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念?뜨겁게 하옵소서 /렘20:7-12 예레미야는 요시아 이후 우상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선지자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원망과 욕설로 비판했다. 그 때는 유다 왕국 말기로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정치적으로는 혼란한 때였다. 그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아픈 가슴으로 예언했다. 질그릇 처럼 나라가 깨어지고 예루살렘 성이 여러 나라의 저주가 되고 유다가 베벨론의 속박에 들어갈 것이라 예언했다. 이런 예언에 대중들은 그를 매국노,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반역자라 했으며, 그는 옥고에 매맞고 죽음의 위협에 빠졌고 물없는 진흙 구덩에 속에서 죽을 뻔 했다. 가는 곳마다 미움과 멸시와 협박이 따랐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에 아이라 말할 줄 못한다고 사역을 고사했지만, 주님은 그를 부르시고 누구에게든 가며 무엇을 명하든 말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회개치 않고 그에게 고난의 길이 계속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설득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7) 그리고 친구들은 그가 타락하여 넘어지기를 바랬다.(10) 예레미야는 이 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첫째, 예레미야에게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8) 하나님께 속았다는 생각, 친구들에게서 느끼는 배신감 등이 괴롭혔다. 사명자의 길에는 어려움이 있다. 8절에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라.” 라고 하였다. 지금 예레미야는 많은 불평에 싸여져 있다. 불평을 요약하면 이렇다. “하기 싫었지만, 하나님이 억지로 시켜서 그리고 하나님이 말한다고 해서 내가 순종하였는데, 결과가 이게 뭔가? 사람들은 회개하기는커녕 나를 괴롭히기만 하니, 나! 더 이상 못하겠다.\" 순종했는데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럴 때에 누구나 시험에 빠지기 쉽고 그런 일이 많아지고 시간이 길어지면 신앙은 식고 신앙생활자체가 무의미해지기도한다. 신앙이 도전을 받는 것이다.
둘째, 예레미야는 너무나 힘들어 사명을 포기하리라 마음 먹었다. (9) 그는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니하고 다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을뿐더러, 고난만 당해서 사명자의 직책을 포기하려 했다. 때때로 믿음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명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다. 이런 신앙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셋째, 예레미야가 사명을 포기하려고 결심할 때에 견딜 수가 없었다.(8,9)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속았다고 불평하고 이제 더 이상 외치지 않으리라 사명을 포기하리라 결심하였는데 마음이 편치를 않다.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심장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 결국 다시 사명자로 돌아오고 말씀을 선포하되, 뜨거운 가슴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뜨거움이 필요하고 눈물이 필요하다. 이 불이 꺼지고 가슴이 식어질 때 교회는 생명력을 잃게 되고 만다. 교회는 더워져야 한다.(계3;15-16) 예수님을 믿는데 뜨겁게 믿어야한다. 사랑이 없다고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내 마음속에서부터 사랑의 불을 지피고 그 사랑의 불씨를 이웃에게 전하자. 지금은 한탄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피울 때다. 차디찬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뿐이다. 말씀을 받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기 바란다.(눅24:32) 초대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가슴이 뜨거워졌고 새 힘을 얻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열정이 터졌다. 비겁한 베드로가 성령충만을 받아 부활하신 주님을 담대히 증거했다. 초대교회가 생동했던 것은 지식, 돈,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성령충만으로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 모여서 된 것이다.
<맺는 말> 선지자 예레미야는 정말 그의 조국과 겨레를 사랑한 분이다.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나라의 장래와 앞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린 분이다.(렘9:1) 국가 겨레의 앞날을 생각하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고 또 울었고, 눈물로 회개를 외쳤지만 조롱과 모욕거리가 되었다. 비록 한 때 사명을 포기할까했지만 다시 일어나 귀하게 쓰임받았다. 충성된 신앙생활 가운데 억울함을 경험하고 멈추고 싶은 때가 없는가? 예례미야처럼 성령충만받고 뜨거운 가슴으로 사명자의 길로 돌아오길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