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이름
  박동성목사 2008-11-21 15:18:06, Hit : 131
제목   오해를 극복하는 방법
오해를 극복하는 방법

사람들은 오해를 통해서 많은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아픔을 당할 때에 정말 힘든 것은 오해보다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에 대한 집착이다. 이 집착이 나의 움직임을 어둔하게 만들고 자유를 빼앗아가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도록 만들어 간다. 이런 오해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서도 시작될 수 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에 고난보다 더 힘든 것은 친구들의 오해였다. 절친한 친구들이 위로를 하기 위해 왔지만 욥의 망한 모습속에서 욥의 죄가 크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부터 이해가 아니라 오해가 시작되어진다. 위로가 아니라 책망이 시작되어진다. 이해와 오해의 차이는 순간의 차이이다. 이런 오해는 고통당한 자에게 고통을 더 가중시키게 한다. 성경에 한나도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한다. 그의 불임이 사회적인 통념상 하나님의 저주였고 한나를 향한 오해를 낳게 했다. 게다가 제사장이었던 엘리가 한나의 슬픔의 기도를 술취한 것으로 평가했고 악한 여자로 평가했다. 제자장의 위치를 생각할 때에 한나가 당한 오해는 그를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가장 힘든 오해는 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사람을 오해하고 평가할 때이다. 욥의 고난도 한나의 고난도 하나님을 근거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오해에 기인한다. 이것은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고 있고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하면 고통당하는 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다. 설사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이런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곁에 함께 해주는 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외면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오해를 하거나 오해를 받게 되는가? 근본적인 이유는 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에 우리는 쉽게 오해한다. 이런 분별력이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수고로움과 영혼을 깊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섬김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불별력은 깊은 관찰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찰력은 비판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상대를 깊이 섬길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상대에 대한 섬김의 의지에서 나오는 분별력은 사람을 이해하고 축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며 상대를 사랑하기까지 이끌어 가는 힘이다.
그러나 이런 분별력이 없을 때에 대부분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어진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 사람을 다 이해한다고 여겨 오해하게 된다. 엘리는 한나의 입술만 동하는 것에 주목했고 그것은 술취한 것과 비슷한 형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술취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런 겉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현상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영적인 분별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사무엘상3장 초두에 사사시대를 말씀이 희귀한 시대라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말은 엘 리가 눈이 어둡다는 말이다. 그렇다. 말씀이 없으면 눈이 어두워진다. 보지 못하고 볼 수 없고 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분별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경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거나 외모로 판단하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분별해야할 것이 기본적으로 세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이고 둘째, 때이고 셋째, 장소이다. 사람과 때와 장소를 분별하면 우리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해를 받을 때에 이 오해를 극복하는 방안은 없겠는가? 분명히 있다. 오해를 넘어 이해로 이해를 넘어 사랑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몇가지 제시한다.

첫째, 오해는 오해를 받음으로 극복해야한다.
오해를 받을 때에 오해를 풀어야 할 때가 있고 오해를 십자가를 지듯이 져야할 경우가 있다. 이 것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나님께 더 영광되는 쪽을 택하면 된다. 오해를 풀려고 해도 풀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더 오해하고 더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 경우에는 그 오해를 푸는 것이 아니라 짊어져야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왜 침묵을 지켰는가? 왜 오해를 풀지 않았는가? 말을 해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십자가를 짊어져야한다. 오해를 푼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때에는 십자를 져야할 이유조차도 또한 없지 않는가? 오해를 당하는 것 자체가 영광의 십자가가 될 때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이런 오해를 받을 때에 오해가 오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이사야 53:4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한다. 기가막힌 오해를 당하지만 예수님은 해결할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둘째, 오해는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 할 때에 극복되어진다.  
엘 리가 오해했을 때에 한나는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하면서 진심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오해를 풀 수 있는 것은 1대1의 관계 일 때이다. 한나 한사람이 집단을 대상으로 오해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불임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통념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엘리 한사람의 오해는 한나는 풀 수 있었다. 그래서 그렇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하면서 풀게 된 것이다. 이런 오해를 푸는 것은 비록 1대1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에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가 몇가지 있다. 첫째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고, 둘째는 냉철해지는 것이고 셋째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불편한 관계일수록 나를 오해하는 사람일수록 더 예의를 갖추어야한다. 한나가 엘리를 주라고 표현하고 주의 여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상대의 권위를 세워주고 예의를 갖추어야한다. 비록 그가 타락한 제사장이었지만 한나는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예의를 갖추었다. 그리고 냉철해야한다. 흥분하면 안된다. 오해당했다고 감정을 앞세우면 안된다. 오히려 냉철해야한다. 이 냉철함이 주는 것이 용기이다.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나는 이런 용기를 가지고 엘리에게 다가갔다. 그때에 할말을 할 수 있었다.

셋째, 오해는 축복를 통해서 극복되어진다.
오해를 하거나 받을 때에 할 수 없는 것이 축복이다. 그러나 오해가 풀릴 때에 축복할 수 있다. 한나에 대한 엘리의 오해가 풀렸다. 그 때에 엘리는 그에게 복을 빌기 시작한다. 오해의 끝은 축복이 되어야한다. 축복은 오해를 마무리하는 매듭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오해만 잘 풀어도 축복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사람들은 오해는 풀려고 하지만 축복하기까지 나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왜 인가? 자존심의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인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자신이 무너지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헛되게 만드는 속임수일 뿐이다.

우리는 한평생 이해와 오해의 갈등 사이를 헤매이며 살아간다. 그 가운데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비록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으나 포기하지 말아야할 일이다. 왜냐하면 오해는 하나님의 법인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을 처음부터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오해를 당하는 쪽은 억울함으로 살고 오해를 하는 쪽은 분노로 살아간다. 여기에는 행복이 없다. 여기에는 사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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