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면 이스라엘 기다리면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창16:1-5)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람의 나이가 85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었다. 사라는 여종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기를 원했다.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주시고 용기주시지만 현실은 냉철하고 꿈쩍도 않는다. 사래는 늙어 가능성이 사라지는 자신을 두려워했고, 몸종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번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여겼다. 사래의 행동은 믿음이 아닌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본다. 일을 결정할 때에 성경적인가, 신앙적인가, 신학적인가를 고려하고 결정해야한다. 아브람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거부했어야 했다. 사래의 말에 아브람은 “그러면 안 되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시다.”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줘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제안을 수락하고 엄청난 비극이 시작된다. 하갈의 후손이 이스마엘이고, 애굽이 그의 후손이고 중동의 국가들이 바로 그의 후손이다. 지금까지도 이들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다. 아브람의 잘못된 선택이 4,000년 전쟁의 위협을 만들었다.
어렵고 힘들 때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어려운 길, 좁은 길, 하나님의 뜻을 택하라.
왜 아브라함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참고 기다리지 못한 것일까? 첫째는 약속에 대한 응답이 오랫동안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주변 환경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서 하늘의 복을 누리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내 마음의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중 가장 급한 성격을 갖고 있는 나라가 우리 한민족이다. 이런 성격은 우리의 삶에 많은 아픔을 가져다 주며 부실공사를 만든다. 단기간에 뭔가를 봐야 직성이 풀리기에 너무 성급하고 실수를 하게 된다. 전도, 기도 모두 성급해서는 안된다. 성급하면 포기하게 된다. 기다릴수록 좋은 것이 다가오고 좋은 작품이 된다.
괴테는 『파우스트(Faust)』를 무려 60년에 걸쳐 완성했고, 뉴턴은 말년에 “내가 발견한 것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은 인내였다.”고 했다. 서두름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 하는 인본주의이고 편의주의이다. 믿음은 좀 늦더라도 자기를 살피며 축복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다. 묵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침묵속에 기도하고 음성을 들어야한다.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방법과 도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래의 생각과 방법은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이 아니었다. 요단강 앞에서 하나님의 방법은 강을 갈라주시는 방법이었다. 다윗의 법궤를 궁으로 모실 때에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붙들자 즉사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무엘에 드려야할 번제를 대신 드렸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진 것이라 해도 수단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목적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윗이 엔게디 굴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고 그래서 축복받았다.

(맺는 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약속을 어긴 결과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한 것이 두고두고 자신과 후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사래의 생각대로 된 것이 없다. 사래와 하갈이 싸우고, 사래와 아브람이 싸우고, 그의 후손들이 민족이 되어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이다. 항상 선한 쪽을 택하라. 믿음의 방법을 택하라.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라.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지혜롭게 기다리는 자에게는 축복의 보따리가 예비 되어 있고,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는 자에게는 실패의 보따리 기다리고 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이고 기다리면 이삭이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라. 기다리면서 침묵하라.