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3강- 언약 자손들의 범죄 / 창37장-25-42장2절

언약자손들의 범죄 - 창세기 23강(37:25-42:2)
 

 창세기 제 23 강

37:25~28 유다가 동생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아 넘김

(27절)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 청종 )하였더라”

1) “요셉을 죽이지는 말자”는 유다의 말이 일견 그를 의롭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는 유다가 요셉을 파는데 ( 앞장 )서는 모습으로서, 유다의 행동이 ( 악 )하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2) 즉 형제들이 그의 말을 “청종”할 정도로 그는 ( 영향 )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그 영향력을 가지고도 요셉을 파는 ( 악 )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다의 행동은 형제들 중에 ( 가장 ) 악한 것이다.

(딤전 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2) 그런데 이런 악한 유다의 자손으로 다윗 왕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생하게 된다. 즉 이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란 인간의 ( 행위 )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 은혜 )에 있음을 계시하는 것이다.

29~36 형제들이 요셉의 일을 아비 야곱에게 속여 말함

(30절) “아우들에게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35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1) 르우벤과 야곱의 슬픔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하나님의 ( 작정 )하신 뜻과는 전혀 ( 상관 )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애통하고 슬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건을 통해서 감정의 상태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 작정 )하신 뜻이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죄를 숨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 보호 )하신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언약 자손들이 아무리 사악하다고 할지라도 ( 죄 )와는 상관없이 구원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즉 언약이란 인간들의 ( 행위 )에 따라서 그 결과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언약 자손이기 때문에 보호하고 구원하심으로,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 알게 ) 하여 주시는 것이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 정죄 )함이 없나니”

< 창 37장 정리 >

1. 요셉의 고난은 ( 아브라함 ) 언약의 ( 성취 ) 과정이다.(= 창 15:13-16 )

2. 하나님께서는 ( 택 )한 백성을 ( 구원 )하시기 위해 미리 ( 예정 )하시고 섭리하신다.

3. 1절 -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1) 36장의 족보와 비교하시오

2) 야곱 가문의 계보는 ( 요셉 )과의 연결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3) 요셉은 ( 그리스도 )의 예표로서 자손 언약의 성취자이다

4) 요셉 이후로는 언약의 계승이 한 인물이 아니라 12아들과 그 후손들에게 이어진다.

4. 야곱의 편애와 형들의 미움

(1)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 성취 )하시기 위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 관계 )를 섭리하신다. 또한 애굽이라는 ( 죄악 )의 세상에서 번성하게 하시고, 후에 시내산 율법을 통하여 ( 죄 )를 깨닫게 하시고 ( 은혜 )를 깨닫게 하신다

 창세기 제 23 강

5. 23~24절 - 옷을 벗기우고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짐

(1) 가장 ( 낮은 ) 곳으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모습을 볼 수 있다.

6. 25~28절 - 하나님의 예정하신 ( 때 )에 도착하는 이스마엘 족속

(1) 죄악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여주는 표현을 쓰시오. - (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

7. 내 뜻과 소원대로 이루어지고 형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성경을 한 구절도 읽을 수 없다. 참으로 부조리한 요셉의(= 선진들의 ) 상황을 하나님의 선한 뜻인 언약 성취의 과정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의 상식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과연 “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 신앙의 삶 속에서도 부조리하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부조리하게 보이는 환경도 꼭 거쳐야 하는 ( 과정 )임을 성경은 ( 언약 )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2) 유다의 ( 단독 ) 범죄 (38:)

38:1~5 유다가 이방여인과 결혼을 함

(1-2절)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1) 유다는 요셉을 팔고 나서 괴로움과 두려움이 있었는지 형제들을 떠나서 아둘람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하시오 ) 유다는 언약 자손이지만 ( 세속 )적이고 (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2) 이런 유다의 행동은 “하늘의 주인은 ( 하나님 )이고, 이 세상의 주인은 ( 자기 )”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기독교적 ( 인본 )주의”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다를 ( 포기 )하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언약대로 인도하신다.

3) 이처럼 38장에서 유다가 범죄 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부각시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 은혜 )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4) 즉 죄 가운데 있는 언약 자손의 ( 소망 )을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만한 ( 행위 )가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6~30 유다와 다말

(7절)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 악 )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9-10절)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하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 악 )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계대결혼, 시형제 결혼법, 형사취수 >(신 25:5-10)

1) 계대결혼은 하나님의 ( 자기계시 )를 보여준다. 언약 자손의 대를 이어 번창하게 하심으로, ( 자손 )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 알게 ) 하시는 것이다. 즉 유다의 두 아들을 죽이심으로써 계대결혼에 담긴 ( 구원 )의 방식을 택자들에게 계시하시는 것이다.

