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5강- 요셉의 용서 / 창44:21- 46:31

요셉의 용서 - 창세기 25강(44:21-46:3)
 

 창세기 제 25 강

5) 이처럼 구원이란 인간의 “최선(最善)”이라는 행위적 정성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 )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로 “( 죄인 )임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 구원 ) 사건을 일으키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계속 인도하신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 ) 조직신학적으로 말하는 “구원의 서정(= 차서, 순서 )”(= Ordo Salutis / Way of Salvation )이다.

6) 이런 불가항력적인 구원의 의미를 예수께서는 부자 청년의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1) 구원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즉 ( 영 )의 세계 쪽에서 ( 육 )의 세계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 택함 )을 받은 인간 쪽으로 가시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원받을 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결코 “( 저항 )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본인은 전적으로 ( 죄인 ) 됨을 고백하면서 구원받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요셉은 은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44: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 점 )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 이 말의 의미는 요셉이 형들 앞에서 ( 하나님 )처럼 다른 차원에 속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요셉은 “육에 속한 자는 감히 따질 수도 없는 ( 영 )의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 형들은 자신들 스스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 같은 권세, 즉 애굽의 총리라는 권세에 붙잡히게 된 현실을 ( 인정 )하게 되는 것이다.

2) 물론 현상적으로(= 육적으로 ) 형들은 참으로 억울할 수밖에 없다. 결코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을 마음조차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사태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 저항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과연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했는가?”를 총리 앞에서는 따져 볼 이유까지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3) 하나님의 손에 ( 잡혀 ) 있는 신자의 입장도 이러한 것이다. “선악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하나님 앞에 따져본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우리의 ( 의지 )와는 상관없이 “실수 혹은 죄”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경우를 당하는 사건과 환경 속으로 집어넣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4) 이런 원리를 요셉이 형들을 죄인들로 몰아세우기 위해서 일부러 은잔 사건을 계획한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잘못을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 종 )”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44:33)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 되게 )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보내소서”

1) 이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징계란, “선악의 차원”에서 죄를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영적 차원”에서의 관계를 무시하고 ( 기억 )하지 못할 때에, 이 관계를 ( 회복 )시키는 차원에서 징계를 하시는 것이다. 즉 징계를 통해서 “완벽한 인간”을 만드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서 “주인과 종”의 “완벽한 ( 관계 )”를 유지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성도의 ( 자유 )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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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자유란 육체의 자유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를 증거하기 위한 “사명 수행”을 위한 자유를 말한다. 은잔 사건으로 이제 형들에게는 자유란 없어져 버린 상태가 되었다. 애굽의 총리와의 거북한 관계를 빨리 마감하고자 했던 그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졸지에 종이 되는 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형들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놓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이다. 즉 막내 동생을 무사히 아버지에게 데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점 잘 치는, 마치 ( 하나님 )과도 같은 애굽의 총리에게 통사정을 하는 것이다.

4) 이런 유다의 고백이 오늘날 신자의 입장을 말해준다. 구원이 이미 ( 결정 )된 일이라고 해서, 그 사실이 우리 마음의 원대로 죄를 짓고 살아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방적인 은총”으로 구원해주신 그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 자유 )를 얻은 신자의 사명이다.

(롬 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이를 )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1) 이 말씀이 모든 성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즉 “하나님의 자기백성 만들기”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셉처럼 “( 점 )을 잘 치는”분이시다. 이 “점”으로 인해서 우리가 ( 영 )적인 사람이 되었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세상을 널리 전하는, “예수님을 위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예수님의 ( 마음 )을 아는 신자의 태도인 것이다.

2)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유다가 아무리 아버지를 위한 진정의 말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 육신 )의 말이며 그 말 속에는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만나야 즉 성령의 ( 내적 ) 부르심을 입어야 정직한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절)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28절) “하나는 내게서 나간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고”

