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 복 )이다.
(렘 31: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 거절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 돌아 )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 최후 )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 돌아 )오리라”
1) 라헬의 자녀인 베냐민과 므낫세 반 지파는 남 유다로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라헬의 묘가 있는 곳이 남북의 ( 경계 )선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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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므로 라마에서 라헬이 통곡하며 위로받기를 거절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가는 고통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애곡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 최후 )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동시에 ( 새 ) 언약을 말하고 있다.(= 마 2:16-18 )
3) 이 사건을 마태는 예레미야 31장의 예언이 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죽는 고통스런 상황이, 헤롯 시대에 영아의 학살로 인하여 울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4) 결론적으로 바벨론 시대에 세상의 권력이 라헬의 자손을 핍박한 것처럼, 또한 헤롯 시대에도 세상이 라헬의 자손을 핍박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분노는 궁극적으로 이들의 후손으로 오신 ( 그리스도 )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1) 세상이 그리스도를 ( 대적 )하는 한 형태가 라마의 통곡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그리스도를 대적해도 하나님은 웃으실 뿐이다.
(시 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계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으려고 용이 싸움을 거는 과정에서 라헬의 ( 통곡 )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창 3:15의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세상 끝 날까지 마귀는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또 예수의 ( 증거 )를 가진 자와 싸우는 것이다.(= 계 12:17 )
2) 마귀가 그리스도인들과 싸우는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 표 )를 받게 하는 것이다.(= 계 13:16 )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 고난 )일 수밖에 없다. 이 고난이 현상적으로는 ( 세상 )이 주는 것이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의 ( 자아 )를 깨트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3)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가 세상이 주는 환난으로 인하여 ( 애곡 )할 일이 없다는 말씀이다. 라헬은 그 고통이 너무나 크기에 ( 위로 ) 받기를 거절한다. 그러나 아들을 잃었다고 울지 말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 위로 )를 받으라는 것이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22절)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1) 성경은 인간들의 불결하고 추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킨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어떻게 ( 언약 )의 백성으로 편입시키시는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계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백성 만들기”라는 것이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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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한 야곱의 침묵은 모든 사건과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 주권 )을 인정하며 오직 언약의 ( 성취 )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야곱은 어렵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통하여 많은 시련을 겪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야곱의 믿음을 키워 가시는 것이다.
(창 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35:23~29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과 그의 부친 이삭의 죽음
(25절)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1) 다시 한 번 야곱의 12아들을 부연하는 이유는, 즉 서로 다른 모계를 통해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어미의 신분이 종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시기와 경쟁 속에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 자손 > 언약 ) 계승되고 성취 된다는 것이다.
(창 27: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2) 야곱에게 계승된 삼대언약은 ( 다윗 )에게 계승되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통치하게 됨으로 ( 모형 )적으로 모두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장차 예수께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을 ( 실체 )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곱의 12아들의 명단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여명을 보여주는 언약의 내용인 것이다.
(29절)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1) 이삭의 죽음은 야곱에게 언약을 계승하는 임무, 즉 ( 사명 )이 끝났음을 말해준다.
36:1~43 에서의 족보
1) 장사를 지낸 후 야곱과 에서는 따로 살게 된다.(= 6-7절) 그런데 장남인 에서가 아버지 이삭이 살던 곳에서 거하지 않고 야곱이 살게 된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의 ( 집 )을 떠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 언약 )이 야곱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다.
2)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 계승 )되는 언약의 흐름을 보호하신다. 이삭은 죽었지만 언약이 야곱을 통하여 계속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에서는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것이다. 이는 에서의 ( 결혼 )을 통해서도 약속과 무관한 그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26:34-35, 28:8-9 )
(1절)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
1) 에서의 족보는 야곱의 후손과의 대비를 위한 것이다. 에돔은 왕을 세우고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지만,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약속과 ( 상관 )이 없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언약 ( 밖 )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므로 약속의 땅 가나안은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 야곱 )의 후손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형은 동생을 피해 제 갈 길로 떠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서의 족보가 말하는 것은, 결국 동생 야곱이 장자가 되어 아버지의 약속을 따라(= 28:3-4) 가나안을 통치하게 됨으로 약속이 ( 성취 )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