2) 결국 계대결혼은 “여자의 ( 후손 )에 의한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가 그 본질이다.(= 창 3:15 ) 즉 여자의 후손에 의해 ( 마귀 )의 일이 멸해지는 것이다.

3) 그런데 현상적으로는 유다의 가문은 대가 끊어지게 됨으로 구원이 아닌 ( 저주 )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계속 아들들을 죽이고 계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제 23 강

4) 그러므로 이런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다말의 행동은 저주 받은 가문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 구원 ) 방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유다의 가문은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후손은 유다의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따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의 ( 아내 )의 죽음은 이 사실을 암시한다.

5) 메시야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인 다말로 하여금 ( 약속 )을(= < 복음 >을 ) 알게 하신 것이다. 즉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서 하나님의 ( 약속 )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말은 쫓겨 간 중에서도 자기를 ( 희생 )시켜 이 일을 감당하려 한 것이다. 즉 자신이 시아버지를 통해 ( 대 )를 이을(= < 자손 > 언약 ) 각오를 한 것이다.

5) 시아버지인 유다야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었겠지만, 다말은 여자로서 얼마나 수치감과 모욕감을 느꼈겠는가?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따로 ( 작정 )(= 준비 )된 여인 다말은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함으로써 남녀의 관계가 아닌 ( 부부 )의 관계를 성립시킨다.

6) 결국 유다의 죄와 자식들의 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 다말 )이다. 바로 이것이 “여자의 ( 후손 )”의 역할인 것이다.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는 분은 도리어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 ( 희생 )을 당하는 자로 출현하시는 것이다.

(26절)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1) 다말을 통해서 유다는 가문의 위기가 자기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유다는 예표적으로 “그리스도의 ( 희생 )”을 보게 된 것이다. 가문의 대를 ( 계승 )시키려는 결단을 한 다말의 헌신과 고통 속에서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 일 )하심을 보게 된 것이다.

2) 그러므로 유다는 장차 야곱 앞에서 자신의 ( 목숨 )을 담보로 하게 되는 진정한 언약 자손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행위 )

(43:9)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2) “나보다 옳도다”라는 고백은 유다 자신의 ( 죄 )를 다말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 마음 )을 알게 됨으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말의 희생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준다. 다말은 창녀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이는 여자에게는 < 사형 >선고이다 ) 유다 가문의 대를 잇는 일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졌다.

(눅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29절)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룻 4:12)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 다말 )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다말이 유다에게서 아이를 낳은 것을 수치가 아닌 ( 자랑 )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다말의 희생으로 유다의 계보가 이어지고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사실을 알게 된 조상들의 ( 예표 )적 고백인 것이다.(= 룻 4:18-22 )

 창세기 제 23 강

(창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면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 믿음 )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 환영 )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2) 실로(= 화평을 가져오는 자 )란 궁극적으로 (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즉 성경은 다말의 희생을 ( 요셉 )의 희생과 겹치게 하면서, 장차 오실 ( 그리스도 )의 희생을 보게 유기적 점진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3) 결론적으로 유다가 형제들과 함께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넘긴 행위나 그가 단독으로 가나안 여인을 취한 행동이나 며느리 다말과 추행을 저지른 모든 범죄 행위는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 작정 )하신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4) 이는 후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택한 성도의 구원이 ( 은혜 )에 기초할 것임을 언약하시는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적 계시 섭리인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형제들로 ( 범죄 )에 빠지게 하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시험하여 ( 용서 )하게 하시는 섭리를 계속하신다.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 순종 )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 긍휼 )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 창 38장 정리 >

1. 38장의 메시지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이다.

1) 현상적으로는 “악”이라는 ( 범죄 )와 ( 계대결혼 )이라는 관습법이 보인다

2) 실체적으로는 ( 구속자 )를 통한 언약의 성취가 보인다

3) 여기서 하나님의 ( 영광 )과 인간의 ( 부패 )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패한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이끄실 구원의 ( 예표 )이다

2. 유다의 결혼과 아들들의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1) 이는 언약자손들의 ( 성 )적 문란으로 인한 ( 결혼 )제도의 파괴를 보여준다. 이미 이의 전조로서 ( 르우벤 ) 사건이 일어났다.