3)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유다는 입이 열 개가 있다고 해도 요셉 앞에서는 할 말이 없는 자이다. 다만 모든 진실이 끝까지 숨겨지리라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으로서의 ( 자칭 ) “독실한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마음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인간도 자기의 죄를 숨길 수는 없다. 다만 인간 스스로의 악함과 죄를 ( 시인 )하고 겸비한 자세로 오직 하나님의 ( 긍휼 )만을 기다릴 뿐이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1) 또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섭리하신 유다의 대속적 고난과 희생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는 것이다. 요셉과 마찬가지로 대속적 고난을 당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자신의 잘못과 죄를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다. 그러나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에도 그럴 수 있는가? 남의 잘못을 대신 짊어질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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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므로 대속적 고난을 당하려는 희생의 모습이 유다에게서 보인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요셉이 당한 그 고난의 여정을 유다가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자에게 형제들이 절하는 것이 요셉에게 성취되었듯, 장차 대신 고난을 당하려는 유다에게 형제들이 엎드려 절하게 되는 것이다.(= 49:8-12 )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3) 현재는 요셉에게 야곱의 아들들이 절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 요셉이 장자의 직분을 르우벤 대신에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다가 형제들의 주가 되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은 유다의 “대속적 희생”의 모습을 예표로 하여 유다지파에서 대신 희생하는 메시야가 실체로 오신다는 언약인 것이다.

4) 이처럼 성경은 “누가 희생을 당하는가?”, “누가 미움을 받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치고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다.(=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는 요셉, 사울에게 미움을 받는 다윗 ) 그러면 구약에서 언약의 사람들이 대신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5) 중국 공산당 서기의 아내로 살던 조선족 여자의 간증 -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과 부활과 재림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부자가 되고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믿음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 구원의 서정이란 무엇인가? >

(16절)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1) 형들은 요셉을 만나게 됨으로 자기들의 ( 죄 )와 ( 비참 )한 상태를 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죄와 비참함을 발견했다”는 고백이다. 물론 이는 성령께서 ( 말씀 )을 통하여 ( 조명 )을 해주셔야 되는 것이다.

2) 이러한 과정이 없이 그저 내가 예수를 믿었기에 “예수는 나에게 구원도 주고 세상의 복도 주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고 오해한 것이다.

(마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 오해 )하였도다”

3) 구원의 서정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성경의 기록은 ( 출애굽 )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 광야 )를 통과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런데 광야에서도 자기들 ( 마음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아 가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4)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뚜껑을 열고 보니 그곳은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곳이다. 당연히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장소로 인도 해놓으시고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 기억 )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너를 ( 시험 )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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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즉 하나님의 인도를 통하여 얼마나 너희의 마음이 ( 완악 )한지를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 이는 불신앙과 죄가 노출된 상태에서 모두가 ( 죽어 )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들어갔다는 것은 너희의 ( 능력 )이 아니라 언약의 능력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은 언약자손들의 가득한 ( 죄 )를 드러내는 기간인 것이다.

6) 이는 요셉이 자신의 고난이 주는 ( 복 )에 그 형제들을 참여시킴으로 형제들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하고서 구원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그러므로 형들은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고서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이 놀라운 용서에 ( 감사 )하게 되는 것이다.

45:1~15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용서함

(1절)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1) 이제 끝까지 감추어지려던 ( 죄 )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죄는 인간 스스로 드러내지 못한다. ( 외부 )의 힘에(= 성령 ) 의해서만 죄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혈육의 정을 드러내는 요셉의 모습은 우리의 ( 죄 ) 때문에 통분의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2절)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1) 그동안 철저하게 숨겨 왔던 범죄의 사실이 다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에 형들은 놀라서 능히 ( 대답 )을 하지 못한다.

2) 즉 우리의 죄란 우리가 예수님을 찌른 것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것 ) 이 죄가 드러났으므로 우리는 능히 ( 대답 )할 수 없다.(= 나의 의, 나의 공로 = 행위 )

(4절)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1) 이 말은 형들이 숨겨둔 범죄의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밝혀 준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 적발 )하셔야만 우리는 오랜 동안 은밀하게 숨겨온 죄를 인정하고 ( 회개 )하게 되는 것이다.

2) 과연 “너희들이 나를 죽였다”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 죄 )와 비참함을 제대로 아는 자가 용서하신 그 ( 은혜 )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 앞에서 능히 대답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주님의 용서를 알기 위하여 우리의 ( 죄 )의 깊이도 함께 알아가야 할 것이다. 참된 은혜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는 것이며 용서의 깊이를 제대로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 생명 )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1) 현상적으로는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애굽으로 팔려오게 된 것이지만, 실체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언약 자손을 기근으로부터 보호하여 ( 생명 )을 주시려고 요셉을 애굽으로 팔려오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씀이다.

