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기도) 롬8:26-27

기도는 크게 기도제목을 간구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두종류가 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나의 요구’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야곱의 투쟁하는 모습의 기도를 가르쳐왔다. 이것은 기도의 전부가 아니며 그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는 먼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엘리야는 바람속에서 지진속에서 불속에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왕상19:1-8)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였다.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성숙한 기도이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이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이며 복과 은혜를 얻는 통로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는다. 약하고 어리석은 한계속에서 기도하지 못하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1)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첫째로, 사람이 항상 도울 수 없는 이유는 늘 함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함께 있어 도우더라도 능력에 한계가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셋째로, 사람이 도움이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가장 적절하게 도우시는 성령님
성령님의 도움은 사람의 도움과는 달리 가장 적절하게 도우신다. 성령님께서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계신다. 돕는다는 단어 ‘쑨 안티 람바노마이’는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다정하게 계시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저 건너편에서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신다는 뜻이다. 인생의 짐이 무거운가 영적인 실패로 당황하는가? 성령이 도우심을 믿기 바란다.
‘도우시나니’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령은 과거도 도우셨고 미래도 도우시지만 바로 지금 문제의 그 자리에 임재하셔서 나를 도우신다. 성령님은 내 안에 거하

성령께서 왜 우리를 도우시는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다(26절).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나? 힘이 장사라고 해도 늘 이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연약한 이유는 타락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허무하게 사탄의 종 노릇하고, 썩어짐에 종노릇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한 체질을 가진 존재인지를 잘 알고 계시기에 도우신다. \"연약함\"은 원문을 보면 복수로 되어 있다. 연약함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인물이지만 자신을 연약한 자로 고백했다.(롬7;24-25) 그러나 성령님은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가 우리의 모습이다. 기도하지 못하고 무엇을 구하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때 성령께서 도우신다.
성령은 나를 위하여 어떻게 기도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26)
\'탄식\'이라는 뜻은 해산의 고통을 뜻한다. 생명을 낳기 위해 고통을 이긴다. 성령께서 그렇게 기도해주신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도 오늘까지 살아온 것은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기도는 호흡인데 기도하지 않고도 산 이유는 성령께서 대신 빌어주고 호흡해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령께서 함께 게시는 은혜이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무엇을 기도해야 할 지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셔서 바르게 기도하도록 성령께서 기도하신다.
맺는말
여러분의 가슴에서 낙심과 고통의 한숨이 새어 나올 때 성령님의 기도를 생각하라! 성령께서 심령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고 계심을 기억하라!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도우셨다.(눅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