2) 그러나 이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다와 다말의 ( 계대결혼 ) 사건 속에서 구속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고, 이는 역사 속의 ( 여인 )들을 통하여 ( 고엘 ) 사상으로 선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다.

<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

1) 열조들의 사건들을 보면, 죄란 자신의 ( 무능 )함을 철저히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하는 하나님의 ( 작정 ) 섭리이다. 또한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인간의 ( 교만 )을 막는 방편이다. 즉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 무능 )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심으로 나를 낮추시는 은혜의 섭리이다. - 전적타락

2) 열조들을 이런 범죄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인간이 예수께로 가는데 있어서 죄는 ( 허용 )적이다. 실제로 범죄 후에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고백하는 섭리를 우리는 날마다 경험한다. 예수께서는 ( 죄인 )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다.

4) 죄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나의 죄악을 깨달으면 무능한 내가 남을 ( 정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창세기 제 23 강

5) 그리고 타인을 정죄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영의 ( 해방 )을 맛본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 해방 )하였음이라”

6) 결론적으로 유다 가정의 사건은 구약시대에도 ( 행위 )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 은혜 )로 구원받는다는 생생한 역사를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은혜의 말씀으로 붙들어 주신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 말씀 )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시는 일을 ( 하시고 )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요셉과 형들의 화친 (39:~45:)

1) 하나님께서는 열조의 언약을 인하여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긴 형제들의 ( 죄 )를 요셉으로 ( 용서 )하게 하신다. 다시 말해서 언약 자손의 ( 죄 )가 아무리 추하고 크다 할지라도 멸하시지 아니하시고 모두 ( 사죄 )하여 주심으로 언약을 이루신다.

(15:13)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 요셉의 애굽 수난 (39:~40:)

1) 요셉의 수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언약 자손을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 보호 )하신다는 사실을 계시하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자손으로서 ( 십자가 )의 수난을 당하실 것에 대한 예표이며 모형이다.

39:1~6 요셉이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됨

(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1) “형통”이란 요셉의 생애가 여호와의 ( 주권 )적인 능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표현이다. 즉 언약 자손을 보호하여 이스라엘의 열조와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 요셉 )을 위하여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이다. 이것이 언약 자손에게 ( 곤고 )한 날과 ( 형통 )한 날이 병행케 되는 이유이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 기뻐 )하고 곤고한 날에는 ( 생각 )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2) 요셉의 상황이 정의하는 형통

(1) 하나님이 ( 함께 )하심이 형통이며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 고난 )을 받는 것이 형통이며

(3) 하나님 앞에서 ( 죄 )를 짓지 않으려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 형통이다. 나중에 요셉도 자신의 이런 상황이 ( 형통 )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시 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3) 즉 요셉의 고난이란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인한 “( 대속 )적 고난”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 장자 )의 삶을(= 희생 ) 사는 오늘의 성도에게도 이러한 고난이 얼마든지 오게 된다.

4) 그러면 왜 고난이 오는가?

창세기 제 23 강

(1) 시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 말씀 )이 응하기 위하여 고난이 온다.

(2) 주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세상의 것들을 ( 제거 )하는 고난이 온다.

(3) 잘못이 없는데도 고난이 온다. 이는 성도의 ( 희생 )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유 없이 고난이 닥치더라도 놀라지 않게 된다. (4) 결론적으로 고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주님의 ( 뜻 )이 이루어지는 것이 형통이다.

(5) 찬송가 493장(= 크로스비 )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6) 안요한 목사 - “내가 눈을 뜨고 있을 때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장님이 되고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니 지금 눈을 다시 뜰 필요가 없습니다”

(6절)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1) 요셉이 보디발의 신임을 얻게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10년 정도 )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인에게 신임을 얻는 상황이 요셉의 형통이라 할지라도, 결국 요셉은 ( 노예 )의 신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노예가 된 상황을 ( 형통 )이라고 한다.

(6절)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2) 요셉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게 된다. 그런데 결과는 요셉의 감옥행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 뜻 )”이라는 것이다.

3) 요셉이 감옥에 가게 된 이유는, 바로 그의 ( 용모 )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의 용모를 준수하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39:7~23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게 됨

(20-21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1) 요셉의 기사는 모세가 하나님의 ( 감동 )을 받아서 기록한 것인데, 모세는 요셉의 상황을 ( 형통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통이란 개인의 성공과 출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 뜻 )(= 언약 )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2)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시야가 좁기 때문에 ( 부분 )적인 해석과 평가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형통이란 신자에게 ( 좋은 ) 환경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라도 ( 영생 )의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다.