2)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 섭리 ) 있다는 사실을 ( 조명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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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데 “이미 모든 것이 다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신자는 운명이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 예정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예정이란, “내가 어떤 잘못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니까 내 잘못이 아니야”라는 핑계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4) 이처럼 예정이라는 교리를 가지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은, 사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는 “너는 참 잘한다”라고 하면 죽자 살자 열심히 하는 면이 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라고 하면 그만 두 손을 놓아버리는 본성이 있다.

5) 하나님께서 이 일을 섭리하시니까 이 섭리 가운데 있는 자체를 더욱 ( 영광 )스럽게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 직분 )(= 분복 )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가 할 일을 빼앗았으니 나는 그만 두어도 된다”라고 토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책임 회피 혹은 자기 합리화의 ( 도구 )로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6) 결국 이런 인간의 회피와 합리화가 보여주는 사실은, 인간 ( 스스로 )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렇게 무능력하고 타락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 인도 )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냄으로 형들을 ( 인도 )하지 않으면 형들은 끝까지 “( 자칭 ) 독실한 자”들로서(= 도덕주의, 윤리주의 ) 자신들의 범죄를 드러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8절)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1) 이런 요셉의 신분은 야곱에게 주어진 언약의 성취가 어떤 신분이며, 어떤 위상(位相)을 가지고 있는가를, 즉 언약을 받은 야곱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 요셉의 정체를 밝힘 - 회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

(43:11-12) “그들의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 소산 )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 예물 )을 삼을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여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 야곱은 ( 용서 )를 구하는 차원에서 애굽의 총리에게 선물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예물들은 애굽의 총리에게 있어서는 하찮은 것들에 불과하다. 물론 준비한 자는 기근 속에서 가장 귀하고 값비싼 선물을 준비했지만, 요셉이 원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 회개 )인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선물을 받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는 것이다.

2)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도 이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정면으로 ( 부정 )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제 25 강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 제물 )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6-1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 악업 )을 버리며 ( 악행 )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7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 생명 )을 보존하려고 당신들의 ( 후손 )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1) 그러므로 이제부터 요셉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형들을 섬기겠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에 ( 관심 )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생명을 계속 ( 계승 )케 하심으로 자손 언약의 성취를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 열심 )을 보여준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8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1) 요셉은 형들의 범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 섭리 )를 고백한다. 일어난 모든 사건은 그 자체가 ( 목적 )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언약 성취의 ( 방편 )으로서, “하나님은 ( 여호와 )이시며 예수는 ( 그리스도 )이시다”라는 ( 신앙 )고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을 성경은 ( 형통 )이라고 말한다.

2) 신앙이 자란다는 의미는 나의 잘못을 인지하고 고치는 작업이 ( 빨라진다 )는 말이다. 아이 때에는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자신의 잘못을 ( 인지 )하는 능력이 커지면서 이를 고치는 시간도 빨라지게 된다. 성도 또한 신앙이 자라면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잘못을(= 죄를 )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이로 말미암아 예수께로 돌이키는 ( 회개 )의 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이는 ( 성령 )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3) 요셉과 형제들과의 “새로운 ( 화목 )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갈등과 고통의 사건을 일으키신다.(= 시험 ) 그리고 이러한 고통과 갈등을 거친 후에 신자에게서는 이를 섭리하신 하나님에 대한 ( 찬양 )이 폭발한다. 이처럼 형제들과의 화목을 통해서 요셉은 하나님을 ( 찬양 )하고 있는 것이다.

(엡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절)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1) 언약 자손들에게 있어서는 ( 양식 )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됨을 ( 알게 )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당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시켜서 주님의 뜻을 ( 알게 ) 하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2) 그리고 이제 요셉은 아직 5년이나 흉년이 남았으니 아버지와 가족을 모두 봉양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형제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먹여 살리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죽인 것인데, 주님이 우리를 용서 하셨다면 우리가 평생을 죽을 고생을 하더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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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처럼 주님의 사랑은 이 땅의 ( 생존 )의 풍성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생명 )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가장 적절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하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은혜 ( 위 )에 은혜인 것이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 충만 )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 야곱 언약의 성취를 통해서 보는 축복권 >

(창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1) 많은 사람들이 이삭의 축복에 대해서 “( 아버지 )가 가지는 축복권”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아버지 학교 ) 물론 아버지가 자녀에게 복이 임하도록 하나님께 비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가 비약되어서 ( 목사 )가 교인들에게 가지는 축복권이라는 오해로 발전되었다.