3) 즉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는 ( 방향 )성을 형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종이 된 일 자체가, 옥에 갇힌 일 자체가 형통한 것이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에 ( 형통 )한 것이라는 말이다.

3) 그런데 요셉에게 있어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요셉을 통해 주위 인간들의 악한 반응을 ( 유발 )시키는 계기가 된다.(= 복음을 전할 때 < 마귀 >가 그 정체를 드러낸다/ 계시록 < 9 >장 )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의 운명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불택자의 운명도 드러나게 된다.

(사 26: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찌라도 ( 의 )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 불의 )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1) 보디발의 경우를 볼 때에, 신자이든 불신자든 모두 하나님의 ( 은혜 )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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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나 불신자들은 은총을 입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 의 )”는 결코 배우지 않는다. 이것이 신자와의 차이점이다. 신자만이 자신의 구원이 결코 자신의 ( 의 )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 의 )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 71: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2) 결론적으로 형통이란 요셉처럼 또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 불의 )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 의 ) 때문에 모함을 받고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모형적인 형통의 ( 실체 )가 되신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 창 39장 정리 >

1. 39장의 중심이 되는 표현은 무엇인가?

2.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의 ( 작정 ) 섭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져 나가는 ( 과정 ) 속에서 고난 받는 요셉의 모습을 성경은 ( 형통 ) 이라고 말한다.

3. 요셉이 감옥에 갇히기까지 나타난 하나님의 작정의 사건들을 말하시오. 그러면 이 모든 사건들에서 나타난 요셉의 행위는 교훈적인가?

40:1~23 두 관원장의 꿈

(8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1) 하나님께서 정하신 ( 뜻 )을 이루시려고 두 관원장에게 꿈을 꾸게 하셨으니까, 당연히 그 꿈에 대한 해석도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감동을 받아 꿈을 해석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뜻을 잘 ( 모르고 ) 있었다.

(14-15절)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1) 즉 하나님께서는 “꿈은 해석했을지언정 ( 사람 )을 믿고 의지하는 요셉”을 감옥에서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될 때에 요셉은 감옥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2) 그러면 요셉은 왜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요셉이 ( 기도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 침묵 )하시는 하나님을 요셉은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꿈은 해석을 해 주면서도 자신의 처지는 어떻게 될지를 감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예에서 감옥까지 13년의 세월을 생각 )

3)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처럼 ( 훈련 )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 알게 )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단의 기간 동안 수많은 ( 시행착오 )가 있게 된다. 인간의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다가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때 사용하시는 것이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창세기 제 23 강

1) 꿈을 꾸고 3일 만에 복직이 되었는데 3일 만에 요셉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하나님의 ( 섭리 )인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결국 요셉은 2년 동안 대책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요셉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잊지 않고 계신다.

2) 이제 온 세상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요셉을 ( 중심 )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요셉은 감옥에서 고통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자신의 ( 일 )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정하신 ( 때 )가 되면 술 맡은 관원장의 ( 기억 )을 되돌려 놓으실 것이다.

3) 다시 말해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억울함을 잊어버린 것이 하나님의 ( 섭리 )이다.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던 사람에게서 전혀 ( 반응 )이 없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원망 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 섭리 )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 창 40장 정리 >

1. 두 관원장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2. 15절에서 요셉 자신이 약속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표현은? - ( 히브리 )

3. 23절 -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의 의미를 말하시오.

(1) 택한 백성의 수난 혹은 연단의 기간은 이미 언약에 의해 정해져 있다. (= < 광야 > 40년, < 포로 > 70년 )

(2) 이는 신자 개인의 ( 자아 )가 파쇄 되는 시간이다. 종으로서의 10년 그리고 감옥 속에서의 2년이란 시간은 요셉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허락하신 ( 성숙 )의 시간이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 믿는 ) 것과 ( 아는 )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 충만 )한데까지 이르리니”

(2) 총리에 오른 요셉 (41:)

41:1~8 애굽의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고 번민에 잠기게 됨

1) 요셉의 인생은 ( 꿈 )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꿈이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꿈을 꾸는 것도, 꿈을 해석하는 일도 사람의 학문과 지혜로 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풀어 해석하시는 하나님만이 ( 역사 )의 주관자라는 것을 요셉의 일생은 보여주고 있다.

2) 또한 요셉이 고난을 겪고 총리의 영광을 취하는 모습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언약 자손으로 세상에 오셔서 겪으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의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전 3:1)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1절)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1) 요셉의 인생은 잘 될 듯 하다가도 다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가 꿈을 꾸게 됨으로 요셉이 옥에서 나오게 된다. 요셉은 바깥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2)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 역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인생을 이용하실 것이다.

 창세기 제 23 강

3) 그러므로 신자는 합력하여 선을 ( 이루시는 )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41:9~36 요셉의 꿈 해석

(8절)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1) 애굽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인 꿈에서 ( 미래 )를 볼 지혜가 없었지만, 요셉은 꿈에서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미래를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 현재 )가 인생의 전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세상을 통해서 세상의 미래를 볼 수 있는 ( 지혜 )를 주셨다.

2) 또한 꿈이란 하나님의 ( 계시 )이다. 그러므로 이는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 특별 )계시로서의 성경이 주어졌으며, 이 내용 또한 성령의 ( 조명 )하에서만 해석되며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 장래 )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3) 그러나 신자가 미래를 안다는 의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하나하나를 미리 안다는(= 점 ) 뜻이 아니라, 세상의 결말에 대해서 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결말이 어떠할지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4) 즉 세상의 미래를 아는 신자는 현재에서 “( 미래 )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심판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이란 현재의 사건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할 것 없이 ( 미래 )를 아는 자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5)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있게 하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게 하신 그 일을 열심히 하면서 다만 그리스도를 ( 믿는 ) 자로 사는 것이다. 세속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분명히 바라보고 그 길을 가는 자로 사는 것이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 가노라”

(16절)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1) 철 없던 17살 때에 요셉은 꿈을 ( 자랑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 즉 말씀이 응하게 하기 위해서 감옥에서의 연단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요셉은 모든 만사를 하나님께서 ( 섭리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자나 불택자를 막론하고 작정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데 도구로 사용하신다.

37~45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세워서 애굽을 치리하게 함

(39절)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창세기 제 23 강

1) 요셉이 꿈의 해석을 하게 된 것은, 애굽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약 자손들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요셉이 제시한 위기의 때를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에게는 명철과 지혜로 보인 것이다.

2) 그러나 오늘날 신자에게 있어야 할 진정한 명철과 지혜는 하나님이 정하신 세상의 마지막을 ( 보는 ) 것과 마지막을 ( 준비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즉 세상의 마지막을 알기에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매이지 않고, 지금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명철과 지혜를 가진 신자라고 말할 수 있다.(= < 종말 >의 때에 서서 < 현재 >를 바라본다 )

41:46~57 요셉의 꿈 해석대로 칠년 풍년 후에 흉년이 시작됨

(51절)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1)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무슨 뜻인지 아직은 잘 모르고 있다. 이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즉 고난과 수고의 대가로 영광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해석 - 요셉의 고진감래 )

2) 그러나 풍년과 흉년은 요셉 개인의 고난과 형통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예정된 프로그램이다. 즉 요셉을 부르심은 형제를 살리는 희생자로서의 부름이라는 것이다. 단지 ( 형제 )들의 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온 ( 세계 )의 주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54절)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1) 하나님께서 애굽의 ( 흉년 )에 요셉을 등장시키시는 것처럼, 세상의 ( 마지막 )에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등장시키셨다. 그러므로 흉년이라는 시기에 요셉에게 나아가는 것이 사는 길이었던 것처럼, 종말의 때에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2) 9절과 16절을 비교하시오. - 여기에 맞는 칼빈이 쓴 용어는?

3) 요셉이 총리가 된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4)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름이 요셉(= 우리 )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3)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 (42:~43:)

42:1~5 야곱이 곡식을 구하려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냄

(2절)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1) 여호와께서는 ( 기근 )을 통하여 범죄 한 언약 자손들을 ( 회개 )하게 하여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여 주셔서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신다. 또한 요셉에게 계시로 주신 꿈을 애굽에서 현실로 이루게 하신다.

2) 요셉의 생애는 ( 계시 )의 생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셉에게 주어진 계시는 고난을 ( 필수 ) 과정으로 하여 성취된다. 즉 자신의 잘못 때문에 겪는 고난이 아니라 형제들의 죄악을 담당한 ( 대속 )적 고난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고난을 그리스도 고난의 ( 모형 )으로 보는 것이다.

3) 또한 요셉은 형제들의 ( 주 )가 될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이미 ( 주 )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 계시 )를 받음으로 요셉은 이미 ( 주 )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