2) 사람들이 “축복권”(= 저주권도 포함해서 )이라는 이상한 용어를 만들어낸 것에는, 한국의 가부장적 제도 즉 유교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축복이란,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기 ( 마음 )대로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 대신 ) 전달하는 것이다.(= 언약의 < 계승 > )

3) 그러므로 나중에 에서가 와서 복을 빌어 달라고 소리를 높여 울어도(= 창 27:38 ) 에서에게는 ( 축복 )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어떤 아버지가 자녀에게 축복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축복이란 하나님의 ( 언약 )을 전달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에서가 그렇게 매달려도 이삭이 축복을 못하는 것이다.

< 꿈을 통해서 알아보는 계시 - 복음의 양면성 >

(창 41:1)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1)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바로 왕에게 ( 계시 )를 내리셨다. 그런데 이 계시의 의미는 바로의 “치국 정책”을 통해서 백성들을 잘 먹이고 살게 하라는 것이다. 즉 ( 천국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 일반 )계시이다.

2) 그러나 같은 계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바로의 꿈이 요셉에게 주는 계시는 이런 일반은총의 차원이 아니다. 요셉에게는 계시가 이 땅에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느냐라는 ( 생존 )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에게는 그렇지만 ), ( 천국 )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3) 즉 바로는 이런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 관심 )이 없고, 그 꿈의 내용을 이용해서 보다 정치를 잘해서 오래도록 왕의 자리를 누려볼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즉 요셉은 바로의 꿈을 통해서 ( 관심 )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다.

4) 따라서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삼은 것은 요셉을 통해서 ( 하나님 )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 다른 ) 신의 감동을 받은 요셉을 이용해서 자신과 나라를 ( 유익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사고방식인 것이다.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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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비전과 영화를 위해서 총리의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다. 요셉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한 ( 일 )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부족하지만 요셉을 ( 사용 )하시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요셉은 바로의 요구를 하나님의 ( 명령 )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45:8) “( 하나님 )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15절) “요셉이 또 형들과 입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1) 형들은 요셉의 태도를 보고서 자신들이 ( 용서 )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기사에는 요셉의 ( 질책 )도 없고 형들의 ( 변명 )도 없다. 이처럼 용서가 있는 곳에는 질책과 변명은 필요 없고, 오직 사랑과 감사와 감격의 눈물만이 있을 뿐이다.

(눅 15:22-24)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 이처럼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서 언약자손 곧 택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 섭리 )를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언약 자손들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보호하여 주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 계시 )하시는 것이다. 이는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요 13:5-15)“제자들의 ( 발 )을 씻기시고....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 상관 )이 없느니라....내가 너희에게 ( 행 )한 것 같이 너희도 ( 행 )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4) 예수님의 이 사건은, 하나님이 낮아지시지 않으면 인간은 ( 구원 )받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성육신 ) 결국 7년 흉년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앞두고 요셉을 준비시키시고 언약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섭리가 ( 요셉 )의 일생이다. (엡 1:4-7)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그의 ( 피 )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6~20 요셉이 형제들에게 부모와 자식들을 데려오라고 함

(18절)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을 애굽으로 내려오게 하시려고 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즉 아브라함 언약대로 언약 자손이 이방에서 ( 객 )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천국 본향을 향한 성도가 겪어야 할 이 땅에서의 여정(旅程)이다.

(15:13) “네 자손이 이방에서 ( 객 )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 괴롭게 ) 하리니”

(히 11:13) “( 땅 )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벧전 1:1-2)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 나그네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참길교회성경연구원 창세기 제 25 강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 나그네 )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 나그네 )와 ( 행인 )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1~28 형제들이 돌아가 부친 야곱에게 모든 일을 고함

(24절)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 다투지 ) 말라 하였더라”

1) 요셉은 베냐민에게는 옷 다섯 벌과 은 삼백을 주었다. 이에 대해서 형들이 베냐민을 ( 질투 )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내가 받은 용서와 그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 비교 )할 틈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구원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던 시절과 비교해서 유기적 점진적 진전으로서의 용서를 받은 언약 자손의 모습을 보여준다 )

2) 또한 요셉이 보내는 귀한 물건들과(= 수 나귀 열필과 암 나귀 열필에 실은 물건들 ) 전에 야곱이 보내었던 선물은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과연 우리가 무엇을 주께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는가? ( 하나님 )의 구원과 ( 사람 )의 예물이 비교가 되겠는가?

(28절)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1) 야곱이 자신이 기반을 잡아 놓은 가나안 땅을 떠나서 많은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약 자손은 가야만 한다. 그 이유 역시 아브라함 언약대로 이방에서 ( 객 )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결론 )

1) 39-45장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통하여 형들을 시험하고 용서하는 내용이다. 이는 언약 자손을 ( 보호 )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언약 섭리를 보여준다.

2) 이는 후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한 성도의 죄를 ( 용서 )하여 구원하실 것을 언약하시는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적 계시 섭리이다.

3)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의 패턴을 보면, 언약- 범죄- 시험- 사죄- 형통의 순서로 이어진다. 이는 형제들의 숨겨놓은 ( 죄 )를 하나님이 직접 드러내셔서 ( 처리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들의 죄를 드러내시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는 ( 구속 )사의 섭리를 보여준다.

4) ( 중생 )했지만 아직도 ( 옛 )사람 혹은 옛( 자아 )에 묶여있는 택자들을, 하나님은 여러 가지 ( 시험 )의 과정을 통하여 깎아 내시고, ( 속 ) 사람 혹은 ( 새 ) 자아로 성숙하게 하신다.

5)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면 되는데, 왜 범죄를 일으키시고 보호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과정적 섭리를 전개하시는가?

(1) 하나님의 작정은 언약백성들의 ( 범죄 )를 허용하시고 이를 통하여 죄를 ( 고백 )하게 훈련하시는 ( 시험 )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이는 내가 ( 죄인 )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 은혜 )를 깨닫게 하시는, 언약성취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 작정 )된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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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셉의 시험 과정을 설명하시오.

(1) 이는 인생의 사건을 ( 현상 )적인(= 현실 ) 면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현상 뒤의 ( 실체 )적인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계시 사건이다. 성경의 내용을 잘 안다고 해서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사건이 의도하는 ( 신학 )적(= 언약 혹은 구속사 ) 의미를 아는 것이 진정한 성경 해석이다.

(2) 그러므로 이제 형들도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 알게 ) 되는 것이다. 즉 요셉의 시험을 통하여 요셉이 받은 그 ( 고난 )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형제들은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왔지만, 그 배후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 참여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들은 양식을 구하러 온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죽도록 하게 되는 것이다.

(3) 오늘 신자에게도 이러한 ( 고난 )이 있을 수 있다. 즉 양식보다(= 육체보다 ) 더 ( 중요 )한 것이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광야에서 40년 동안의 훈련 과정을 거쳤지만, 또다시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서도 ( 끝 )까지 훈련을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을 받은 신자라면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죽도록 하게 되는 것은 ( 당연 )한 일이다.

3) 언약자손들의 형통 (46:~50:)

1) 창세기 46장에서 50장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들로 애굽에 내려가 형통하게 하시는 섭리 내용이다.

2) 하나님께서는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흉년을 만난 야곱의 자손들로 애굽에 내려가 죽지 않고 그 땅에서 거하게 하신다. 그리고 야곱으로 그 자손들에게 축복하게 하시며 요셉과 형제들이 서로 위로하며 살도록 ( 형통 )하게 하시는 섭리를 하신다. 이러한 섭리는 아브라함 언약대로 언약 자손이 이방에서 ( 객 )이 되게 하시려는 섭리이다.

(1) 야곱 가족의 이거 (46:~47:)

46:1~7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애굽으로 내려감

(1절)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희생을 드린 이유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아비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의미는 아비 이삭에게 세우신 ( 언약 )을 이루어 주시려는 것이니까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2)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서 하란으로 갈 때에는 ( 희생 )제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 희생 )을 드린다. 즉 하나님의 ( 뜻 )을 물어보는 것이다. 전에는 묻지 않았지만 이제는 묻는 것이다.

3)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하시렵니까?” 라고 묻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야곱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3절)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